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00:34:17

귀인 이씨(광화당)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또 다른 후궁에 대한 내용은 귀인 이씨(내안당)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또 다른 후궁에 대한 내용은 귀인 이씨(영보당)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73679, #403F95 20%, #403F95 80%, #373679); color: #ffd4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황제 · 추존 황제 · 황후 · 추존 황후
황태자 · 황태자비 · 칠궁 배향자 · 후궁 · 황자
※ 정식 후궁 첩지가 있는 사람만 기재
}}}}}}}}}


귀인 이씨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
조선의 후궁
[[틀:조선의 후궁(중종 ~ 고종)|{{{#!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ackground: #ffd400; border-radius: 3px; font-size: .8em"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E1D55, #89236A 20%, #89236A 80%, #6E1D55); color: #ffd4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사도세자|{{{#!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d400; font-size: .7em"]]
}}}}}}}}}



대한제국 고종의 후궁
귀인 이씨 | 貴人 李氏
<colbgcolor=#403F95><colcolor=#ffd400>
조선 고종의 후궁
귀인 이씨 | 貴人 李氏
완덕(完德)
출생 1885년
사망 1967년 11월 10일 (향년 83세)
대한민국 서울 종로구 삼청동 사저
능묘 광화당묘(光華堂墓)
배우자 고종 태황제
자녀 슬하 1남
장남 - 이육(李堉, 1914 ~ 1916)
봉작 궁인(宮人) → 숙원(淑媛) → 귀인(貴人)
당호 광화당(光華堂)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광화당 귀인 이씨(光華堂 貴人 李氏, 1885년 ~ 1967년 11월 10일[1])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후궁이다.

2. 생애

본명은 이완덕(李完德)으로 유복한 중인계급 출생이며 13세에 고모의 소개로 경복궁 지밀에 세수간 나인으로 입궁했다.[1] 덕수궁의 궁인이었던 1914년 고종의 승은을 입고 왕자를 낳아 광화당(光華堂)이라는 당호를 받았다.[2] 그러나 왕자 이육은 1916년에 죽었다. 이육 외에 어려서 죽은 딸이 하나 더 있었다고도 한다.[3] 귀인 이씨는 고종이 죽고 난 후 같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삼축당 김씨와 함께 사간동 집에서 살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제정된 구황실재산법의 구황족 범위에 포함되어 매달 10만환을 지급받았다.[4] 죽은 뒤에도 삼축당 김씨와 나란히 묻혔다.
[1] 신명호, 《조선공주실록》, 역사의 아침, 2009, p.307 [2] 《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부록 5권, 7년(1914) 7월 3일 [3] 최선경, 《왕을 낳은 후궁들》, 김영사, 2007, p.227 [4] ““황족의 품위가 말이 아니오””. 한겨레21. 2006년 8월 24일. 2014년 1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5월 2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