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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3:27

김태완(1984)/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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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2. 프로 시절
2.1. 한화 이글스 시절
2.1.1. 프로입단 ~ 2009년2.1.2. 2010 시즌
2.1.2.1. 군복무
2.1.3. 2013 시즌2.1.4. 2014 시즌2.1.5. 2015 시즌2.1.6. 2016 시즌
2.2. 넥센 히어로즈 시절
2.2.1. 2017 시즌2.2.2. 2018 시즌

1. 아마추어 시절

빠른 1984년생으로 중앙고 재학 시절에는 클린업 트리오의 핵심 선수였다.[1] 2002년 2차 60번 지명[2]을 받으나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 진학했다. 사실 프로 입단보다는 대학에 진학해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3] 야구를 하고 있었다 보니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지명을 받은 줄도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 야구보다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성적도 좋았다고. 본격 두뇌파 4번 타자

LG 트윈스 감독에서 경질되어 야인이었던 김성근이 잠시 성대 인스트럭터로 가게 되었을 당시 김태완을 보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되기 위해 진학했던 대학교에서 4번 타자로 자리를 잡았고, 청소년 국가대표로도 발탁. 그 이후 2006년에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게 된다.

2. 프로 시절

2.1.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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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프로입단 ~ 2009년

2006년에는 입단 첫 해에는 김태균 이도형에 밀려 대타로만 4경기에 나와 4타석만을 뛰었고(수비도 나오지 않았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뛰기 시작했으며 0.245-0.324-0.426의 성적을 내었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해 0.266-0.362-0.488에 23홈런을 날리면서 노장 선수를 좋아하는 김인식 감독이 그를 빼고 싶어도 뺄 수 없게 만들며 입지를 굳혔다.

커리어하이 시즌은 2009년인데, 한화 이글스의 3번 타자로 뛰면서 0.289-0.419-0.539 홈런 23개를 찍으면서 2008년의 기록이 운이 아닌 실력임을 증명해내었다.[4] 특히나 김태균과 이범호가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었을 때 찍은 기록이라 더욱 값진 성과. 이후 김태균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팬들에게 포스트 김태균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었다.

2.1.2. 2010 시즌

시즌 시작 전에 호타준족이 될 것이라면서 20-20을 달성했다고 개드립을 쳤었다. 결국 2010년에 한 총 도루 개수는 7개.[5]

어찌됐건 팬들은 팀의 새로운 4번 타자가 될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한대화 감독이 개막전부터 최진행을 키우기 위해 최진행을 4번 타자로 기용해서 3번으로 위치해 최진행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당시 최진행삼진머신이었고, 안쪽 공에 부상당한 경력 때문에 안쪽 공에 다소 약한 탓에 투수들이 김태완만 만나면 전부 안쪽 볼만 던져서 맞으면 뭐 재수 없는거고 볼넷으로 나가도 상관없고라는 식으로 던져서 3경기(14타석)만에 사구 8개로 압도적인 1위에 등극했고 결국 2010년 4사구 1위(99개), 출루율 4위(0.418)를 기록했다.

한대화 감독의 기대에 최진행이 부응을 하면서 홈런을 쳐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타격 눈을 뜨기 시작했고, 김태완의 무지막지한 볼넷에 이은 최진행의 안타로 2009년 기아의 CK포처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한화의 새로운 중심타선으로 자리잡으며 팬들은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됐다. 이 시기에 벌어진 2010년 4월 9일8타석 8출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최진행도 김태완의 우산 밑에서 조금씩 타선에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시즌 초반 부상으로 1군에서 이탈하고, 이도형마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중심 타자가 최진행만 남은 한화는 11연패를 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김태완이 빠르게 복귀를 해서 타선에서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고, 김태완은 많은 홈런을 쳐내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타선에서의 위압감을 주면서 높은 출루율을 자랑하고 있었고, 중심타선에서 버티고 있었다.

2010년 5월에 1군으로 돌아온 후에는 지명타자로만 출전했으며,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의 포지션도 지명타자로 기재되었을 정도이다.

그러나 부상으로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 SK 3연전에서 박경완이 리드를 하는 투수들에게 철저하게 당하면서 악몽과도 같은 부진이 시작된다. 6월 이후로 김태완은 부상의 여파인지 장타력을 상실하고 안타의 개수도 굉장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자랑이었던 선구안도 흔들리면서 1.2를 넘던 OPS는 9할 초반으로, 3할 후반을 자랑하는 타율은 2할 7푼으로 떨어졌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출루율 1위 자리도 이대호에게 뺏겨버렸다.

