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03:17:57

데바닷타

제바달다에서 넘어옴
1. 개요2. 일생에 대한 전승3. 오늘날의 평가: 스스로 쇠퇴를 초래한 근본주의 교단4. 그는 먼 훗날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다5. 데바닷타 교단의 교리6. 대중문화에서

1. 개요

석가모니의 제자이자 그의 사촌, 그리고 아난다의 형이다. 즉, 왕족 출신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데바닷타, 한역(漢譯)으로는 '제파달다(提婆達多)'라고 한다.
석가모니를 배반하고 따로 종파를 세우려고 한 일 때문에 불교에서는 그리스도교 이스카리옷 유다 같은 취급을 받지만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는 "그가 전생에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으며 이 공덕으로 언젠가는 천왕여래(天王如來)라는 이름의 부처가 되리라"고 예고했다.[1] 제자들에게는 이 예고의 파장이 컸던 듯하다.

2. 일생에 대한 전승

석가모니와 대적하려고한 것 때문에 석가모니가 왕자이던 시절 부인을 놓고 경쟁하는 상대였다는 전설도 있다.[2] 그러나 실제론 석가모니가 훨씬 나이가 많아 석가모니가 결혼할 무렵엔 데바닷타는 아직 어린애였다고 한다. 석가모니를 적대한 인물이었으니 석가를 따르던 불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결국 여러모로 '악인'의 이미지를 씌우려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만들어졌다.[3]

불본행집경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하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의 전생에 처음으로 그가 내세에 '붓다'가 될 것이라는 연등불의 수기를 받았던 때의 일인데 그때 석가모니 부처는 설산 근처에서 진보(珍寶)[4]이라는 바라문의 제자 밑에서 수행하던 수메다라는 바라문이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만큼 뛰어난 경지에 올라 산을 내려온 수메다 바라문은 마침 수라파사(輸羅波奢)에서 제사덕(祭祀德)이라는 바라문이 6만 명의 바라문을 대상으로 1년 동안 무차회(無遮會)를 열고 있었다. 참석한 모든 바라문들은 한 사람마다 일산 한 개ㆍ가죽신ㆍ병ㆍ발우ㆍ상하 내복 한 벌씩을 받았는데 따로 그들 가운데 제일가는 바라문 한 명에게 금 5백 냥과 금 지팡이 하나, 금 물통 하나, 소 천 마리를 주고 가장 높은 자리에 앉혔다.

