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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03:28:53

김세원(교수)

<colbgcolor=#003380><colcolor=#ffffff> 대한민국 제3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김세원
金世源 | Kim Cae Won
파일:김세원 교수.jpg
출생 1939년 3월 24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사망 2021년 2월 11일 (향년 82세)[1][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김해 김씨
학력 경기고등학교 (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 학사)
브뤼셀 자유대학교 ( 국제경제학 / 석사 · 박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전역
부모 아버지 김두진
배우자 이가영
자녀 4녀
친인척 사돈 김병찬
사위 김성훈[3]
경력 브뤼셀 자유대학교 유럽연구소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초대원장
농협중앙회 이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외이사
농협중앙회 자문위원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국제평화재단 초대 이사장[4]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5][6]

1. 개요2. 생애
2.1. 노태우 정부(1988~1993년)2.2. 김영삼 정부(1993~1998년)2.3. 김대중 정부(1998~2003년)2.4. 노무현 정부(2003~2008년)2.5. 이명박 정부(2008~2013년)2.6. 문재인 정부(2017~2022년)
3. 상훈 내역4.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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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경제학자

김세원 교수는 대한민국 경제학계를 이끌었으며, 학문과 교육, 정책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2. 생애

1939년 3월 24일, 김두진의 아들로 태어난 김세원 교수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선출됨에 따라, 서울로 상경하여 경기중학교를 입학하였다. 이 후 1954년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하여, 196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하지만 법학 대신 경제학을 향한 열망으로 오랜 고민끝에 유럽의 선진 경제학을 배우고자 1963년 브뤼셀 자유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며 국제경제학과 유럽통합론 분야에서 학문적 기반을 다졌고, 이후 대한민국 경제학 및 정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2.1. 노태우 정부(1988~1993년)

노태우 정부 시기, 김세원 교수는 대한민국 경제 정책과 정보통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1988년부터 1991년까지 한국전기통신공사(KTA) 이사와 통신개발연구원(KISDI) 초대 원장으로 재직하며, 대한민국 정보통신 산업의 현대화를 이끌었다. 이 시기, 그는 기술 도입과 산업 구조 개편을 주도하며 한국이 정보화 사회로 전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1988년 한국국제경제학회장으로 활동하며 국제경제학 연구와 학술 교류를 활성화했다.

경제정책에서도 그는 중요한 책임을 맡았다.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산업연구원(KIET) 감사로 활동하며 산업 정책과 연구의 방향성을 점검하고, 재무부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으로 금융 정책의 조정과 발전을 지원했다. 동시에, 그는 농협중앙회 자문위원으로 농촌 경제와 금융 발전을 위한 자문을 제공하며, 농업 및 농촌 정책의 안정화에 기여했다.

김 교수는 1991년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어 통화 정책 안정화와 금융 시스템 개선에 기여했다. 또한, 그는 제7차 경제사회 5개년 계획 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가 경제 정책의 장기적 방향을 설정하며,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2.2. 김영삼 정부(1993~1998년)

김영삼 정부 시기, 김세원 교수는 경제 국제화와 금융 산업의 발전을 주도하며 다양한 공직을 맡았다. 그는 1993년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학문적 연구와 정책 분석을 통해 한국 경제를 연구하고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같은 해, 그는 통신개발연구원 이사장으로서 정보통신 정책의 방향성을 구체화하고, 통신 산업 구조 조정을 지원했다.

1994년부터는 한국-EU Wisemen's Club 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과 유럽 간 경제 협력과 교류를 증진시켰다. 그는 상공부 기업세계화지원기획단 단장으로서 한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를 도모했다. 또한 총리실 국제화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경제 국제화의 틀을 설계하고 국제 경제 환경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으로 학문적 리더십을 발휘하며 후학 양성과 학술 연구를 활성화했다. 그는 이 시기에도 무역협회 통상진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대외 무역 정책 수립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2.3. 김대중 정부(1998~2003년)

김대중 정부에서는 금융과 통신 분야에서 중요한 공직을 맡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지원했다. 1998년에는 금융감독위원회 비상임 위원으로 임명되어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의 안정화와 발전을 위한 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같은 해 그는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회 국제금융부문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힘썼다.