게다가 이 시기에 1루에 장성호가 트레이드되어 한화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또한 멘탈에 영향을 주면서 그를 낙담에 빠지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7월에는 어떻게든 다시 타율을 끌어올려 3할에 복귀했으나, 8월 이후 다시 내리막을 탔다. 특히 8월 당시 OPS가 겨우 4할밖에 안 되었을 정도로 심각한 부진을 겪었다.

이렇게 시즌 후반 텔느님에서 텔레기로 격하되면서, 영 좋지 않게 시즌을 마감했다. 최종 성적은 116경기 370타수 98안타 13 2루타 15홈런 62타점 62득점 7도루 99사사구 99삼진.

일본으로 떠난 김태균을 잇는 4번 타자가 될 것이라 의심치 않았던 김태완의 부진[6]은 2010년의 한화에 치명적인 일이었다.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타선에서 팀의 주축 타자가 부진의 나락에 빠지며 타선은 자연스럽게 폭망. 김태완이 제 자리를 잡고 있을 때에는 최진행이 빠르게 1군에서 적응하면서 홈런을 치고 있었고, 한화도 비록 하위권이기는 했지만 투수진이 맥없이 무너지더라도, 타선까지 손도발도 쓰지 못하고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태완의 부진과 부상과 함께 한화의 타선은 같이 무너졌고, 이대호와 홈런 경쟁을 벌이던 최진행도 같이 부진에 빠졌다. 그 정도로 한화에서의 김태완의 존재감은 컸다.
2.1.2.1. 군복무
부진 끝에 김태완은 광저우 메인 엔트리에서 탈락, 시즌이 끝난 직후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하게 됐다. 그 후 대전고 공익으로 2년 동안 근무했다. 김태완이 팀에서 이탈함에 따라 2년간 한화 타선에 공백이 생길줄 알았으나 다행히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2011년에는 최진행, 고동진, 한상훈이 각성했고, 이대수는 3할을 찍었고, 2012년에 김별명이 돌아오고 오선진이 각성.

즐거운 공익 생활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

당시에는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았지만 스탯티즈의 그의 wrc+는 132.2, 14위로 최희섭보다는 약간 낮았던데다가, 조성환과 동일했고[7] 박한이보다 조금 높았다. 즉 리그 14위의 타자였다는 것. 부상이 없었다면 더 좋은 성적을 올렸다는 if도 존재했다.

2012년 11월 소집 해제 후 2013년부터 프로 선수로 복귀하게 되었다. 김응용 감독 하에서 제대로 조련받는다면 더 나은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여담으로 장성호의 입단 이후 입지에 큰 타격을 받았으나, 공익근무 후에는 역으로 김태완의 복귀에 입지가 좁아진 장성호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며 세월무상과 더불어 얄궂은 운명을 느끼게 했다. 외야로 갈 일은 없어 보이며, 김태균과 더불어 1루-지타 요원으로 활약할 듯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1.3. 2013 시즌

송창현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된 장성호를 대신하여 중심 타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고, 시범 경기 당시에는 4번 타자로 활약했지만 개막과 동시에 3번 타자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복귀 첫 해에 2군으로 3번 강등당하는 극도의 부진에 시달렸다. 예상과 달리 최진행이 무릎이 좋지 않아 지명타자로 빠지고 김태완이 대신 우익수 슬롯에 배치되며 팬들의 심려를 샀다. 그리고 최진행은 결국 시즌을 마치기 전 수술대에 올랐다....

개막 2연전 롯데와의 경기에서 10타수 3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타격 클래스는 죽지 않았음을 보여 줬지만, 2차전에서 원기옥 수비를 보여주며 돌글러브 클래스도 죽지 않았음을 보여 줬다. 홈 개막전이었던 KIA전에서도 3안타 2타점 경기를 했지만, 정작 김주찬의 장타에 형편없는 대처를 보여 주며 김주찬을 홈으로 불러들이는 데 일조했다.

이후로도 적응이 덜 되었는지 뻣뻣한 수비와 타격으로 부진했다. 결국 4월 말에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으며, 5월 중순 1군에 복귀한 이후로는 그나마 좀 나아졌다.

5월 28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3:3 8회초 1사 상황에서, 정현욱을 상대로 결승 좌월 솔로 홈런을 때렸다. 시즌 첫 홈런이자 무려 1,003일만의 홈런이며, 팀은 LG의 추격을 봉쇄하고 4:3으로 승리.

7월 3일 LG 트윈스전에서는 5타수 5안타를 때려내며 한 경기 개인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지만, 팀은 8:9로 귀신같이 역전패하고 말았다.

