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야마토 (2005) 男たちの大和 / YAMA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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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6FF,#010101><colcolor=#000000,#0096FF> 장르 | 전쟁, 시대극 |
감독 | 사토 준야(佐藤純彌) |
각본 | 사토 준야(佐藤純彌) |
원작 | 헨미 준(辺見じゅん) |
제작 | 카도카와 하루키(角川春樹) |
출연 |
소리마치 타카시 나카무라 시도 마츠야마 켄이치 스즈키 쿄카 나카다이 타츠야 아오이 유우 |
촬영 | 한모토 요시히로(阪本善尚) |
편집 | 요네다 타케로(米田武朗) |
음악 | 히사이시 조 |
제작사 | 토에이 교토 촬영소 |
배급사 | 토에이 |
개봉일 | 2005년 12월 17일 |
제작비 | 약 25억 엔 |
상영 시간 | 145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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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たちの大和 / YAMATO
1. 개요
2005년에 개봉한 일본의 전쟁 영화이다. 종전 60주년 기념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일본 해군의 전함 야마토의 최후를 그린다. 헨야 준(辺見じゅん)이 전함 야마토에서 생존한 수병들과 유족들을 취재하여 집필한 1983년 작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완성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이었지만 아무런 전과도 없이 허무하게 가라앉은 야마토를 소재로 해서 주목을 받았다. 야마토가 레이테 만 해전에서 패배한 후 오키나와 전투에서 무의미한 자살 임무에 투입되어 격침당하는 과정을 해군 수병들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해군 수뇌부의 문제점과 위선, 폭력적인 내무부조리도 가감없이 다룬다.
개봉 후 일본 내에서의 평가는 대체로 좋은 편이다. 일본공산당도 기관지 적기에서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을 다룬 것을 호평했다. 40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면서 50억 9천만 엔의 흥행수입으로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하지만 아래 설명되듯이 한국과 중국에서는 이 영화를 두고 극우 영화다 아니다로 격한 논쟁이 일었다.
2. 출연
- 모리와키 쇼이치 역 - 소리마치 타카시
- 우치다 마모루 역 - 나카무라 시도
- 우치다 마키코 역 - 스즈키 쿄카
- 이토 세이이치[1] 역 - 와타리 테츠야[2]
- 카미오 나츠미 역 - 나카다이 타츠야, 마츠야마 켄이치 (과거)
- 코지마 요시하루 역 - 하시즈메 료
- 타에코 역 - 아오이 유우
3. 줄거리
카미오( 나카다이 타츠야)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최대 전함 야마토의 승조원이었으나, 지금은 나이 든 어부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전우였던 우치다의 양녀 마키코( 스즈키 쿄카)가 찾아와 야마토가 침몰한 곳으로 가고 싶다고 간청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태평양 전쟁이 열세에 몰리면서 병력이 부족해지자, 당시 아직 10대 소년이던 카미오( 마츠야마 켄이치)는 니시를 비롯한 수병 동기들과 특별연소병(特別年少兵)이라는 이름으로 소년병으로 징집되어 전함 야마토에 배치된다. 함상에서 근무하며 카미오는 부사관들인 대공포 반장 우치다 일등병조(중사, 나카무라 시도), 조리장 모리와키 상등병조(상사, 소리마치 타카시), 카라키 이등병조(하사)와 가까워진다. 우치다의 대공포반에 배치된 카미오는 1944년에 레이테 해전에 투입된다. 이 전투에서 자매함 무사시는 격침되고, 야마토는 공격으로 입은 손상을 수리하기 위해 일본으로 귀환한다. 우치다 역시 항공기의 기총 소사에 눈을 잃고 탄환이 몸을 관통하는 부상을 입어 해군병원에 입원한다.
전황은 점점 악화되고, 구레 군항 공습으로 해군 함정이 다수 침몰하는 와중에 카미오의 어머니도 카미오의 여자친구인 타에코( 아오이 유우)를 지키다 사망한다. 1945년 3월이 넘어가자 오키나와에 대한 미군의 공세가 확실해진다. 곧 야마토에는 오키나와의 미군에게 특공을 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2함대 사령관은 항공 지원도 없이 오키나와 출격을 강요하는 명령에 저항해보지만, 천황의 의향이라는 대답에 뜻을 꺾는다. 승조원들은 육지에 내려서 가족을 만나거나, 도박에 돈을 탕진하거나, 어머니에게 자기를 잊어 달라는 편지를 쓰면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출항 전, 그때까지 병원에 있던 우치다는 연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야마토에 몰래 승함한다.
