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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23:27:59

너티 퍼티 동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nutty_putty_cave_entrance.png
2022년 1월 촬영한 동굴 입구. 2009년의 사건으로 입구가 폐쇄되었으며, 희생자의 명패가 부착되어 있다.

1. 개요2. 지리·지질3. 역사4. 내부 구조와 지형5. 사건 사고
5.1. 2009년 이전5.2. 너티 퍼티 동굴 관광객 사망 사고5.3. 영구 폐쇄
6. 매체7. 여담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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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너티 퍼티 동굴(Nutty Putty Cave)은 미국 유타주의 유타호(Utah Lake)[1] 인근에 위치한 온수 동굴(hydrothermal cave)이다.

1960년대 처음 발견된 이래 아마추어 탐사용 동굴로 지역 주민들과 동굴 애호가들에게 유명해졌으나, 2009년 인명 사고가 발생하여 영구적으로 폐쇄되었다.

2. 지리·지질

파일:너티 퍼티 동굴 01.png
파일:너티 퍼티 동굴 02.png
2002년 촬영된 너티 퍼티 동굴의 내부 사진.
각각 '빅 슬라이드(좌)'와 '버스 커낼(우)'로 불리는 지형이다. ( 사진 링크, 링크 2, 링크 3, 링크 4)

동굴 내부는 곳곳에서 섭씨 12도 정도의 미온수가 용출되고 있어 진흙밭이며, 동굴 생성물들은 전혀 없고 별도로 서식하는 생물들도 특기할 만한 것이 없다.

위성 사진을 보면 주위에 동그란 모양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 과거 아마추어 탐사가들이 방문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지형상 굴곡이 많고 험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 자동차로 접근이 쉽지 않다고. ( 산의 지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관광용 동굴은 아니며, 기본적인 장비를 갖추어야 하는 익스트림 레저 스포츠용 동굴이었다. 성인 남성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비좁은 통로로 악명을 떨쳤으며 이 때문에 동굴 탐험 전문가들의 명소가 되었다. 일반적인 관광 동굴과 달리 전문 케이빙(동굴 탐험) 경험이 없는 초심자는 아예 엄두를 못 낼 수준이었다고 한다.

3. 역사

1960년 데일 그린(Dale Green)에 의해 처음 조사된 이후 관광 및 연구용으로 사용되었다. 동굴의 이름 역시 데일 그린이 지었는데, 내부가 좁은데다 물이 흐르는 곳이라 방문하고 나면 진흙 범벅을 피할 수 없기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그린은 처음에는 동굴 이름을 '실리 퍼티(Silly Putty)'로 지으려고 했지만 후에 지금의 이름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너티 퍼티 동굴은 전성기에는 연간 25,000명이나 찾을 정도로 북적였다. 하지만 내부가 매우 협소하고 자연 동굴의 특성상 몇 차례 안전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2006년 만들어진 통계). 2009년 이전까지 일어난 끼임 등의 사고는 모두 탐험자 스스로 탈출에 성공하거나 구조되었지만, 이후 대학생 존 존스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추가 사고 예방 목적으로 콘크리트로 동굴 입구를 완전히 막아 놓았다. #

2015년 유튜브에 2005년 당시 이 동굴을 실제로 탐험한 영상 시리즈가 올라왔는데, 총 5편까지의 탐사 영상이 존재한다. 게시일과는 별개로 해당 영상 시리즈는 당연히 사망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촬영되었다. 이 중 4편 6:30초 부근에 찍힌 구멍이 바로 사망 사고가 일어난 에드스 푸시(Ed's push) 구역으로 향하는 구멍이다. 재생 빈도를 보면 해당 부분만 유독 솟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4. 내부 구조와 지형

파일:너티 퍼티 동굴 구조도.png
[2]
2003년 12월 기준 너티 퍼티 동굴의 구조도. 위에서 바라본 형태로, 길이 겹쳐진 구간은 위아래로 두 개의 길이 뚫린 공간이다.
지형이 불명확한 구간[3]
보이스카우트 및 아마추어 탐험가의 일반적 탐험 코스
존 존스가 이동한 코스