7월 13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대타로 나온 후 3루수로 들어가는 충공깽한 상황이 벌어졌다.[8] 1루수 글러브 끼고 나왔다가 글러브 규정 위반으로 바꾸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무사 1루에서 채태인의 평범한 땅볼을 송구조차 못 했고 1사 1,2루에서 진갑용의 땅볼을 잡고 2루 주자는 포스 아웃시켰지만 1루로 엄청난 악송구를 저지르며 2사 2,3루를 만들었다. 멘붕한 투수 박정진은 연속 와일드피치를 저지르면서 주자가 다 홈으로 들어왔다. 일단 김태완 때문에 점수를 준건 맞는데 김태완이 프로에서는 단 한 번도 3루수로 출장한 적이 없었고[9], 프로에서 3루수 경험이 있었던 김태균[10], 추승우[11]가 1루와 외야에 있었다는 점 때문에 김태완을 3루수로 기용한 김응용 감독만 나노단위로 까이고 김태완은 저런 감독밑에서 고생한다는 동정만 받았다.

시즌 전체적으로 굉장히 부진한 상황. 2012 시즌 후 소집 해제되어 훈련까지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중인 6월에 소집 해제된 후 급하게 1군에 올라온 송광민보다도 한참 못한 활약이다. 송광민이 그 동안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량을 보이며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김태균과 무릎 수술로 미리 시즌 아웃된 최진행을 대신하여 팀의 4번 타자를 맡고 있는 가운데, 정상적인 기량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4번 타자를 맡으며 팀 타선의 중심을 잡아야 할 김태완은 시즌 내내 계속 부진하고 있다. 9월 중순 현재 2할 3푼대의 타율에 홈런은 달랑 3개.

일설에는 타격 폼 수정 실패가 부진의 원인이라는 견해도 있다. 시즌 시작 전부터 그 괴상한 타격 폼을 고쳐보고자 김성한 수석코치와 타격 폼을 수정했고,[12] 실제 초반엔 기존 타격 폼보다 배트가 훨씬 세워진 타격폼[13]으로 경기를 뛰었으나, 끝내 적응하지 못했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원래의 타격 폼으로 돌아온 상태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 운동 자체가 부족한 것인지 안 그래도 빠른 편은 아니었던 배트 스피드가 더욱 느려져 스윙이 공을 아예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고 있다. '김태완이 치지 않으면 볼'이라고 까지 했던 좋은 선구안도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 2014 시즌을 위해서 시즌 종료 후 빡세게 훈련을 해야할 듯 하다. 교육리그를 언급할 때도 타격 폼 이야기가 나온 건 당연하다.

그리고 군 팀에 입단하지 못해 실전 감각이 크게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관련 기사)[14]

결국 2013년 9월 21일 3번째로 2군 강등. 코감독은 결국 그에게 교육 리그 참가를 전격 지시했다. 사실상 시즌 아웃이다.
교육 리그 참가 후에는 마무리 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서산 2군 훈련장에서 이정훈 2군 감독의 지도 하에 무너진 타격 폼을 수정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사실 2013 시즌 종료 현재 김태완의 경쟁력은 시즌 초만큼 높은 것은 아니다. 1루에 김태균, 좌익수에 최진행, 이양기, 추승우, 우익수에 정현석 등 2013 시즌 동안 김태완보다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던 선수가 김태완이 소화했던 포지션에 한 명 이상씩은 있었다. 2014 시즌에도 외야의 경우는 좌익수 주전은 최진행이 확실하고, 중견수와 우익수도 외국인 외야수 펠릭스 피에 이용규가 주전이 될것이 확실하고, 1루 주전은 김태균 외에는 생각할수 없기에 김태완이 차지할수 있는 포지션은 지명타자 뿐이다. 만약 최진행의 무릎 상태에 따라 최진행이 지명타자로 가는 경우에는 외야수 한 자리를 두고 고동진, 이양기, 정현석 등과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 김태완에게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다. 결국 김태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격을 전성기 이상 수준으로 올리거나 수비 부문에서 발전을 보여 주어야 한다.

