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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22:09:53

나시르마

나시레마에서 넘어옴


1. 본문2. 설명3. 대응되는 묘사

1. 본문

Nacirema
북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나시르마(Nacirema) 족은 놋니소(Notgnihsaw) 마을을 중심으로 널리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육체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인간의 몸이 쇠약해지고 병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인간의 의례와 의식을 통한 강력한 효험을 얻어 노화와 질병을 막고 궁극적으로는 불로장생하고자 하는 소망을 품고 있다. 이 목적을 위해, 특별히 정결하게 준비된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의례를 행한다. 나시르마 족의 의술사들은 물질적인 선물을 받고 나서 고대의 언어로 적힌 약의 처방을 적어 준다. 나시르마 족 원주민들은 이걸 들고 약술사에게 가서 다시 물질적 선물을 내고 처방에 적힌 약과 교환한다. 나시르마 족 남성들에게는 유별난 피학적 성향이 있는데, 매일 아침마다 이들은 날카로운 쇠붙이로 자신의 얼굴 피부를 긁어 벗겨내는 의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들은 유독 구강에 대한 의례를 중시하는데, 이 의례를 행하지 않으면 치아가 삭고, 잇몸에서 피가 나며, 턱이 찌그러지고, 친구와 연인이 떠나 버릴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1년에 한두 번씩은 "신령한 입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주술사를 찾아가, 입 속에 살고 있는 악마를 쫓아내는 의례를 행한다. 뚱뚱한 사람은 단식의 의례를 행하고, 마른 사람은 뚱뚱해지려고 진수성찬을 먹는 의식을 행한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유방이 크면 작아지게 만드는 의례, 작으면 커지게 만드는 의례도 있다. 이들의 배설 행위는 극도로 사적이고 비밀스럽게 격식화된 것이어서 외부인이 쉽게 관찰할 수 없다. 나시르마 족에게 성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심각한 결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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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명

이 글은 미시간 대학교 인류학자 호러스 마이너(Horace M. Miner)가 1956년에 발표한 《나시르마 부족의 몸 의례》라는 글로, 1950년대 미국인의 삶을 마치 "나시르마 족"이라고 이름붙인 한 원시 부족 집단을 관찰하는 듯한 느낌으로 일부러 이질감이 들게끔 묘사한 것이다. 이는 학계에 "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류 보편적이라고 여겼던 생활 양식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원시 부족을 보며 미개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바라보며 미개하다고 여길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으며 학계 학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엄청난 호응과 재판(再版) 요청이 빗발쳤다고 한다.

물론 소위 말하는 "과학적이냐, 비과학적이냐" 같은 차이를 들어서 위의 글이 잘못됐다고 반박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는 위 글의 문제의식에서 크게 벗어난 반론이다. 위 글은 미국인들의 일상이 결국에는 원시 주술이나 의례 등의 ( 비과학적이어서 소위 "진지하게 취급해 줄 가치가 없는") 문화적 소산과 다를 바가 없다는 요지가 아니다. 즉, 과학기술의 진보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글이 아니다. 위 글이 제기하는 문제는 내 자신이 가진 문화를 "내가 그 문화 속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보편적이고 표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통념을 깨자는 것이다. 이는 낯선 곳의 낯선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거울로서의 인류학의 활동방향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1]

쉽게 말해, 원시 부족인들이나 현대인들이나 무언가 행동을 할 때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직접 스스로 깨닫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회에 퍼져있는 관습이나 혹은 권위자들[2]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행하다는 것에서 "행위적인"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미국을 기준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봤을 땐 공감이 안 가거나 한국 정서에 안 맞는 부분도 있다. 여성의 유방에 대한 언급이 대표적이다. 또한 의도적으로 낯설게 보이게 만들기 위해 용어 선정을 다소 과도해서 돌려 표현하거나 생략한 부분도 있다. 예컨대 "인간의 몸이 쇠약해지고 병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믿는다"에서 이걸 노화에 따라 그렇게 된다는 것을 빼먹어 버려서 보는 이라 하여금 이상하게 보이게 만들거나, 혹은 양치질이나 면도 식단조절을 의례나 의식으로 표현한 것이 그러하다. 이런 걸 의례나 의식이라 칭하지 않고 "행위"라고 하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적절한데 굳이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너무 원시 부족처럼 보이게끔 과장해 버렸다. 특히 일반적으로 "피부"와 "수염"은 분명히 구분이 되는 건데, 면도를 얼굴 피부를 긁어 벗겨낸다고 표현함으로써 지나치게 왜곡이 되어버렸다. [3]

한국에는 한국문화인류학회가 펴낸 책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의 서두에서 인용되면서 알려졌다.

3. 대응되는 묘사


[1] 증명가능하고 반복가능하다는 과학적 방법론은 원시 주술은 재현하기 힘든 신뢰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지식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고 이 둘의 효과의 차이는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너무나 극명하게 증명되어 버린 바람에(...) 이론의 여지는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인 인식의 수준에서는 현대의학도, 주술도 세부적인 구성요소는 잘 모르는 시스템이며 오로지 사회적 신뢰도를 참고하여 이들을 믿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현대 의학에서 환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된 극도로 복잡하고 체계화된 관리 시스템에서는 나름의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일반인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원시 주술과 유사한 구조가 발견될 수 있는 셈이다. [2] 원시 부족의 경우엔 주술사들, 현대인의 경우엔 과학자들. [3] 게다가 시대와 문명을 막론하고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적게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것과 양치질, 아니면 하다못해 물칠이나 소금칠과 같은 최소한의 구강 정리를 하지 않으면 구강 건강이 나빠진다는 건 개개인도 충분히 직접 검증할 수 있는 상식 중에 상식인데 이것마저 의례로 치부해버렸다. 물론, 이런 것들을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표현을 하면 사람들이 눈치채기 쉬워버리기 때문에 어느정도 과장과 왜곡을 한 것으로 이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