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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01:13:59

대나에라 벨라리온

<colbgcolor=#000000><colcolor=#fff> 대나에라 벨라리온
Daenaera Velaryon
파일:Lady Daenaera Velaryon.jpg
직업 / 계급 칠왕국 왕비
가문 벨라리온 가문
부모 아버지 다에론 벨라리온[1], 어머니 헤이즐 하트
배우자 아에곤 3세
자녀 다에론 1세, 바엘로르 1세, 다에나 타르가르옌, 라에나 타르가르옌, 엘라에나 타르가르옌
출생 AC 127
사망 AC ???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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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얼음과 불의 노래의 과거 인물. 불과 피의 등장인물로, 아에곤 3세의 두번째 왕비.

2. 생애

바에몬드 벨라리온의 차남 다에론 벨라리온의 딸로 할아버지 바에몬드는 남편이 될 아에곤 3세의 아버지 다에몬 타르가르옌에게 살해당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2] 고아가 되었지만 친척인 알린 벨라리온과 그의 아내 바엘라 타르가르옌에게 양녀로 거두어져 키워졌다. 이러한 인연 덕분에 아에곤 3세의 첫번째 왕비 재해이라 타르가르옌의 사망 이후[3] 그의 두번째 왕비를 뽑는 간택 무도회가 열리자, 아에곤 3세의 이복 누나들인 라에나 타르가르옌 바엘라 타르가르옌이 왕비 후보로 데리고 오면서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특히 바엘라는 자신의 양녀라는 점도 있지만 당시 수관이자 자신과 대립하고 있던 언윈 피크의 딸[4]이 왕비가 되는 걸 용납하지 않아서 더욱 대나에라를 왕비로 추천했다.[5]

이때 당시 고작 여섯 살에 불과했지만 발리리아 혈통의 엄청난 미소녀여서[6] 라에나 공주의 남편인 코윈 코브레이 공에 의해 소개되었을 때 무도회장에 있던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모두가 이 '밝고 사랑스럽고 행복한' 소녀가 왕의 암울함을 완벽하게 해결할 치료제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실제로 '부서진 왕'이라고 불릴만큼 대인기피증이 심했던 아에곤 3세마저 대나에라를 보자마자 바로 다가갔다. 아에곤은 대나에라의 미소에 화답하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애. 매우 어여쁘시군요."라고 말하며 웃음을 짓기까지 했다. 결국 왕비 후보였던 천 명의 처녀들 중 아에곤 3세에 의해 직접 왕비로 간택되었다. 아에곤 3세의 시동이었던 소년 '창백한 머리' 가에몬[7]이 궁정에 아에곤 3세의 뜻을 널리 전했다.

낭패를 본 언윈은 일단 무도회장에서는 아에곤 3세의 뜻을 따랐지만 이튿날의 소협의회 회의에서는 분노를 쏟아내면서 '여섯 살짜리 어린애와 결혼을 해서야 원래의 목적인 타르가르옌 왕가의 부흥과 계승권의 안정이 이루어질 수 없지 않느냐. 전하께서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의 처녀와 혼인하셔야만 한다'라고 말하며 약혼을 파기하려 했다. 하지만 타데우스 로완 공은 '그대의 딸 같은 처녀 말인가?'라고 대놓고 언윈의 야심을 비꼬았고[8] 다른 소협의회의 일원들도 언윈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렇게 같은 해에 아에곤 3세와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왕비가 되었다. 언윈 피크는 국왕의 결혼을 기념하는 행차에서 대놓고 아주 썩은 표정을 띄고 있었다고 한다.

아에곤 3세는 대나에라와 결혼하면서 이전보다 많이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대나에라에게 직접 도성을 구경시켜주기도 하고 공부와 무술, 국정에도 더 관심을 보이는 등, 삶의 기력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고.[9] 이후 알린 벨라리온이 칠왕국으로 귀환했을 때 아에곤 3세와 함께 선착장까지 직접 마중을 나갔다. 대나에라는 무릎을 꿇은 알린에게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사파이어가 박힌 금목걸이를 직접 걸어주었다.[10] 이때 알린은 당시에는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아에곤 3세의 동생 비세리스 왕자 리스에서 데리고 왔다. 아에곤은 동생을 보고 울면서 끌어안을 정도로 크게 기뻐했고, 그 이후로는 가에몬과 대나에라에 대한 관심이 이전같지 않았다.