2.1.4. 2014 시즌

결국 쇄신을 위해 자신이 달던 38번을 예전에 달았었던 안영명이 소집해제되고 다시 달게 되면서 본인 역시 전성기때 달던 등번호 10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15]

시범경기에 10경기 출장하여 19타석에서 2안타로 타율 0.125를 기록하였다. 주로 1루수로 출장하였는데, 위의 예상과 같이 최진행이 무릎수술의 여파로 지명타자로 갈 가능성이 많아졌고, 심지어 이용규가 시즌 초반 지명타자로 활용될수도 있는 상황에서 시범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김태완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질 예정. 그리고 시즌이 되고 예상대로 가면서 자리가 없어졌고 결국 3월 31일에 엔트리에서마저 말소되었다. 일시적일순 있겠지만 예전의 김태완을 생각하면 입지가 많이 좁아진 상태다. 팬들은 아직 회복중인 최진행과 함께 5, 6번 타선을 맡아주길 바라고 있지만 현재로선 그저... 그래도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다면 상당히 짜임새가 있어진 타선이 더욱더 단단해 질것이다.

2군에서 5할에 가까운 맹타를 기록하다 4월 11일 1군에 등록이 되었고, 마정길을 상대로 투런포를 날리면서 팀이 6:1까지 도망가는데 일조하는 홈런을 때렸다. 다만 팀의 마무리 투수인 김혁민이 불을 거하게 지르며 활약이 묻히고 말았다(…).

13일 9회말 3점차 2사 1,2루 상황에서 포수 이희근 대타로 기용되었다. 즉 큰 거 한 방 때리면 바로 역전이 가능한 상황,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풍기질으로 폭풍삼진을 당해 경기가 끝났다.

19일 7회 1점차 1,3루 상황, 대타로 기용되어 2스트라이크까지 갔는데... 쓰리런 홈런! 경기에 쐐기를 박는 홈런포를 때려냈다. 히어로 예약...이었으나 이글스가 예의 OME경기를 시전하여 9회초 박정진 김혁민의 방화로 5점을 따라잡히는 개막장야구를 선보인 결과 유창식의 첫승실패와 함께 묻혀버렸다. 어째 일주일전 상황의 데자뷰 이로서 올시즌 두 개의 안타가 전부 홈런.

다음날 2사 2,3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내야안타(?)를 기록했다. 3루수 조쉬 벨의 실책성 플레이(공을 고쳐잡고 던졌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상황.

5월 2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7회 김경언 대신 대타로 출전하여 추격의 불씨를 당기는 적시 2루타를 쳐내며 팀의 12-8 대역전극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다만 이용규가 다시 외야수로 복귀해도 주전 복귀는 어려워 보이는데 김응용 감독이 이용규가 수비에 복귀하면 최진행을 지명타자로 돌린다고 했기때문.

그리고 대타로도 존재감이 사라지면서 6월 17일자로 다시 말소되었다. 이젠 말소되었는지도 모를 지경...

이후 전에 말소되었을 때처럼 2군에서 타격감을 끌어올렸고 7월 8일에 정대훈과 함께 다시 등록되었다.

7월 11일 김태균이 부상을 당하자 1루수 4번 타자로 기용됐다. 그리고 16일 5안타 2홈런을 때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용규 2군으로 내려보내 재활에 집중하게 하고 김태완을 주전 지명타자로 기용하자는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이후 후반기 들어 이용규를 밀어내고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하고 있지만 주말 KIA전을 기점으로 성적이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정신차리지 못하면 다시 주전자리를 뺏길수도 있는상황. 결국 주전자리를 이용규에게 뺏기고 말았다. 다만 완전히 자리를 뺏긴건 아니고 번갈아 가며 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용규의 타격 부진이 심화됨에 따라서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특이사항으로 8월 27일 기준 좌투수 상대 타율이 .459라는 무시무시한 수치를 기록중이다. 이용규가 8월 27일부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면서 사실상 시즌 아웃이 된 상태라 남은 시즌동안 붙박이 지명타자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시즌 성적 타율 0.258 48안타 7홈런 39타점 장타율 0.414 출루율 0.350 를 기록했다. 최진행과 함께 팀의 암적인 존재로 취급받고 있으며, 이 둘을 트레이드 시켜 좋은 투수를 데려오자고 난리다. 물론 한화의 처참한 뎁스 사정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팬들도 이를 알기에 김성근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취임하면서 옛날 제자인 김태완을 전성기로 되돌릴 수 있을 지 기대를 걸고 있다.

2.1.5. 2015 시즌

왼쪽 어깨에 부상이 생겨 팔을 머리 위로 올리면 통증이 오는 어깨 충돌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원인은 불명이라고. 이 때문에 고치 스프링캠프는 물론이고 오키나와 재활 캠프까지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심할 경우 시즌 초반까지 결장해야 한다고 한다.

