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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1 11:31:56

NAMC YS-11

파일:항공자위대 라운델.svg 현대 일본 자위대 항공병기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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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 C-2 | C-130(H/R) 허큘리스 | C-1A | C-46D 코만도
수상기 US-2 | US-1A | HU-16 "하리가네" | G-21 구스
다목적기 U-125A | U-4 | U-36A | LR-2 | LC-90 | LR-1 | LM-1 | 가와사키 KA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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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Q-27 스캔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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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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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 T-4 | T-400 | T-2 | T-1(A/B) "하츠타카" | 뱀파이어 T.55X | T-33A "와카타카"
헬기 TH-135 | TH-480B | OH-6DA | TH-55J 오세이지
VIP 탑승기 B777-300ER | U-4 | EC225 LP | B747-4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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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11
파일:namc_ys_11_02.jpg
ANK(에어 닛폰)[1], YS-11
용도 수송기, 여객기
제작사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항공기 제조 주식회사
공급사
개발 1956년 ~ 1962년 08월
생산 1962년 10월 ~ 1973년 05월
운용 1965년 03월 ~ 운용 중[2]
가격 약 3억 5,000만엔 (1960년 당시)
약 200만 달러 (1972년 당시)
납품 182대
1. 개요2. 개발3. 상업 운항4. 세부 기종
4.1. YS-11-1004.2. YS-11A-2004.3. YS-11A-3004.4. YS-11A-4004.5. YS-11A-5004.6. YS-11A-6004.7. YS-11E
5. 참고 링크

[clearfix]

1. 개요

파일:namc-ys-11-01.jpg 파일:namc_ys_11_03.jpg
JAC 소속 YS-11 YS-11의 콕핏
NAMC YS-11은 일본항공기제조(NAMC)[3]에서 개발한 터보프롭 여객기 및 화물기로, 일본이 개발한 최초의 상업용 여객기/화물기이다. "YS"는 일본어로 수송기(Yusōki)와 설계(Sekkei)에서 딴 것이며, 11은 각각 엔진 형식과 기체 스펙의 일련번호이다. 그러나 YS-11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해서 11 이외의 일련번호가 가시화되지는 못했다.

2. 개발

1963년 YS-11 기록영화

1950년대 중후반, 전쟁전 일본에서 카피 생산한 DC-3가 노후화됨에 따라 이를 대체하여 국내선에 굴리기 적절한 여객기 개발 요구가 일본 정부에서 제기되었다. 1956년에는 운수성이 신메이와 공업에 기초 연구를 발주하였으며, 이 결과로 이듬해 운수성의 주도로 수송기설계연구협회가 창설되었다.

1959년에는 본격적인 개발을 위하여 특수법인인 NAMC로 재편되었다. 이 때 민간에서 주도권을 쥔 것이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항공기의 최종 조립 또한 미쓰비시의 고마키 공장에서 제조하기로 결정되었다. 이곳은 오늘날 미쓰비시 스페이스젯의 생산 거점이기도 하다.

NAMC는 신형 수송기를 저익기[4], 쌍발 터보프롭, 60석 규모로 설계하였는데, 초기 구상에는 제로센의 디자이너인 호리코시 지로를 위시한 전간기 엔지니어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NAMC에는 합류하지 않아서 이들의 밑에서 2차대전시 군용기 설계에 참가했던 엔지니어들이 그 뒤를 이었으며, 특히 개발 책임자를 맡은 것은 전범 도조 히데키의 차남 도조 데루오였다. 도조 데루오 또한 미쓰비시에서 호리코시의 후배로서 제로센 개발에 참여한 항공 엔지니어이다. 도조 데루오도 항공공학에 입문한 것도 다름아닌 아버지 도조 히데키의 권유. 도조 데루오는 YS-11 이후에도 비즈니스 제트기 MU-300 등 미쓰비시의 항공기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훗날 미쓰비시 자동차 회장까지 올라갔다.

엔진은 롤스로이스의 3050마력의 다트 엔진을 장비하였다. 외적으로 제너럴 일렉트릭의 엔진을 장비한 경우도 있었다. 고출력 엔진 장착으로 수송력이 같은 쌍발기였던 포커 27 시리즈에 비하여 50% 정도 높고, 4발기인 영국제 비커스 바이카운트(Vickers Viscount)에 비해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는다고 홍보되었다.

