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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8:57:52

겨울왕국 2/평가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겨울왕국 2
1. 개요2. 평가3. 영화 평론가
3.1. 영화 리뷰 유튜버 평
4. 긍정적 평가
4.1. 스케일의 확장4.2. 엘사와 안나의 성장4.3. 더 깊게 스며든 OST 음악들4.4. 디테일한 영상미4.5. 기존 팬들에 대한 예우의 측면에서4.6. 훌륭한 한국어 더빙
5. 부정적 평가
5.1. 음악에 대하여5.2. 아쉬운 내용 전개5.3. 결말에 대하여
5.3.1. 반론
6. 다중 관점이 적용되는 평가
6.1. 엘사는 아렌델을 떠나야만 했나
6.1.1. 부정: 전작의 결말을 부정한다6.1.2. 중립: 엘사는 여전히 아렌델과 함께한다6.1.3. 긍정: 전편에 이은 성장의 연장선이다

1. 개요

영화 겨울왕국 2의 평가를 다룬 문서.

2.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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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스코어 64 / 100 점수 6.9 / 10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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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 77% 관객 점수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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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별점 3.3 / 5.0 관람객 별점 3.7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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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7.065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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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7.4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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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80.59% 별점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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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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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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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7.4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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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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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A-



Frozen II can't quite recapture the showstopping feel of its predecessor, but it remains a dazzling adventure into the unknown.
겨울왕국 2는 전작의 화려하고 놀라운 느낌을 완벽히 되찾지는 못하지만, 숨겨진 세상으로 가는 눈부신 모험을 보여준다.
로튼 토마토 총평

전체적으로 영상미는 훌륭하지만, 스토리의 급전개가 상당히 아쉽다는 평을 받는다. 전작보다는 평이 좋지 않지만, 충분히 흥행할 만한 괜찮은 영화였다는 것이 중론.

3. 영화 평론가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바르다, 전편처럼.
이동진 ( 왓챠) (★★★☆)
넓어진 시야, 줄어든 감흥
박평식 ( 씨네21) (★★★)
마법의 이름은 음악과 애니메이션. 단점을 메울 시간에 잘하는 걸 한번 더 보여주는 디즈니식 확장
송경원 ( 씨네21) (★★★☆)
미(왕)국의 기원을 찾아 새롭게 개척하기
허남웅 ( 씨네21) (★★★)
정치적 올바름과 기술의 진보를 등에 업고 쌓은 디즈니 공주 왕국
이주현 ( 씨네21) (★★★)
방향도 결과도 모두 옳은 완벽한 귀환
심규한 ( 씨네플레이) (★★★★)
현실과 통하는 디즈니의 마법
정유미 ( 더 스크린) (★★★★)

3.1. 영화 리뷰 유튜버 평

영화 리뷰 유튜버 크리스 스턱만은 전작보다 비주얼적으로 발전했고 노래도 '그냥 괜찮은 수준이지만 작중에서는 아무 감흥이 없는' 크리스토프의 것을 제외하고는 훌륭했으며 더빙의 질이 대단히 높았으나, 크리스토프의 캐릭터는 영화 내내 청혼 클리셰만 반복하고 올라프는 참기 힘들 만큼 짜증나며, 결말(엘사가 마법의 숲에 남고 안나가 아렌델을 통치하는 것으로 추정)은 캐릭터 파괴일 뿐더러 굉장히 중대한 결정임에도 너무 간단히 결정짓고 남들도 물 흐르듯 받아들여 최악이었다고 하며 C+을 주었다.

제레미 잔스는 역시 비주얼적인 발전을 호평했고, 음악이 제법 좋았으며 후반부 몰입도가 높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스토리에 대해서는 착상은 좋았으나 잘 살리지 못했고 군데군데 미흡한 부분이 있었으며 반전이 너무 뻔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엘사와 안나가 함께 등장할 때는 좋으나 엘사가 안나로부터 분리되면서 재미없는 캐릭터가 됐고, 크리스토프는 그냥 전개에서 잘려나가 버린다는 점을 단점으로 지적했다. 올라프는 1편에서는 좋은 캐릭터였는데 제작진이 캐릭터의 장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재활용하려다 보니 결과물이 썩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종합적으로는 '술 먹고 보면 좋을' 수준의 영화라는 평.

Nostalgia Critic 등의 캐릭터로 영화를 리뷰하는 유튜버 더그 워커는 제법 흥미로운 설정이 있었고 엘사가 나오는 부분(+안나 파트 일부)은 좋았으나, 크리스 스턱만과 마찬가지로 크리스토프와 올라프의 캐릭터는 끔찍했다고 비판했고 쓸데없는(...) 캐릭터들에 분량을 할애하다가 스토리는 급전개되는데다 첫 5분만에 '반전' 요소가 뻔히 보이는데 영화 내내 중대한 비밀마냥 숨긴다고 비판했다. 또한 마지막에 아렌델이 휩쓸리더라도 댐을 파괴하는 안나의 결정은 다소 극단적이지만 동화적 이야기에서는 나름대로 수용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엘사가 물을 막아버려서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노래의 경우 엘사와 안나의 노래(안나의 경우 상황 때문에 몰입하지 못했지만)는 좋았으나, 차세대 Let it Go를 몇 곡이나 만들어내려는 야망이 뻔히 보임에도 그 수준에 도달한 곡은 없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4. 긍정적 평가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4.1. 스케일의 확장