수메다 바라문이 수라파사에 도착했을 때는 무차회 마지막 날이었는데 6만의 바라문들은 멀리서 오는 수메다를 보고 큰 소리로 범천이 오신다고 환호했는데 수메다는 자신은 범천이 아니라 설산 남쪽의 진보 바라문의 제자라고 소개했다. 수메다 이전에 6만 명의 상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가 있어서 바라문의 법과 주술을 비롯한 모든 경론을 다 외우고 논쟁에서도 이겼는데 수메다 바라문은 자신이 진보 바라문에게서 배운 선유론(先有論)이라는 베다 경전을 바라문들에게 알려 주었고, 무차회에 있던 6만의 바라문들은 매우 기뻐 춤추며 뛰다 감탄하고 수메다에게 상좌가 되어 줄 것을 청하면서 앞서 앉아 있던 바라문을 상좌에서 내려오게 하고 수메다를 그 자리에 앉혔다. 이렇게 되자 앞서 상좌에 앉아 있다가 내려오게 된 그 바라문은 "나는 오래도록 이런 보시물을 기필코 먼저 가지려 했는데, 어디서 새파랗게 어린 놈이 와서 나를 밑으로 끌어내리고 나의 이로움과 공양을 빼앗기게 되다니..."라고 앙심을 품고 "내가 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온 지계, 정진, 고행의 과보와 그 인연을 빌어 세세생생 저놈하고 환생하는 곳마다 만날 것이다. 그때도 그가 내 이로움과 공양을 빼앗아 간다면 반드시 저놈에게 원수를 갚아 주겠다. 기필코 저놈과 서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서원했다. 그 바라문이 바로 데바닷타였다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제자가 된 후 뛰어난 말솜씨와 신통으로 수많은 승려들의 신임을 얻었지만[5] 빔비사라 왕[6]의 아들 아지타사투 왕자의 마음을 빼앗아 절을 세우고 공양을 받으면서 탐욕과 교만에 취하고[7] 얼마 안 가서 사건을 터트리는데 석가모니에게 이제 늙었으니 교단을 넘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석가모니는 "내가 사리풋다 목갈라나와 같은 큰 아라한에게도 넘겨주지 않은 교단을 어찌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침이라도 빠는 네게 넘겨주겠느냐?"이라고 거절하면서 데바닷타는 앙심을 품었다고 한다. 이후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계율을 만들어서 그걸 사용하라고 주장하다 안 되니까 신참 제자 5백 명을 데리고 나가 따로 종파를 만든다. 그런데 그 제자 5백 명은 석가모니가 보낸 사리풋다와 목갈라나 존자의 설법을 듣고는 다시 마음을 바로잡고 원래 종단으로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데바닷타의 최후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 제자들에게 버림받고 고립되자 홧병이 나서 죽었다고도 하고 석가모니를 암살하기 위해서 온갖 수를 썼다고도 한다. 아지타사투 왕자를 꼬드겨서 왕위 계승을 하게 만들고 빔비사라 왕을 감금해서 죽게 만들거나[8] 암살자를 보냈다.[9] 미친 코끼리(혹은 술취한 코끼리)를 석가모니에게 달려가게 만들기도 했지만[10] 석가모니 근처에 가자마자 명상에 든 평화스런 모습에 감화되어 살기를 버려 실패로 돌아갔다. 심지어 미친 코끼리는 석가모니를 보자 얌전해지고 코로 석가모니의 발의 먼지를 털었다고 한다.[11]

결국 이도저도 안 되자 자기가 직접 나서기로 했는데 처음 석가모니를 노리고 바위를 굴렸지만 감화된 바위가 빗나가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런데 바위가 떨어지면서 돌조각이 튀었는데 이것이 석가모니의 발가락에 부딪혀 상처를 냈으니 이것이 석가모니가 출가한 후 유일하게 입은 육체적인 상처다.[12] 마지막 발악으로 그는 손가락에 을 발라 석가모니를 햘퀴어 죽이려고 했지만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있던 것을 잊었기 때문에 석가모니에게 가기도 전에 독이 자기 손으로 스며들어 몹시 고통스러워하다가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진다.[13]

3. 오늘날의 평가: 스스로 쇠퇴를 초래한 근본주의 교단

현대의 불교 연구가들은 데바닷타를 폄하하는 설화는 대체로 후세의 창작으로 여겨 부정하는 견해가 많다. 예를 들어 야쇼다라 왕비를 덮치려고 했다는 설화는 그녀가 데바닷타의 친누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14]

보통 현대의 연구에서는 석가모니와 의견이 맞지 않아 분파하게 된 정도로 추측하며 석가가 불교를 정립하기 이전 기존의 신앙계 인물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 경우 아래의 기록에 의거하여 석가가 '개혁'하기 이전의 종교 교단의 유력한 사람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엄격한 계율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멸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 다른 가설에 따르면 영양 부족으로 신도들이 전멸했다고도 한다. 사실 대가 끊기는 것은 많은 고행자들이 그러했듯 그들 자신에게는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것에 해당하므로, 엄격한 계율을 거부하고 존속과 교세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딱히 큰 의미는 없다.