다만 수송력에 대한 서술은 어디까지나 NAMC 측의 주장이며 실제로는 그다지 우세하지 않다. 최대 적재량은 YS-11이 6.6톤이며 F27는 Mark 100이 5.6톤, Mark 500이 6.5톤, 바이카운트는 Type 700이 6.3톤, Type 810이 7.6톤이다. 최대 적재시 항속거리는 YS-11이 590nmi, F27 Mark 100이 600nmi이며 바이카운트가 1,500nmi였다. 이들 기체는 모두 롤스로이스 다트 계열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어디까지나 YS-11이 채택한 엔진이 개별 추력이 큰 것이다.

이외의 특징으로는 다른 경쟁 기종과 달리 민항기에 어울리는 합리화가 되지 않은 점이 있다. 이 때문에 소음, 진동 등 거주성이 떨어지고 중량이 늘어 일본의 파일럿들조차 출력 부족을 호소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YS-11을 미국에 유일하게 도입한 피드몬트 항공(Piedmont Airlines)의 경우 YS-11이 고출력이라는 이유로 산악 도시 노선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후 여객기에 일반화된 유압을 적용하지 않고 케이블로 조종면을 조종하는 구식 장치를 채택하여 조종이 힘이 드는 데다 오토파일럿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현재 이 체급으로 현역인 대표적인 프롭 커뮤터 기종들은 연비와 함께 단거리 이착륙성능을 중시한 고익기며 YS-11과 같은 저익기는 드물다.[5]

프로토타입은 1962년 8월 30일, 나고야 공항에서 성공적인 초도 비행을 마쳤고, 그 해 12월 28일에는 두 번째 프로토타입이 비행을 마쳤다. 1964년 8월 25일에는 일본 정부의 승인이, 이듬해 9월 9일에는 FAA의 인증을 받았다.

3. 상업 운항

인증 취득 후 1965년 4월 1일에 일본국내항공(JDA, 일본에어시스템(JAS)의 전신 중 하나)에서 상업 취항을 시작하였다. 특이한 것은 양산 1호기(생산 3호기)는 3월 30일에 운수성에 납품되었다는 것으로, 일본국내항공의 첫 운항은 프로토타입 2호기를 임차한 것이었으며 양산기에 따른 운항은 양산 2호기를 납품받은 도아항공(JAS의 또 다른 전신)이 5월 10일에 시작하였다.

1973년까지 총 182대가 생산되었으며, 이 중 82대는 15개국으로 수출되었다. 이 중에는 대한항공 또한 포함되어 있으며, 납북 사건에 휘말린 기체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참조. 대한항공은 상술한 운용효율과 편의성 문제 때문인지 도입 5년만에 전부 매각하고 B727과 F27로 갈아치워 버렸다. 한국에서 운용된 몇 안되는 일본제 항공기이다. 헬리콥터로 확장하면 BK-117이 있지만 그건 독일과의 공동개발품이다.

YS-11은 일본 국내에서는 지방 노선의 주력으로 운용되었으며, 특히 일본 에어 커뮤터(JAC) 등 지선 항공사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민항기 사업 경력이 전무한 일본에 대한 신뢰도도 부족한 데다 YS-11 자체도 중량이 과다하고 소음, 진동 등 승객 서비스 측면의 약점이 지적되었다. 이는 개량형 YS-11A의 도입으로 어느 정도 만회가 되어 판매 자체는 당초 계획했던 150기를 넘어섰으나 여전히 수익이 나지 않았으며, 특히 해외 판매 체제가 지리멸렬했던 탓에 손해를 많이 보았다.

이 때문에 YS-11의 사업 결손은 1971년에 당시 가치로 145억엔에 달했다. 2019년 가치로는 440억 엔에 달한다. 덧붙여 납입자본이 총 78억 엔이었다. 먼 옛날에 자본이 잠식되었다는 뜻이다. 결국 채권단의 주도로 1973년 생산 종료로 이어졌다. 1981년 말에는 정부 각료회의에서 정식으로 청산이 결정되어 1982년에는 서비스 업무를 미쓰비시에 이관하고 1983년에 최종 청산되었다. 청산 당시의 누적 결손은 360억 엔에 달한다.

