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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16:05:48

드웨인 웨이드/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드웨인 웨이드

1. 개요2. 생애3. 아마추어 시절4. 마이애미 히트 1기
4.1. 2003-04 시즌4.2. 2004-05 시즌4.3. 2005-06 시즌4.4. 2006-07 시즌4.5. 2007-08 시즌4.6. 2008-09 시즌4.7. 2009-10 시즌4.8. 2010-11 시즌4.9. 2011-12 시즌4.10. 2012-13 시즌4.11. 2013-14 시즌4.12. 2014-15 시즌4.13. 2015-16 시즌4.14. 재계약 무엇이 문제였는가?
5. 시카고 불스
5.1. 2016-17 시즌
6.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6.1. 2017-18 시즌
7. 마이애미 히트 2기
7.1. 2018-19 시즌
8.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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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웨인 웨이드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생애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지만 얼마 되지 않아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 할머니와 어머니한테 맡겨지지만 어머니가 약물 중독에 시달려 경찰에게 붙잡히면서 아버지에게 맡겨진 뒤 아버지와 계모 밑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집을 나와 시오반 펀치스[1]의 집에서 신세를 지내기도 했다.

3. 아마추어 시절

Harold L. Richards 고등학교에서는 3학년 때 키가 10cm나 자라났으며 평균 성적 20.7득점, 7.6리바운드로 두각을 드러냈고 마지막 학년 때는 팀을 결승전에 진출시켰다. 졸업 후 여러 대학 팀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끝에 마케트 대학교로 진학했다.

신입생 시절 학업 성적을 이유로 한 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2년차 때부터 일찍이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평균 17.8득점 6.6리바운드 3.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6승 7패로 1993-94시즌 이후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대학교 3학년 때 NCAA 토너먼트 8강전 켄터키 대학교에서 29득점 11리바운드 11어시스트로 트리플 더블을 달성하면서 1977년 이후 4강에 진출시켰다. 이후 NBA 드래프트에 신청하기 위해 얼리 엔트리를 선언하면서 전체 5순위로 마이애미 히트에 입단했다.

4. 마이애미 히트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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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2003-04 시즌

루키 시즌에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켰지만,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의 라이벌리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기대한 사람들이 생겼다.

4.2. 2004-05 시즌

04-05 시즌, 마이애미는 샤킬 오닐을 영입하면서 막강해졌고,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7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석패를 했지만 웨이드와 오닐의 콤비는 환상적이었다.[2]

4.3. 2005-06 시즌

05-06 시즌에는 디트로이트에게 복수를 하며, NBA 결승에 진출했다. 상대는 디르크 노비츠키가 버티고 있는 댈러스 매버릭스. 댈러스가 첫 두 경기를 가져가며 기선을 제압했다. 당시 상황으론 역사상 먼저 2패를 한 뒤, 우승을 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2006 NBA 파이널 직전 기준으로 파이널에서 첫 2경기를 먼저 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극복하며 파이널 우승을 차지한 최근 케이스가 1977-78시즌에 파이널 우승을 거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였고, 이후에 없었으니 당시 마이애미 히트는 댈러스 매버릭스를 제치고 우승하기 어렵겠다며 이야기할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후 히트는 견제가 심한 오닐 대신 웨이드에게 프리롤을 주고 공을 몰아준다. 웨이드가 3, 4, 5경기에서 각각 42점, 36점, 43점을 퍼부으며 마이애미의 역전을 이끌어 낸다. 결국 4대 2로 마이애미는 우승을 차지했고, 웨이드는 결승 MVP에 선정되었다.

ESPN의 필진인 홀린저는 이 파이널 시리즈를 조던, 던컨, 오닐의 시리즈를 넘어 역대 최고의 파이널 퍼포먼스에 놓기도 했는데 반면 시카고 불스의 왕조를 이룩한 필 잭슨 감독은 댈러스의 구단주 큐반이 그동안 너무 시끄러워 불이익을 받은거 같다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다른 측에선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 패해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이후 3,4위전에서 동메달을 받고 추락한걸로 미국의 농구팬들이 큰 쇼크를 받았고 그로 인해 NBA 인기가 떨어질걸 우려해 NBA 사무국 측에서 미국인 영웅 만들기를 시도한거 아니냔 의문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3]

4.4. 2006-07 시즌

이후 06-07시즌 리그진행 중반부까지 PER 1위를 찍고 자유투도 커리어 유일 80퍼센트대를 돌파하는 등 돌파와 미드레인지를 모두 갖춘 완전체 슈팅가드로서 퍼스트팀 입성은 무난해보였다. 하지만 이후 불의의 어깨부상을 당하고 돌아온 이후 확연히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며 전해년도 챔피언이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광탈하는 일에 일조하게 된다.

