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미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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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7a2><colcolor=#ffffff> 강혜미 姜惠美 | Kang Hye-M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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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4년 4월 27일 ([age(1974-04-27)]세) |
부산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토성초등학교 수정여자중학교[1] 경남여자고등학교 |
포지션 | 세터 |
신체 | 173cm, 62kg |
점프 높이 | 스파이크 300cm, 블로킹 285cm |
국가대표 |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1994~2004) |
소속 구단 |
선경-SK케미칼 배구단 (1992~1998) 현대건설 배구단 (1998~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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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배구 선수.2. 생애
대한민국 여자배구 최강의 세터라인 이운임- 이도희- 강혜미 3명 중 한 명이다.이도희와 함께 한국 여자배구 최고의 세터로 평가받고 있는 강혜미는, 이도희에 비해 빠른 세트와 조직력을 중심으로 '스피드 배구'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여자배구는 강혜미의 빠른 토스를 중심으로 최강의 실력을 보여줬고, 특히 강혜미의 존재감이 가장 컸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팀은, 비록 좋은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역대최강의 국가대표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2][3]
강혜미를 얘기할 때 센터 장소연과 떼어놓을 수 없는데, 1974년 동갑내기인 강혜미와 장소연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13년 동안, 한번도 갈라지지 않고 같은 팀으로 함께 뛰면서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주며 상대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장소연의 특기는 먼 거리를 옮겨가며 빠르게 공격하는 이동 속공인데, 이것은 강혜미의 빠른 세트와, 두 사람의 호흡이 누구보다도 잘 맞았기에 가능한 기술이다.
강혜미는 부산 경남여자고등학교 시절 장소연과 함께 1992년 고교 배구 대회 3관왕을 거두며 이도희의 뒤를 이를 대한민국 여자 배구의 세터로 주목 받았고, 고등학교 졸업 전에 열렸던 대통령배 배구대회 드래프트에서 1지명으로 경남여고 배구부 졸업생들이 선경 여자 배구단에 지명되며 성인 무대에서 뛰기 시작했다.
강혜미는 장소연과 함께, 호남정유와 한일합섬의 김남순이 같이 다 해먹었던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했다. 이 때는 주전세터인 이도희의 백업 멤버로 참가해, 경기 후반에 장소연과 함께 출전하기도 했다. 호남정유 팀 선수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다시피 한 국가대표팀의 노쇠화로 인해 세대교체가 준비되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강혜미-장소연의 콤비 플레이는 이도희-홍지연에 비해 더 빠르고 강력했다. 소속팀에서 강혜미는 중요한 상황일 때 장소연을 믿고 토스를 많이 전해줬으며 이 콤비가 보여준 속공과 이동공격은 한 팀의 중요 공격옵션을 넘어 스피드 배구의 표본이 됐다.
한편, 1998년 4월, 소속팀인 SK그룹이 IMF를 핑계로 모기업의 긴축경영을 이유로 팀을 해체해 강혜미는 1998-1999 시즌을 쉬게 된다. 물론 국가대표 주전 세터였던 만큼 다른 팀에서 노리게 됐고, 해체 구단 드래프트에서 현대건설 배구단에 지명된다. 현대건설은, SK케미칼의 강혜미, 장소연과 더불어 한일합섭의 구민정까지 데려오고, 심지어 SK케미칼의 류화석 감독까지 영입해 초강팀으로 거듭난다. 이 때 입단한 이들이 은퇴하는 2004년까지 현대건설은, 1990년대의 호남정유(현 GS 칼텍스)에 이어, 여자배구 최강의 팀이 된다.
1999-2000 시즌부터 2004 V-투어까지 5연패를 달성하고 은퇴를 했다. 참고로 이 기간 동안, 고교 최고의 세터로 평가받으며 현대건설에 입단한 세터 이숙자는 최고 세터 강혜미가 은퇴할 때까지 대부분 벤치를 지켜야 했다.
2004년 현대건설 배구단의 해체설이 나오던 시기, 강혜미, 장소연, 구민정 등은 은퇴하게 된다. 강혜미는 목디스크로 더 이상 선수생활이 힘들어서 이미 국가대표에서도 수차례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었지만, 국대는 강혜미를 대신할 세터가 없다는 이유로 계속 붙잡았다. 2002년을 기점으로 김사니와 이숙자가 국가대표 주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강혜미의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더 이상 국가대표 경기에서 강혜미가 이끌었던 스피드 배구는 볼 수 없게 되었다.
강혜미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 백업세터로 뛰며 유종의 미를 거뒀고, 현재는 안산고등학교 체육교사로 재직 중이다.[4] ' 또한 두 아들을 경기도 안산시에서 키우고 있다고 한다.
3. 기록
3.1. 개인 수상
- 1997 슈퍼리그 베스트6
- 1998 슈퍼리그 베스트6
- 2000 슈퍼리그 베스트6
- 2001 슈퍼리그 베스트6
- 2002 슈퍼리그 MVP
3.2. 대회 기록
- 메이저 대회
- 올림픽 (3회): 1996 애틀랜타 (6위), 2000 시드니 (5위), 2004 아테네 (4위)
- 세계선수권 (3회): 1994 (4위), 1998 (9위), 2002 (6위)
- 월드컵 (2회): 1999 (4위), 2003 (9위)
- FIVB 대회
-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1회): 1997 (6위)
- 월드그랑프리 (8회): 1993 (5위), 1996 (7위), 1997 (3위), 1998 (6위), 1999 (6위), 2000 (5위), 2001 (7위), 2004 (11위)
- AVC 대회
- 아시안 게임 (3회): 1994 히로시마 (1위), 1998 방콕 (2위), 2002 부산 (2위)
- 아시아선수권 (3회): 1997 (2위), 1999 (2위), 2001 (2위)
- 기타 대회
- 몽트뢰볼리마스터스 (1회): 1996 (6위)
- 올림픽 세계예선전 (2회): 2000 (2위), 2004 (2위)
- 올림픽 아시아예선전 (1회): 1996 (1위)
[1]
現
경남여자중학교
[2]
당시, 국가대표 팀은 세터 강혜미를 중심으로,
장소연,
구민정,
정선혜,
박수정,
최광희,
구기란 등, 여자배구 역사상 최강의 팀이 구성된 상황이었다.
장윤희는 당시 임신중인 상황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3]
대회 전에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메달권을 예상했으나, 미국한테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4]
안산고등학교 방과후학교 시간표를 보면, 국대와 함께하는 배구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분류
- 1974년 출생
- 수원시 출신 인물
- 부산토성초등학교 출신
- 경남여자중학교 출신
- 경남여자고등학교 출신
- 대한민국의 여자 배구 선수
- 대한민국의 체육교사
- 세터
- 1992년 데뷔
- 2004년 은퇴
- SK케미칼 배구단/은퇴, 이적
-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은퇴, 이적
- 대한민국의 올림픽 배구 참가 선수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배구 참가 선수
- 2000 시드니 올림픽 배구 참가 선수
- 2004 아테네 올림픽 배구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