인도에 다녀온 현장법사의 기록을 포함한 몇몇 기록들에 의하면 데바닷타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단은 그때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하며 심지어 불교의 사원을 빌려서 쓰기도 하는 등 불교와 대립하지 않고 공존했다고 한다. 당시 데바닷타의 교단은 다른 부처[15]들에게는 공양과 경대를 했지만 데바닷타가 직접 대립했던 석가불에게만큼은 공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랍의 눈으로 본 십자군》이란 책으로 유명한 레바논 출신 프랑스 작가 아민 말루프는 데바닷타[16]라는 소설을 썼는데 이 소설에서 재평가로 좀 좋은 면도 있다고 봤으나 광신적인 한계로 가서 스스로 파멸하니 안타깝다고 결국 결말이나 근본주의에 대해서는 비난한다. 그렇지만 서문에서 패자이기에 더더욱 기록에서 불리하게, 왜곡되어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쓰기도 했다. 원래 역사나 각종 기록이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리 있는 의견이다. 말루프는 아랍계 그리스도인이지만 불교나 다른 종교에 대해 소설이나 여러 책자도 썼는데 그의 소설 마니에서도 마니교에 대하여 긍정적인 부분과 같이 패자로 사라졌기 때문에 데바닷타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남고 매니악이라는 그리 좋지 않은 말의 유래가 되었다고 의견을 썼다.

4. 그는 먼 훗날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증오했고 가장 적대했던 석가모니는 데바닷타를 향해서 "그는 내세에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선언하는데 법화경 제바달다품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어느 왕이 대승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왕의 자리도 태자에게 넘겨주고 북을 높이 울리며 "누가 나를 위해 대승의 법을 설해 주겠는가. 그런 사람 있다면 내가 평생 그를 받들어 모실 것이다"라고 호언했고 그때 아사(阿私)라는 이름의 선인이 왕을 찾아와 "나에게 『묘법연화경』이라 하는 대승경이 있으니, 나의 뜻을 어기지 않으면 설해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왕은 이를 받아들여 아사 선인의 노복처럼 그를 받들고 모시면서 과일도 따고 물도 긷고, 땔나무도 해오고 밥을 지었으며, 아사 선인이 그를 깔고 앉아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 끝에서 석가모니 부처는 그때의 왕이 바로 자신이고 아사 선인은 데바닷타였다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는 그를 선지식(善知識)[17]이라고 부르며, 그가 전생에 자신에게 육바라밀ㆍ자비희사(慈悲喜捨)[18]ㆍ33상[19]ㆍ80종호[20]ㆍ금색신과 10력ㆍ4무소외와 4섭법(攝法)[21]과 18불공법과 신통력을 두루 갖추도록 도왔고, 그 덕분에 자신이 붓다가 되어 등정각을 이루고 널리 중생을 제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告諸四衆. 提婆達多卻後過無量劫,當得成佛,號曰天王如來、應供、正遍知、明行足、善逝、世閒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世界名天道。時天王佛住世二十中劫。廣爲衆生說於妙法,恒河沙衆生得阿羅漢果,無量衆生發緣覺心,恒河沙衆生發無上道心,得無生忍,至不退轉。時天王佛般涅槃後,正法住世二十中劫。全身舍利起七寶塔,高六十由旬,縱廣四十由旬,諸天人民,悉以雜華、末香、燒香、塗香,衣服、瓔珞、幢幡、寶蓋,伎樂、歌頌,禮拜供養七寶妙塔。無量衆生得阿羅漢果,無量衆生悟辟支佛,不可思議衆生發菩提心,至不退轉.
이에 너희 사부대중에게 말하노라. 이 데바닷타는 한량없이 오랜 겁을 지나서 반드시 성불하리니, 그 이름은 천왕(天王)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며, 그 세계의 이름은 천도(天道)이리라. 그때 천왕불이 세상에 머물기는 20중겁으로, 널리 중생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설하면 항하의 모래 같은 많은 중생이 아라한과를 얻고, 또 한량없는 중생은 연각심을 내며, 다시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중생이 위없는 도의 마음을 내어 무생인(無生忍)[22]을 얻고 물러남이 없으리라. 천왕불이 열반한 뒤에는 정법이 20중겁을 세상에 머물 것이며, 전신사리[23]로 칠보탑을 세우리니, 높이는 60유순이며 너비는 40유순이다. 모든 하늘과 인간들이 여러 가지 꽃과 말향ㆍ소향ㆍ도향과 의복ㆍ영락ㆍ당번ㆍ보배의 번개와, 기악과 가무로써 7보의 미묘한 탑에 예배하고 공양하며 한량없는 중생들은 아라한과를 얻고, 또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이 벽지불을 깨닫고, 불가사의한 중생이 보리심을 내어 물러나지 아니하리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 제12

