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단리의 존 스튜어트 John Stewart of Darnl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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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380년 ~ 1429년 2월 11일 | |
출생지 | 스코틀랜드 왕국 단리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루브레 | |
아버지 | 단리의 알락산더르 스튜어트 | |
어머니 | 조네타 키스 | |
형제 | 알락산더르, 로버트, 윌리엄, 자네트 | |
아내 | 레녹스의 엘리자베스 | |
자녀 | 앨런, 존, 알락산더르 | |
직위 | 에브뢰 백작, 콩크레소 영주, 오비니 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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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에서 잉글랜드군과 대적했지만 루브레 전투에서 전사했다.2. 생애
1380년경 스코틀랜드 왕국 단리에서 단리의 알락산더르 스튜어트와 가이스턴의 윌리엄 키스의 딸인 조네타 키스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토베인과 가이스턴의 알락산더르, 뉴턴과 웨스턴의 로버트, 캐슬밀크의 윌리엄, 초대 서머빌 영주 토머스 서머빌의 부인인 자네트가 있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제5대 청지기 제임스 스튜어트의 형제인 본킬의 존 스튜어트의 둘째 아들인 던도널드의 알락산더르 스튜어트의 후손으로, 스튜어트 왕조의 먼 사촌이었다.1404년 아버지의 영지를 물려받았고, 1419년 뷰컨 백작 존 스튜어트, 위그턴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가 지휘하는 스코틀랜드 원정군에 가담해 프랑스로 향했다. 1421년 보제 전투에 참여해 승리에 기여했고, 콩크레소 영주에 선임되었으며, 1422년 오비니 영주에 선임되었다. 이후 크라방 전투에 참여했다가 패배해 한쪽 눈을 잃은 채 생포되었다. 이후 수년간 옥고를 치르다 샤를 도팽이 몸값을 지불한 덕분에 풀려난 뒤 프랑스에 남아있는 스코틀랜드 군인들을 모집해 프랑스 왕을 위한 스코틀랜드 근위대를 구성했다.
1425년 몽상미셸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파한 뒤 공로를 인정받아 에브뢰 백작이 되었다. 1428년 랭스의 대주교인 르노 드 샤르트르와 함께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서 추가 병력을 모집한 뒤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1세의 장녀인 마거릿 공주와 도팽 샤를의 아들 루이의 약혼 계약을 협상했다. 1429년 프랑스로 귀환하여 오를레앙 공방전에 참여하고자 클레르몽 백작 샤를 1세와 함께 프랑스 기병 4,000명을 이끌고 진군했다.
1429년 2월 11일, 그와 샤를 1세는 잉글랜드 장성 존 파스톨프가 지휘하는 1,000명의 기마 궁수 및 기사들이 300대의 마차에 식량, 화살, 화약, 대포, 그리고 사순절 기간에 병사들에게 먹일 청어를 가득 싣고 이동하고 있는걸 목격하고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이어진 루브레 전투에서 패배했고, 동생 윌리엄과 함께 전사했다. 그의 유해는 오를레앙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레녹스의 엘리자베스: 레녹스 백작 던컨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