1999년에는 한국토지공사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부동산 및 국토 개발 정책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EU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유럽 통합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국과 유럽의 협력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2.4. 노무현 정부(2003~2008년)

노무현 정부 시기, 김세원 교수는 학문과 정책의 연계를 강화하며 국제 평화와 경제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2004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정년퇴임한 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로 임명되어 학문적 활동을 지속했다.

2006년에는 국제평화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제주포럼을 국제 평화와 경제 협력 논의의 장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는 동북아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경제 협력과 평화 구축의 모델을 제시하며,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시기, 그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으로 다학제적 연구를 이끌며, 학문적 성과가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2.5. 이명박 정부(2008~2013년)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국가 정책의 연구와 실행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적 대응을 체계화하고, 이를 학문적 기반 위에서 평가하는 데 기여했다. 김 교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의 여러 연구 기관과 협력하며,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지원했다.

이 시기 그는 2010년 3월 23일 열린 “경제위기 대응: 성과와 과제” 제7차 전문가 토론회에서 치사를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의 정책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과제를 모색했다. 이 토론회는 국무총리실 후원 아래 KDI(한국개발연구원), 산업연구원, 한국조세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주요 정책 연구 기관들이 참여한 자리로, 김 교수는 위기 대응 정책의 객관적 평가를 통해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국민과 전문가들에게 전달하려는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특히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정부의 재정 확대와 국제적 협력 체계 구축을 높이 평가하며, G20과 같은 국제적 공조가 국가 경제 회복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설파했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비상경제대책회의와 같은 신속한 정책 수립 체계를 통해 정부가 민첩하게 대응한 점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이 경기 침체를 완화하고 예상보다 빠른 경제 회복을 이끄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위기 대응 과정에서 재정 확대와 통화정책의 균형이 민간 부문의 회복세 강화로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고용 창출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적 과제를 제시하며,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경제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농촌경제 활성화와 관련해서는 지역특화산업 육성이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었다. 그는 기초생활권 개발 정책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농촌지역에서 부존자원을 활용한 창의적 접근이 지역 특화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직결된다고 강조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더 많은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경제위기 극복과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녹색성장, 부품소재산업 육성, 서비스업 선진화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정책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책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경제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장기적인 경제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앞으로는 구조적 개혁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해야 한다고 보았다.

김세원 교수의 이명박 정부 시기의 활동은 단순히 정책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체계화하고 발전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는 학문적 통찰과 정책적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6. 문재인 정부(2017~2022년)

문재인 정부 시기, 김세원 교수는 학문적 권위를 바탕으로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며 제자와 후학들을 지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2017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보고서 채택 과정에서 논란을 빚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각계의 지지가 이어지는 가운데, 김 교수는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7].

그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김남근 변호사,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장지상 경북대 교수 등 사회 각계 인사 498명과 함께 성명서를 발표하며, 김상조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성명에서 "김 후보자는 도덕적인 인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공정거래위원장 직무의 적격 인물"이라며 그의 임명을 지지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제자였던 김상조 후보자가 공정거래와 경제 개혁의 적임자임을 확신하며,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순수한 충정에서 이 성명을 낸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김 후보자가 청문회 과정에서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진솔한 해명과 사과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성실히 대응했음을 강조하며,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과도한 비판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김상조 후보자를 비롯해 함께 경제학 연구를 이끌어온 학자들과의 학문적 연대를 통해, 한국 경제학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 김 교수와 함께 서명한 이들에는 홍장표 부경대 교수, 윤석헌 서울대 객원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 원승연 명지대 교수 등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김 후보자의 청렴성과 학문적 기여를 증언하며,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의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이 성명은 단순한 정치적 지지 선언을 넘어, 김 교수가 학계와 정책 영역에서 보여준 제자에 대한 신뢰와 학문적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김 교수는 "경제학은 단순한 학문적 탐구를 넘어,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실천하며, 제자를 위한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사건은 김세원 교수가 평생을 걸쳐 강조해온 학문적 연대와 후학 양성의 철학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로, 그의 학문적 유산이 단순히 과거의 업적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사회적 논의와 경제 정책에서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3. 상훈 내역

4. 저서


[1]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2120841081 [2] https://www.mk.co.kr/news/society/9748346 [3] 제주한라대학교 총장 [4] https://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3011 [5]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00616.html [6] https://www.ehistory.go.kr/view/photo?mediaid=20148187&mediasrcgbn=PT [7]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6/2017060601239.html [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17218 [9] https://imnews.imbc.com/replay/1990/nwdesk/article/1839028_304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