석가모니 부처가 데바닷타를 향해서 "그는 먼 훗날 반드시 붓다가 된다. 그 또한 나에게 보탬된 공덕이 있으니까."라고 선언한 것은 그리스도교로 치면 예수가 이스카리옷 유다를 두고 "유다는 먼 훗날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다. 너 역시도 나에게 보탬이 되었으니까."라고 선언한 것과 같은 파격적인 것이었다.[24]

불교나 그리스도교에서 공통적으로 "악인도 성불할 수 있다", "죄 지은 자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요 교리로 내세우는 것은 현대에는 죄를 지은 자에 대한 면벌부 내지는 범죄자 미화로 비판되기도 하는데 그런 인간들이 써먹기 딱 좋은 문구이기는 하다. 붓다나 예수나 악인도 성불한다, 죄인도 구원받는다는 말 뒤에 "하물며 선인은 어떻겠는가?"라는 물음을 붙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마디로 반어법. 악인도 돌이켜 참회하면 성불하고 구원도 받는데, 선인은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성취하지 않겠느냐 라는 강조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예수가 엄연히 장래에 자신을 팔아 넘길 유다를 왜 굳이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느냐 하는 문제와 비슷하게 《대방등무상경》 권4에서는 선덕(善德)이라는 바라문이 석가모니 부처 앞에서 "여래는 일체지자(一切智者)[25]라 하신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못된 사람을 출가시켜 머리를 깎아 주고 구족계(具足戒)를 받게 하셨습니까?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선근(善根)을 내게 하기 위해서인데, 무엇 때문에 이 사람만은 유독 낼 수 없는 것입니까? 여래께서는 자비로 언제나 자재한 말씀으로써 모든 중생을 위하여 널리 바른 법을 말씀하셨고 듣는 이는 은혜를 입게 되어 선근이 열리고 펴졌는데 무엇 때문에 데바닷타만은 이런 이익에 참여하지 못합니까? 여래의 성품은 청정하고 몸도 청정하고 마음도 청정하므로 권속도 마땅히 청정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대중 가운데 이런 무리가 있습니까?”라는 악의 문제 비슷한 질문을 하는데 대운밀장보살(大雲密藏菩薩)이라는 이가 나서서 "아주 좋은 질문이다!"라며 이렇게 대답을 한다.

① 데바닷타는 우리 기준의 그저그런 '악인'으로 단정지을 만한 자는 아니며[26] 또한 부처님에 대해 배은망덕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데바닷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전히 따랐기에 조금도 성지(聖旨)에 어긋남이 없었다.
② 데바닷타가 부처님에게 상처를 입힌 것[27]과 승단 파괴[28] 등의 악행은 일종의 중생들을 위한 방편이고, 불가사이한 경계이다. 또 석가족 사람들은 악행을 저지를 줄 모른다. 데바닷타는 착실한 석가족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악행을 저지를 줄 모르고, 악행을 하였다면 그것 역시 석가여래의 공덕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29]
③ 데바닷타는 지옥에 떨어질 업을 짓지 않았다.[30] 그가 한 행위는 사실 보살행으로써 중생 교화를 위해 지옥에 머무르는 것이므로 정말로 지옥에 떨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④ 데바닷타는 일념(一念)의 잘못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 동안 지옥에 떨어지는 과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결코 악업을 지을 수 없다.
⑤ 데바닷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질문자[31]는 마땅히 그를 향하여 참회 · 공경 · 공양 · 존중 · 찬탄하여야 한다. 모든 제자들이 만약 데바닷타의 공덕에 대하여 확신하여 의심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진정한 불제자이다. #[32]

