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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06:22:05

대영팬더

대영팬더
Daeyoungpanda
파일:대영팬더 로고 2015.png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기업명 대영팬더
설립 1983년
소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충민로 66
지1층 와이 비 1060호
대표 나현서
관련 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1. 개요2. 역사
2.1. 찬란했던 시기2.2. 부활
3. 역대 대표이사4. 인트로 영상5. 작품
5.1. 수입작
5.1.1. 대영 비디오 프로덕션5.1.2. 대영팬더
5.2. 자체제작 작품
6. 사건사고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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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체부등록 제 58호(대영비디오프로덕션), 192호(명보시네마)

1980~90년대 동양비디오(55), 삼부프로덕숀(47)과 함께 어린이용 비디오 시장을 제패한 시대의 풍운아 회사.[1]

2. 역사

파일:attachment/daeyong.jpg 파일:daeyong video.jpg 파일:attachment/daeyong_panda.jpg 파일:Daeyoungpanda.png
1980년대 대영 로고.[2] 1990년대 초반 잠깐 사용된 로고 1989년 대영팬더 로고.[3] 2017년 리메이크된 로고.[4]
대영 로고 변천사

2.1. 찬란했던 시기

VHS 비디오 시절에 최고의 주가였던 회사였어요. 항상 1위였던 회사였죠.
- 성우 김환진

1983년 임종구 창업주가 '대영비디오프로덕션'을 세워 한국 극장판 만화, 일본 만화 및 국내/외국 영화들을 비디오로 출시하였고, 1988년에는 국내 최초의 비디오 영화 <산머루(감독 김영한)>를 제작한 바 있다. 1989년 '대영팬더' 브랜드를 탄생시켜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을 수입하여 히트시키면서 연이어 수많은 어린이용 비디오를 출시했다. 대영팬더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애니 및 어린이용 비디오 영화 업체로 방향을 틀어서 외화 및 국내 개봉 영화들은 출시하지 않았다. 198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어미 팬더와 아기 팬더, 호환, 마마, 전쟁보다 무서운 불법비디오를 알려주는 꽃가족이 나오는 비디오다.

특히 국내에 발매된 슈퍼전대 시리즈의 경우 1980년대 작품들은 대영팬더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출시했다.[5][6] 덕분에 국내에 수많은 전대물 팬들을 양산한 계기가 되었다. 여기엔 뒷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엔 일본산 특촬물&영화&드라마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 시점이라 법적으로 수입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대영팬더에서는 특촬물들을 만화로 속여서 수입했고[7][8] 공연윤리위원회 (현 영상물등급위원회) 측에서도 원칙적으론 안되지만, '실제 일본인이 출연하는 장면보다 헬멧과 슈트를 입고 찍은 장면이 더 길다'는 이유로 심의를 통과시켰다고 한다.

성우진도 잘 썼던 편으로, 당시 캐스팅된 성우들이 현재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중견~베테랑급이 많다. 대영팬더 성우 캐스팅 방식은 현재처럼 오디션이나 담당 PD의 섭외가 아닌, 가장 고참급 성우들이 평소 눈여겨봐둔 후배들을 추천했다고 한다. 대영팬더 스태프들이 한국 성우계에 대해 잘 몰라 이들에게 캐스팅을 위임했다.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당시 가장 최고참인 최수민 성우가 노민 & 장정진 성우를 추천했고, 그 후로 이 두 사람이 후배 성우들을 많이 데려왔다고 한다. 대영팬더 단골 출연진이였던 김환진 성우 왈 어느날 선배인 노민 성우가 "환진아. 오전에 혹시 시간 되냐?" 하고 따라갔더니 그게 인연이 되어 대영팬더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고.[9]

덕분에 언론통폐합으로 큰 피해를 봤었던 TBC 성우극회 DBS 성우극회의 성우들이 주축이 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후 이들이 이적하게 된 KBS의 최덕희, 정미숙, 강구한 등 KBS 17~21기 사이 성우들이 선배들의 추천을 받아 대영팬더에서 녹음을 할 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당시 최고참 성우였던 최수민 성우는 "미숙이가 너무 잘하는거 같아서 추천한게 떠오른다."란 말씀을 하셨다.