5. 사건 사고

5.1. 2009년 이전

가장 유명한 사건 이전에도 동굴 관광객이 끼이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출처(주위의 다른 곳도 포함), 스크린샷

1999년 7월 28일 17세인 크리스 헤일(Chris Hale)과 크리스 매로(Chris Marrow)가 수요일 아침 9시에 동굴에 들어갔고, 오전 10시 30분 버스 커낼에 약 12시간 동안 갇혔다가 오후 10시 30분 헤일이, 이 후 몇 시간 뒤인 7월 29일 매로도 구조되었다. 기사. 존 존스 사건이 일어나자 크리스 매로가 당시 사고를 회상했다.

2001년 3월 17일 13살의 보이스카우트 2명이 약 4시간 동안 갇혔다가 구조되었다. 이들도 버스 커낼에 갇힌 것이라 착각했는지 당시 기사를 보면 버스 커낼에 갇혔다고 나오는 게 많다. 이후 이들이 갇힌 곳은 스카웃 이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4년 8월 20일 16살인 Brock Clark이 존 존스가 나중에 갇힐 에드스 푸쉬에 다리가 끼이고 몸이 반쯤 접힌 상태로 거꾸로 갇혔다가 14시간만에 구조되었다. 기사, 기사 2. 존 존스가 갇힌 곳에서 3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는 키 5피트 7인치(170.2 cm), 무게 140파운드(약 63.5kg)로 존 존스보다는 체구가 비교적 작았기 때문에 구조될 수 있었다. 링크

동년(2004년) 9월 4일 23세의 David Crowther가 갇혔다가 구조되었다.

이후 2006년 5월 24일 동굴은 입구에 나무로 된 게이트 설치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막게 되었고 2007년 9월부터 2009년 5월 18일까지 폐쇄되었다. 링크

5.2. 너티 퍼티 동굴 관광객 사망 사고

그러나 결국 너티 퍼티 동굴은 희생자 한 명을 만들어내고 영원히 폐쇄되고 말았다.[4]

계기는 2009년 11월에 이 동굴에서 일어난 사망 사고이다.

버지니아에 있는 한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존 에드워드 존스( 1983년 1월 21일 ~ 2009년 11월 25일)는 아내 에밀리, 어린 딸 리지 등과 함께 2009년의 추수감사절을 맞아 휴식도 취하고 아내의 임신[5] 소식도 알릴 겸 해서 고향에 방문 중이었다. 기사

어릴 때 아버지와 같이 동굴 탐험 활동을 한 경험이 있었던 존은, 추수감사절 이전에 세 살 터울의 동생 조시 및 다른 9명의 지인들과 함께 고향 근처의 너티 퍼티 동굴을 탐험해보기로 했고, 11월 24일 오후 8시경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담으로 존은 너티 퍼티 동굴 탐험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존의 친구에게 동굴 탐험 자격증이 있었기에 별 다른 문제가 생길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한 모양.

동굴에 들어간지 약 한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탐험 중이던 존은 매우 작고 좁은 구멍을 발견하는데, 너무 비좁은 탓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어서 너티 퍼티 동굴 지도에는 기록되어 있지도 않았던 곳이지만(사고 후에 Ed's push로 명명), 존은 이 구멍을 버스 커낼(Birth Canal)에서 밥스 푸쉬(Bob's push)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너티 퍼티 동굴은 2009년까지 폐쇄되었던 적이 있는데, 16살 소년이 존이 갇히게 될 바로 그 구멍에 갇혀서였다고. 다행히 그 소년은 존보다 조금 덜 들어간 상태에서 갇혔으며, 키 170cm에 체중 63kg 가량으로 비교적 작은 편이었던 관계로 14시간 가량이 소요된 고난도의 구출 작전 끝에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6] 이때 동굴을 폐쇄했다면, 아니면 최소한 저 통로에 경고문이라도 붙여놨더라면 이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당시 동굴은 몇 년간의 봉쇄 조치 외에는 아무런 대책이 취해지지 않았고, 불행히도 존은 180cm대 중반의 키(약 6피트)에 약 90kg(200파운드)의 건장한 체격이었다. 존이 동굴을 방문했던 시기는 동굴이 다시 개장된 지 불과 6개월 만이었다.