야마토는 출항하자마자 미국 해군의 잠수함과 정찰기에게 포착당해, 곧 엄청난 수의 함재기들에게 공격을 받는다. 승조원들의 분전에도 미군의 물량 공세에 압도되면서 사상자가 늘어가고 카라키도 전사한다. 우치다와 모리와키는 혼자 살아남아 대공포를 쏘던 카미오를 발견하고 같이 싸우다가, 퇴함 명령이 떨어지자 카미오를 살리려고 대공포좌 밖으로 내던진다. 그후 곧바로 야마토는 선채가 기울어지면서 폭침한다. 바다에 빠져서 부유물을 잡고 버티던 카미오는 동기인 니시와 마주치지만, 니시는 힘이 빠져 익사한다. 근처의 구축함이 구조를 위해서 다가와 밧줄을 던지자, 카미오 곁에 있던 모리와키는 카미오에게 밧줄을 매어주고 자신은 가라앉은 야마토 쪽으로 헤엄쳐간다(영화 앞머리에 나오는 모리아키의 비석을 통해 모리아키가 구조를 거부하고 사망했음이 암시된다).
살아남은 카미오는 니시의 어머니를 찾아가 그의 죽음을 전하며 사죄하고, 히로시마 탄약공장에서 일하다 원자폭탄 투하로 중상을 입은 채 온 몸에 붕대를 감은 타에코와 재회한다. 타에코는 전쟁이 끝났으니 배를 마련해서 함께 살자고 카미오에게 말하지만, 이후 장면이 현재로 바뀌면서 카미오는 타에코가 곧 죽었다고 회상한다.
카미오와 마키코가 탄 배가 야마토의 침몰 지점에 다다르자, 마키코가 양아버지의 유골을 뿌리면서 그를 대신해 야마토에 잠들어있는 옛 전우들에게 귀환 보고를 한다. 배에 탄 일행이 당시 전사한 이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리며 영화가 끝난다.
4. 평가
야마토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보니, 영화가 공개된 후 한국과 중국에서 극우 영화라는 거센 비난과 소수의 옹호론이 뒤엉키며 안 좋은 의미로 화제가 되었다. 시간이 지난 후의 평가는 대체로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보다는 전쟁의 잔혹성과 수병들의 영웅적인 희생에 집중했다는 쪽으로 모아진다. 영화에 대한 시각이 호의적으로 변했다기보다는, 일본이 우경화되면서 그 후 한 술 더 뜨는 극우물들이 쏟아져나오다보니 기준이 상향 조정된 웃지 못할 결과이다.한국 내에서 이 때 반발이 얼마나 거셌는지, 2004년 작 하나와 앨리스의 앨리스 역으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던 아오이 유우가 이 영화에 나온 것에 충격을 받고, "아오이 유우가 극우 영화에 출연했다"며 많은 한국팬들이 떨어져 나갔다. 당시 씨네21에서도 이 논란을 칼럼으로 다루었다( 링크).
야마토를 바라보는 시선이 일본 안에서도 엇갈린다는 사실은 각본 작업에 얽힌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개봉된 영화에는 감독인 사토 준야가 단독 각본으로도 이름을 올렸지만, 사실 원래 각본가는 따로 있다. 1928년 생인 원로 각본가 노가미 타츠오(野上龍雄)가 이노우에 준이치(井上淳一)의 도움을 받아 초고를 완성했는데, 이게 노가미 타츠오의 유작이다. 하지만 제작 과정의 마찰로 자신의 이름을 빼라고 요구해서 사토 준야의 단독 각본인 것처럼 표기된 것이다. 노가미 타츠오는 카미카제의 창시자로 알려진 오니시 다키지로(大西瀧治郎) 해군중장의 일대기를 그린 <아아 결전항공대(あゝ決戦航空隊, 1974)>의 각본에 참여하기도 했다. 헌데 본작에서는 노가미의 각본이 "너무 반전 메시지에 치우쳤다"는 이유로 제작자인 카도카와 하루키와 사토 준야 감독이 뜯어고쳐서 야마토의 수병들을 영웅적으로 그리는 지금의 내용이 되었다. 그런데 이 수정 작업이 각본가의 동의 없이 진행되는 바람에 격분한 노가미가 자기 이름을 빼버린 것.