참고로 김환진 성우의 인터뷰에 따르면, 녹음비를 현찰로 당일 직접 줘서 성우들이 대영팬더 더빙을 굉장히 반겼다고 한다. 출처[10]

비디오판답게 더빙 퀄리티가 엉망인 경우가 많았다. 입과 말이 싱크가 되지 않는다든지, 음향이 엉망이라든지. 그리고 엄청난 중복 캐스팅도 한몫 거들었다. 하지만 란마 1/2 같은 경우는 비디오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성우들의 내공만으로 훌륭한 퀄리티를 뽑아낸 수작이란 평을 들었다. 덕분에 2008년 투니버스에서 성우진을 대거 교체하고 중복 캐스팅도 줄여서 방영한 란마는 '중복으로 돌린 대영팬더판보다 못하다'라는 악평을 들었을 정도.

대영팬더판 란마는 1990년대 초반 녹음된, 열악한 상황속[11]에서 더빙된 작품이기는 하지만 강수진, 최덕희, 정미숙, 백순철, 장정진 등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서도 레전드 성우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열연한 덕분이다. 십여년이 지난 투니버스의 더빙은 과거에 비해 더빙하는 외화나 애니가 많이 줄어들어서 성우들의 출연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데다, 레전드 성우들만큼 독특하고 화려한 음색을 자랑하는 성우들이 발굴되는 경우가 적었다. 더군다나 워낙 대영팬더판 성우들의 연기력과 캐릭터와의 흡착력이 좋아 투니버스판 몇몇 성우들의 연기가 좋았다하더라도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외 나머지 캐릭터들은 부족한 연기력에 음색도 맞지 않아 평가가 나빴다.

대영팬더의 특촬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성우로는 김환진, 노민, 최수민, 장정진, 정경애, 김성희 6명은 거의 모든 작품에 참여했으며,[12] 오세홍, 백순철, 강구한, 최병상, 김수경 등도 자주 참여한 편이다. 한 작품이긴 하지만 신성호, 장세준, 이현선, 박은숙도 출연한 적이 있다. 애니 쪽도 마찬가지지만 추가로 강수진, 최덕희[13], 정미숙, 황원, 이진화, 유지영 등이 나왔다. 상기했듯, KBS 성우극회 소속인 최수민, 노민, 장정진이 후배들을 많이 데려와 KBS 성우가 많다.

1990년대 초엽의 전대물 수입 재판본 등에서는 당시 대영팬더에서 제작/발매한 어린이 영화의 간접광고가 들어가기도 하였다.

1980~90년대 당시에 일본작품인걸 숨기려고 주제가를 마상원이 만든 자체곡이나 아예 새로운 곡으로 돌려 쓰던 시절, 대영팬더에서 나온 작품들은 광전대 마스크맨을 제외하고는 오프닝 주제가를 거의 다 가사만 개사하고 음원은 원본 비슷하게 현지화해 내기도 했다.[14] 출시했던 작품들의 오프닝을 찾아보면 일본어 원판들과 놀랍도록 비슷한 음원이다.

2017년에 성우 김환진 더빙의 신에 출연해서 회고하길 당시 VHS 비디오 업계 중 으뜸가는 회사였다고 하며, 워낙 잘나가서 90년대에 후뢰시맨 하나 가지고 무려 40억이나 벌었다고 한다.[15] 당시 성우들의 출연료는 일했다는 증명서를 받아 총무과로 찾아가 돈봉투로 바꾸는 방식이 널리 쓰였는데[16], 대영팬더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당일 현금으로 줬을 정도라고 한다.

당시 후뢰시맨이 워낙 잘 나가서 대영팬더에서 다른 특촬물들도 의욕적으로 수입했고, 녹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영팬더에서 출시하지 않은 작품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1991년부터 대영팬더 명의의 판권을 명보시네마로 다 넘겼고[17], 1997년 '대영팬더' 브랜드로 비디오 사업을 매각하고 2001년에 법인이 해산됐다.[18]

2.2. 부활

이후 '알펜 로즈'의 블루레이 정식발매 소식을 전하며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전 20화를 블루레이 한 장에 전부 넣는데다 KBS 더빙, VHS판 대영팬더 더빙도 함께 수록되는 사양[19]에 이번에도 무판권 제품이겠거니 하고 DVD프라임의 한 유저가 제작사 측에 문의했지만 정식 발매품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로써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그 대영팬더가 진짜로 부활한 것 이다.