4.5. 2007-08 시즌

07-08시즌은 잔부상에 신음하며 아예 ALL NBA 팀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런데, 오프시즌에 벌크업하고 신체 밸런스를 잡고 맞이한 08 올림픽에서 그동안의 한을 다 쏟아내는 듯한 멋진 플레이를 보여줬다.

4.6. 2008-09 시즌

그리고 맞이한 08-09 시즌 웨이드는 NBA 사상 최초로 1시즌에 2000득점, 500어시, 100스틸, 100블록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평균 득점 1위에, 슈팅 가드로서 조던과 티맥에 이어 PER 30의 벽을 뚫는 등 굴지의 효율성을 보여주었다. 수비왕 3위에 올랐던 것은 덤.

4.7. 2009-10 시즌

하지만 오닐이 떠난 후, 변변한 동료가 그다지 없던 웨이드는 마이애미를 다시 결승은커녕, 동부 컨퍼런스 결승전까지 이끌 수도 없었다.

2010년 여름, 자유계약이 되었지만, 마이애미는 그와 재계약을 맺었다.[4] 그리고 크리스 보시를 영입하면서, 드디어 웨이드에게 믿음직스러운 파트너가 생겼다.

그리고 7월 9일, 르브론 제임스도 마이애미로 온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돈을 저 셋한테 다 썼으니 남은 선수들은 뭘로 때울거임

4.8. 2010-11 시즌

10-11 시즌, 웨이드, 제임스, 그리고 보시가 이끄는 마이애미 히트는 2011 NBA 파이널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본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르브론의 역대급 역귀짓과 더불어 절치부심하고 돌아온 디르크 노비츠키가 맹활약한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패배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거기에 디펜시브 퍼스트팀을 노리고 있었으나 코비에게 뺏기기도 했고.

4.9. 2011-12 시즌

11-12 시즌, 드디어 고대하던 팀의 역대 두 번째 우승을 2012 NBA 파이널에서 일궈냈다. 다만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는 예전의 위상을 되찾은 "The King" 제임스가 시즌 MVP에 이어 파이널 MVP까지 따내는 기염을 토했고, 부상에서 돌아온 박력왕이 상상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의도치 않게 같은 팀의 리더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웨이드를 지워버렸다.(...) 그나마 평균이라도 했다면 그정도까지는 아니었을텐데, 우리의 자비로운 달마 대사님께서는 시종일관 풀린 눈으로 안일한 플레이를 펼쳐 다른 방향으로 미친 존재감을 과시했다. 심지어 파이널 두 경기에서는 상대팀 선수들마저 당황스럽게 하는 4쿼터 폭풍 클러치 턴오버를 보여주시기까지 하면서 썬더 팬에게는 희망을, 히트 팬에게는 절망을 가져다 주기도 하셨는데... 재빠른 제임스의 헬핑과 러셀 웨스트브룩의 경험 부족 덕분에 급한대로 불은 잡았지만... 정말 매 경기 끝물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만들어내며 막판 똥줄은 이루어진다를 시전하셨다. 웨이드로서는 어찌되었건 이겼으니 다행.

두말할 필요없는 마이애미 히트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리더였으나, 르브론 제임스가 온 이후로 자연스럽게 2인자 역할로 밀린 데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의 최대의 강점이었던 엄청난 운동능력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약점이었던 외곽 슈팅 능력은 어찌된 일인지 향상은 커녕 제자리걸음 내지 퇴보하고 있는 관계로 전성기 시절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운동능력을 살린 돌파를 주무기로 삼던 가드들은 30세에 접어들면 대부분 안정적인 점프슛을 장착, 몸을 덜 쓰면서 효율적인 플레이를 함으로써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보통인데[5] 웨이드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 다만 이러한 기량저하가 노쇠화 때문인지 아니면 파업으로 인한 단축 시즌 때문에 시즌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벌어진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6]