구멍은 입구가 위에 있고 내부는 좁은 수직 구덩이의 형태였다. 안타깝게도 버스 커낼 자체가 매우 좁은 지형으로 유명했기에 존은 자신이 제대로 들어온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입구의 넓이가 18인치(45.72cm), 높이가 10인치(25.4cm)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이가 들어가기에도 비좁은 구멍을 상체부터 밀어넣고 들어가던 존은 통로의 끝에 있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구멍에 발만 8인치(20.32cm)가량 남겨둔 상태로 물구나무 자세처럼 몸이 거꾸로 끼어버리고 말았다. 발을 제대로 움직일수조차 없는 좁은 수직 구멍에 거꾸로 끼인 그는 당연히 스스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공간이 워낙 좁은 탓에 끼어있는 상태만으로도 몸을 압박해왔고, 너무 좁은 지하공간이라 애초에 산소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으며 온수 동굴인 만큼 물까지 계속 흘러 수증기가 생기는 최악의 환경이라 호흡곤란까지 와 버린다.

동굴은 내려갈 때는 발부터 들어가고 올라갈 때는 당연히 머리부터 들어간다. 존의 비극은 그가 들어간 구멍이 오르막으로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오르막이니 당연히 머리부터 낑낑대며 들어가는데, 위아래로 이리저리 꺾이다 갑자기 수직굴이 나오면서 훅 빠지니 물구나무서는 자세로 끼게 되는 것.[7] 만약 문제의 구멍이 내리막부터 시작했다면 발부터 들어갔을 테니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호흡곤란 문제는 덜했을 것이다.

존의 동생인 조시가 존을 발견하고 꺼내려고 노력해봤지만 통로가 너무 비좁은 탓에 제대로 당길 수조차 없었고 오히려 존은 미끄러져 더 깊고 약 8.5인치 정도로 좁은 곳에 끼어버리게 된다. 기사. 혼자서는 구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조시는 서둘러 지인들과 함께 동굴을 빠져나가 911에 신고하였으며, 이때부터 존을 구하기 위한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시작되었다. 동굴 구조 전문가들부터 존의 마음을 진정시켜 줄 정신과 의사까지 137명에 달하는 사람이 동원되었다.

우선 너무 협소한 곳이다 보니 체구가 작은( 5피트 3인치, 약 160cm) 여성인 수지 모툴라(Susie Motola)[8]가 자신도 같이 갇히지 않도록 본인 발목에 밧줄을 묶고 11월 25일 오전 12시 30분에 먼저 도착한다. 링크. 다음 24시간 동안 구조대는 여러 방법을 시도하였는데 우선 구멍을 파고 들어가 주변부를 넓히고 꺼내는 방법은 존이 끼어 있는 부분의 암석질이 너무 단단하여 시간이 과도하게 소요될 것이라 판단되어 철회되었고, 폭발물을 사용할 경우 좁은 동굴 전체의 암반이 붕괴되거나 변형되는 등 2차 사고로 번질 위험성이 너무 커서 철회되었다. 결국 시도된 방법은 도르래를 설치해 다리부터 끌어내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역시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첫째는 해당 지형의 각도가 워낙 협소하고 괴상하여 단순히 당기기만 해서는 존을 꺼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단 존은 통로에 들어가자마자 낀 것이 아니라 입구부터 시작해 거의 1시간은 기어가야 나오는(500m 정도로,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워낙 좁고 꼬인 통로라 소요 시간이 길다) 이리저리 꼬인 개미굴의 끝자락에 위치한 수직 구멍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거기다 너티 퍼티 동굴의 통로는 지그재그 모양으로 꺾여있는데, 이 때문에 구조대원이 장비를 들여오는 것조차 버거웠다고.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은 물론이고, 다리 뼈를 부러뜨리지 않는 이상 그냥 당겨서 꺼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리보다 목숨이 중요하지 않나?' 싶겠지만 이미 존의 심장에 무리가 간 상태에서 존의 뼈를 인위적으로 부러뜨리거나 억지로 끄집어내려고 할 경우, 심장마비가 올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떠한 결정을 선뜻 내리기가 매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그래도 일단 몸의 부담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도르래와 로프를 설치했고, 존의 몸을 약간이라도 위로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비록 꺼내지는 못했지만 이 덕분에 물을 지급하고 통신기기를 설치해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으며 정맥주사를 놓아 기력을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었다.