경문에서는 또 석가모니 부처가 위에서 서술한 내용들을 모두 칭찬하였을 뿐 아니라, 데바닷타가 성취한 경계는 아주 높기 때문에 성문이나 연각 등이 헤아릴 수 있는 경계 따위가 아니다, 라고 다시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능력도 있고 자질도 괜찮은데 그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나쁜 데다 쓰려고 한 것 내지 그 자질을 가지고 자기가 옳고 나머지는 다 글렀다 독선을 품었던 게 문제였다는 것.

5. 데바닷타 교단의 교리

데바닷타가 주장한 오법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다섯가지 계율은 전승마다 달라지는 경우도 많지만 대체로 거주지, 걸식, 금육, 의복의 절제 등 의식주 전반에 대한 계율이다.

농담이 아니라 영양학적 관점으로 보면 영양실조로 죽기 딱 좋은 법도다.(…) 영양실조로 신도들이 전멸했다는 가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38]

게다가 소금 섭취 금지는 말도 안 되는데 음식에 자연적으로 포함된 염분을 섭취하는 걸로 견디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소금은 지나친 것보다 모자랐을 때의 해악이 훨씬 크며 과일이나 야채 등에 자연적으로 함유된 나트륨 성분만으로는 성인 1일 권장량에는 택도 없다. 오죽하면 단식투쟁하는 사람들이 물 외에 유일하게 섭취하는 것이 바로 소금이다.그냥 먼지도 핥지

이러한 데바닷타와 그 종단의 이야기는 근본주의란 것이 왜 해로운지, 그리고 석가모니가 왜 이를 불식시키려고 노력했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사례이다. 석가모니 생전에 풍속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그 풍속을 유지하며 불법을 따르게 해달라고 하자 모두 허락하며 불법이 깨달음을 구속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고까지 한 일도 있다. 오히려 계율을 두고 논쟁이 일어난 것은 석가모니 사후의 일이다.

석가모니 본생담[39]에서도 석가모니의 전생에 맞서는 역할은 거의가 이 사람의 전생들이 맡고 있다. 하나만 꼽자면 대당서역기에 보면 현장이 전해 들은 것으로 석가여래가 처음 설법을 행했다는 바라나시국 녹야원(鹿野苑)의 이름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바라나시국에 사슴 사냥을 몹시 좋아하는 인간 왕, 각자 사슴 5백 마리씩 거느리는 사슴 왕 두 마리가 있었다. 사슴 왕 중 한 마리가 왕에게 요청해 사슴 무리에서 돌아가면서 하루에 한 마리씩 순번을 정해 왕에게 가서 목숨을 내놓는 것으로 왕에게 사슴 사냥을 줄여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그래봐야 3년 안에 전멸

그러나 순번이 돌아온 암사슴 한 마리가 자신은 지금 임신 중이고 뱃속의 새끼만큼은 살리고 싶다며 가기 곤란하다고 하자 사슴 왕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그건 네 사정이고, 다른 죽은 사슴들은 뭐 목숨이 안 아까워서 안 갔냐? 네 순번이면 네 순번대로 나가야지. 그럼 지금까지 죽은 사슴들은 어쩌라고. 또 네가 이제 와서 안 가면 누가 대신 갈 건데?"라며 암사슴을 욕했고[40], 암사슴은 (처음 왕에게 사슴 한 마리씩을 바치겠다고 요청했던) 다른 사슴 왕에게 자신의 사정을 호소했다.