또한 후뢰시맨 DVD 발매에 관해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했는데, 대영팬더에서 제작을 진행하던 중 다른 업체가 대영팬더의 이름을 사칭해 내놓은 무판권의 불법제품이었다고. 이후 법적절차를 거쳐 판매 중이던 제품들을 전부 회수했다고 한다. 덕분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정식 발매는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 이 불법 판매 사건에 크게 데인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진위여부가 논란이 되었으나, 대영팬더 측에서 토에이로부터 정식으로 컨펌을 받고 제작한다고 했으며 실제 촬영 대본까지 인증하면서 논란을 종결시켰다.

추가로 과거 대영팬더에서 판권을 가진 적이 없던 1992년작 엄지공주 이야기도 출시되었다.

회사연혁에 따르면 2016년 3월엔 에노키 필름의 콘텐츠 라이센스를 체결하였고 2016년 11월엔 타츠노코 프로덕션 콘텐츠 라이센스를, 2017년 4월엔 토에이 컨텐츠 라이센스를 체결하였다고 한다. 각각 에노키 필름은 엄지공주 이야기, 토에이는 후뢰시맨을 비롯한 특촬물을 제작한 이력이 있다.

이후 2018년에도 콘텐츠 라이센스를 체결한 회사의 작품들을 회사별로 하나씩 발매하려고 준비중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현 대영팬더가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라는 것이다. 즉 현 대표가 사망하기라도 하면 회사가 없어지는 상황이다.[20]

대영팬더가 부활하면서 1990년대 당시까지 판권을 가지고 있었던 작품들이 전부 재출시되는 것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1990년대 당시까지 대영팬더 판권을 가진 작품들의 대다수가 대영팬더 부도 이후 자료가 부분적으로 유실되거나 일부 에피소드만 남아있거나 혹은 자료가 완전히 소실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빙 자료가 소실된 작품들에 대한 판권 재구입 및 재출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21] 위에서 언급했듯 1인 회사라는 한계도 있다.

3. 역대 대표이사

4. 인트로 영상

만화영화를 보실 때는 대영팬더를 꼭 확인하세요.[22]
대영팬더는 만화영화 전문 제작사입니다.[23] 대영 팬더.
만화영화를 보실 때는 대영팬더를 꼭 확인하세요.
대영팬더는 여러분에게 좋은 작품을 엄선하여 공급하고 있습니다. 대영 팬더.
1987년부터 1990년대까지의 멘트.(내레이션 : 최수민) 2017년부터 사용되는 나레이션.(내레이션 : 최수민)[24]

5. 작품

* 극장판일 경우 ◎, 완결까지 발매한 작품인 경우 ★, 미완결인 경우 ☆

* 2017년 이후 기준 재출시인 경우 ◆, 예정인 경우 ◇

5.1. 수입작

5.1.1. 대영 비디오 프로덕션

5.1.2. 대영팬더

5.2. 자체제작 작품

주로 어린이 영화를 제작했으며, 심형래가 주연인 작품들이 꽤 많다.(★)

대영팬더에서 발매한 어린이 영화 대부분의 제작은 명보시네마가 제작하였다.

6. 사건사고

누군가가 대영팬더를 사칭하여 비디오 불법판매를 시도한 적이 있다. 2015년 8월 31일, 사라졌던 대영팬더가 “어른이 되어버린 친구들을 위해 다시 찾아옵니다”라는 문구의 포스터를 온라인에 배포하며 초신성 플래시맨 예약 판매를 한다고 밝혀 네티즌들은 “지구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대영팬더가 돌아왔다” 며 기대했었다. 재출시되는 DVD는 심의로 편집된 장면의 95% 이상을 복원한 무삭제 특별판이며 총 10편의 에피소드가 담길 예정이었다. 그러나 어느 네티즌이 제작사인 토에이에게 문의했더니 정식 라이센스를 받지 못한 무판권에 예약도 없이 오픈마켓에 판매되는 모습이 발각 되었고, 결국 판매 중지 되었다.

