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는
공작새다.
본인을 뉴요커라고 소개하지만 실상은 어학연수 3개월을 갔다 왔을뿐 본명 박상미에 전라도 전주 토박이 출신이다. 공작은 깃털 발이다. 프리랜서 모델이자 강종렬 부인이자 SNS 스타인 제시카. 그녀의 SNS ID 뒤에는 당당히 “공인” 딱지가 붙는다. 연예인과 일반인 중간쯤에 있는 신종계급. 이렇다 할 필모가 있거나 한 것도 아닌데 웬만한 연예인보다 팔로워 수는 많다. 그녀가 이 정도 공신력을 갖게 된 건 단순히 예뻐서, 모델이어서가 아니다. 강종렬 부인, 바로 ‘미세스 강종렬, 제시카’이기 때문. 그래서 그녀에겐 "#I’m Mrs 강종렬" 타이틀이 매우 중요하다. 뭘 먹고, 뭘 사고, 어딜 가는 지. SNS에 인생을 생중계하다시피 하는 제시카. 제시카에게 SNS는 산소호흡기다. 이거 떼면 죽을 수도 있다. ‘언니 예뻐요, 부러워요, 좋겠다, 멋있어요!’ 피드에 달리는 칭찬 댓글, 쏟아지는 DM이 이젠 사는 이유가 됐다. 한껏 부풀린 화려함으로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공작이지만, 현실은 관상용. 그녀의 모든 게 관상용이다. 관상용 와이프, 관상용 셀럽, 관상용 인생... 49kg의 강박, “좋아요”의 강박, 인증샷의 강박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정말로 예쁜 게 다가 되어 버린, 어쩌면 짠한 여자. 동백이 남이 뭐라든 행복한 인생을 산다면, 제시카는 남 보기에 행복한 인생을 사느라 외로운데... 그녀는 그 작고 외로운 사각형의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필구는
용이다.
동백의 아들. 필구의 8세 인생도 나름 치열하다. 필구가 동네에서 제일 많이 듣는 소리는 “저거 진짜 뭐가 되려고 저래...” 노상 오락기만 들여다보고 다니고, 그저 오락실 갈 궁리만 하는 것 같지만 필구가 달리면 동네가 긴장한다. 이 콩만한 8세가 달려가는 곳은 언제나 싸움판. 어디선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오락기 팽개치고 출동! 동네가 쩌렁하도록 알려준다. 엄마 뒤에는 깡필구가 있다는 것을. 또래 중에 키는 제일 작지만, 제일 깡 세고 목청 큰 올챙이. 이제 겨우 뒷다리가 나왔다고 해서 개구리나 되겠구나, 오해해선 안 된다. 어쩌면 한 꼬마는 지금, 영웅 드래곤의 일대기를 사는 중일지도...
덕순은
해달이다.
용식의 엄마. 평생 부지런히 조개를 깠다. 한 시도 안 쉬고 호도독대며 과부 혼자 삼형제 다 키웠다. 유복자인 용식이는 특히 더 아픈 손가락으로 키웠다. 어린 과부일 때야 힘 센 놈 꽥 소리에도 눈물이 뚝 났지만, 지금이야 “백두게장 덕순”이라면 골목이 다 쪼는 카리스마 동네 짱이다. 할크러쉬 덕순의 리더십은 지갑에서 나왔다. 노상 억척 떨다가도 골목 사람들 힘든 일 있을 땐 남몰래 큰돈 꿔준다. ‘천성이 엄마’라 지금도 배고픈 놈은 일단 잡아다 뭐든 먹이고 본다. 그렇게 동네에서 품은 애들이 동백과 그녀의 아들 필구였다. 닳고 닳고... 맞고 맞아서... 안이 커진 무쇠 솥처럼 품이 넓은 덕순. 애 하나 안고 덩그러니 이사 온 동백이도 보자마자 품어버렸다. 동백이 사는 게 꼭 젊은 날 자신 같아서 더 마음을 썼다. 호불호 확실하고 아닌 건 아니지만, 맞는 건 끝까지 맞다. 한번 내 사람은 끝까지 내 새끼다. 그런데 과연... 아들 용식이 동백을 좋아한대도 입장이 안 변할 수 있을까...?
배수는
나무늘보다.
‘내가 그때, 그 꼴통에게 반하지만 않았더라면, 말년이 조금 편했을까...’ 용식이 열일곱에 변소장을 처음 만났고. 용식이는 아니었어도, 변소장 가슴에선 징이 울렸다. 본인은 소심해 큰일을 못해도, 의인에 대한 리스펙만은 항시 뜨겁던 배수. 의인의 일대기를 함께 한단 사명감으로 용식이를 키우다시피 했다. 소장은 까불이 사건으로 좌천되다시피 내려 온 인물. 원래는 강력계에서 “변반반”으로 불렸었다. 과학보단 촉과 감으로 수사하던 옛 유물 같던 분. 그런데 그 승률이 딱 반반이라 변반반. 어떤 건 귀신같이 맞추고 어떤 건 아예 헛다리였다. 느리고 느긋하고 눈치도 좀 없고 ‘뭘 잡기나 하겠나...’ 싶게 둥글납작한 성품이지만 나무늘보에게는 “목표개념”이 있다. 조금 느리지만 제 갈 길은 간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목표지점에 가있다. 그런 소장이 까불이에게는 남다른 집념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끄떡하면 눈빛만은 예리하게 말하는 배수 “내 촉에. 까불이 아직 옹산에 있다.”
