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군이 되어보세! |
등장인물 ( 1부 · 2부 · 3부 · 4부 · 이재석 · 김상희) |
1. 개요
명군이 되어보세! 4부의 등장인물.주인공 재석의 4번째 빙의체인 흥선제의 황후이다.
2. 작중 행적
1814년생으로 이번 생의 재석보다 2살 연상. 안동 권씨로 권훤의 6대손이자 현종의 막내딸 신혜옹주의 손녀로 현종의 현손인 재석에게는 재종고모( 7촌)가 된다. 무종의 처 성렬왕대비 신씨가 무종의 7촌 고모[1]였던 걸 보면 알겠지만 조선 시대에는 동성혼이 아닐 경우에는 6~7촌부터 혼인이 가능했기 때문에 고증이다.모 아역 출신 배우를 닮은[2] 상당한 미녀이며 키도 상당히 크다.
신혼 당시 재석의 키가 150cm 정도였는데 권씨의 키는 160cm도 넘어서 재석은 자신보다 눈높이가 한참 높은 권씨를 더 부담스러워했고, 어린 나이에도 이 시대 성인 여성들보다 큰 키이기에 재석은 권씨가 다 크면 상희나 올렝카 만한 장신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신혼 시절에는 둘의 키 차이가 꽤 많이 났는지 재석의 태황 즉위 후 나폴레옹과 재석이 정상회담차 재회했을 때 나폴레옹이 이제는 그녀보다 키가 크냐고 농담 섞인 질문을 건냈을 정도. 재석은 그녀는 본국에 있다고 적당히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그래도 성인이 되어서는 재석이 아내들의 키를 따라잡았다고 한다.
신혜옹주가 원래는 심왕비로 보내려고 조기교육을 시켰지만 심왕부에서 이번에는 청나라 공주를 들이기로 정했다며 완곡히 거절했고, 광덕제의 2번째 비 간택 때는 촌수가 가깝고 간택 연령에 맞지 않는 등 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그 뒤 광덕제의 서장자 이정과의 혼담은 손녀가 아깝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본인도 서녀였으면서 이게 뭐냐 싶을 수도 있는데 당시 원평제와 광덕제 모두에게 무시당해서 넉넉하지 못하게 살고 있는 쩌리 황자였기 때문에 미덥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신혜옹주의 너무 까다로운 태도 때문에 신혜옹주의 아들이자 권나현의 아버지인 권세직은 이러다가 권나현이 평생 노처녀로 살면 어떡하냐고 그냥 적당한 명문가에 시집 보내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지만 까였고, 이렇게 까다롭게 굴다가 황태손빈 간택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온갖 로비를 한 끝에 황태손빈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미주행 직전 만 14세의 나이로 재석과 혼인한다.
아직 어리지만 6대조 권훤과 이마리 부부를 닮아 총명하고 강단 있는 성격으로 본인 스스로 태황에게 청하여 측실 3명까지 모두 이끌고 미주까지 동행한다.
재석은 태손빈은 당연히 상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희의 신분이 환생할 때마다 계속 상승했기 때문이다. '지난번엔 정실부인+재취였으니 이번엔 처음부터 정실이겠지?'라고 생각하 것. 그러나 결혼식 날 밤 연산군 이야기를 못 알아듣는 걸 보고 그녀가 상희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크게 실망한 뒤 천녀를 원망했다. 그러나 천녀는 상희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한 번도 약속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상희가 언급될 때마다 둘이 만나는 건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는데, 그걸 다 들어놓고도 재석 혼자 멋대로 기대해 놓고 실망한 것이다. 하지만 권씨 본인은 아무 잘못이 없는 게 사실인지라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미주로 가는 배 안에서부터 권씨를 아내로 대하기 시작했고, 제법 잘 지내게 된다.
아직 12살인 연하남 남편이 사실 정신연령으로 따지면 130년 묵은 노괴란 것은 상상도 못하고 귀엽게 여기면서 남동생처럼 대하며, 어려서 친모를 잃은 재석에게 모성애 비슷한 것을 느끼는 듯한 묘사도 있다. 권씨의 입장에서는 귀엽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데, 겉보기에는 자신보다 2살 어린 정수리도 내려다 보이는 작고 귀엽게 생긴 꼬마이고, 그녀에겐 다행스럽게도 자신이 원했던 상대가 아니어서 실망한 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아직 여자를 대하기 어색해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
신혼 시절에는 재석이 몸도 작고 아직 2차 성징을 하지 않아 성관계를 미뤄왔으나 재석이 13살이 되자 성장하여 키 차이도 5cm 정도로 따라잡았고, 신불랑 방문 중 누벨오를레앙에서 처음으로 부부 관계를 시작한다.
원평제가 사망하고 광덕제가 즉위하면서 재석이 태자로 책봉되면서 자동으로 함께 태자비가 되고, 조모의 조기 교육 덕분에 어린 나이에도 금세 내명부를 장악한다.
1833년 초에 첫 출산을 하는데, 결혼 7년 만에야 겨우 얻은 아이가 딸이라서 실망하지만 재석이 나름 위로해준다.
광덕제가 사망하고 재석이 흥선제로 즉위하면서 중전이 되었다. 정치적 식견도 높아서 재석과 정치적인 대화도 여럿 하고 있는데, 재석은 의인왕후 김씨가 생각난다고 평하며 상희는 현대인의 정서가 강해서 이쪽으로는 도움이 안 되었고 성렬왕대비 신씨는 순하기만 한 여자라서 다른 의미로 도움이 안 되었기 때문에 정치적 조언자로서 대우하고 있다.
측실들과의 관계는 초기에는 남편의 사랑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라기보단 막내 남동생을 둔 누나들처럼 친하게 지냈으며, 여느 십대 소녀들처럼 수다를 떨고 놀기도 했다. 다만 재석이 밤일을 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미묘하게 경쟁과 긴장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고, 다들 20대에 접어들며 4명 중 3명이 자기 소생 아이(모두 딸이었지만)를 갖고 난 후에는 자매 같던 분위기는 옛이야기가 되었고 확실하게 라이벌이 되었다.
1837년 드디어 첫아들을 출산하면서 라이벌들을 확실히 제압하게 되었다. 하지만 재석의 백두산 봉선 의식에 동참하려고 여성 제관들이 참여하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서 통과되긴 했으나 중전은 도성을 지켜야 한다는 신하들의 만류로 현귀비 최씨에게 대표 여제관 역할을 빼앗기게 되었다. 하지만 상궁들의 정보망을 통해 재석과 최씨의 동침과 성관계 횟수까지 전부 파악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으며, 최씨나 김씨가 아들을 낳으면 그들의 친정인 북한이나 미주가 뒷배가 되어 원자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해 아들을 낳을 경우 먼저 손을 쓸 생각도 하고 있는 등 이전 재석의 삶들과 달리 내명부에 피바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할머니 신혜옹주가 사망하자 법도를 깨고 사가에서 상을 치른 일 때문에 정치적으로 약점이 생겨 재석이 1840년 한-신불랑 정상회담을 위해 미주로 떠날 때 대리청정 권한을 태후 박씨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하지만 태후가 샤를 루이 나폴레옹에게 속은 것 때문에 스스로 입지를 약화시킨 데다 재석이 경복궁으로 이어할 때 태후가 자기는 생활이 편한 창덕궁에 남겠다고 자충수를 두는 덕분에 다시 내명부를 장악했다.
딸 현지를 시집 보내고 허전해 하던 차에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인 현지와는 전혀 다른 귀엽고 감정 표현이 다채로운 아나스타샤가 한국에 도착하자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껌뻑 죽는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