이후 정규시즌 들어와서는 위의 어깨 충돌 증후군 때문인지 상당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5월 중순 현재 김태균이 1루 수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부상으로 인해 올라오지 못하는중. 그러던 중 6월 7일 송은범의 부진으로 대신 콜업되었다.

6월 13일, 14일 LG전에서 모두 멀티히트를 때려내며 팬들의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의 경기에서는 실망스런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이젠 은퇴하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강점이던 선구안마저 무너지고 있다.

2015년도 만루 2아웃 상태에서 등장하면 꼭 농부 후안은 바리스타 입니다라는 광고를 곧바로 보게된다.

결국 6월 28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김성근 감독은 김태완을 2군으로 내려보내면서 선수 생활의 기로에 서 있다는 발언을 했다. 김태완 입장에서는 최후통첩과 다름없는 발언이다.

이후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시즌 마감.

2.1.6. 2016 시즌

7월 29일 1군에 올라왔지만 선발 출전은 하지 못하다가 점수차가 큰 경기에서는 후반 대타로 가끔 나온다. 작년까지는 못 보여준 풀카운트 싸움을 해서 볼넷을 얻거나 안타를 치는 등 얼마 없는 대타 기회에서 필사적인 느낌의 모습.

복귀 후 8월 8일 현재 9타수 6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망가지기 전 김태완의 활약상을 본 한화팬들은 대타요원으로 다시 살아날지 기대하고 있다. 본인 말로는 그간 무리한 타격폼 교정시도로 인해 타격폼이 무너졌는데, 다시 원래대로 회귀하면서 타격감이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3루타 하나를 치기도 한 것을 보면...

9월 20일, 박노민과 함께 웨이버 공시됐다. 감독은 자신은 말렸으나 본인이 원했다고 하지만 20타수 7안타로 나름 대타 전력인 타자를 왜 내보내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팬들도 있다. 우타 대타 및 1루수가 부족한 롯데나 kt에서 손을 내밀 가능성이 있다.

한편 9월 23일 김유정 기자의 단독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면서 감독과 불화가 있었음을 드러냈다.
Q :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김태완은) 타격폼을 고쳐야 한다. 투수가 던진 공에 스윙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A : “나는 야구를 1~2년 한 선수가 아니다. 내 나름대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만들어진 나만의 폼이 있다. 이전부터 타격폼에 대한 고민이 많았기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타격폼이란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서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자세다. 하지만, 감독님이 요구하는 폼은 안 맞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타석에서 많은 시간을 투수대신 나와 싸워야했다. 안타가 나오더라도 어떻게 쳤는지에 대한 감이 없더라. 그래서 더 괴로웠다.”
Q : 소통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A : “문제는 선수가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정해놓은 답이 있다면 그 답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하고 왜 그 답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 과정 없이 ‘이게 맞으니까 그냥 너는 따라만 와’라는 식은 선수로서 납득할 수 없다. 프로에서 개인 기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선수에게 있지 않은가.”

여러 팀이 김태완을 영입하려 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9개 팀 중 단 한 팀도 영입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젠 아무 팀과 계약할 수는 있으나 남은 2016년 시즌 경기에는 출장할 수 없다. 수비력이 떨어지고 서른 중반인 타격 유망주를 데려갈 팀은 없어보이지만 반대로 얼마남지 않은 시즌을 잔여연봉을 주면서까지 영입할 필요는 없어서 아직 판단하긴 이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풀리자마자 무조건적으로 영입해야할 선수는 아니라는 것이 현재 시장의 평가.

시즌 후 '본인의 타격폼을 존중하며 마음대로 해보라'는 고위층 인사가 있는 모 팀과의 계약이 임박했다는 기사가 떴다. 엠스플과의 추가 인터뷰에서 '후회 없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고 한화에서 은퇴하는 것이 꿈이었다는 말과 함께 투수 출신 감독의 타격폼 수정으로 부상이 와 자비로 치료했다고 밝히며 권한 다 뺏긴 감독을 다시 한 번 확인사살했다.

여담으로 입단 동기인 송광민이 김태완의 웨이버 공시를 매우 안타까워했다. 유일한 친구마저 떠나고 자기 혼자 남았다면서...

한화에서의 마지막 시즌 성적은 24타석 20타수 7안타 3볼넷 1사구로 타율 0.350, 출루울 0.458, ops 0.958.

12월 9일 새벽 서울팀과 계약이 확정됐다는 떡밥이 돌다가[16] 오후에 공식적으로 넥센 히어로즈와 계약이 발표되었다.

2.2. 넥센 히어로즈 시절

파일:화성김태완.jpg
화성 히어로즈 시절, 2018년 8월 26일 고척돔에서 열린 KIA 2군과의 경기 모습.