원래 YS-11의 취항 이후 탄력을 받은 일본 정부와 NAMC는 제트기 개발 구상에 들어가서 1970년 즈음에는 3발 제트기로서 150석 이내의 소형기 YS-33과 150석 이상 중형기인 YX의 컨셉트를 잡고 있었다. 이는 1973년에 YS-11이 생산 종료되면서 현실화되지 않았으나, 중형기 개발의 리스크를 낮추려던 보잉과의 합작이 성사되어 보잉 767 이후의 보잉 기종은 일본 항공업계가 공동개발자로서 일정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보잉 787 드림라이너에서는 그 비율이 35%에 달한다. 그러나 50여년 뒤 일본이 여객기 자체개발 프로젝트에서 큰 손실을 보는 것이 다시 반복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미쓰비시 스페이스젯 참조.

YS-11은 일본 국내선에서 2006년까지 활약하였다. 마지막 운항 노선은 2006년 9월 30일 JAC의 오키노에라부(沖永良部)- 가고시마 공항 노선으로, 의도적으로 JAC가 첫 편을 띄웠던 노선이라고 한다. 은퇴가 가까워져서는 아래 -500형의 사진과 같이 '고마워요 일본의 날개 YS-11' 문구가 적힌 특별 도색이 적용되었다. 마지막 상업운항을 수행한 기체는 필리핀 등으로 매각되었으며, 일본 국내에서는 자위대나 항공 교육기관 외에 양산 1호기(JA8610)가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에서, 구 JA8709가 중소 정비회사에서 동태보존되어 있다. 정작 일본의 법규에 맞지 않아 미국으로 등록 국적을 옮긴 게 아이러니하다.

4. 세부 기종

4.1. YS-11-100

파일:namc_ys_11_04.jpg
YS-11의 표준형. 이륙 최대 중량은 23,500kg. 48대 생산.

4.2. YS-11A-200

파일:namc_ys_11_05.jpg
YS-11의 이륙 중량이 24,500kg로 늘어난 모델. 대한항공은 4대를 운영했었다.

4.3. YS-11A-300

파일:namc_ys_11_06.jpg
-200형의 콤비형. 커다란 화물칸 도어가 장비되어 있으며 승객/화물 둘 다 적재가 가능. 사진 속 기체는 화물기이다. 대한항공은 4대를 운영했었다.

4.4. YS-11A-400

-200형의 화물형으로, 일본 자위대에서만 사용되었다.

4.5. YS-11A-500

파일:namc-ys-11-07.jpg
이륙 중량이 25,000kg로 늘어났으며, 1970년부터 생산 시작.

4.6. YS-11A-600

-500형의 콤비형.

4.7. YS-11E

파일:YS-11EB_JPN_1.jpg
일본 항공자위대에서 전자전기로 개조되어 신형 제너럴 일렉트릭의 T64-IHI-10E 터보프롭엔진으로 교체하고 항속거리를 2,670㎞로 늘리며, 전자전 장비[6]를 탑재하는 등 여러 개조가 적용된 최신형 모델이다. 4엽에서 3엽으로 프로펠러 날개 개수가 줄어든 듯 하다. 공자대 전자전 지원대 등에서 90년대 말~2000년대 초쯤해서 운용을 시작하였으며 현재 EA형과 EB형 총 10기를 운용 중이다.

2021년 항공자위대 비행점검대에서 U-125와 함께 퇴역함으로서 자위대에서 완전히 퇴역하였다. 퇴역기들은 전부 세스나 사이테이션 라티튜드로 교체된다.

5. 참고 링크



[1] 이후 ANA에 인수합병됨. 현재 ANA의 도장은 이 ANK로부터 가져온 것이며, 이전까지는 도장이 달랐다. [2] 2020년 12월 25일 기준 [3] Nihon Aircraft Manufacturing Corporation. 전후 1957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필두로 후지중공업, 신메이와 공업, 일본비행기, 쇼와비행기, 카와사키 중공업 등 항공기 제조사와 도시바, 스미토모 금속등 기계, 소재 산업체가 참가하여 결성된 기업이다. NAMC는 설계 및 판매, 서비스를 맡았고 실제 생산은 각 회원사가 분담하였다. YS-11의 생산이 종료된 이후인 1983년 폐업하였다. [4] 저익기라 다른 터보프롭기와는 달리 엔진이 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게 아니라 프로펠러는 위로 돌출되어 있고 흡기구만 아래로 내려와 있다. [5] 그나마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한 저익기 프롭 커뮤터인 사브 340 사브 2000도 여러 가성비 문제와 효율성 문제 등에 시달렸으며, 현재는 두 기종 모두 단종되었다. [6] J/ALR-2 신호정보시스템, J/ALQ-7 전자방해 시스템등이 탑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