4.10. 2012-13 시즌

다행히 12-13시즌 커리어하이 야투율을 찍으며 리바운딩에 성공. 운동능력 감소가 노쇠화가 아니라 시즌전 있었던 부상과 단축시즌 운영으로 인한 불규칙한 오프시즌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시와 함께 삼각편대를 형성 정규시즌을 최다승률로 마감하고 역대 2위의 연승기록까지 만들어 냈다. 시즌 막판에 무릎부상을 당해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득점이 16점 이하로 떨어지며 고전했지만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7차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2013 NBA 파이널 4차전 등 중요한 순간마다 힘을 내며 자신의 3번째 우승반지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4.11. 2013-14 시즌

2013-2014 시즌에는 플레이오프를 대비해 무릎관리를 받기 위해 틈틈이 휴식을 취하면서 30경기 가까이 결장했다. 하지만...

2014 NBA 파이널에서 체력저하 및 부상에 의한 경기력 저하로 마이애미의 시리즈 패배에 공헌하고 말았다.[7]

파이널 패배 이후 2년 4200만 달러의 잔여계약이 남아있었는데 옵트아웃을 선언했다. 웨이드의 몸 상태가 많이 안좋은데다 르브론이 클리블랜드로 돌아가면서 처량한 신세가 될 뻔 했으나 보시는 다행히 마이애미에 남았고, 웨이드 본인은 2년 $31M 재계약에 합의했다.

4.12. 2014-15 시즌

별 볼일 없었던 14-15 시즌후 웨이드는 팀과 연봉과 계약기간으로 줄다리기 협상을 하며 팀을 떠나는것 아닌가라는 의혹을 낳기도 하였으나 결국 1년 $20M에 재계약에 성공한다.

4.13. 2015-16 시즌

15-16 시즌 샬럿 호네츠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원정 6차전 엘리미네이션 게임에서 상대 팀 에이스 켐바 워커가 미쳐 날뛰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샬럿의 추격을 이끌자 4쿼터 클러치 타임에 2번의 3점슛과 한번의 말도 안되는 터프샷, 그리고 블락으로 게임을 끝내버렸다. 정규시즌에서 3점슛을 2번 이상 성공시킨 경기가 딱 한경기인데 플레이오프 팀이 탈락할수 있는 위기에서 중요할때 3점슛을 2번 꽂아넣으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것을 입증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샬럿 팬과 4쿼터 클러치 타임 내내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도 볼거리.

토론토 랩터스와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 시리즈도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지만 3차전 경기 시작전 캐나다 국가가 제창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수들은 엄숙하게 국가를 듣고 있는데 혼자서 슛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여 큰 논란이 되었다. 거기다 사과는 고사하고 무슨 문제냐는 뻔뻔함을 보여 모두의 어이를 털어버리는 중. 경기는 카일 라우리와 쇼다운을 펼쳤지만 마이애미가 91-95로 패배 정의구현 4차전에서는 토론토와 마이애미 두 팀다 망경기력을 보이는 가운데 웨이드가 마이애미의 멱살을 잡고 끌고갔고 결국 4쿼터 종료 12초전 동점샷을 넣으면서 연장전에 기여했다. 그리고 연장전에서 레이업을 시도했는데 공이 림위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는 엄청난 묘기샷이 되었다(...) 이 장면을 포함해 참으로 희한한 장면이 많았던 예능 경기였는데 아무튼 마이애미가 94-87로 승리를 하면서 시리즈 스코어는 2:2 동률이 되었다. 4차전 종료 후 사과했고, 이후 마이애미와 토론토는 7차전까지 가는 뜨거운 혈전을 펼쳤으며 웨이드도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7차전에서 마이애미가 패배하며 시즌이 끝나고 말았다.

15-16 시즌 이후 마이애미와의 재계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하지만 케빈 듀란트의 GSW 합류 발표 이후로 상황이 급변하여, 웨이드가 르브론, 클리블랜드 단장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클리블랜드에 도착, 미팅에 들어갔다. 루머수준으로 치부되었으나 곧 사실임이 밝혀지고, 스케쥴에 있던 몇몇 FA미팅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팬들은 클리블랜드의 부족한 샐러리 캡을 덜어내는 시나리오를 펼쳤으나, 결국 마이애미 보드진에 지쳤는지 2년간 40m행을 거절하고 시카고 불스와 2년간 47m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4.14. 재계약 무엇이 문제였는가?