대나에라가 왕비가 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미성년자였던 아에곤 3세는 섭정들의 손에 나라를 맡겨놓은 채였고, 대나에라도 어린 나이에 남편과 시동생과 함께 그들의 권력 다툼에 휘말려 많은 고생을 겪었다. 어느 날은 대나에라가 아에곤과 시동인 가에몬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가에몬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기 시작하면서 쓰러졌다. 마에스터가 달려왔을 때에는 대나에라 역시 복통을 호소하며 신음하고 있었다. 대나에라는 마에스터의 조치 덕분에 쇠약해지기는 했어도 죽지는 않았으나 가에몬은 죽고 말았다. 두 사람이 먹었던 사과 타르트에 독 리스의 눈물이 들어 있었던 것이 원인이었다.[11]

아린 가문 계승 전쟁 로가레 가문의 몰락으로 인해 칠왕국의 정세가 점점 흉흉해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킹스가드의 마스톤 워터스 경이 로가레 가문의 사람들과 수관인 타데우스 로완이 공모해 아에곤 3세 독살 사건[12]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비세리스의 아내인 라라 로가레까지 체포하려고 하자, 아에곤 3세와 비세리스 왕자가 이를 거부하며[13] 마에고르 성채에 틀어박혀 농성을 하자 대나에라도 여기에 덩달아 휘말려 사실상 감금 상태에 처하면서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해 울었을 정도였다.[14][15] 심지어 타데우스 공의 무죄가 밝혀지고 나서는 신입 수관이 선출되어 독살 사건의 진범들에 대한 재판을 진행했는데, 대나에라의 시녀들 중 셋도 혐의자로 체포되었다.[16] 이들은 아마도 언윈의 과부 숙모이자 왕비의 시녀와 시종들을 감독하던 클라리스 오스그레이 부인으로부터 사주를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되었지만 그녀의 이름도 수면 위로 직접 떠오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에곤 3세의 16세 생일이 가까워져 올 무렵에는 섭정인 토렌 맨덜리[17]의 제안으로 1년 간 칠왕국을 순행할 것이 계획되었다. 용들의 춤의 상처가 이제 극복되었음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대나에라가 타르가르옌 가문을 상징하는 검은색과 붉은색의 옷을 입으면, 아에곤 3세는 녹색 옷을 입어서 늘 두 색이 함께 보이게 만들어 흑색파 녹색파와 완전한 화해를 보여주도록 할 것까지 기획되었다. 그러나 아에곤 3세는 16살 생일을 맞이하자마자 자신의 섭정들을 몽땅 해임시켜 버리고 순행 일정도 전부 취소해 버렸다.

워낙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 지라 오랜 기간 동안 결혼이 완전히 '성립'되지 않았다고 한다.[18] 그래서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143 AC에 첫 아들인 다에론을 출산했다. 이듬해에는 차남인 바엘로르를, 또다시 그 이듬해에는 장녀인 다에나를 낳았다. 147 AC에는 차녀인 라에나, 150 AC에는 삼녀로 막내인 엘라에나가 태어났다.

남편 아에곤 3세는 157AC에 사망했는데 엘라에나의 출생 이후로는 대나에라에 대한 기록이 전무한지라, 대나에라가 남편보다 먼저 죽었는지 아니면 오래 살았는지 더 오래 살았다면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3. 기타


