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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5-11 00:34:43

고구려 미술

1. 개요2. 회화
2.1. 고분벽화
2.1.1. 초기(4세기~5세기)2.1.2. 중기(5세기~6세기)2.1.3. 후기(6세기~7세기)

1. 개요

고구려는 지리적인 이점으로 인해 삼국 중 중국으로부터 문화를 수입하고 자체적으로 발전시키는 속도가 빨랐으며 이를 백제, 신라, 멀리는 등 다른 나라들에 전파에도 기여했다. 지금 고구려의 미술은 벽화와 몇 안 남아있는 불상 등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군사대국다운 힘차고 역동적이며 웅장함이 느껴지는 작품이 많으며 반면에 문화대국으로서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고구려의 미술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불교의 수용이다. 고구려는 372년 소수림왕 2년에 불교를 공인하였지만 그전부터 귀족이나 민간에 불교 신앙이 알음알음 퍼져있었다는 것은 이미 연구된 사실이다. 어쨌든 불교의 전래와 수용으로 인해 고구려는 인도와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세련된 선진 미술 문화를 일찍부터 받아들이고 발전, 인근 지역으로 전파하는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회화

2.1. 고분벽화

고구려는 풍부하고 다양한 벽화를 많이 남겼는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고분에 그려진 벽화가 대다수다. 이러한 벽화는 안악 3호분과 같은 석실봉토분(토총)의 벽면에 그려졌으며 장군총이나 태왕릉 같은 적석총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큰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아서 만든 석실의 내부에 회칠을 하고 먹과 안료를 이용하여 프레스코화 기법으로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나 후기에 강서대묘에서 보듯이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린 것들도 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는 시대 변화에 따라 회화의 표현 기법, 벽화의 내용, 무덤 구조, 종교, 외국과의 관계 등 변화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미술사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대단히 귀중한 사료인데 그 이유는 그 자체로 회화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는 사료이자 고대 사회의 풍속, 복식, 생활상, 종교, 세계관, 그리고 당시 외국과의 문화교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는 현재 80여기 정도 알려지며 분포 상으로는 수도권 지역이었던 길림성 집안, 환인 지역, 그리고 평양 안악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고분 벽화의 구분은 벽화의 내용 및 양식 변화를 기준으로 초기(4~5세기 전반), 중기(5세기 후반~6세기 전반), 후기(6세기 후반~7세기 전반)으로 나눈다.

2.1.1. 초기(4세기~5세기)

2.1.2. 중기(5세기~6세기)

2.1.3. 후기(6세기~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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