마이애미에 드래프트 된 이후로 마이애미에서 계속 활동하며 커뮤니티에서도 인기가 있었고 만년 2인자에 불과한 히트를 1인자로 올려놓기로 하는 등 큰 공헌을 세우며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동했음으로 당연히 그가 명예롭게 마이애미에서 은퇴할 것으로 예상이 되었으나 결국은 그가 마이애미를 떠남으로 현실되지 않았다.

아직 웨이드의 주가가 높던 2010년에 웨이드는 마이애미에 우승을 더 가져오기 위해 르브론, 보시 영입에 관한 적극 물밑작업을 펼쳤다. 실제 연봉도 서로 맞춰 조정하는 등 마이애미에 우승을 가져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실제 웨이드가 13년동안 마이애미에서 뛰는 동안 그가 연봉 1위였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랬던 그였기에 이번에는 조금 더 대우를 받기를 원했으나 마이애미는 이제 노쇠한 그에게 고작 $10M 연봉을 제시했던게 문제. 아무리 전성기가 지났더라도 팀에 세번이나 우승을 가져다 준 레전드 급 선수에게 너무하다는 반응들이 나온 가운데 . 시카고 불스, 덴버 너게츠, 댈러스 매버릭스, 밀워키 벅스 등에서 다년계약으로 연간 20M정도의 계약을 제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히트에서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연간 20밀리언 달러 수준을 제시했다고 했다. 하지만 웨이드는 그동안 쌓인게 있었던지 그보다 나은 대우를 원했고, 히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이유로 (세금에 대한 벌금 포함) 그 이상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웨이드는 자존심이 있는대로 상해 다른 팀들과 협상을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시카고 불스와 2년간 47m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현실과 이상의 사이가 좁혀지지 않은 문제가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히트는 코비의 말년을 봐서 그런지 아무리 프랜차이즈 스타라해도 이제 몸도 기량도 한물간 웨이드에게 연간 2000만불을 주는 경제적 부담을 안기는 부담이되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타당한 부분도 있다. 실제 웨이드에게 20만을 묶는다면 다음해 더 많은 프리에이전트가 나올 때에 묶여 버리게 된다.

하지만 웨이드 입장에서 보면 더 많은 연봉을 전성기때 받을 수 있었는데도 자기 나름에서는 많은 할인에 깎아주기를 반복했는데 다른 모든 스타들이 성적대비 높은 연봉을 받는데 (올해 최고 대어중 하나라고 하는 마이크 콘리도 연간 3000만을 받는다.)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3회 우승을 이끈 자신에게 그 정도도 못해주냐는 자존심이 컸던 것. 많은 분석가들과 기자들은 웨이드가 굳이 이런 결정을 내린대는 돈도 돈이지만 자존심이 더 컸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사건으로 국내의 히트팬덤도 상당히 흔들렸는데, 국내 히트팬들은 상당수가 웨이드를 오랫동안 응원했던 사람들이기 때문[8] 웨이드를 따라 팬심을 시카고로 옮기는 사람들과 그래도 응원하던 팀을 버릴 수 없다며 플로리다에 남은 사람들로 나뉘었다.

5. 시카고 불스

16-17 오프시즌에서 시카고 불스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기존 스타들이었던 데릭 로즈 조아킴 노아가 각각 트레이드와 FA로 뉴욕 닉스로 자리를 옮겼고, 파우 가솔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향하는 등 리빌딩쪽으로 노선을 잡는듯하다가, 중추인 지미 버틀러가 트레이드설이 돌았지만 결국 잔류했으며 라존 론도 드웨인 웨이드를 영입했다. 론도와 웨이드는 보스턴과 마이애미가 라이벌리를 이룰 시절 경기에서 신경전을 많이 벌이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한 팀에서 뛰게 되었으니 꽤 묘한 상황.