4.2. 엘사와 안나의 성장

4.3. 더 깊게 스며든 OST 음악들

4.4. 디테일한 영상미

4.5. 기존 팬들에 대한 예우의 측면에서

다른 작품들은 무언가 '더 좋아 보이는 요소'를 던져 주고, 그와 과거 이야기들의 요소와 비교하여 우열을 정하고 새로운 길로 나가는 것이 옳은 것처럼 묘사되며, 그런 과정에서 과거 작품들을 보면서 정서적으로 감동한 점이 마치 성장과 변화라는 명분으로 푸대접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는 의견들이 각종 팬들의 의견이 모이는 곳이나 SNS들에서 무시 못하게 보인다. 그런데 겨울왕국 2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이야기 요소들(과거사의 해결, 노덜드라와의 새로운 구도, 정령의 세계관,...)이 아렌델 국가와 아렌델 백성을 향한 두 왕족 자매의 애정이나, 두 왕족 자매의 서로를 향한 끈끈한 가족애, 그리고 주요 캐릭터들의 유대를 거스르지 않은 채로 평행하게 흡수되는 형태로 이야기는 귀결된다.
물론, 이는 이야기의 만듦새와 별개의 요소이다.[3] 그러나, 제작자들의 '의도'를 위해서 팬들의 추억과 정서를 희생시키는 듯한 판을 만들어버리는 두 작품들에 비해서, 팬들이 정서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지혜롭게 변화를 수렴한 겨울왕국2의 접근법은 현명했다고 볼 수 있는 요소이다. 그래서 혹자에게서 " 디즈니 리바이벌에서 흔들리는 기조가 보였데, 겨울왕국 2를 보고 다시금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는 의견들도 보이곤 한다.

4.6. 훌륭한 한국어 더빙

5. 부정적 평가

5.1. 음악에 대하여

5.2. 아쉬운 내용 전개


결국 설정과 전개에서 구멍으로 보이는 부분은 짧은 러닝타임으로 인한 묘사 생략과 어린이 대상 작품의 간략화 및 표현 수위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이런 것을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기획자와 스토리작가의 역량인 만큼 이것이 납득 가능한 수준인지는 관객마다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고, 이런 점들을 비판점으로 볼지. 작품을 위한 선택과 집중으로 볼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평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5.3. 결말에 대하여

5.3.1. 반론

종합하여 줄거리를 함축해보면 다음과 같다. 정령들은 이두나와 아그나르의 관계를 통해 향후 역사를 바로잡고 댐을 무너뜨릴 사람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 대상이 둘의 딸이며, 다섯번째 정령이자 아렌델의 여왕인 엘사가 이끌고 온 안나였다. 결국 안나는 아렌델을 대표해 자기 나라를 무너뜨리면서까지 과거를 바로잡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서 정령들은 아렌델의 존재가치를 인정함과 동시에, 엘사를 도와 아렌델의 멸망을 막아주었다. 즉, 아렌델 사람이 큰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속죄의 의지를 보인다면 정령들은 언제든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댐이 정령들이 분노한 이유나 부수는 것이 갈등해소의 계기가 된다기 보다는, 루나드 왕의 후손들인 엘사와 안나가 그의 악한 의도가 담긴 결과물인 댐을 파괴함으로 그의 죄업을 청산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정령이 준비한 시련이었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이 영화에서는 공식적인 사과 장면이 나오지 않아 직관적으로 알기는 어려우나, 안나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고 나라가 수몰되는 걸 무릅쓰고서라도 댐을 부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때 안나는 엘사가 죽은 줄만 알았고 부활할 거라는 것도, 그리고 아렌델을 보호할 것도 전혀 몰랐기에 사실상 (안나가 알기론 엘사가 죽었으니) 왕위를 승계 받자마자 처음 한 일이 아렌델이 파괴되더라도 할아버지의 과오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엘사 또한 본인의 자아 실현의 목적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여행을 했고 마침표를 찍었다. 목숨이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아토할란의 깊숙히 들어가 진실을 목격하고 이를 안나에게 전한 끝에 목숨을 잃었다. 무려 전제군주제 나라의 여왕이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지불한 것이다.[21] 모든 일 이후에는 자신보다 안나가 여왕에 어울림을 인정하고, 다섯 번째 정령으로서 숲을 보호하기 위해 왕위에서 내려왔다. 노덜드라의 왕으로 군림한 것이 아니라, 숲의 보호자이자 축복을 베푸는 정령으로서 살기 위해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를 통해 아렌델은 그 어떤 말보다 과거에 대해 책임지는 행동을 한 것이며 이를 정령들이 분명히 알아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장에 이르러 아렌델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정령들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안나와 엘사의 행동에 적절성은 둘째치고 앞에서 언급된대로 노덜드라 인들이 너무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되었다는 비판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6. 다중 관점이 적용되는 평가

6.1. 엘사는 아렌델을 떠나야만 했나

엘사 이야기의 지향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어 문단이 분리되었다.

