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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01:11:43

갱정유도

동아시아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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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의 도기(道旗)이자 상징[1]인 수화기제(水火旣濟)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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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영신당주(迎新堂主) 강대성(姜大成) 5대 도정(道正) 한양원 (한중환, 1923-2016)[2]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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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8년 일제강점기에 태동한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종교. 도조(道祖)는 영신당주(迎新堂主) 강대성(姜大成: 1890~1954). 영신당주 강대성은 1928년에 전라북도 순창군 회문산 금강암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교단의 공식명칭은 '시운기화 유불선 동서학 합일 대도대명 다경대길 유도갱정 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28자로 매우 길다. 줄여서 갱정유도(更定儒道)라 부르지만, 더 줄여서 일심교(一心敎)라고도 부른다.

2. 상세

보통 갱정유도를 유교계열로 분류하지만, 실제로는 유교와 거의 상관이 없다는 것이 관련 학자들의 중론이다. 교단 명칭에 유도(儒道)가 들어가는 등 유교를 어느 정도 의식하긴 하지만, 실제 교리나 종교의례에서는 유교와 연관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윤리도덕적인 면에서 유교적이긴 하지만, 종교적인 면에서는 불교 도교의 영향을 적극 받아들였다. 유불선 합일이라는 모토는 동학 이래로 한국의 여러 신흥종교들이 표방하긴 했지만, 갱정유도는 유교라는 이름으로 불교나 도교 등 다른 종교의 요소를 전부 포함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유교니 유도니 하는 단어를 중심적인 개념으로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교계 신흥종교들과 많이 달라졌다. 그리하여 갱정유도는 '유교계'가 아니라 자체적인 '갱정유도계'로 분류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4대 도정 한양원 선생이 30년 가까이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을 맡으면서 한국의 군소 민족종교들의 대부 역할을 해왔다.

대중의 인지도는 제로에 가까운 편이다. 관련 논문도 타 종교에 비해 적은 편. 그나마 소설 퇴마록 말세편의 등장인물인 준호의 설정 중에 잠깐 언급되어 갱정유도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은 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경상남도 청학동마을[3]에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이외에도 몇몇 외진 지역에 소규모 신앙촌을 이루어 산다. 전통적인 한복과 초가집을 고수하며, 과거엔 교육도 제도권 학교에 보내지 않고 마을의 서당에서 자체적으로 교육했다.[4] 영가무도라는 독특한 수행으로 유명하다.[5] 마을의 주수입은 농업과 양봉, 가축 사육/판매로 충당했다. 1990년대부터는 청학동마을에서 체험학습 형태로 며칠간 생활하는 수련캠프를 시작하였는데 미디어에 많이 소개되면서 청학동 서당 체험학습 열풍이 불어 한 때 학원이나 학교단위의 수련관광이 쇄도하는 등 호재를 맞기도 했다.

신앙대상은 선당궁(仙堂宮), 경전은 부응경(符應經)이다. 부응경은 교주가 직접 쓴 글과 제자들과의 문답 중 많은 분량이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사라지자 남은 365권을 한데 모은 것이다.

1954년 당시 이승만 정부로부터 중흥국을 건설한다는 정치적 주장을 펼치면서 UN에 메시지를 보냈다는 혐의를 받아 창시자 강대성(영신당주)이[6] 국가보안법의 죄목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순수한 종교적 신념과 평화적 민족주의에 따른 통일국가 수립 주장이었기에 별다른 혐의 없이 풀려났으나, 이때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같은 해 8월 교주가 별세하였고 이후 교세가 쇠퇴하였다. 1965년에는 2대 도정 계도성사(繼道聖師) 김갑조(金甲祚)의 지도하에 신도 5백여 명이 서울에 상경해 남북통일을 주장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며 시위한 서울시위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갱정유도의 5대 도정(대표)이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이었던 한양원이 2016년 11월 11일 사망하였다.

[1]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홈페이지에도 이 도기가 상징 로고로 나타나있다. 1949년 이전의 태극기 도안을 바탕으로 하며, 음양이 바뀌어 있다. [2] 2016년 사망 직전까지 '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회장이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비롯해서 국가 행사나 대통령 종교지도자 회담, 우리나라 주요 종교단체들의 행사시 한복차림으로 귀빈석에 자리하던 그 할아버지 맞다. [3] 일명 도인촌. 청학동마을은 갱정유도 외에도 삼성궁, 증산교단 등이 공존한다. [4] 제도권 교육시스템과 의무교육 법제가 확충된 후로는 의무교육을 따르고 별도로 자체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변했다. [5] 음어아이우 오음을 내면서, 이에 맞추어 부드럽게 춤을 추는 수행법. 갱정유도 외에도 정역파(주역학에 기초한 신종교), 남학(이쪽은 미륵신앙 계열)에서도 하는 수행법이다. [6] 이승만 초대 대통령 시절로, 1953년 북한과의 휴전 직후 잔존 빨치산 문제 등으로 정권이 굉장히 민감하던 시기여서 바로 견제받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