5.1. 2016-17 시즌

시즌 초반에는 플레이오프에 이어서 꽤 좋은 고감도 3점슛 감각을 보였으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2017년 들어서 엉망이 되어버린 시카고 불스의 팀 캐미스트리 상황의 논란의 한 축으로 여겨지고 있다. 시카고 지역지에서는 불성실한 태도에 대해 성토하는 기사도 보이고 17시즌 기준 팀 내 최고 베테랑인 타지 깁슨마저도 웨이드의 태도가 더 성실해지기를 바라는 인터뷰를 할 정도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일각에서는 웨이드와 버틀러의 프렌즈 볼을 지적하는 한편 팀의 간판 선수들인 버틀러, 웨이드는 팀원들이 승리에 대한 열정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팀선수들이 모여 미팅을 하였고, 웨이드가 젊은 선수들을 데리고 함께 연습을 하며 친목을 도모했고, 타지 깁슨과 그랜트는 이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다시 분위기가 나아졌다고 한다. 론도의 소외된 역할이 이 사태의 쟁점 중 하나로 여겨졌지만, 사실 론도의 애매한 롤과 저하된 기량이 실질적으로 문제. 오래동안(심지어 조던때부터) 가장 큰 문제였던 시카고 프런트의 문제 또한 이 사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들어서 시카고의 대대적인 리빌딩으로 인해 결국 시카고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이적시장에 나왔다. 드웨인 웨이드, 결국 FA자격 얻는다.

이에 따라 웨이드의 차기 행선지가 주목되고 있다. 웨이드는 최근들어 전성기때 폼은 아니지만 여전히 준수한 공수겸장으로써의 활약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웨이드를 영입한다면 어떤 팀이든 상당한 전력보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차기 행선지로 유력한 곳은 클리블랜드, OKC, 마이애미, 샌안토니오 등이 언급되고 있지만, 마이애미에서는 밴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와도 좋다는 식으로 말하는 바람에 차기 행선지 후보에서 탈락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머지 세 팀이 모두 우승권 팀이라 웨이드나 팀이나 모두에게 좋은 계약이 될 수도 있다.

9월 27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1년 2.3M의 FA 계약을 맺었다. 링크

6.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클리블랜드에 새 둥지를 틀면서 절친과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팬들은 히트시절 이 둘이 보여준 호흡을 다시 한 번 기대하고 있다.[9]

6.1. 2017-18 시즌

17-18시즌을 준비하던 타이런 루 감독은 웨이드가 벤치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직전시즌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JR 스미스 의 경쟁자로써 데려온 느낌이 강했다. 시즌 초는 팀의 사정상 선발로 나왔다.

10월 23일 터란 루 감독은 “(드웨인)웨이드가 선발에서 벤치로 이동할 예정”이라며, “J.R 스미스가 선발에 복귀한다”고 밝혔다. 개막 3경기 만에 루 감독은 선발 라인업을 바꾸는 강수를 뒀다. 이런 과정에서 즈음해서 웨이드가 스스로 벤치행을 원한다고 밝혔다.
웨이드는 “좀더 늦기 전에 결정한거다. 내가 벤치에 있는 것이 팀 라인업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벌써 세 게임을 치렀다. 더 기다릴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타이런 루 감독은 웨이드의 결정에 대해 “웨이드의 행동은 존경받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사실 웨이드의 이러한 결정은 더이상 선발로 꾸준히 뛸 정도로 체력이 안됨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게 웨이드가 벤치로 갔으나 야투가 너무 안들어가고 어이없는 턴오버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약 9경기동안 경기력이 형편없었으나 11월 5일 애틀란타 호크스전의 25득점을 기점으로 클래스를 찾고 11월 부터는 리빙레전드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현재까지, 벤치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팀의 공격력에 좋은 보탬이 되고 있다.