2.2.1. 2017 시즌

고향인 서울 연고의 넥센 히어로즈에서 맞이하는 첫 시즌이다. 본가도 히어로즈의 옛 홈이 있는 목동에 있다고 언급하면서 새 출발을 다짐했다. 한화 이글스에서 달았던 등번호 10번은 현재 김웅빈이 달고 있고, 38번을 이용했던 투수 신명수는 2016 시즌 후 방출당했는지라 새로운 번호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공식 홈페이지에는 0번으로 되어있다.

시즌 전 하주석, 송광민과 함께 대만으로 떠나 권용관이 코치로 있는 성남고등학교 야구부와 해외 훈련을 실시했다. 팀을 떠나긴 했어도 동료들 간 사이는 나쁘진 않았던 모양.

지명타자 자리에는 이택근 채태인, 1루수에는 커리어 하이를 찍은 윤석민, 쏠쏠한 멀티 포지션(이었던) 대니 돈 등이 있고 외야수 자리도 임병욱, 고종욱, 대니 돈, 박정음 등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경쟁이 예상된다.[17] 하지만 경쟁을 극복하고 본인의 전성기 시절 타격 폼만 찾아도 예전 기량 회복이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생각해 보면 한화에서 방출될 당시에도 표본은 별로 없었지만 타율은 나쁘지 않았기 때문. 이에 장타력까지 회복되면 넥센에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일단 넥센에서는 우타 대타 요원으로 생각하고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팬들의 반응도 우호적인 편.[18]

3월 14일 시범경기 첫날에는 7번 지명타자로 출장해서 4타수 4삼진을 당했다. 문제는 같은 날 중견수로 출장한 이정후 보다 타격은 물론 수비, 심지어 주루마저도 매우 뒤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렇다보니 타격 하나만으로 모든걸 커버해야 하는데 이날 경기 기록을 보면 향후 전망이 매우 어둡다. 3월 15일에도 대타로 출장, 또다시 삼진을 당하며 시범경기 5연타석 삼진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다섯 타석 모두 2사 상황이었기 때문에 '애드김'이라는 별명이 새로 거론될 정도.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는 모습이었는데, 다행히(?) 두 번째 타석에서 희생플라이로 동점타를 기록하여 연타석 삼진에서는 벗어났다.

그러나 3월 18일부터 시작된 두산과의 2연전에서 6타수 4안타 1홈런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보였다.

3월 23일 대타로 출전했다. 경기 종료 후 기준 10타점으로 시범경기 타점 1위. 희생플라이와 볼넷 누적으로 타점과 출루율 스탯을 쌓고 있다.

개막 이후에는 채태인의 백업으로 주로 출전하는 중. 투수에 따라선 선발 출장의 가능성도 있다. 타격은 그럭저럭인데 문제가 수비라서 아직까진 적응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홈 구장인 고척돔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지 가끔 위험한 상황을 연출한다.

4월 25일 윤석민의 대타로 나와 안타를 때려냈다. 표본은 적지만 경기 종료 시점 기준 20타수 8안타 2볼넷 0타점 2득점으로 타율 4할, ops 9할 2푼 8리를 마크 중. 다만 babip이 6할 6푼 7리로 미친 듯이 높은게 흠.

4월 26일 박정음의 대타로 나와 1사 1루에서 유희관을 상대로 안타를 쳐냈다. 이후 대주자 김민준과 교체되었고, 김민준까지 홈을 밟아 넥센이 2대 3까지 따라붙는 귀중한 안타가 되었다.

4월 2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 장정석 넥센 감독은 살짝 의도해 김태완을 클린업에 넣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의도대로인지 홈런 포함 3안타 4타점으로 맹활약했다. 2회에 안타를 치고 출루 후 선취 득점, 5회 1사 만루에서 2타점 적시타, 8회 1사 1루에서 박정진에게 투런 홈런을 쳤다. 이 홈런은 2014년 9월 9일 이후 962일 만에 홈런인데 공교롭게도 이때의 홈런은 한화 소속일때 넥센을 상대로 친 것이었다.

5월 4일 3번 타순의 지명타자로 출전하였으나 1사 3루, 무사 만루에서 삼진을 당하고 2사 만루에서 3루 땅볼로 선행주자를 아웃당하게 하는 등 3타수 2삼진 무안타로 크게 부진했다. 결국 7회 대타 이택근으로 교체당했다. 그래도 3할 8푼을 치고 있다.

