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康津 四宜齋.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에 있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에 머물렀던 주막이다.
2. 상세
조선 순조 즉위 후 강진으로 유배를 갔던 다산이 머무르게 된 주막으로, 원래는 강진의 이름없는 주막집이었다. 그러던 중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갔을 때, 강진 도암면에 있는 다산초당(당시 강진 유배지)에 머물게 될 때까지 이 주막에 거처하게 되었다. 정약용은 주막 주인인 한 노파의 정성과 호의를 받으며 이 곳에서 4년동안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쳤다.이전까지는 강진 고을에서 술을 마시는 이들이 들리는 말 그대로 보통 주막이었지만, 다산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주고 이 곳에서 학문을 닦고 제자들를 가르치는데 도움을 주었던 주인 노파의 성의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주막의 이름을 직접 지어줬다. 주막임에도 이름에 '재(齋)'를 붙였고, 사의(四宜)란 용모, 말씨, 성품, 행동을 가리킨다.
재(齋)는 보통 기와집에나 붙는 호칭이지만, 이 곳은 주막이라 초가였는데[1] 초가에 재(齋)를 붙인 것은 알려진 바로는 사의재가 최초이다.
2007년 강진군은 다산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초가를 복원했고, 현재는 관광지 및 정약용 유적지로 활용되고 있다.
[1]
조선왕조 당시 신분제도상, 건물 이름에 재(齋)를 붙일 수 있는 곳은 왕족의 집이나 양반댁 등 기와집으로 한정됐다. 초가의 경우 주로 백성이나 천민들이 사는 집이기 때문에 재(齋)를 붙였던 사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