6.1.1. 부정: 전작의 결말을 부정한다

이 문단에서 전작의 결말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곧 기존의 엘사에 대한 캐릭터성이 왜곡되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겨울왕국 1의 과정에서 엘사는 진정한 사랑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외면당했던 자신의 능력을 백성들에게 보이며 그것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님을 증명하고 존중받았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으로 많은 시련이 있었으나 극복했고 아렌델을 사랑했기 때문에, 심지어 정령의 소리를 처음 접한 그 순간에도 Some Things Never Change를 부르며 현재의 상황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Into the Unknown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정령의 소리와 공명한 것 같은 느낌 하나만 가지고 안나에게 다짜고짜 그 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데다 왕국의 안위를 걱정하고 정령들의 소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안나와 다르게 자신은 '내가 느끼고 있어'라며 아렌델보다 초월적인 능력에 관한 호기심을 상위로 놓고 있다. 자신의 능력과 관련한 사건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던 1의 행적과 연결해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적잖은 혼란을 줄 수 있는 장면이다. 결정적으로, 불명확한 정령들의 합의를 언급하면서 안나에게 너무도 갑작스럽게 국왕의 직책을 양위하더니 '당신은 여기가 어울린다'는 허니마렌의 말에 망설임 없이 수긍하는 모습까지 보여줌으로써 간극의 깊이가 더욱 커졌다. 러닝 타임상의 한계로 생략이 불가피했다고는 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을 엘사의 자아실현과 정체성 확립으로 본다면 다른 부분을 생략해서라도 고향보다 자신의 근원을 찾아 나서려는 엘사의 동기와 심리적 변화를 더 다루었어야 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엘사를 고려하면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상황이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원흉이면서도 부정할 수는 없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언제나 의문의 대상이었던 마법 능력의 근원을 밝히고 불완전하던 자아를 실현해가는 모습이 중요한 변화임은 이견이 없다. 그러나 최후반부 아렌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에서는 아렌델 여왕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다섯 정령 중 한 존재로서 소임을 다하는 제3자적인 모습이 더 두드러져 다소 위화감이 든다. 오랜 시간 암울한 시기를 보냈다고는 하지만 행복하던 시절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아렌델은 그녀가 태어나 여러 추억들을 쌓아올린 소중한 고향이며 1에서의 사건이 해결된 이후에는 모두에게 여왕으로서 신뢰와 사랑을 받는 만큼 그녀 역시 아렌델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굳게 한 상태다. 그런 인물이 어느새 아렌델과는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로 남으며 안나에게 여왕을 물려주는 전개는 사뭇 엘사가 끝내 아렌델과 같은 일반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기이한 존재라는 의미로 보일 여지가 있다.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엘사와 안나를 통해 공동체 간의 오해를 풀고 정령들과의 소통과 조화를 다시 이뤄냈으니 문제가 명쾌히 해결된 상황이지만 캐릭터 개개인의 관점에서는 엘사가 끝내 정령의 역할을 도맡기 위해 아렌델로부터 분리된 별도의 존재로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본인의 능력을 숨기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정령이 됐지만, 본인이 사랑하던 곳과 관계들로부터 항시 떨어져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봤을 때, '이게 엘사의 진정한 성장과 행복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목소리를 듣고 아토할란으로 가서 다섯 번째 정령이 되는 서사를 과연 엘사가 마법의 영향 없이 온전히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자세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는가? 결국 자신이 가진 마법 때문에 그 자리를 맡아야 하며 그것이 진실을 바로잡고 아렌델과 노덜드라 모두에게 올바른 결과를 가져다 주기에 보이지 않는 의무감을 자주적인 선택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가? 작중 내용상으로는 이러한 의문점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요소들이 희박하다.

물론 결말부에서 안나의 편지를 통해 언제든 아렌델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표현이 나타나 있어 그 위화감을 경감시키기는 한다. 밑의 항목들처럼 사는 장소가 다르다고 반드시 관계가 멀어지리라는 법은 없으며 엘사와 안나 서로 각자의 역할을 위해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 뿐, 두 자매가 다시금 정신적으로 갈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시리즈물로서의 연장선, 곧 캐릭터들의 진취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위해서 기존 캐릭터성을 왜곡시키는 듯한 전개는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하며 설령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를 뒷받침할 전개나 설명이 부족함 면에서도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겨울왕국 1의 결말과 겨울왕국 2의 초반부 노래를 생각하면 엘사는 본인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여 아렌델에서 고통을 겪고 있던 상황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들에게서 벗어나 초월적인 상태가 되어 지금이 최적이라고 말하는 결말이 영화를 보는 청자로 하여금 모순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즉, 엘사가 안나와 떨어져서 지낸다는 결말이 기존의 겨울왕국의 주제와 부합하지 않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겨울왕국 1의 주제가인 Fixer Upper에서는 사람은 다양하며 각기 부족한 점을 지니고 있지만 서로 함께 고쳐나갈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비단 1편만이 아니라 겨울왕국 열기의 스토리나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엘사와 안나의 듀엣곡에서도 엘사와 안나가 가족으로서 함께 지내는 모습을 재차 강조한다. 이는 자신은 초월적이고 타고난 존재였으니 이제서라도 나의 근원을 마주하여 나답게 살겠다 선언하는 2의 핵심곡 Show Yourself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즉, 엘사가 스스로 아렌델에서 일반적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선언한 거나 다름없다.