결국 부진 끝에 5월 7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났을 때 공교롭게 또 한화전에 걸렸고, 장정석은 또 노리고 바로 콜업하자마자 아예 4번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2경기에서 모두 2안타씩 뽑아내며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그 다음 경기인 수원 원정에서도 4번으로 나왔으나 영 공을 못맞춰서 6회에 찬스상황이 되자 대타로 교체되었다.

6월 20일 한화전에 7번 타자로 선발출장해 3타수 1안타 1볼넷 2득점을 기록했다.

21일은 김웅빈의 대타로 나와 박정진에게 볼넷을 얻어냈고 대주자 김지수와 교체되었다.

9월 23일 경기에서 정말 오랜만에 선발 8번 지명타자로 출장해서 2회 솔로 홈런을 날렸다. 그 사직구장을 밀어서 넘겼다는 점이 포인트. 그러나 이게 활약의 끝이었고, 넥센은 이 날 패배로 트래직 넘버가 사라져 PS진출이 4년 연속에서 끊기고 말았다.

9월 29일 3대 8로 경기가 기운 8회초 상대 마무리 임창민을 상대로 다시 솔로 홈런을 쳤다. 타율도 .301까지 끌어올렸다.

일단 시즌 종료 후 살아남긴 했다. 기대치에는 못 미쳤지만 대타 요원으로는 나름 쓸 만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100타석밖에 안 들어서긴 했지만 OPS가 8할 8푼이니...

2.2.2. 2018 시즌

박병호가 전격 복귀하여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채태인이 롯데로 이적했기 때문에 대타로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지 않지만 비슷한 포지션에 장영석도 있기에 1군 끝자락에서 고군분투하게 될 시즌.

어째서인지 1군 스프링캠프에서 좌익수 수비를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시즌 전에 인터뷰를 했는데, 한화에서 기회를 안 줬다며 기회 드립을 쳐서 한화팬들에게는 준 금지어 취급을 받는다. 물론 한화 마지막 2년간 타석수를 합쳐도 17년 한해 대타와 백업을 오가면서 뛴 타석수보다 적으니 넥센 시절에 비해 기회를 안 준 것이 맞긴 맞다. 적은 타석수에도 비율은 괜찮았음을 감안하면 더더욱.

3월 13일 한화와의 첫 시범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뜬공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14일 한화와의 시범 2차전에서 좌익수로 출장해 선발 휠러를 상대로 2사에서 솔로포를 터뜨렸고 볼넷, 안타까지 얻어내며 전 타석 출루에 성공했다. 안타 이후 대주자 임병욱과 교체되었고, 기록은 3타석 2타수 2안타. 이러한 활약 탓인지 개막전 엔트리에 일단 내야수로 합류하게 되었다.

3월 24일, 한화와의 고척돔 첫 개막전에서 3회말 샘슨의 직구를 받아쳐 좌측 솔로포를 터트렸다.
허나 다음날 홈런을 처본 휠러에게 철저히 공략당하며 부진했고, 27일 LG전 병살성 타구만 생산해서 까였다.

그리고 4월 24일 LG전에서 본인이 한화전 원툴이라는 걸 다시 입증했다. 5번 타자로 선발출전해서는 득점권에서 초구를 치고 병살타로 이닝을 종료하는 모습을 두번이나 보인데다가 수비에서도 김혜성의 파인플레이를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왜 1군에 붙어있는건지 팬들의 의문과 분노를 샀다.

26일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공을 꽤 오래 보고 커트도 해줬지만, 삼진으로 물러났다.

박병호가 부상에서 복귀하기 때문에 박병호의 복귀 이후에는 2군으로 갈듯.. 했는데 서건창 박병호에 이어 초이스 고종욱까지 부상을 당해버렸고 다른 대타요원들도 도긴개긴 수준의 타격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냥 1군에 남았다. 그리고 5월 2, 3일 NC다이노스전에서 안타 두 개를 쳐내며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

그런데 한화와의 3연전을 앞둔 5월 7일 갑자기 2군으로 내려갔다. 그래서 팬들은 박병호가 돌아오는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 딴 경기는 몰라도 한화전만은 잘한다던 김태완을 굳이 한화전 직전에 말소한 뒤 속절없이 스윕패를 당한 장정석 감독은 또 한 번 신나게 까였다. 감독의 해명으로는 "최근 타격감이 안좋아서"라고는 하는데, 대타 요원으로도 뛸 수 있는 선수를 굳이 내린 타이밍이 영 이상하다. 이 소식을 한화측이 반겼을 정도인데, 어차피 주전들도 줄부상인데 굳이 상대 팀 사기를 올려주는 선택을 해야 할만큼 엔트리가 빡빡했는지 의문.