영화가 천황의 책임을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대단한 비판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 천황에 대한 언급은 영화 전체에서 딱 한 번 나온다. 야마토를 끌고 항공 지원도 없이 오키나와까지 가라는 명령을 받는 장면에서, 당시 야마토가 소속된 제2함대 사령관 이토 세이이치(伊藤整一) 중장이 "단 한 기의 항공기 엄호도 없이 이런 작전이 성공할거라고 생각하시오?"라고 반박을 하자, 명령을 전달하러 온 연합함대 참모장 쿠사카 류노스케(草鹿龍之介) 중장이 에둘러 대답한다. "군령부 총장(해군 참모총장)에게 폐하께서 하문하셨다고 합니다. 해군에는 이제 군함이 없는가, 라고." 즉, 야마토를 아껴둔 채로 패전을 맞이한다면 천황에게 면목이 없다는 논리로 상식적인 반론을 묵살한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야마토의 자살 임무를 천황이 간접적으로 강요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다. 천황을 언급하는 이 장면은 제작자인 카도카와 하루키의 의견으로 넣었다고 한다. 이 정도 언급만으로도 일본 내에서는 큰 화제였다고 하지만, 일본 바깥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런 에두른 언급이 무슨 비판인가, 싶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일본에서 좌익의 영향력이 훨씬 크던 60년대와 70년대에는 영화에서 이보다 더 강한 목소리로 천황의 책임을 거론하는 영화들도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위에 언급한 <아아 결전항공대>는 1974년에 개봉해서 히트했는데, 여기서는 "천황 폐하, 당신은 불쌍한 분이십니다"라는 대사까지 나온다. 천황의 항복 선언에 대해, 그간 천황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던 군인으로서 느낀 허망함을 절규하듯 토로하는 장면이다. 그렇지만, 천황을 원망하는 장면이 나온다고해서, 이 영화가 전쟁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카미카제 대원들의 용기와 희생을 찬양하는 영화다.
일본 영화계에서는 오래전부터 2차대전 중 일본군의 자살공격 이야기는 흥행 보증수표로 통했다. 미군정이 끝난 직후인 1953년에 만들어진 카미카제 대원들을 다룬 영화 <구름이 가는 끝에(雲ながるる果てに, 1953)>를 시작으로 90년대까지도 꾸준히 잊을만 하면 영화로 다루어진 소재이다( 참고). 개중에는 오카모토 기하치(岡本喜八) 감독의 <육탄(肉弾, 1968)> 같은 냉소적 시각을 보내는 영화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적인 축에 속한다. 대부분은 자살공격에 나서는 군인들의 고결한 희생으로 눈물을 뽑아내는 통속물의 흥행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며, <남자들의 아마토>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이런 작품들에서 군 지휘부의 무능과 위선을 거론하거나 천황을 비판하는 것은 일반 병사들의 숭고한 죽음을 부각시키기 위한 대립항일 뿐, 침략전쟁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목소리나 침략 당한 국가들에 대한 죄의식 같은 것은 외면된다.
본작을 만든 제작자들의 입장에서는 야마토라는 소재를 다룬다는 것이, 21세기에도 과거의 2차대전물 흥행공식을 이어간다는 실리와, 젊은 층에게 잊혀진 역사와 희생을 알린다는 명분이 모두 갖추어진 입맛 당기는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그렇다보니, 자살 공격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찬양하면서도, 자살 공격 그 자체의 윤리적 모순이나 비인간성은 다루지 않는다는 과거의 암묵적인 룰을 그대로 답습한 어정쩡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5. 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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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탄이 등장하는데, 현실과 마찬가지로 대공용으로 영 좋지 못한 성능을 보여준다. 다만 작렬할 때 전방에 부채꼴 모양으로 탄자를 흩뿌리는 삼식탄 특유의 모습이 전혀 구현되지 않고 그냥 고폭탄 터지듯 펑 터지고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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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의
구레 군항 공습 영상은 실제 미 해군이 촬영한 항공 카메라 영상을 가져와 사용했다. 그밖에도 서술자의 시점에서
태평양 전쟁의 발발 원인과 그 전개, 특히 전세 역전의 핵심이 되는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투 등은 다큐멘터리처럼 실제 영상을 사용하여 설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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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 특유의
똥군기가 나온다. 첫날에 새로 온
주계병에게 하루동안 알아서 보고 배우라며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다음에 일을 제대로 못하자 바로 뺨을 때린다. 매일 아침 실시하는 전투 배치 훈련 중 니시 수병이 포탄을 급탄하는 훈련에서 탄을 떨구자, 이를 이유로 밤에 체벌을 당한다. 또 다른 날에는 밤에