11월 중반부터 경기력이 올라오면서 히트시절 퍼포먼스를 다시 보여주는 중이다. 특히 르브론과 함께한 히트 시절 빅3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최전성기 시절 웨이드가 겁없이 인사이드로 드라이브인해서 덩크를 해 추가 자유투를 얻던 모습 보다는 턴어라운드 점퍼 위주의 효율적인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벤치에서 나와서 포인트가드가 없는 채로 위태로운 클리블랜드의 포인드가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다만 루키시절을 제외하곤 슈팅가드로 뛰었기때문에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다. 드라이브와 페이더웨이가 주무기이며 벤치 선수들에게 퀄리티가 높은 패스를 뿌려주고 있다. 벤치에서 나와서 20분 좀 넘게 뛰고 15득점 5어시스트를 꾸준히 해주고 있어 아이제아 토마스가 빠진 클리블랜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웨이드의 벤치행으로 인해서 포인트 가드 부족에 시달리던 캡스는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리그 정상급의 벤치생산력을 갖게되었다. 웨이드 벤치행으로 각성한 제프 그린도 살아나고 있다. 적재적소에 패스를 뿌려주는 웨이드가 있기에 벤치에 나와서도 제프그린은 효율이 엄청 올랐다. 웨이드, 제프 그린 콤비의 장점은 벤치멤버 치고는 쏠쏠한 수비력도 있다.[10] 채닝 프라이, 카일 코버등의 벤치슈터도 잘 활용하고 있어서 클블의 13연승은 르브론과 웨이드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연승 이후 클리블랜드는 다시 연패의 늪에 빠지고 있는데 워낙 새로운 영입이 많은데다가 네임밸류가 화려하기에 좀 처럼 단합이라는 이름에서 멀어지고 있다. 강팀인 보스턴, 휴스턴도 로스터가 많이 바뀌었지만 클리블랜드는 기존 베테랑팀에서 토마스, 웨이드, 로즈 등 무려 3명의 네임밸류들이 합류했고 루 감독의 무능과 스미스, 셔퍼트, 크라우더, 탐슨의 부상, 부진 등 갖은 악재 그리고 우승을 바라는 팀에서 도저히 나올수 없는 리그 꼴찌 수준의 팀수비와 구단주의 팀 매각설이 동시에 터져나오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1개월도 되지 않는 기간에서 발생했다. 웨이드 입장에서는 2시즌 연속 다른 팀에서 안좋은 사건들만 발생하기에 선수생활 말년에 큰 위기라고 할 수 있다.

7. 마이애미 히트 2기

7.1. 2018-19 시즌

2018년 2월 8일 트레이드 마감일에 클리블랜드에서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 되었다.

은퇴하기 전에 1일 계약으로라도 꼭 마이애미에 돌아오겠다 말 했던 웨이드가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왔다. 이제 나이가 많아 예전같은 폭발력은 보여주기 어렵지만 오랜 선수생활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감과 여전히 녹슬지않은 기술로 마이애미를 돕고 있다. 여전히 클러치타임에 더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며, 히트에 필요하던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워주고 있다. 팀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기세 좋던 필라델피아에게 1승 4패로 탈락했는데, 웨이드는 유일한 승리이자 필라델피아의 17연승을 종결시킨 2차전에서 28점 7리바운드로 MVP로 선정되었다.

웨이드의 팬들 중에는 마이애미 히트가 이 시즌 새로 내놓은 '마이애미 바이스 유니폼'이 상당히 예뻐 웨이드가 입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웨이드가 빠르게 돌아와 이 유니폼을 입게 되어 기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웨이드의 저지가 출시되자마자 매진되었다.

계약 만료 후 장고를 거듭하다 2018년 9월 16일 히트와 1년 재계약을 맺으며 잔류했다. 잔류를 발표하며 2018-19 시즌 종료후 은퇴를 예고했다.

본인의 마지막 골든스테이트 전에서 엄청난 버저비터 샷을 성공시켰다. #

4월 9일(한국시간 10일)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홈 경기에서 30득점을 넣었다. #

8. 은퇴

파일:Melo-DWade-CP3-Lebron.jpg
2019년 4월 10일(한국시간 11일) 브루클린과의 원정경기에서 25득점 11리바운드 10어시스트, 생애 마지막 NBA 경기를 트리플 더블로 마무리하며 코트를 떠났다.[11] 이후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폴도 경기장을 찾아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12]