7. 관련 문서



[1] 대영팬더의 전신인 대영비디오프로덕션으로 활동한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말까지 출시한 어린이용 비디오가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될 지경이다. 아래 출시한 비디오 외에도 더 많고 명보시네마 제작에 타 업체를 통해 출시한 비디오도 있다. [2] 배경음은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 오프닝 곡으로 유명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Hooked on Classics 3 앨범에 있는 버전이다.[42] 영상은 잭슨즈의 'Can You Feel It' 뮤직비디오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링크 그리고 마지막에 대영 비디오 프로덕션 자막이 나오는 부분 영상은 John Whitney의 Catalog에서 가져왔다. [3] 단 1989~1990년 초반에 출시 된 비디오에는 로고명에 대영팬더 대신 대영비디오프로덕션으로 나왔다. [4] 로고의 형태와 팬더의 디자인이 바뀌었다. [5] 고속전대 터보레인저만 유일하게 당시 완구회사였던 현대통상에서 출시. 이후 시리즈들은 케이블 방송사에서 수입해서 방영하고 있다. [6] 덴지맨, 선발칸, 다이나맨도 수입하려 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대영팬더의 부도로 백지화. [7] 이 때문에 현재도 우리나라에선 특촬물을 애니메이션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8] 물론 현지화까지 했다. 극중 등장인물의 이름이라든가. [9] 김환진 성우의 회상으론 당시 후배들이 "선배들이 믿고 꽂아줬으니,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고 한다. 당시 비디오 업체의 캐스팅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일례로 강수진 성우의 경우 신인 시절 선배가 다짜고짜 어딘가의 녹음실로 데려가서는 곧바로 살색 비디오들의 후시녹음을 시켜서 그런 연기들을 열심히 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10] 당시는 계좌이체로 급여 지급을 하는 개념이 거의 없었으니 급여 자체를 현금으로 받는걸 강조했다기보다는, 성우로서의 평소 수입 외에 따로 들어오는 부수입으로 짭짤하게 많이 줬다는 점을 돌려 말한 것으로 추측된다. 거기에 녹음 "당일" 바로 지급한다는 점이 몹시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당시는 사실상 현금사회였기 때문에, 열심히 녹음해놨더니 돈은 다음에 준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11] 하루에 10편을 후다다닥 녹음하기 일쑤이고, 성우들도 대본을 즉석에서 받아 연기하니 캐릭터 분석 등의 시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게다가, 마이크 하나를 여러명의 성우들이 공용으로 사용해 소리가 섞이거나 잡음이 섞이는 등 녹음환경도 열악했다. [12] 김환진과 김성희는 초전자 바이오맨, 정경애는 초신성 플래시맨, 장정진과 최수민은 전격전대 체인지맨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 출연했으며 노민 성우는 모든 특촬 작품에 악역으로 빠짐없이 참여했다. [13] 강수진과 최덕희는 여기에서 낸 란마 1/2의 란마 역으로 주연 데뷔를 했다. [14] 대부분 해당 작품의 오프닝곡 혹은 엔딩곡을 사용했으며, 하빗처럼 극 중 삽입곡을 오프닝으로 한 경우도 있다. 다른 작품의 곡을 쓴 경우도 있는데 알펜로즈의 경우 다이모스의 엔딩인 에리카의 발라드를 사용했고 핑크요정 페루샤의 경우 혹성로보 단가드A의 엔딩을 사용했다. [15] 소규모 임대 건물에서 녹음실만 하다가 매출이 크게 오르고 번성하자 서울 중곡동에 땅을 사고 VHS 판매점까지 냈는데 이후엔 DVD 사업으로 확장했다고 한다. [16] 귀찮은 일이라 당시 막내 기수들이 선배들의 출연료를 대신 받아오는 심부름을 했다고 하는데, 서혜정, 정미숙, 정옥주 성우 등 당시 막내 라인이었던 60년대 초반생 성우들이 이 일을 주로 했었다고 인터뷰 등에서 간간히 언급된다. 참고로 KBS 성우극회는 20기 즈음부터 본인 통장으로 급여를 넣어주는 방식으로 바뀌어 심부름 문화가 사라졌다고 한다. [17] 비디오 표지에 수입/배급 - 명보시네마라고 나왔다. 