심보가 아주 너그럽지는 않지만 솔직하고 내숭 없다. 동네싸움엔 늘 그녀가 있고, 동네여론을 주도하는 실세기도 하다.
샘도 많고 텃세도 좀 부리지만, 약간 한번 맘 열면 귀찮은 스타일.
일단 친해지고 나면 아주 찰싹 붙어 안 떨어진다. 원래 사람은 부대끼고 치대고 서로 신세도 지며 친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옹산 시스템 상, 주방을 차지하는 자가 천하를 갖게 된다.
게장 담글 줄 아는 부인에게 모든 권력을 빼앗기고, 주차요원 + 파인애플 판매로 제 몫을 한다. “오늘 파인애플 몇 개 팔았어.”소리가 그가 부인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파인애플을 백 개 팔아도, 자꾸 주차하다 차를 긁어 적자를 내고... 등은 자꾸 굽어간다.
준기네 일당 2인자. 그 중에선 동백에게 가장 관대하다.
남편도 서글서글하고 자식들도 두루 둥글게 잘 컸다. 게장 골목에서 떡집으로 살아남을 만큼 바지런하고 솜씨 있다. 종목이 겹치지 않는 덕에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뭐 경계하고 모날 일이 없다.
누가 내 영역을 건들지만 않으면 안 둥글 이유가 없다.
용식이 초중고 동창이자 친한 친구. 이름은 걸출하지만 야구로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고, 모교 코치 맡으며 후배 양성에 힘쓴다. 딸 부잣집 게장네 유일한 외아들이지만, 게장 상속권도 없다. 야구보다 연애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 연애에 빠삭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잘 어필하지 못한다.
전주 청포묵 아가씨 眞 출신이다. 당시 공군에 있던 남편 박무옥(現 항공사 기장)과 일찍이 결혼해 슬하에 아들 둘 막내 딸 하나 있다. 아들들은 남편 닮아 공부 잘하고 사고 안 치고 자랐는데. 아뿔싸. 뒤늦게 낳은 딸이 꼭 화자를 닮았다. 그녀의 앨범엔 청포묵 아가씨 당시 한복 입은 사진만 세상 청아하게 남아있지만, 사실 화자는 낮보단 밤에 더 유명한 전주의 셀럽이었다. 전주 나이트를 미모와 춤으로 평정했고, 신입 DJ들이 화자에게 따로 인사를 올 정도의 공인이었다. 조명 아래서 주목 받는 게 좋았고, 나팔바지자락 펄럭이며 전주 시내를 활보하는 게 좋았다. 관심 받고 싶었다. 튀고 싶었다. 그런 화자를 제시카가 꼭 닮았다. 아니, 업그레이드 버전이 나왔다. 그런데 남편은 지독히 가부장적이고 엄했다. 딸과 남편이 격돌했다. 열여덟 제시카가 머리를 초록으로 염색하고 다니던 시절, 가발을 씌워 아침 밥상에 앉히는 식으로 부녀를 중재해온 화자였다. 맘이 안 놓이는 딸 제시카를 위해 화자는 헬리콥터 맘이 됐다. 장래, 결혼, 성형까지도. 모든 밥을 떠먹여 키웠는데... 그래서 화자는 만족할까. 아니, 행복할까...?
규태의 수식인 “동네유지”를 더 정확히 말하면 “동네유지 아들”이다. 은실은 옹산 알부자다. 돈 욕심 많고 감 좋아서 경매, 돈놀이 등으로 돈 좀 불렸다. 불리고 보니, 집안에 돈은 있는데 “사짜”가 없는 게 아쉬웠다. 벼르고 별러 규태를 변호사와 맞선 보게 했는데, ‘어라? 진짜 결혼을 하네?’ 그러나 모든 일엔 장단이 있는 법. 며느리가 너무 잘났다. 너무 똑똑하다. 잘난 며느리가 아들 무시할까싶어 더 어깃장을 놨다. “사짜 며느리 이고 산다, 이고 살아.” 소리를 툭하면 해댔다. 마음과 말 사이에 필터가 없고, 돌려 말하는 센스도 없다. 뿔 딱지 났으면 어떻게든 티를 내야 직성이 풀린다. 지극히 노골적이고 솔직하다. 그리고 슬프도록 보편적이다. 곧 환갑이지만 마음은 아직 애기인 은실. 그녀도 어른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