향후에 상호교류 및 활발한 소통이 오고 간다 해도 엘사는 아렌델과는 엄밀히 분리가 된 상황이다. 서로가 자주 왕래하면 된다는 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둘을 다시 분리시키는 '원인'과 '결과'에서의 문제다. 겨울왕국 1에서는 다름에 대한 반대 급부를 넘어서 분리가 아닌 진정한 사랑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준 반면, 2에서는 분리되어 있지만 둘 사이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괜찮다는 식의 애매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엘사가 품은 갈등의 원인을 깊이 풀어내는 대신 뮤지컬 장르를 활용하여 과도하게 생략한 방식을 택했지만, 그에 따른 결과 역시 급격한 전개로써 마무리지어버려 결국 한 집단 내에서 다름을 극복하지 못 하고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 집단으로 가버린 인상을 받게끔 만들었다.[22] 2의 서사에 대입해보면, 1에서 표출된 엘사의 문제는 진정한 사랑으로 다 해결되지는 않은 셈이다. 이에 따르면, 안나는 타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을, 엘사는 타인을 위해 다가설 수 있는 사랑의 개념을 깨닫는 정도에 그쳤으며 마법과 관련한 엘사의 내면 갈등은 3년이 흐른 2의 시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였다는 말이 된다. 진정한 사랑으로 자매간의 소통을 회복하고 상처입던 각자의 내면성 역시 극복했다는 1에서의 결말과 다르게 2에서는 이를 손바닥 뒤집듯 사실 제대로 해결되지는 않았고 엘사는 내면을 극복하여 신화적이고 독립적인 인물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함을 전제로 삼고 있으니 이전의 엘사에 대한 캐릭터성[23]을 잘 숙지하고 있는 팬들로서는 강한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종합하자면, 엘사가 아렌델 사람과 다름을 깨닫고 아렌델도 그녀의 능력을 받아들여 아렌델에서 지낼 수 있는 방식처럼 기존의 핵심 주제를 아우르며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갑작스레 스스로 자신의 능력에 순응적인 환경이 제격이라며 자신의 직위를 양위하고 떠나는 전개로 흘러가야 했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더 필요했다. 1 이후로 아렌델에서는 엘사를 배척하거나 격이 다른 초월적 존재로 대하지도 않았고 엘사 역시 아렌델인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단지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안 것만으로 '아렌델이 아닌 여기가 내 자리야' 시원스레 선언하며 안나에게 일사천리로 왕위를 물려주는 전개는 영화의 러닝타임 속에 드러난 내용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한데다 1에서 드러난 캐릭터성과 간극이 벌어질 정도로 엘사에게 신화적 인물상으로서의 서사와 역할을 과중하게 부여했다. 정령의 책무를 받아들이고 안나와 아렌델을 떠나는 결말은 1에서 강조하던 달라 보여도 우리는 결국 하나라는 감상보다 서로 다른 존재로서 행복하게 살아가자라는 인상을 더 많이 주는데, 이처럼 1의 정체성과도 같은 구조를 손대면서까지 성장을 위한 분가의 결말로 낼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본래 후속작 계획 없이 완결을 냈던 작품이니만큼 감안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상술했듯이, 이 작품은 엄연히 1 이후를 다룬 시리즈물이다. 그렇기에 1과의 연결성, 특히 1에서 나타난 엘사의 캐릭터성과 처지에 주목하고 공감하던 사람들이라면 2에서 나타난 엘사의 면모에 의문을 품거나 실망할 여지가 분명 존재한다.

6.1.2. 중립: 엘사는 여전히 아렌델과 함께한다

위의 주장은 한가지 질문으로 돌파가 가능하다. "가족은 반드시 한 장소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가?"

살다보면 가족끼리라도 많은 헤어짐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어른으로 독립하기 위해, 누군가는 결혼을 해서, 누군가는 이민을 가서.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다고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 멀리 떨어졌든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자리가 있고 엘사는 마침내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았을 뿐이다. 이를 두고 "엘사는 결국 아렌델에 속하지 못한 것인가?"라는 것은 1차원적인 질문이다. 이전에도 엘사는 북쪽산에 얼음성을 만들었으나 이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도피처에 불과했다.[24] 그러나 정령으로 각성한 시점에선 엘사는 정령과 마법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땅에 남아 정령을 다스리는, 정확히 말하자면 정령을 달래고 인간과 중개하는 소임을 다하고 안나는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가 통치의 소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정교분리 사회로의 진보(...)

앞서 주먹왕 랄프 2, 토이 스토리 4와 마찬가지로 이별과 독립이라는 비교적 무거운 주제의식을 따르는 것에 맞추어 겨울왕국 2도 그렇게 한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정령의 숲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벽지로 그려지지 않았으며, 그 동안 안개가 왕래를 막고 있었을 뿐 거기까지 가는 길이 험하게 묘사되진 않았다. 순록을 타고 하루 정도 달려가면 되며, 선대의 잘못 이전에는 평화로운 공존과 교류를 하던 지역이다. 이것을 멀리 떨어진 곳에 남아 세상을 등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더구나 주먹왕 랄프 2의 경우 바넬로피는 랄프가 사는 오락실로부터 꽤 먼 슬로터 레이스라는 인터넷 게임에서 살게 되었고, 랄프와 바넬로피가 만날려면 통신으로 대화해야 하고, 새벽이 지나면 오락실이 문을 열어서 그 전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오래 놀지도 못한다. 애초에 WI-FI는 고전압 방지기가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토이 스토리 4의 경우도 5편이 나오지 않는 한 버즈를 비롯한 장난감 레귤러 멤버들과 우디의 접점은 더 이상 영원히 없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25] 그러나 겨울왕국 2의 경우 엘사-안나는 친구 관계인 앞의 두 작품과 달리 가족 관계이며, 클라이맥스 장면, 그리고 엔딩 장면에서 보듯 엘사는 노크를 타면 순식간에 주파가 가능하다(...).[26] 안개가 걷힌 이후, 아렌델과 노덜드라는 동맹국으로서, 앞으로도 교류가 활발할 것이고 외교 상대 1순위가 노덜드라일 것이기 때문에 엘사의 방문이 잦을 것이 뻔하다. 결말 부분에 간접적으로 묘사되긴 했으나, 안개가 걷힌 후 아렌델 본국과 활발히 교류가 이루어지는 묘사가 있었다면 더욱 명쾌했을 것이다.[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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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긍정: 전편에 이은 성장의 연장선이다

엘사가 겨울왕국 1 때보다 더욱 성장한 모습이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며 상영 후 여러 평가 및 분석, 제작진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 해석이 보편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말하자면 1편의 엘사는 자기 능력을 두려워하고 통제되기만을 바랬을 뿐 자신에게 왜 능력이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해 가지고 태어났는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통제력이 생기고 주변으로부터 사랑받으며 생긴 여유로 점차 능력을 통제하거나 잘 사용하는 것을 넘어, 마음껏 능력을 펼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는 엘사가 마법의 땅에 도착해 1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능력을 펼쳐 시련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대변된다.[29]