그러나 또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하고 마는데, 갑자기 도르래를 고정하는 볼트가 빠져버려 존이 원래 있던 자리보다 더 깊이 빠진 것이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어 파낼 수도 없었던 입구 부위와는 달리, 그의 다리를 수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도르래를 장착한 부분은 하필이면 오랜 세월 물에 침식되어 강한 힘을 견디지 못하는 암석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르래가 빠진 후에도 구조대는 몇 번이나 비슷한 조치를 시도해보았으나 결국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할 뿐이었다.

다른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임시방편인 도르래마저 실패하면서, 구조대는 결국 구조가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존이 느낄 공포감과 절망감을 덜어 주기 위해 계속 존에게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주고 그의 아내를 데려와 대화를 시키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존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무리한 자세로 오랫동안 끼어있던 것이 원인이 되어, 그는 호흡곤란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의사가 동굴 안에 들어가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부위인 그의 발을 통해 맥박이 뛰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 사망을 진단했다고 한다. 사망 판정이 내려진 것은 사고 약 27시간 만인 11월 26일 자정 직전이다.

해외 언론에 나온 당시 사고뉴스 그에 대한 설명. PDF(미국의 2009~2010년 동굴 사고 보고서). 국내 언론에도 보도가 나왔다. 링크

존 존스의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비극적이지만, 그의 시신을 꺼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에서 나왔듯 그는 매우 좁은 개미굴의 끝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시신을 빼내는 것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구조대원들은 그의 시신을 수습하게 될 경우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존의 시체를 회수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강제로 꺼낸다면 뼈라도 회수할 수는 있겠지만, 지나치게 협소하고 긴 통로에서 그런 작업을 하다간 또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존과 똑같은 꼴을 당하는 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그렇게 너티 퍼티 동굴은 존의 무덤이 되어 버렸다.

5.3. 영구 폐쇄

결국 유족 및 다른 관계자들은 시신 수습을 포기하고 동굴 자체를 폐쇄하는 쪽으로 합의했고, 동굴 입구는 2009년 12월 2일에 콘크리트 영구 밀봉되었다. 동굴이 있는 곳은 사유지였는데, 이 사고에 충격을 받은 땅 주인은 처음에 동굴 입구를 다이너마이트로 파괴하려 했으나 주변인의 만류로 콘크리트로 밀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곳은 앞으로도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폐쇄된 입구에는 존 존스의 이야기를 담은 동판 비석이 설치되었다.
On November 25, 2009, our beloved John passed away at this site. He was a loving father, a kind husband, a loyal son and a true and cherished friend. Those who knew John best will remember his faith and his caring heart. Thank you John for showing us how to make eternity our covering and our rock and our salvation as we journey here on earth. We miss you and love you always.
2009년 11월 25일, 사랑하는 존이 여기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사랑 많은 아버지, 친절한 남편, 충성스러운 아들, 그리고 진실하고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존을 잘 알던 사람들은 그의 믿음과 따뜻한 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여행을 하는 동안 영원을 우리의 덮개요 반석이요 구원으로 삼는 방법을 보여주신 존에게 감사를 드립니다.[9] 영원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합니다.
존을 끝까지 구하려고 노력한 구조대에게 감사를 전하는 비석도 함께 설치되어 있다. 링크
We express our heartfelt appreciation to the brave and selfless rescuers who worked tirelessly to free John. Your heroism will never be forgotten. We invite all who visit John's final resting place to enjoy and respect this sacred space.
-The Jones Family
우리는 존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용감하고 이타적인 구조대원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당신의 영웅적 행위는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존의 마지막 안식처를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신성한 장소를 즐기고 존중해주기를 요청합니다.
-존스 가족
개요 문단에 링크된 내부 지도를 보면 그가 들어간 곳은 에드스 푸쉬(Ed's Push) 근처라고 하는데, 옆의 버스 커낼(Birth Canal)을 그냥 지나치고 더 내려간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굴 구조상 표지판을 설치하기도, 위험한 곳을 미리 막아두기도 어려웠을 것이니 어느 정도는 예견된 사고였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그 전에 비슷한 사고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임시 폐쇄된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발생할 때까지 영구 폐쇄가 미뤄진 것은 동굴 탐사를 즐기던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 결국 애먼 사람 한 명이 몇십 시간에 걸쳐 고통과 절망 속에 천천히 참혹한 죽음을 맞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 뒤에야 영구 폐쇄라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다.[10]