등화관제 문제로 현창을 닫아야 하는 걸 닫지 않았다가 옆 함정이 목격해 제보하여 망신을 당했다는 이유로 마치무라가 해군의 정신을 박아 주겠다며 "정신 주입봉(精神注入棒)"이라 써진 나무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다 그게 부서지니 쇠파이프로 때린다. 그리고 이걸 맞은 우치다 중사는 마치무라를 폭행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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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의 정복 겸 근무복 역할을 한 1종, 2종 군장 및 육전의와 함정 작업복을 대체할 통합 전투복인 3종 군장 등도 실물과 동일하게 나오며, 주인공 카미오가 전후 귀향할 때 부착물을 제거한 3종 군장을 착용한 모습도 완벽히 재현했다. 일본 해군은 해체하면서 전역자들에게 새 3종 군장 1착씩을 부착물을 제거해 지급했다. 일본에서 이 피복을 제작한 업체 중 하나인
나카타쇼텐이라는 밀리터리 샵에선 당시 자국군, 특히 해군은 군장 매니아들에게 생각만큼 인기가 없어 제작한 재현품들이 악성 재고로 썩었는데, 이 영화가 흥하자 군장 매니아들이 남은 재고를 싹 털어가 재고 떨이를 제대로 했다고 한다. 현재도 이 회사의 재현품은 구하기 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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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전투를 보면 함장은 전혀 방어가 안되는 곳으로 올라와 지휘하고 함대 사령관은 함교에 남는데 이 역시 실제와 동일하다. 야마토가 공격당할 당시 함장 아루가 코사쿠 대좌는 방공지휘소에 올라가 조향 지휘를 하고, 2함대 사령관 이토 세이이치 제독은 전투함교(방공지휘소 바로 밑의 함교)에서 함대 전체 지휘를 하다 배가 침몰할 때 장관 휴식실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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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에서 미 해군기는 대략 10기가 격추된다. 그리고 이는 실제 야마토가 격추한 미 해군기 숫자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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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해군 함정의
96식 25mm 고각기총의 처참한 실상을 보여준다. 포신의 상하 및 좌우 각도 조정장치가 전부 수동이라 수병들이 열심히 크랭크를 돌려가며 조준해야 한다. 심지어 상하 각도와 좌우 각도 조정 크랭크가 양 쪽에 따로 있어서 사격 위치 조정에 둘이나 투입해야 한다. 미군의
보포스 60구경장 40㎜포는 FCS 연동식 전동 마운트로 구성된지라 저렇게 힘들게 조준할 필요도 없었으며 당연히 편사각 수정이 훨씬 빠르고 명중률도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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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일본군은 대공 화력의 효율성에서도 차이가 더 컸다. 만약 일본 전투기들이 기총소사를 하려고 미군 함선에 접근한다면 우선 레이더 관제를 받으며 함선 상공을 초계하는 함재기들을 뿌리치고, 대공 화력 관제를 받는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와
보포스 40mm 포의 가공할 화력을 뚫고 그 후에 다시
오리콘 20mm 기관포나 50구경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의 화망까지 회피해야한다. 게다가 전쟁 후반에는
VT신관까지 대량생산되어 쓰였다.
반면에 일본은 몇몇 대구경 대공포가 적 항공기를 저지하지 못하면 그 후에 바로 96식 25mm 고각기총이 대공을 전부 담당해야 했다. 즉 일본 대공포 요원들은 미군 대공포 요원들에 비해 기총소사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보호수단인 포방패도 부실한데다, 25mm 고각기총의 탄창 용량이 15발에 불과하며 탄약 공급방식이 사람이 일일이 날라서 공급하는 방식이라 화력 투사에 제한이 많다. 영화에서도 탄이 금방 떨어져 애타게 탄을 찾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 야마토의 노천 대공포에 제대로 된 통로나 엘리베이터 등이 없어 재장전할 포탄을 노출된 갑판을 지나 일일이 날라야 하는 것 역시 표현했다. 대공 방어 병력에 대한 방호가 부실하다보니 기총 소사 한 번에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장면들도 현실과 같다. 영화에는 수위상 신체 절단 없이 피만 뿜어 나오는 것으로 나오지만 원래라면 12.7㎜ 기관총과 20㎜ 기관포에 맞아 사지육신이 멀쩡한 인간은 없을 것이다. #[4] 게다가 현실은 영화보다 일본군한테 더욱 가혹했다. 미군은 소구경 대공포의 사거리 밖에서 적함을 공격하기위해 5인치 HVAR 로켓탄이나 500파운드 폭탄을 탄두로 쓰는 타이니 팀 로켓을 적극 활용했다. 야마토 격침 당시에는 일본군의 항공 엄호가 거의 전무한 것을 파악하고 호위 전투기들마저 다수가 이들 로켓탄을 장비하여 출격했다. 즉 일본군이 미군의 기총 소사를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다 해도, 미군의 로켓탄 공격에 대공포좌 통째로 가루가 되는 것이다.