사람의 성장에 대입해 생각해보면 의외로 간단한 논리인 것이, 시기적으로 개인차가 있으나 청소년기는 자신의 적성을 찾아 헤메고 괴로워하다 자아 실현의 방향성을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성인이 되어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쫒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나 그것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면 더더욱 그렇다. 이후 그런 일을 찾아 해메다 결국 자신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필요로 해주는 곳을 찾게되면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30]

겨울왕국 2의 엘사는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자신의 업을 찾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매우 자연스럽다. 작품 초반에 정령의 소리와 공명한 것 같은 느낌 하나로 다짜고짜 그 소리를 찾을 마음이 들었다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이, 이는 엘사가 마음을 바꾸는 계기가 아니라 이미 품고 있던 마음을 끌어낸 것이다[31]. 안나처럼 엘사 또한 지금의 행복한 생활이 변치 않음을 바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법의 힘이 있는 이유를 쫒고 그를 마음껏 발휘하고 싶어하는 강한 갈망이 있었으며, 그 답이 정령의 목소리를 따라간 끝에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32] 이러한 마음은 본인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주변도 그러한 재능을 있는 그래도 받아들여주고 또 응원해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33] 이러한 갈망을 바탕으로 엘사는 방황 끝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주는 집(아렌델)으로 돌아온 뒤, 본인의 재능을 발휘할 업(마법의 땅)을 찾아 떠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평가에 대한 범주가 엘사의 지향성이 중심이다 보니 엘사에 관한 서술이 집중되었지만 겨울왕국은 엘사와 안나를 결코 분리시켜서 해석할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 컨텐츠이기 때문에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두 인물의 변화를 모두 다뤄야 한다 . 겨울왕국 1과 2의 감독 크리스 벅은 겨울왕국 2 아트북에서 1과 2가 만나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라는 언급을 한 바 있다. 즉, 2의 이야기가 전작의 결말을 부정하거나 수정하기는커녕 1의 연장선이자 서로 간의 이야기를 보완하는 구조라는 말이다. 애초에 위의 전작의 결말을 부정하는 문단에서는 주장과 근거를 오로지 1의 관점, 그것도 1에서 발현된 엘사의 특징과 아렌델이라는 공간을 고정불변의 절대적인 고정값으로 두는 편협한 시각을 유도하고 있다. 당장 Show Yourself를 엘사가 일반사회에 속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여기는 점부터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엘사가 정령이 되어 아렌델을 떠난다→행복 그 자체인 아렌델을 떠나는 것은 부정적인 행위이다→엘사와 같은 타고난 자들은 아렌델로 표상되는 행복한 일상의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식의 도식부터가 그릇된데다 핵심에서 벗어나기까지 한 해석이다. 일반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늘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내려 놓아야 했던 일반사회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간 것이다. 오히려 Show Yourself는 인생 전부를 마법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엘사가 정령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임으로써 완전히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순간이며, 동시에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죄책감과 아픔에 더는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 인물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선언과도 같다. 다시 말해, 불완전한 각성에서 멈춰버린 Let It Go를 진정한 의미에서 완성시키는 곡이다. 그에 따라 2의 주제 역시 '다른 존재니 알아서 잘 살아가자' 라는 애매모호한 결말이 아니라 다름을 온전히 인정하고 이별을 받아들임으로써 두 자매가 정상적으로 형성하지 못한 성숙한 관계를 이뤄간다는 아주 확실하고 뚜렷한 메세지를 표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겨울왕국 1이 서사로서는 완전한 해피엔딩 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끝맺음으로는 충분한 감동과 여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자매간의 문제 및 각자의 내면에 관한 문제가 무조건 다 해결됐다고 보는 시각도 1을 최우선으로 두는 편협한 시각이다. 엘사와 안나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가 1에서 완결로 끝나도 작품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두 캐릭터의 모든 문제가 1 내에서 완벽하게 매듭지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 후로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이미지가 절대적인 여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겨울왕국 1의 에필로그는 아름답게 끝나면서도 그 뒷 이야기를 몹시 궁금하게 한다. '과연 이 두 자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매듭지어졌으나 그 동안의 아픔이 과연 온전히 치유된 것인가? 도중에 계속 오해하고 싸울 수도 있지 않을까? 마법을 가진 한 엘사에게 닥칠 일은 어쩌면 더 험하지 않을까?' 등과 같이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두 자매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1은 서로 다름을 이해한 것이지 그렇다고 서로에 대한 다름을 제대로 마주하고 인정하는 과정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1은 소통의 단절로 인한 아픔과 치유의 과정을 전통적인 디즈니상으로 그려내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34] 따라서 후속작을 내기 위해서는 이 둘의 관계를 다시금 건드릴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완전한 성숙을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2의 서사이다. 엘사는 두려움은 극복했으나 Let It Go 에서 보인 반쪽짜리 정체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내심 고민하는 중이었고 안나는 기적적으로 회복한 자매관계가 설상 다시 금이 가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결코 엘사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다소 강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태에서 정령 소동이 터지고 갈등은 증폭된다. 엘사는 여전히 안나를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 일체 위험에 엮이지 않게 하겠다는 명목으로 밀어내는 모습을 보이고 안나는 안나대로 엘사를 과보호하며 지속적으로 아렌델에 돌아가야 한다 서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보인다. 1보다 덜할 뿐이지 갈등 양상은 거의 동일한 수준이며 곧 엘사와 안나는 아직도 서로를 전적으로는 믿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1은 소통의 단절로 정상적인 사랑의 과정을 겪지 못한 두 자매가 소통의 극복과 이해의 과정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는 내용이며 2는 관계를 회복한 두 자매가 비로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삶을 위해, 그러나 1에서처럼 서로 물리적인 단절로 인한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꿋꿋하게 각자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성장한 어른으로서의 새 발걸음을 상징한다. 13년 간의 단절로 아픔을 겪은 끝에 다시 하나가 된 자매이니만큼 둘이서 계속 함께 한 자리에서 행복하게 지낼 것을 꿈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가 바라는 인생의 길은 동일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 이별하지만 과거와 같이 서로에게 매달리지는 않으며 이별한다고 해서 둘의 관계는 약해지지 않음을 강력하게 확신하는 이른바 정신적인 성숙이다.