그 사슴 왕은 "그래 네가 순번이기는 해도 네 뱃속의 새끼는 무슨 죄겠냐." 하며 자신이 암사슴을 대신해 가겠다고 나섰다. 사슴 왕이 대신 오게 된 사정을 들은 왕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살생을 뉘우치며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임신한 암사슴에게 윽박질렀던 사슴 왕이 데바닷타의 전생이고 암사슴 대신 자신이 죽겠다며 자원했던 사슴 왕은 석가여래의 전생이었다는 것.[41]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이야기로 둘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제일 나쁜 건 인간 왕이긴 하지만(...)

삼국유사 노힐부득 달달박박의 설화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6. 대중문화에서

붓다의 기묘한 모험 ~ 삼마삼보디 크루세이더즈 ~ 돌굴러간다! - 이 패러디를 그린 것은 다름아닌 현직 승려인 용덕 스님인데 둠 코믹스 패러디까지 그렸다.

네이버 웹툰 보살님이 캐리해!에서는 원전과는 달리 죽지 않고 1화부터 석가모니 부처와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으로 등장해 향후 주요 빌런으로 등장할 것을 예고했다.


[1] 물론 불교 교리상 모든 중생은 열반할 때까지 계속 윤회하기 때문에 그도 언젠가는 열반하게 된다. 아동용 불교 서적 중에는 개심해 석가모니에게 용서를 빌고 다시 밑으로 들어갔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아동용이라 내용을 개찬한 듯하다. [2] 제바달다로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영화 석가모니(1964년작이지만 의외로 고증이나 여러 모로 신경썼고 제법 제작비도 들어서 당시 한국 경제사정을 생각하면 대작이다.)에서는 이런 경쟁 상대 캐릭터가 나온다. 박준규의 아버지 박노식이 분장한 왕자다. [3] 이런 예는 석가를 강조할수록 더해지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전생에 석가가 정의로운 사자였을 때 의형제 동생이던 코끼리(이 코끼리는 미륵이다.)와 함께 죽인 독룡이 제바달다라고까지 하며 어떤 전승에 의하면 전생에 머리 둘 달린 새의 한쪽 머리는 석가, 다른 머리는 제바달다이고 다른 머리가 한쪽 머리를 시기해서 동반자살한 이야기도 있다. [4] 증일아함경에는 야야문이라는 이름으로 한역되어 있다. [5] 수많은 비구와 비구니들이 그를 따랐으며 심지어 교단의 2인자 사리풋다도 '데바닷타는 신통과 위력이 뛰어난 비구다'라고 칭찬했다. [6] 싯다르타가 구도 중에 만난 마가다 국의 왕. 수행하는 싯다르타의 기품을 보고 나라를 주겠다, 군대를 줄테니 다른 나라를 정벌하라고 권했다. 싯다르타는 고맙지만 세속의 행복을 찾으러 수행을 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정중히 거절하고 바르게 나라를 다스려 달라고 부탁한다. 왕은 작별하면서 도를 이루시거든 나를 먼저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으며 석가모니는 약속을 지켰다. [7] 석가모니는 데바닷타가 점점 교만해지는 걸 보고 데바닷타가 걸식하러 나타나면 '어리석은 사람은 상대해 봤자 백해무익하다'고 하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8] 아지타사투는 나중에 갓 태어난 아들의 종기를 빨다가 어머니 웨데히가 "네 아버지도 그렇게 너의 종기를 빨았단다."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악행을 후회하고는 데바닷타 무리들을 버리고 석가모니를 찾아가 참회했다. 이후 아버지 빔비사라 왕처럼 석가모니를 후원했다. [9] 한 설화에서는 처음엔 암살자 4명을 보내고, 그 다음 그들을 죽여 입막음시킬 암살자 8명을 보내고, 그 다음 또 그들을 죽일 암살자 16명을 보낸 뒤 그 16명까지 독살할 계획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보낸 암살자들이 전부 석가모니에게 감화되어서 오히려 참회하고 제자가 되어 암살시도가 실패했다고 한다. [10] 코끼리는 폭주하면 자연에서 막을 존재가 없을 정도로 위험하며 현재도 발효된 과일을 먹고 취한 코끼리가 난동을 부리면 근처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다. 