6.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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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인 헨야 준은 필명이고, 결혼 전 본명은 카도카와 마유미다. 바로 제작자인 카도카와 하루키의 친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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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카도카와 하루키는 한때
카도카와 쇼텐의 2대째 사장으로 "카도카와 영화" 브랜드를 이끌면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일본 영화계의 거물로 불리던 영화 제작자였다. 그러나 마약 사건으로 체포되어 1993년 사장직에서 내려와, 긴 재판 끝에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복역했다. 이 영화는 출소한 그의 첫 복귀작이다. 출소 후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토에이 사장이었던 오카다 유스케(岡田裕介)로부터 직접 제안받았다고 한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탄력을 받은 카도카와 하루키는 이후로도 몇 편의 영화를 더 제작하지만, 흥행 성적은 본작에 미치지 못했다.
- 영화 촬영을 위해 야마토의 상부 구조물을 1:1 사이즈로 재현한 오픈 세트를 지었다. 이 세트는 카도카와 하루키가 적극 주장해서 사재의 일부를 출자하고 6억엔의 자금을 끌어모아 휴업 중인 조선소의 도크에 지은 것으로, 조선소가 영업을 재개하기 위해 철거할때까지 관광용으로 일반 관객들에게 공개해서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
- 감독을 맡은 사토 준야는 1932년 생으로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73세의 고령이었다. <신칸센 대폭파(新幹線大爆破, 1975)>, < 인간의 증명(1977)>, <둔황(敦煌, 1988)> 등 다수의 대작들을 감독하면서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높은 성과를 얻은 7,80년대의 대표 감독이지만, 1997년에 내놓은 SF영화 <북경원인(北京原人 Who are you?, 1997)>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감독으로서의 경력은 끝난 것으로 여겨졌다.[5] 사토 준야는 카도카와 하루키와 감독과 제작자로서 <인간의 증명>과 <야성의 증명(1978)>에서 함께 작업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 세 번째로 힘을 합치게 된다. 다행히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사토 준야는 감독 경력의 유종의 미를 거두고, 이후 <사쿠라다 문 밖의 사랑(桜田門外ノ変, 2010)>이라는 영화를 한 편 더 감독한 후 은퇴한다.
7. 관련 문서
[1]
당시 제2함대 사령관
[2]
서부경찰 시리즈에서
다이몬 케이스케 역을 맡은 배우로 마지막으로 출연한 영화다.
[3]
다만, 갈구는 이유 자체는 현재 기준으로 봐도 합당한 게 대부분이긴 하다. 포탄을 떨어트리는 건 말 그대로 폭발물 취급에 주의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최악의 경우 정말 폭발해 여러 사람이 죽어 나갈 수 있는 사안이다. 특히 대전 말기 일본에서 제작한 포탄은 품질과 안전성이 조악해 세심히 다루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현창을 닫지 않은 것은 한밤 중에 등화관제가 되지 않아 적군이 이를 인식해 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갈구는 방식 및 강도가 상당히 지나친 게 문제였다.
[4]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
아르키메데스의 대전은 신체절단을 재현해서 미군기의 50구경 기총에 피격된 대공포 사수들의 말로가 더 현실적으로 나오고 고증에 맞게 장전수들이 대공포 탄창을 누르는 묘사도 없다. 실제 96식은 사격시 탄창을 잡고 있으면 오히려 위험하다.
[5]
이 영화는
북경원인 화석에서 얻은 DNA로 되살려낸 원시인이 현대인들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는데, 플롯부터가
쥬라기 공원의 표절인게 뻔한데다가 헐리우드 영화에 한참 못미치는 특수효과 등이 웃음거리가 되면서 괴작 취급을 받고 잊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