특히나 2는 주인공인 안나와 주제의식 간의 관계를 한층 더 부각시키기에 더욱 서사로서의 완결성을 자아낸다. 2에서의 안나는 아렌델이 뒤틀린 이후부터 엘사를 향해 자신의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매우 불안한 태도를 보이는데 그녀에게는 산전수전 다 겪은 1에서의 고생 끝에 기껏 얻어낸 행복을 다시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엘사가 3년 내내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계속 담아두고 있던 것처럼 안나 역시 1에서 겪은 단절의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상태이다. 그 탓에 자꾸만 목소리를 쫓아 가려는 엘사를 보며 자신과 다르게 특별한 존재라는 위화감을 느끼고 평범한 자신을 기어코 떠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보인다. 그러다 일련의 여정을 통해 그 자체로 타고난 엘사에게 아렌델에서의 삶보다는 정령으로서의 삶이 더 행복하리라는 비정한 사실을 끝내 인정하며 진실로 언니를 사랑하기에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게끔 놓아주는, 1에서 보인 관계에 대한 강박적인 모습 및 관계의 단절로 인한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내는 성장형 주인공으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35] 즉, 엘사와 안나의 이별은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단계를 넘어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면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언제 어디에서라도 서로를 향한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으로 발전해나가는 성장통이자 위의 크리스 벅의 언급대로 1과 2과 엮어져 단절-회복-성장의 삼박자가 조화하는 최종 관문과도 같다.

서사가 진행되는 전체적인 구조도 2는 1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안나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한 명의 인간이지만 1에서나 2에서나 엘사를 위해서면 어떤 위험에 처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든 해 나가려 하며 엘사는 그런 안나를 보며 항상 위험으로부터 다가서지 못하게 하려는 보호의 대상으로서 다루려 한다. 그러다가 엘사는 강압적인 힘을 써서라도 안나를 밀어내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신화적인 인물인 엘사는 정작 결정적인 위기에 처하고 동화적인 인물인 안나에 의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보호의 대상이지만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안나에 의해서 정작 엘사가 구해지고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서사는 1, 2 모두 들어맞는다. 이는 곧 2의 주제는 1에도 대입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겨울왕국 갤러리에서 이 테마를 놓고 상당히 자세하게 분석한 글이 있다. #