파일:마이애미 히트 드웨인 웨이드 3번 영구결번.jpg
2020년 1월 22일, 히트 구단은 웨이드의 등번호 3번을 영구적으로 결번하기로 결정했으며 같은 해 2월 22일에 웨이드의 등번호 3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1] 고등학교 시절 함께했던 여자친구로 2002년에 결혼을 해 3명의 자녀를 얻었다가 2010년에 이혼했다. [2] 오닐은 LA에서 코비 브라이언트와의 불화가 있었기 때문에, 웨이드와는 더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다고 말을 했었다. 오닐이 이적한 후에도 둘은 친하다. [3] 당시 농구계가 유례없는 위기를 맞았던건 사실이다. 4년 전 2002년 신인상은 파우 가솔외국인과 유럽 출신 선수 최초로 수상하였고, 같은 해에 개최된 농구 월드컵에서도 NBA 선수들 다수가 참가했지만 홈에서 개최되었는데도 4강 진출에 실패하고, 2년 전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역대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면서 결승전도 아닌 4강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패하며 은메달도 아닌 동메달을 받는 최악의 굴욕을 당했기 때문. 공교롭게도 댈러스의 최고 에이스는 NBA에서 늘 차별의 대상인 외국인이자 유럽 출신 선수 디르크 노비츠키였다. 거기에 2005년과 2006년 시즌 MVP를 백투백 수상한 선수인 캐나다인 선수인 스티브 내시였다. 그리고 이 위기 의식은 끝나지 않았는데 같은 해 일본에서 개최된 농구 월드컵 준결승에서 그리스에게 일격을 맞으며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실패하고, 다음 해에는 디르크 노비츠키유럽 출신 선수 최초로 시즌 MVP를 수상하고, 파이널에서도 토니 파커유럽 출신 선수 최초로 파이널 MVP를 수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7년 파이널은 생방송 채택 이후 역대 파이널 중 최저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흥행이 망하였다. 사정이 이랬으니 NBA 사무국과 미국 농구 협회 모두 위기 의식을 계속 가질 수 밖에 없었다. [4] 계약이 만료된 후에 재계약을 했는데, 그 이유는 마이애미가 살기 좋은 도시라서인것도 있지만 NBA에서 원하는게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를 한 연고지에 묶어두기' 때문이기도 하다(시카고의 조단, LA의 코비처럼). 리그 룰에 의하면 원 소속 팀은 다른 팀에 비해 계약 기간을 1년 더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팀 입장에서 본다면 자기네의 농구스타를 계속 묶어두기 위한 아주 좋은 미끼인것이다. 계약 금액 전부가 보장이 되는 NBA에서, 다른 팀들보다 1년 긴 장기간 계약은 말그대로 선수에게 돈을 쏟아부어주는 것이다. 1년 계약 연장으로 한 2000만 달러가 보장되니... 웨이드는 태생지인 시카고를 고려해봤지만, 역시 쇼미더머니는 강하다. 그리고 웨이드도 마이애미에 애정이 없는 것도 아니니. [5] 대표적으로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 같은 가드들은 이런 플레이 스타일 변화를 통해 30세가 넘어서도 최고의 선수로 남을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점프슛을 장착했다기보다는 젊었을 때부터 원래 점프슛이 완성되어 있던 선수들이긴 했지만. 다만 조던이나 코비는 커리어초창기부터 점프슛 능력을 보유하긴 했으나 "완성도" 면에서는 떨어졌다. 조던같은 경우 데뷔 당시부터 중거리슛능력이 매우 뛰어났으나 슛거리가 비교적 짧은 편이라 20피트(6미터)안쪽까지만 슛이 가능했고(이 정도면 국제규격으로는 거의 삼점라인과 비슷하지만, NBA는 이보다 1미터 정도 길다) 3점슛은 초창기 성공률이 19%를 기록할 정도로 없다시피했다. 조던이 삼점을 하나의 옵션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80년대 후반부터였다. 코비는 이와 반대로 루키시즌부터 삼점이 가능할 정도로 슛거리는 길었지만 성공률 면에서 좀 떨어진 경우. 두 선수 모두 20대 중~후반으로 넘어가는 기간에 기술적으로 완성되었다. [6] 시즌 시작 전에 마음 먹고 제대로 놀았다는 말이 있다. [7] 특히 4차전에서의 부진은 전시즌 파이널의 마누 지노빌리를 연상케하는 활약으로 마이애미팬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8] 샤킬오닐과 같이 우승을 했을 때부터 응원하던 사람도, 르브론과 보시와 빅3를 이루었을 때부터 응원했던 사람도 포함. [9] 만약 르브론이 17-18시즌 우승 여부와 관계 없이 팀을 떠난다면 클리블랜드는 리빌딩에 돌입하고 웨이드 역시 떠날 확률이 매우 높다. [10] NBA 레벨이라고 해도 벤치 멤버는 보통 공수에서 한쪽이 nba수준에 부족한 선수들이 많다. [11] 트리플 더블을 만든 마지막 어시스트는 2003년부터 함께 긴 시간 히트를 지켜온 유도니스 하슬렘이었다. [12] 웨이드가 트리플 더블을 달성하는 순간, 이 셋이 환호하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히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