그후 7월 10일 또 한화와의 시리즈에서 콜업되었지만 시리즈 동안 6타수 무안타 3삼진을 선보이며 그나마 1툴이라던 한화킬러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전반기 경기인 12일 경기에서 땅볼을 치고 괜한 상대 포수에게 삿대질하며 1루로 뛰지 않고 미트에 배트가 맞았다며 규정에도 없는 비디오판독을 요구하는 어이없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그나마 어필할 수 있는 한나쌩 클럽 모드도 불가능해졌다면 남은 행보와 선택지는 뻔하다. 7월 18일 LG전을 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확대 엔트리에 한 번도 등록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시즌 성적은 66타수 13안타 AVG 0.197, 1홈런 5타점. 도저히 1군에서 버틸 만한 성적이 아니다. 결국 시즌 종료 후인 10월 14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선수 본인은 현역 연장 의지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소속팀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기회가 제법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부여된 역할(타격)을 전혀 해내지 못한 시즌이었고, 딱히 다음 시즌에 이를 반전시킬 만한 요소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KBO리그에서 재취업하긴 힘들 것. 결국 비슷한 처지의 최준석과 함께 그대로 은퇴할 확률이 높다.[19] 결국 은퇴를 결정하고 고양 히어로즈 타격 코치로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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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팀 전력은 강하지 않아 2001년 황금사자기에서 배명고에 패하면서 16강에 머물렀다. 3학년 김태완이 4번타자를 칠 때 김재호는 1학년으로 유일하게 스타팅 라인업(3번타자 + 유격수)에 이름을 올렸다. [2] 이 당시에는 지명받은 선수가 프로 입단 대신 대학에 진학해도 지명권이 소멸되지 않고 영구적으로 유지되던 시절이었다 보니 대다수 구단들이 사실상 대학 진학이 확정된 선수들까지 하위 라운드에서 모두 채워 지명하곤 했다. 이 당시 한화는 하위픽에서 고등학생이었던 김태완, 송광민, 연경흠을 지명했는데 이 3명은 이후 대학을 졸업한 뒤 2006년 다같이 입단, 프로에서 빠르게 두각을 드러내 한화 이글스의 중심이 될 선수들로 기대를 받았다. [3] 정작 성균관대는 사범대가 아니라 따로 교직이수 등의 절차를 거쳐야 교사 자격증이 나왔다. [4] 이 시즌에는 김태완이 안치면 볼이라고 할 정도로 선구안도 뛰어난 편이었다. 당장 타율이 0.289인데 반해 출루율은 무려 0.419로 타율 대비 1할 이상 높은 걸 봐도 선구안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5] 덤으로 도루 실패 개수는 6개. [6] 사실 성적을 하나하나 보면 출루율이 좋아서 그렇게까지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2008년보다도 오히려 war가 높았으니... 문제는 2009년 성적으로 기대치가 높았었다는거. [7]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낮기 때문이지만 이정도면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8] 문책성 교체를 빠르게 하다가 수비 위치가 꼬였다. [9] 성균관대학교에서도 3루수를 해 본 적이 없다는 말도 있다. [10] 데뷔 후 2~3년은 3루수를 겸업했다 [11] LG에서는 원래 3루수였고 한화 이적 후 외야수로 전향했다. 2011 시즌 한화 2군에서 3루수 겸업을 했다. [12] 사실 공익 입대 전에도 장종훈 등 한화의 타격코치진이 타격 폼을 수정하고자 했으나, 본인이 거부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13] 원래 김태완의 타격 폼은 배트 위가 투수를 향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뉘여져 있다. [14] 류중일 감독이 애제자인 외야수 배영섭을 과감하게 경찰청으로 보낸 이유이기도 하다. [15] 송광민은 이범호가 나간 직후 달았었던 7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 [16] 출처는 정민혁의 인스타그램 [17] 다만 KBO에서 가장 수비력이 떨어지는 선수 중 하나인 김태완이 1루수 수비라도 제대로 맡아 줄 수 있을지 미지수긴 하다. 현실적으로는 지명타자 슬롯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 [18] 2016 시즌까지도 제대로 된 오른손 대타 요원이 없다시피했던데다 윤석민 채태인이 다 나가리되어 1루수를 박윤이 봤던 적이 있을 때를 생각해 보자(…). [19] 최준석은 질롱 코리아로 가 현역 연장 의지를 보였지만 현실적으로 KBO에 복귀할 확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