종합하자면 겨울왕국 2의 내용은 올라프가 성장에 뒤따르는 고뇌를 어떻게 극복하냐고 자문을 구하고 다니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엘사는 자신의 재능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이를 펼칠 장소를 원했고[36], 안나는 그런 엘사의 모습을 꿰뚫어보고 떠나보내는 것이 싫어 과보호 심리가 작용하여 다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물들 개개인의 성장을 통해 이러한 내면의 갈등을 해결하는 내용이 이번 2편의 내용인 것. 안나의 성장 스토리가 뭔지 상기해보면 간단한 게, 안나는 작품 내내 언니가 어디론가 떠날까 두려워 붙잡기만 했으며 결국에는 기꺼이 보내줄 수 있을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엘사도 안나도 청소년기를 지나고 가족의 품을 떠나 한명은 정령의 여왕으로, 한명은 아렌델의 여왕으로 독립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겨울왕국 1은 개인의 다름을 본인도 주변도 사랑으로 받아들여 한때 단절되어버린 가족의 행복을 되찾아 함께하는 회복의 과정이며, 겨울왕국 2는 함께하는 것을 넘어 성장에 따른 필연적인 독립을 또 한번 사랑으로 받아들여 사랑의 지평을 넓혀가는 성장의 과정으로 서로 방향성이 다른 것이다. 그러니 2편은 1편에서 다하지 못한 성장의 연장선이자 엘사와 안나 '자매' 이야기를 완벽하게 마무리했다고 보기에 충분하며 전작의 내용을 부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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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편이 워낙 잘 만들어져서 2편은 아그나르와 이두나가 어디로 향했는가. 엘사의 힘의 기원은 무엇인가 딱 2가지 정도밖에 쓸 이야기가 없었다. 여기서 추가를 한다해도 크리스토프의 사랑의 행방 정도? 그리나 제작진은 이런 작은 요소들을 토대로 세계관을 훌륭하게 넓혀놓았고, 그 능력이 건재하다면, 다음 편이 나온다고 해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2] 물론 잘 흔들었는 지, 잘 흔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팬들에게는 정서적으로 납득이 되는 지는 의견이 갈린다. [3] 각종 공신력 있는 평가에서 토이 스토리 4는 겨울왕국 2를 제법 높은 차이로 앞지르고 주먹왕 랄프 2도 겨울왕국과 별 차이는 없다. [4] 자세히는 목소리가 소연보다 영어판인 이디나 멘젤에 가까웠다는 평. 유튜브에서 각국에 Let It Go를 비교하는 영상에서 한국판과 영어판 목소리가 유사하게 들렸다는 반응이 많았다. [5] 특히 짧긴 했지만 조영경의 Show Yourself에서 '어서 오렴 아가야' 부분이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울컥했다는 관객들도 많았다. 초반부 All Is Found에서도 자장가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후반부에 다시 똑같은 소절을 들으니 감격 그 자체였다는 평. [6] 후술하는 내용에 자세히 서술했듯이, 외부 세계와 격리된 아렌델의 군인들이 그 상태를 30여 년동안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된 것에 대해서 한 예를 들 수 있다. [7] 아렌델이든 영화를 만든 미국이든 [8] 내용의 흐름상 Into the Unknown이 나오는 위치는 겨울왕국 1편으로 대입하자면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이나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의 파트에 해당한다. [9] 작중 역할을 보면 Into the Unknown보다는 Show Yourself가 Let it Go에 가깝지만, 후반에 나오는 곡이라 이 곡을 메인으로 삼았다간 영화 보기도 전에 스포일러를 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Into the Unknown을 사용한것으로 보인다. [10] 개그성 연출이었는데 곳곳에 제작진이 약을 빤(...) 느낌이 다분할 정도다. [11] 안나는 언니를 혼자보내기에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저 멀리 숲속으로 가버린 크리스토프를 찾지도 못하고 엘사를 서둘러 따라가느라 크리스토프가 낙오했다. 이후 후반부에 댐이 붕괴된 후 안나가 크리스토프에게 두고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크리스토프가 괜찮다면서 안나를 다독여주는 장면이 묘사된다. [12] 엘사&안나 자매 말고는 그 시점에서 현재 아렌델 왕국엔 왕족이 없다. 크리스토프와도 연인 관계일 뿐, 아직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크리스토프가 부군으로써 국왕대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 둘 다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엔, 아렌델의 권좌는 공석이 되어 버려 국민들이 새로 왕을 뽑거나, 최우방 국가에서 아렌델을 합병하게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13] 스웨덴인의 탄압으로 인해 일곱 겹의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지하실에 가둬놔도 북극의 별빛을 보고 노래하는 마법쓰는 라플란드 소녀 얘기 같은...(핀란드 낭만주의 아동 작가 '사크리스 토펠리우스'의 '별의 눈동자' 이야기이다.) 다만 핀란드의 경우 본인들의 정체성을 '수오미'에 놓고 있고 국토 자체도 라플란드에 상당히 걸쳐 있기 때문에 노르웨이나 스웨덴에 비해서는 조금 덜한 편이다. [14] 특히 당국인 노르웨이의 경우 1970-80년대까지도 사미족 거주지역에 alta 댐을 건설하여 환경 단체와 사미인들의 강력한 반대운동을 낳아서 엄청난 이슈가 되었던 사건도 있었다. 작중의 댐에 관한 갈등 역시 이 사건을 참고한 듯 하다. [15] 아렌델 왕국과 마법의 숲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사실, 아렌델 왕국이 침략의 의도를 숨긴 채, 접근한 것이었다. 즉, 마법의 숲 주민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몇십년간 그 숲에 갇혀버린 꼴이 된 셈이다. 즉 그 숲의 주민들은 명백한 피해자이고, 아렌델은 가해자인 셈이다. [16] 그리고 영화를 끝까지 보더라도 아렌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노덜드라족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공식적으로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17] 비단 이 영화의 이야기가 단순히 원주민과 백인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지만, 특정 국가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역사로 대입이 될 수 있다. 이 국가들 사이의 문제는 미국이 겪었던 문제와는 다르게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과거에 대한 책임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없는 해피엔딩이 되려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 [18] 물론 작중에서 밝혀지듯이 이 댐은 선선대 왕인 루나드가 마법의 숲 지역의 정령이나 마법의 힘을 약하게 하여 그들을 모시고 사는 노덜드라인들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사악한 의도로 건설한 것이었으며, 노덜드라인의 부족장 역시 루나드에게 이를 항의하다가 루나드가 이를 말을 돌리며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 무방비 상태로 꾀어낸 다음 뒤에서 살해하는 장면이 묘사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댐 자체가 노덜드라에 대한 아렌델의 분쟁과 탄압의 상징이기는 하다. [19]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정령에게 아렌델 국민을 헤칠 의도가 안 보이며, 특히 게일과 땅의 정령은 모든 사람들을 같은 방향으로 유도한다. [20] 자세한 것은 겨울왕국 2 오역 문단 참조 [21] 처음에는 벽을 부수라는 안나의 말에 고민하던 병사들도 안나가 '언니가 진실을 위해 목숨을 바쳤어요.'