비유하면 조폭 영화에서 트럭으로 적대인물을 박아서 제거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불교에서 지옥에 가는 죄 목록 중에 코끼리를 악용한 죄가 나오는 이유도 이 사건에서 유래한 것이다. [11] 전승에 따라서는 석가모니가 달려오는 코끼리를 직접 집어 던졌다고 한다. [12] 여담으로 이때 석가모니의 발에서 흐른 피가 땅에 스며들어 칸나 꽃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13] 또는 움직이면 독이 먼저 퍼질 것을 우려하여 수레를 타고 석가모니가 있는 곳으로 달렸으나 독이 예상보다 빨리 퍼져 수레에서 굴러 떨어져 죽었다고도 전한다. 또는 용서를 빌러 석가모니에게 갔지만 결국 지옥에 떨어졌다고도 한다. [14]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붓다에서는 데바닷타의 아버지인 반다카가 코살라국과의 전쟁을 앞두고 숫도다나 왕에게서 왕의 자리를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난 뒤 자신이 숫도다나 왕의 뒤를 이어 카필라국의 왕이 될 거라며 야쇼다라를 덮치려고 했으나 오로지 싯다르타 한 사람만 보고 있는 야쇼다라에게 질려서 스스로 포기하고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데바닷타를 낳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15] 과거불이나 미래불 [16] 한국에도 정발되었다. [17] 범어로는 kalyāṇamitra. 훌륭한 벗, 불법을 설해 주어 깨달음을 얻도록 이끌어 주는 좋은 스승, 선친우(善親友)라고도 한다. 그 반대는 악지식(惡知識)이다. [18]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이다. 자(慈)는 즐거움을 주는 것, 비(悲)는 괴로움을 없애 주는 것, 희(喜)는 남의 즐거운 일을 보고 기뻐하는 것, 사(捨)는 마음이 평등한 상태를 말한다. [19] 붓다나 전륜성왕이 갖춘 서른두 가지의 신체적 특징을 말한다. [20] 붓다가 갖춘 여든 가지의 특이한 신체적 특징을 말한다. [21]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네 가지 방법으로, ①보시(布施):법과 재물과 두려움을 없애 주는 것을 베푸는 것, ②애어(愛語):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말로 대하는 것, ③이행(利行):착한 일로 이익을 주는 것, ④동사(同事):상대의 입장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 그것이다. [22] 무생법인(無生法忍)의 준말로, 일체가 어떠한 작용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또 사라지는 것도 아닌 이치를 깨달아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23] 보통은 쇄신(碎身)사리라고 해서 크기도 작고 양도 얼마 되지 않으나, 석가모니 부처는 몸 전체가 사리였다고 한다. [24] 사실 데바닷타에 비하면 유다는 조금 억울한 감도 없지 않은데 유다는 나중에라도 자신이 예수를 팔아넘긴 것에 괴로워하며 절규하다 결국 목을 매어 자살했다. [25] 모든 것을 다 아는 자 [26] 석가모니 부처도 도저히 구제할 수 없을 만큼 악인이었다면 진작에 붓다의 제자가 되기 전에 지옥에 떨어졌거나 축생으로 태어났겠지만 일단 인간으로 태어나 붓다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점에서 이 인간의 예전 베푼 공덕이 어느 정도 '기준치'는 넘어 있었다는 얘기다. 불교에서는 붓다와 같은 시대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붓다를 한번 만나는 것조차 여간해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공덕으로 받는 포상 정도로 여겼다. 