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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7:21:1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물 제6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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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물 寶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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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물 제643호)1.jpg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보물 제643호

1. 개요

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 삼국시대 6세기 후반 경 한국의 금동 반가사유상. 1978년 12월 7일 대한민국 보물 제643호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수십년간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었던 유물이었기 때문에 한때는 사람들이 '호암 금동반가사유상'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나, 2020년 10월 이건희 삼성회장이 사망한 후 2021년 4월에 삼성 일가가 23,000점에 달하는 ‘이건희 컬렉션’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본 유물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따라서 현재는 국박에 소장되어 있다. 아마도 훗날 (가칭)국립이건희미술관이 건립되면 그리로 이관할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대한민국 보물의 지정번호가 사라짐에 따라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본 불상의 명칭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78)'로 변경되었다. 다만 나무위키에서는 본 항목을 보는 사람들의 혼란을 고려하여 한국어 위키백과처럼 보물 제643호명을 붙여 문서를 개설하였다.

2. 내용

높이 11.1cm.

6세기 후반 경 삼국시대, 그 중에서도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금동제 반가사유상으로, 본래는 호암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었으나,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전체적으로 투박한 느낌이 드는 고식의 작품으로, 머리에는 산봉우리 모양의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고 작은 몸에 비해 얼굴이 크며 목은 따로 묘사하지 않았다. 비록 조각수법이 유연하지 못하고 기법도 그다지 세련되지 못하지만, 아직도 도금 상태가 좋은 편이며 전체적으로 한국 반가상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파일: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물 제643호)2.jpg

원래 이 불상의 소유자는 대한민국 국보 제146호로 지정되어 있는 '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傳 論山 靑銅鈴 一括)의 소유자이기도 했던 김동현이라는 유명한 유물 수집가였다. 그는 1970년대 초에 한 도굴꾼으로부터 비밀리에 유물 하나를 소개받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 불상이었다. 그 도굴꾼은 막 도굴하여 아직 흙이 그대로 묻어있던 본 불상을 김동현에게 보여주며 경상남도의 한 사찰로부터 동쪽으로 약간 떨어져있는 해변가에 있던 석탑에서 꺼낸 것이라고 얘기하였다. 처음에 김동현이 그 말을 믿지 않자 그는 불상과 함께 도굴하였으나 몰래 감추어 두었던 상아로 제작된(象牙製) 매병 모양의 사리함(舍利器)을 추가로 보여주었다. 역시나 막 도굴하여 흙과 이물질이 그대로 묻어있던 그 사리함은 사리와 유리구슬까지 그대로 들어있는 상태였고, 외견상 확실한 신라시대 작품이었다. 이에 김동현은 마침내 본 불상을 600만원이란 거액을 주고 구매하였고, 일본의 불상 권위자 마치하라와 학계 전문가로부터 진품임을 재차 확인받았다. 고지식한 청년을 닮은, 신라금동미륵반가사유상

이후 1978년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고, 1982년에 삼성 이병철이 김동현으로부터 국보 3점, 보물 4점 등 다양한 개인 유물을 이관받을 때 본 불상도 함께 호암미술관으로 이동하였다.

본 불상은 비록 도굴되긴 했으나 제작 장소가 명확하지 않은 다른 금동반가사유상들과는 달리 경상남도 동부 해안지역에서 출토되었다는 명확한 증언이 있는 점, 6세기 후반 경남 일대의 고졸한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여 1978년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몇몇 이들은 본 불상보다 더욱 세련되고 뛰어난 한국의 반가사유상 작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작품들은 보물에 등재되지 않고 유독 본 유물만이 보물로 등재된 것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국립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일 경우 국보나 보물로 등재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해당 박물관에서 굳이 유물을 등재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닌 문화재청의 간섭까지 받고자 하지도 않을 뿐더러, 국립 박물관 쯤 되면 굳이 국보니 보물이니 하는 이름에 크게 목을 매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물관 홍보를 위해 국가문화재나 지역문화재 등재에 아주 열심인 사립박물관이나 개인박물관 등과는 달리 국립 박물관들은 아주 유명한 작품이라 꼭 등재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신청 자체에 소극적인 편이다. 그리고 사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들이 문화재청이랑 사이가 아주 좋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곳을 돌아보면 웬만한 국보나 보물도 귀싸대기 때릴 만한 수준의 작품들이 그냥 일반 동산문화재로 버젓이 전시되어 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본 불상은 경상남도 동부 지역에서 출토되었으므로 6세기 당시 신라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로 2020년까지는 문화재청 홈페이지 내에서도 제작시대를 신라로 표기하고 있었으나, 2021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유물이 이관되면서 제작시대가 삼국시대로 변경되었다. 이에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백제의 작품일 가능성도 있는 바, 분류에 백제도 포함해놓았다.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금동반가사유상으로, 당시 한국의 불교 문화와 금속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64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은 현재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높이 11.1㎝의 작은 금동불이다.

머리에는 산봉우리 모양의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는데, 봉우리가 거의 동일선상에 있어서 주목된다. 머리카락은 2가닥으로 길게 늘어져 양 어깨를 덮고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해 큰 편으로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미소를 머금고 있다. 목 부분이 표현되지 않아 약간은 투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상체에는 옷을 걸치고 있지 않으며 치마가 가슴 부근까지 올라와 있다. 옷자락은 굵은 주름으로 표현되어 대좌(臺座) 아래까지 넓게 퍼져 있으며 앞면은 물론 불상의 뒷면에까지 표현되어 있다. 일반적인 반가상(半跏像)의 형식대로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포개고 오른쪽 팔꿈치를 오른쪽 무릎에 대어 오른손을 볼에 가볍게 대고 있는 모습이다. 두 팔목에는 두꺼운 팔찌가 있고 늘어뜨린 왼발 밑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발받침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조각수법이 뛰어나지 않고 표현기법도 그다지 세련되지 않았으나 고식(古式)의 반가상 양식을 지니고 있다. 작은 몸에 비해 얼굴이 크고 허리가 굵으며 상체를 강조한 점 등은 중국의 제나라, 주나라의 양식과 통하므로, 6세기 후반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특히 경상남도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