2018년에 위 비석이 누군가에 의한 총격으로 인해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다. 트윗[11] 이 사건을 두고 여러 말이 오고갔는데 동굴 탐험을 하던 이들 중 존을 멍청이라고 욕하는 등 고인드립을 하며 여기가 봉쇄된 그 멍청이라고 악플을 달던 이들이 있었기에 이들이 벌인 짓인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6. 매체

7. 여담

8. 관련 문서



[1] 솔트레이크호와는 다른 호수이다. [2] 1965년 기준 구조도, 2004년 기준 구조도 [3] 2004년 기준으로는 많이 탐사되었다. [4] 이 외에도 비슷한 사건이 영국의 피크 동굴에서도 있었다. [5] 사고가 일어난 후 태어나 유복자가 되었다.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딴 존 존스 2세가 되었다. [6] 밑의 레딧 링크에서 바로 그 사고를 당한 소년의 형제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데, 꽤나 끔찍하다. 그나마 목숨은 건진 그도 이후 정신적으로는 심각한 PTSD에 시달리며 성격이 크게 변했고, 신체적으로는 낙뢰에 맞은 사람의 다리처럼 젖산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다리에 영구적인 신경 손상을 입었고 그나마 걷지 못하게 되는 참사는 면했다고 한다. [7] 끼인 자세도 몸에 큰 부담을 주고 있었다. 사람의 몸은 직립보행을 기준으로 진화해왔기에, 일정 시간 이상 동안 물구나무 자세로 있을 경우 심혈관계에 큰 부담이 생긴다. 기사. 또한 눈에 압력이 가해져 안압이 높아지기 때문에 실명할 수 있고, 머리에 혈액이 고이다 터지면 뇌졸중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장기가 폐를 짓누르기 때문에 호흡곤란도 온다. 링크. 이 사건과 비슷한 사고가 2021년 5월 말 스페인의 공룡 조각상에서 일어났다. [8] 사진이 나오는 그 영상이 프랑스어권에서 만들어졌다. [9]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경전 중 하나인 ' 값진 진주'에 있는 아브라함서 2:16의 내용을 인용하였다. 존과 아내 에밀리가 신자였기 때문. 관련 인터뷰 [10] 동굴 탐험 애호가들로 구성된 페이스북 커뮤니티에서 폐쇄를 막아달라고 청원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1] 해당 트윗의 게시자는 물론 댓글을 단 사람들까지 비석 훼손범에게 분노를 표하고 있다. [12] 유사 사례로 간헐천 투어 때 현지 가이드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이 간헐천에 당신의 이름이 붙을 것이다라고 겁을 준 경우가 있었다. [13] 이러면 사고 가능성이 있는 익스트림 레저를 즐기는 사람은 모두 다윈상 후보라는 뜻이 된다. [14] 이 중 날짜가 있는 사진(동그라미 친 사진 중 하나는 버스 커낼이 아니라 에이올타 크롤이다)도 있는데 해당 사진의 날짜( 2009년 1월 1일)를 보면 해당 사건과 관련된 사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다만 카메라 날짜설정을 하지 않을 경우 꼭 그 날짜에 찍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해외에서도 이 사건 관련 글에서 돌아다닌다. 다만 해당 사진이 어쩌다가 유포된건지, 사진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등의 여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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