보통 사람이면 붓다와 한 시대에 태어나기도 힘든데 석가모니 부처를 기필코 해치겠다는 그 한 가지 일념으로 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나는 세상마다 안 빠지고 꼭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사람'이라고 부를 경지는 이미 넘었다는 소리다. [27] 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흘리게 한 행위 [28] 분열 [29] 이 말이 좀 모순일 수 있는데, 한 마디로 데바닷타는 석가모니 부처에게 트릭스터 안티히어로 같은 존재로서 데바닷타가 석가모니 부처와 대비되는 일종의 안티테제 역할을 함으로서 석가모니 부처의 공덕을 더욱 대비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30] 선종 불교에서 임제의현이 "부처 만나면 부처 죽이고 조사 만나면 조사 죽여라(殺佛殺祖)"라고 했던 유명한 말과 같이 생각하면 꽤 묘하다. [31] 즉 선덕 바라문 [32] 한 마디로 데바닷타의 능력이나 그가 행한 공덕은 공덕대로 인정해 주되, 데바닷타가 품은 석가모니 부처에 대한 생각이나 그로 인해 벌인 행위들이 분명히 문제가 있으며 방법도 발상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만큼은 인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흔히 불교는 '분별'을 말하지 않는 종교라고 하지만, 그건 '분별'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분별'에 구애되거나 얽매이지 말라는 말이다. 불교는 선악의 가치판단마저 부정하는 허무주의적 종교가 결코 아니다. [33] 촌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수행하기에 알맞은 조용한 곳이라는 뜻으로, 한마디로 절 [34] '파승사' 권11, '선견율비바사' 권13 [35] 반면 붓다(석가)는 비구(수행자)가 음식을 가리는 것이 더 큰 잘못이라고 보았다. 위의 탁발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인 것. 그러면서 "자신을 위해 죽인 것을 보았거나, 들었거나, 의심이 가는 고기"를 제외한 (즉, 고기를 먹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고의로 살생을 저질러 얻은 고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먹어도 좋다고 설하였다. 게다가 붓다는 고행하던 시절에 우유를 혹은 우유를 넣고 만든 죽을 공양받아 마신 적도 있다. 불교에선 어린 스님에겐 영양과 건강을 위해 오히려 고기를 충분히 먹게하고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때 그것에 대해서 참회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36] 부처를 따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사문은 출가한 수행자를 가리키고 고타마는 부처의 성씨이다. 쉽게 말하면 "고타마 패거리"라는 뜻을 가진 비하적 표현. [37] 실제로 과거의 소금에는 불순물이 많았다. 지금은 일부러 불순물이 든 소금을 먹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거의 무조건 하얗게 정제해야만 시장성이 있었다. 비슷한 예로 예수가 "빛과 소금이 되라"라고 비유를 할 때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에도 부분 등장.)"라고 말한 것도 이런 불순물 함량이 높은 소금이 많았기 때문. 하지만 그렇다고 먹지 않는다면(...) 소금은 그야말로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성분이다. [38] 식생활 관련 계율이 엄격한 걸로 유명한 자이나교만 해도 버터, 소금의 섭취에는 금기 사항이 없다. 자이나교 신도들은 정기적으로 우유와 알팔파(동남아 지역에서 자생하는 허브의 일종. 참고)를 먹어서 채식으로 결핍되기 쉬운 필수 영양소를 보충한다. [39] 석가모니 부처가 석가여래 자신으로 환생하기 전에 거쳐왔던 전생들에 대한 이야기. [40] 아동용 판본에서는 순화되어 "물론 새끼를 가진 네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슴들은 모두가 기꺼이 자신들의 순번에 따랐으니 예외를 두기에는 정말 곤란하구나."라고 난처해하며 말한다. [41] 다만 바로 직전의 환생인지는 의문, 추측상 바로 직전의 전생이라는 설정은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게 축생에서 인간, 그것도 왕족 신분으로 환생하는 건 무지 어려운 일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