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313349><colcolor=#fff> 김정훈 金廷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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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1년 12월 2일 ([age(1961-12-02)]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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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서울덕수초등학교 한성화교학교 국립타이완대학 (사학/학사) 국립타이완대학 대학원 (동양사/석사)[1] |
부모 | 김영희 (부), 박정자 (모) |
데뷔 | 《이 세상 끝까지》(1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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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아역배우 출신의 배우.2. 활동
1961년 12월 2일 서울에서 김영희와 박정자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4살 때이던 1965년 고영남 감독의 '이 세상 끝까지'로 데뷔했다.동글동글한 귀여운 얼굴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1960년대 ~ 70년대까지 부동의 원탑 아역배우였다. 꼬마 신랑 시리즈나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70년 영화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에서 어린 영친왕을 연기한 바 있다. 하지만 너무 예쁘고 어려 보이는 얼굴과 아역으로 고정된 이미지로 배역에 한계가 생겨서 그런지 크면서 성인이 된 이후로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대만에서도 활동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 동남아로 수출돼 히트하면서 필리핀 국경의 날 초대된 자리에서 대만 영화사의 섭외로 대만에서 영화를 찍어, 1973 '철한(鐵漢)', 1974년 '대추종(大追踪)', '망명천애(亡命天涯)', 1977 '건륭하강남(乾隆下江男)'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1970년대 말 이승현과 함께 나온 하이틴물 고교얄개 시리즈가 실질적으로 아역으로서 마지막 영화 활동이다. 1981년 한성화교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국립타이완대학 사학과에 유학하여 1989년 2월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하여 그해 석래명 감독의 '홀로서는 그날에'애 출연, 성인 연기자로 컴백했다.
대만에서 학업을 하면서 번역가로도 활동하며 홍콩영화를 번역했는데, 주윤발 주연인 '우견아랑'을 번역한 바 있다.
1989년 광고대행사인 디딤기획사를 운영했고 1990년 훈 이벤트 대표를 지냈다.
성인 연기로 변신한 후에는 주로 영화에 조연으로 나왔으며 홍석천이 나온 영화 '헤라 퍼플'에 조연으로 나온 바 있다.
2008년에 MBC 프로그램에서 자신과 같이 아역으로 인기를 끌다가 커서 잊힌 이승현과 같이 나온 바 있다.
3. 수상
4. 출연작
- 미워도 다시 한번 (1968)
- 자유부인 (1969)
- 속 미워도 다시 한번 (1969)
- 떠나도 마음만은 (1969)
- 독 짓는 늙은이 (1969)
- 미워도 다시 한번 제3편 (1970)
- 꼬마신랑 시리즈
- 꼬마신랑 (1970)
- 속 꼬마신랑 (1970)
- 돌아온 아기신랑 (1970)
- 꼬마검객 (1970)
- 꼬마아씨 (1970)
- 개구장이 도련님 (1971)
- 쌍동이 꼬마신랑 (1971)
- 속 꼬마신랑 제3편 (1971)
- 꼬마사장과 여비서 (1971)
- 꼬마암행어사 (1971)
-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1970)
- 미워도 다시 한번 대완결편 (1971)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1976)
- 고교얄개 (1976)
- 얄개 행진곡 (1977)
- 여고얄개 (1977)
- 고교 꺼꾸리군 장다리군 (1977)
- 고교 우량아 (1977)
- 고교 유단자 (1977)
- 우리들의 고교시대 (1978)
- 우리에게 축배를 (1978)
- 고교 고단자 (1978)
- 해 뜨는 집 (1980)
- 홀로 서는 그날에 (1990)
- 헤라퍼플 (2001)
[1]
석사 논문 제목은 '청나라와 조선의 정치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