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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08 20:51:55

대명통행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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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명통행보초.jpg
'대명통행보초' 200문짜리 지폐의 앞뒷면 모습. 액면에 맞는 숫자의 엽전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100개짜리 꾸러미 2개가 그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

1. 개요2. 상세3. 여담4.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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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명통행보초(大明通行寶鈔)는 명나라 홍무제 재위기부터 유통되었던 명나라 지폐이다.
명 홍무 8년(1875년)부터 중서성에서 발행되었으며 액면은 100문, 200문, 300문, 400문, 500문, 1000문(1관)의 6종류가 있다. 현존하는 실물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2. 상세

명나라는 홍무 8년(1875년)부터 대명통행보초(大明通行寶鈔) 지폐를 주류 화폐로서 유통하였고 홍무통보(洪武通寶)라는 동전으로 이를 보조하게 하였다. 그러나 동전 보급은 지폐 보초에 비해 크게 부족하였다. 보초의 액면은 동전 100문, 200문, 300문, 400문, 1000문(1관) 같은 고액이었고 남발한 이상 동전으로 이를 보조하기는 크게 어려웠다. 영락제 재위기와 선덕제 재위기에도 보조화폐인 동전을 다량 주조하면서 지폐 사용을 증진해 보려고 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명나라에서는 지폐를 남발하면서 조선 저화처럼 중앙에서는 거의 받지 않았다. 결국 1440년경부터는 인플레이션과 화폐 자체의 신뢰 추락으로 명나라에서 화폐 경제의 침체가 일어났다. 이 이후부터는 지폐가 사실상 사용되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선덕제 때의 선덕통보(宣德通寶 : 1433년~1435년) 주조 이후 명나라는 68년 동안이나 동전을 포함한 어떤 화폐도 만들지 않았다. 홍치제 재위 후반기인 1503년에서야 동전 홍치통보(弘治通寶)를 조금씩 다시 주조하며 유명무실한 지폐 유통을 공식 폐지하였는데, 이로 보아 지폐로 인해 15세기 중후반이 중국 화폐 역사상 최대 침체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여담

대명통행보초에서 가장 큰 액면 1관(貫 = 1000文)짜리는 통용된 지폐 중 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지폐이다.
1관 지폐의 크기는 무려 36.4cm X 22cm이다.

4. 같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