일부 어린이 영화에도 제작: 명보시네마라고 표시되었다. [18] 여러 신 기능을 갖춘 컴퓨터의 보급 및 DVD와 블루레이 디스크 같은 영상매체물 기술 발전으로, VHS 시장이 점차 쇠퇴하고 있음을 느낀 회장이 직접 매각 처리하고 자신은 이민을 떠났다고 한다. [19] 일본 내수판도 오래전 작품이라 SD화질로 수록되었고, 덕분에 용량에 여유가 있는 만큼 20화를 한 장에 넣었다. 거기에 한국 내수판은 한국어 더빙을 두 가지 버전까지 더한 사양인데, 19,000엔의 반도 안되는 77000원(엔 환산 약 8천엔)으로 저렴하다. [20] 법인의 경우 2명 이상의 주주가 있어서 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터지면 주주 의결 등을 통해 대표를 바꿀 수 있지만 개인사업자는 불가능하다. [21] 더빙 자료가 소실 되지 않았더라도 가글파이브 처럼 편집해서 나오지 않는 장면이 많아서 스토리 진행에 문제가 있는 작품들도 재출시가 힘들다. 왜색으로 미방영된 에피소드도 있다. [22] '꽃 가족'이라고 불린 영상이기도 하다. 옛날 어린이들은참조. [23] 1994년에 자체 제작한 태백산 호랑이가 있지만 그것 외에는 전무한지라 '전문' 제작사라 하기엔 어렵다. 과거 인트로와 현재 인트로의 멘트가 서로 다른 이유.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이라 일본 애니메이션임을 밝히고 출시하기 어려워 두루뭉술하게 제작했다는 식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24] 30년 만에 다시 더빙했다. 최수민은 2023년 현재도 성우계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다. [25] TV판은 삼부비디오에서 출시했었다. [26] 83년에 삼화비디오에서 먼저 출시하고 나중에 재더빙을 거쳐 대영에서 재출시했다. [27] 1979년에 방영된 명곡로망극장 시리즈 중 하나로 총 13화 [28] 두가지가 발매되었는데 83년에 개봉한 토에이에서 만든 장화신은 고양이 시리즈 중 하나였던 극장판과, TV판이 각각 발매되었다. TV판의 경우 90년대 KBS에서 방영했다. [29] 란마 1/2 등 여러 애니에서 차기 발매 광고를 했으나 끝내 미출시. [30] 대영팬더에서 수입한 특촬물 중 유일하게 완결까지 들어오지 못했다. [31] 2017년 이후 원판 제목으로 재출시 되었다. [32] 1995년에 수입 및 출시된 작품으로 원판 기준 방영 연도인 1982년으로부터 13년 후에 대영팬더에서 수입 및 출시된 슈퍼전대 시리즈 작품이다. 수입 당시인 1995년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이고, 1945년 이후 시작된 일본 문화에 대한 검열이 여전히 진행되던 시점이라 총 50화 중에 제9화와 제30화는 작 중에서 일본 관련 요소의 비중이 높은 관계로 에피소드 자체가 누락되었다. [33] 1997년에 수입 및 출시된 작품으로 대영팬더가 마지막으로 수입 및 출시한 슈퍼전대 시리즈 작품이다.수입 및 출시된 연도는 원판 방영 연도로부터 12년 후다. [34] 25화와 27화의 경우 수입 당시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인데다 작 중에서 일본 관련 요소의 비중이 높은 관계로 에피소드 자체가 누락되었다. [35] 대영팬더에서 수입 및 출시한 특촬물 중 유일하게 슈퍼전대 시리즈 및 가면라이더 시리즈를 제작하는 도에이사에서 제작된 작품이 아니며 울트라 시리즈로 유명한 특촬물 제작사인 츠부라야 프로덕션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36] 원판(일본) 기준 방영 연도가 1977년으로 대영팬더에서 수입한 특촬물 중에서 방영 연도가 가장 오래된 편으로 대영팬더에서 1989년 수입 및 1990년에 비디오 더빙판으로 출시한 시점이 원판 방영 연도로부터 13년 후다. [37] 도에이사 작품 중 슈퍼전대 시리즈와 관련 없는 특촬물임에도 대영팬더에서 수입하면서 후뢰시맨 시리즈로 출시되었다. [38] 정확히는 토마토프로덕션과 공동 제작했으며, 이 작품은 같은 해에 MBC에서 방영하기 위해 제작 협력을 하였는지 MBC 성우들이 참여하였다. KMDB의 자료에 출연 MBC 성우진이라 적혀 있다. [39] 이경규가 주연인 작품으로 이경규 본인 입장에서는 복수혈전이 유명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묻혔다. [40] 어린이 영화에 자주 나온 허성태가 주연인 작품. [41] 명보시네마 명의로 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