[1] 바에몬드 벨라리온의 차남 [2] 어머니 헤이즐 하트는 겨울 열병으로 병사했고 아버지 다에론 벨라리온은 알린 벨라리온의 휘하에서 징검돌 군도 전투를 치르다가 전사했다. [3] 아에곤 2세의 딸이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식으로 용들의 춤 종결 이후 화평 목적으로 아에곤 3세와 결혼했다. 공식적인 사인은 투신자살이었지만 자기 딸을 왕비로 만들려던 언윈 피크의 음모로 살해당했다는 설도 있다. 하필 언윈의 이복 남동생 머빈 플라워스가 재해이라를 지키던 킹스가드들 중 하나라는 점도 의심을 증폭시켰다. 안타깝게도 재해이라도 죽을 때 고작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4] 이름은 미리엘 피크로 아에곤 3세보다 한 살 많은 여자아이였다. 언윈은 계속 노골적으로 미리엘을 왕비로 만들려고 아에곤과 그녀의 식사 자리를 주선하기도 했다. 만사에 즐거워하는 법이 거의 없던 아에곤 3세 역시 적어도 재해이라와 함께 있을 때보다는 조금 더 편한 기색을 보였다고. 아에곤은 미리엘에게 인형을 선물하고 그 인형을 미리엘이 무도회에 들고 오자 '인형이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이군요' 정도의 말을 했다고 했다. 물론 야망에 가득 찬 언윈의 귀에는 이 정도의 말도 성공의 신호탄처럼 들렸겠지만, 미리엘이 왕비가 되는 일은 없었다. [5] 사실 언윈이 굳이 섭정들이 추천한 여자들을 전부 거절하고 이런 무도회를 개최한 이유도 다 자기 딸을 어떻게든 아에곤 앞에 들이밀기 위해서였다. 원래는 대놓고 자기 딸을 밀려다가 크레간 스타크, 커밋 툴리 등의 대영주들과 소협의회의 섭정들이 맹렬하게 반대해서 무산됐다. [6] 발리리아계 특유의 은금발 머리와 새파란 눈동자에 매끄럽고 새하얀 피부를 지녔다. 궁정광대이자 신랄한 말투로 유명한 머시룸도 무도회에 참석한 귀족 영애들을 보고 처녀 신의 날 기념 가축 품평회라고 비꼬았지만, 대나에라의 미모와 미소를 보자마자 반짝거린다며 드디어 가수들이 노래할 만한 아가씨가 나타났다는 극찬을 남길 정도. [7] 아에곤 2세와 창부 에시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로, 사촌인 아에곤 3세의 유일하다시피한 또래 친구였다. [8] 정작 언윈이 그토록 왕비로 만들고 싶어하던 딸 미리엘도 아에곤보다 고작 한살 많은 14살 어린애인 건 매한가지였다. [9] 소협의회 대신들은 대부분 그런 왕을 대견하게 여겼다. 그러나 소협의회 회의에서 입을 열고 질문을 할 때마다 기분이 상한 언윈 피크가 '어린애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회의에 방해된다' 따위의 말을 하며 하극상을 벌였기에 점차 회의에는 다시 잘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10] 이때 아직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였던 탓에 살짝 말을 더듬기는 했다. [11] 아에곤 3세는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무사했다. 사실 아에곤에게는 딱히 좋아할 만한 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 자체가 없었지만. [12] 윗문단에 서술된 대나에라와 가에몬이 복통을 앓았던 그 사건. [13] 이때 비세리스 왕자는 어린 나이임에도 도개교 위에 도끼를 들고 나가, 라라를 체포하러 온 사람들과 직접 맞설 정도로 자기 아내를 필사적으로 보호했다. [14] 타데우스 로완은 모진 고문에 못 이겨 자기가 로가레 가문 사람들에게 금화와 독을 받고 아에곤 3세를 죽인 뒤, 비세리스를 왕위에 올려 그의 아내인 라라 로가레를 왕비로 만들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비세리스가 "라라는 이 일에 가담했는가"라고 질문을 하자 타데우스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이어서 비세리스가 "그러면 는 관여했는가?"라고 질문하자 "네, 그렇습니다. 저하."라고 멍하게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비세리스가 "가에몬은 스스로 파이에 독을 넣은 것이겠군."이라고 말하자 타데우스는 이 말에도 "저하의 말이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마스톤 워터스는 극심한 고문을 가해 타데우스의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만든 다음 그에게 누명을 씌워서 죽여버리려 했는데, 역으로 타데우스에게 위증을 시켜 로가레 가문을 모함하려던 게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버린 셈이다. 타데우스는 나중에 누명이 풀리고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나서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면서, 아에곤 3세에게 건강을 조금 더 되찾고 나면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으나 결국 가는 길에 병세가 악화되어 죽었다. [15] 마스톤 경과 함께 이 음모에 가담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언윈 피크의 친인척(일례로 그의 사생아 남동생이었던 머빈 플라워스)이나 친한 사이인 사람들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언윈이 이 일을 주도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주동자와 공범들이 자백하면서 그 누구도 언윈의 이름을 대지 않았으므로 그를 직접 체포할 수는 없었다. 이후 마스톤 워터스마저 이 모든게 언윈의 사주로 이루어진 친위 쿠데타라는 걸 짐작했는지, 같은 킹스가드 동료이자 언윈의 이복동생인 머빈 플라워스를 체포하려다가 역습을 당해 죽었다. [16] 루신다 펜로즈는 대나에라가 '자기 대신' 왕비가 된 것을[21] 질투해 그녀의 죽음을 바랐다고 시인했다. 프리셀라 호그는 '라라가 죽으면 비세리스가 나와 결혼해줄 거라고 생각했다(...)'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며 범행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이 둘은 종단에 귀의하게 되었다. 카산드라 바라테온은 음모의 주도자들 중 한 명이었던 머빈 플라워스 경과 통정하는 사이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다른 두 시녀들과 달리 카산드라는 대영주의 딸로 신분이 매우 고귀했기에 종단에 강제로 귀의하는 벌을 받진 않았지만, 어머니 엘렌다 부인에 의해 대영주의 딸과 혼인하기에 격이 현저히 떨어지는 래스곶의 지주 기사인 월터 브라운힐 경과 처벌성으로 혼인하게 되었다. 브라운힐에게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열셋이나 있었기에 그 애들을 다 돌보려면 역모 따위를 꾀할 여유는 없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17] 진지하고 부루퉁한 아에곤 3세에게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대나에라는 매우 귀여워 했다고 전해진다. [18] 칠왕국의 관례 상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결혼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이건 실제 중세 유럽도 그랬다. 헨리 8세도 자기의 네 번째 부인인 클레베의 앤과 이혼할 때 저 논리를 사용했다. [19] 아에곤 3세는 드래곤을 무서워하거나 최소한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어머니 라에니라가 자기 눈앞에서 아에곤 2세의 드래곤에게 산 채로 잡아먹힌 트라우마 탓인 듯하다. 오죽하면 동생 비세리스가 애지중지하던 드래곤의 알을 왕궁에 두는 것을 금지했다가 크게 다투었을 정도. [20] 차남인 바엘로르 1세는 그 똘끼(...)에 가까운 무지막지한 신앙심 때문에 외모가 그닥 부각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