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쇼 시대
다카하시 내각 高橋內閣 | Takahashi Cabi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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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6px -11px" | 1921년 11월 13일 ~ 1922년 6월 12일 | ||
출범 이전 | 이후 | ||
하라 내각 | 가토 도모사부로 내각 | }}} | |
<colbgcolor=#ff0000> 내각총리대신 | 다카하시 고레키요 / 제20대 | ||
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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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1년 11월 4일, 하라 다카시가 도쿄역에서 암살당하고 동년 11월 4일 우치다 고사이 임시대리 체재가 총사퇴하면서 입헌정우회 총재, 귀족원 의원인 다카하시 고레키요 대장대신이 제20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되면서 설립된 내각이다.기본적으로 다카하시 내각은 하라 다카시가 암살당하고 나서 후임으로서 출범한 내각이기 때문에 까놓고 말해서 하라 내각의 연장선에 불과했다.[1]
거기다가 다카하시는 기본적으로 재무관료 체질이지, 하라와 같은 정당 정치인 체질은 아니었기에 정우회 內 장악력이 취약했고, 내각 내부에 다카하시 본인에게 우호적인 '개조파'[2]와 '비개조파'[3]의 갈등으로 인해 1922년 6월 12일 내각총사퇴하면서 7개월 만에 붕괴되었다.
2. 각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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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 명단 |
<colcolor=#ffffff> 외무대신 | <colbgcolor=#ffffff,#000000> 우치다 고사이 | |
내무대신 | 도코나미 다케지로 | |
대장대신 | 다카하시 고레키요 | |
육군대신 | 야마나시 한조 | |
해군대신 | 가토 도모사부로 | |
사법대신 | 오키 엔키치 | |
문부대신 | 나카하시 토쿠고로 | |
농상무대신 | 야마모토 타츠오 | |
체신대신 | 노다 우타로 | |
철도대신 | 모토다 하지메 | |
친임관 | ||
내각서기관장 | 미츠치 추조 | |
법제국장관 | 요코타 센노스케 → 바바 에이이치 |
}}} }}}}}}}}} |
2.1. 국무대신
- 비고란에 쓰여진 것을 제외하고는 1921년 11월 13일 임명
직책 | 대수 | 성명 | 소속 | 특이 사항 | 비고 |
내각총리대신 | 제20대 | 다카하시 고레키요 |
귀족원 입헌정우회 (교우구락부) 자작 |
대장대신 겸임 | 입헌정우회 총재 |
외무대신 | 제34대 | 우치다 고사이 |
외무성 무소속 백작 |
유임 | |
내무대신 | 제32대 | 도코나미 다케지로 |
중의원 입헌정우회 |
내각철도원 총재 겸임 | 유임 |
대장대신 | 제21대 | 다카하시 고레키요 |
귀족원 입헌정우회 (교우구락부) 자작 |
내각총리대신 겸임 | 유임 |
육군대신 | 제15대 | 야마나시 한조 |
군인 ( 육군 중장 →) 육군 대장 ( 육군대학 8기) |
유임 | |
해군대신 | 제8대 | 가토 도모사부로 |
군인 해군 대장 ( 해군병학교 7기) 남작 |
유임 | |
사법대신 | 제23대 | 오키 엔키치 |
귀족원 입헌정우회 (연구회) 백작 |
유임 | |
문부대신 | 29대 | 나카하시 토쿠고로 |
중의원 입헌정우회 |
유임 | |
농상무대신 | 제28대 | 야마모토 타츠오 |
귀족원 입헌정우회 (교우구락부) |
유임 | |
체신대신 | 제25대 | 노다 우타로 |
중의원 입헌정우회 |
유임 | |
철도대신 | 초대 | 모토다 하지메 |
중의원 입헌정우회 |
유임 |
2.2. 내각서기관장·법제국장관
- 비고란에 쓰여진 것을 제외하고는 1921년 11월 13일 임명
직책 | 대수 | 성명 | 소속 | 특이 사항 | 비고 |
내각서기관장 | 22대 | 미츠치 추조 |
중의원 입헌정우회 |
||
법제국장관 | 19대 | 요코타 센노스케 |
중의원 입헌정우회 |
내각은급국장 겸임 |
유임 1922년 3월 28일 면직[4] |
20대 | 바바 에이이치 |
대장성 무소속 |
내각은급국장 겸임 | 1922년 3월 28일 임명 |
3. 둘러보기
[1]
당장 다카하시 내각의 각료 전원이 하라 내각의 각료였다.
[2]
체신대신 노다 우타로, 법제국장관 요코타 센노스케 등을 중심으로 한 세력으로, 본인들과 사이가 나쁜 비개조파 인사들을 내각 개조로 쫓아낸 다음 덴 켄지로 전 대만 총독을 입각시켜 최종적으로 덴 켄지로에게 정권을 이양하고자 했다.
[3]
내무대신 도코나미 다케지로, 문부대신 나카하시 토쿠고로, 철도대신 모토다 하지메를 중심으로 한 세력으로, 이들 중 상당수는 관료파 출신으로, 당인파가 다수인 개조파와 사이가 나빴다.
[4]
입헌정우회 內 개조파와 비개조파의 당내 대립이 심해지면서 이를 수습하기 위해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