라고 하니 곧 따르기로 결심한다. 그만큼 엘사의 목숨은 국가 자체의 의지를 대변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아렌델 국민에게 무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2] 비슷한 예로 주먹왕 랄프 2, 토이 스토리 4처럼 최근 디즈니 계열 애니들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마냥 이전 시리즈들에서 지속적으로 말하던 메세지와는 사뭇 다른 이별과 독립을 강조하는 듯한, 디즈니로서는 극히 드문 새드 엔딩으로 해석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해석의 여지를 충분히 준 결말을 보여주는 추세다. 이 때문에 기존 시리즈의 주제의식에 크게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으며 겨울왕국 2도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결말을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23] 1에서의 엘사는 세상을 주무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가졌지만 안나를 실수로 죽일 뻔한 이후로는 자신의 능력으로 타인이 해를 받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여 아버지의 뜻과 함께 스스로 방 안에 갇히길 자처했다. 13년 동안 유폐된 삶을 살아오면서 되려 능력을 저주하고 한탄했으며 렛잇고를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작중 내내 마법을 쓰면 고통스러움을 내비친다. 즉, 그녀는 신과 같은 초월적이고 예외적인 인간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생, 아렌델 사람들과 매일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을 간절히 바래던 인물이며 안나의 희생을 통해 그 결실을 비로소 맺었다. [24] 작중에서도 엘사는 이 시절의 기억을 보자마자 흑역사가 들춰진 사람마냥 민망해 한다(...) [25] 심지어 픽사는 토이 스토리 4를 끝으로 더 이상 픽사의 속편은 없다고 확실하게 못 박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26] 엘사는 그냥 재노덜드라 아렌델 외교관 정도로 해석해도 된다. [27] 그냥 간단히 결말이나 쿠키 영상에서 축제나 무도회 장면에서 노덜드라인들이 아렌델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했으면 됐을 문제. 추후 후속작이나 특별편이 나온다면 엘사와 노덜드라인들이 안나를 비롯한 아렌델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그려질 가능성이 있다. [28] 엘사, 안나 성우는 모두 후속작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현실적으로 2편 또한 역대급 흥행작이었던 1편의 흥행기록을 갱신하면서 겨울왕국 프랜차이즈의 상업성은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고, 3편의 제작이 상당히 유력해 보인다. 아무리 요새 디즈니가 감을 되찾았다지만 겨울왕국 동급의, 1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새로운 흥행 프랜차이즈를 런칭하는 것은 그들로서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디즈니 리바이벌 말 나오기 시작한 건 라푼젤이라도 본격적으로 회자된 것은 겨울왕국이고, 리바이벌 안에서도 디즈니 애니 영화 중 겨울왕국 두 편 모두 뛰어넘는 영화가 아예 없다. 겨울왕국 1편의 한 방이 아닌, 시리즈 자체의 흥행력이 입증된 지금, 자본의 상징인 디즈니가 3편을 안 만들 리가.. 물론 그와 별개로 감독이 우선 엘사의 스토리가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발언을 하긴 했다. 즉 3편이 나온다면 안나와 아렌델의 이야기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엘사의 이야기가 배제되진 않을 것이다. [29] 매슬로의 욕구계층이론으로 따지면, 인간에게는 하나의 욕구가 충족이 되면 더 윗 단계의 욕구가 생긴다고 한다. 엘사가 자신의 마법을 두려워하고 통제되기를 바라는 시점은 존중 욕구 정도의 하위 단계인 결핍 욕구였다면, 엘사가 자신의 능력을 궁금해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은 자아실현 욕구 정도의 상위 단계인 성장 욕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엘사가 Into the Unknown을 노래하는 단계에서 그러한 욕망이 극대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30] 물론 현실에서는 금전적인 사정이란 변수가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31] Into the Unknown의 가사 내용은 능력으로 인해 아렌델이 아닌 다른 곳에 가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은 마음을 지금껏 억누르고 있었는데 구태여 자극하지 말라고 떼쓰는 것에 가깝다. [32] 자신의 갈망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가를 어떻게 아는지 찬찬히 생각해보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광경을 실제로 보고 싶다면 본능적으로 종이와 펜이 필요함을 알고 그림부터 그릴 것이며, 머릿속에 울리는 음을 듣고 싶다면 자연히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찾고 악보를 완성할 것이며, 공을 차고 싶다면 공을 사고 공터로 나갈 것이다. 엘사가 정령을 따라가고자 마음먹는 것은 이와 다를 것이 없다. [33] 억압적인 환경,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의 멸시 가득한 시선이 얼마나 사람을 위축되게 하고 획일화되도록 하는지는 우리나라나 일본 등의 가까운 나라들의 교육 환경을 통해 뼈저리게 알고 있지 않은가. [34] 겨울왕국 1은 여러 차례 기획이 엎어진 프로젝트이며 Outtake 곡들을 기반으로 할 때까지만 해도 현재의 1과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다. 엘사는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자신을 예언으로써 간주하는 아렌델을 줄곧 원망하다가 페이크 빌런으로 잠시 등극하기도 한다. 안나는 포용력과 이해심, 용기가 덜했고 보다 말괄량이적 기질이 강한 편이며 늘 잘난 언니에 비하면 장점이 없어서 늘 비교당하는 둘째로서의 열등감과 질투심을 품고 있다. 본래는 이런 두 자매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쌓아가다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나중에 가서 서로를 이해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흐름이 될 터였다. 그러나 이디나 멘젤이 당시로서는 빌런으로서의 각성을 이끌어내는 Let It Go를 부른 후, 제작진은 이 캐릭터를 빌런으로 활용하는 구성은 적절하지 않다며 캐릭터성에 큰 변경을 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엘사는 타고난 마법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속박하고 안나를 내치는 인생을 살아온 끝에 도피해버리고, 안나는 지속적으로 무시와 거절을 당해왔음에도 굳은 믿음과 용기를 바탕으로 엘사의 뒤를 계속 쫓아 화해하고 싶어하는, 이른바 도망가는 자와 쫓아가는 자의 술래잡기로서 나타나는 '자매의 아픔'을 정통적인 디즈니풍에 맞게 그려 내는 스토리 및 캐릭터성으로 대폭 수정이 가해졌다. [35] 1에서는 엘사의 두려움이 해결되었다면 2에서는 안나의 두려움이 해결된 셈이다. [36] 결국 그 장소를 찾았다고 확신했을 때( Show Yourself) 유난히 해방감을 드러낸 것은 그녀가 살아온 십수 년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능력을 가져야만 했던 이유와 해답, 보상을 드디어 찾아낸 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