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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22:19:31

Marching Through Georgia

1. 개요2. 가사3. 영향
3.1. 한국
3.1.1. 찬송가
3.2. 일본3.3. 영국3.4. 호주
4. 관련 문서

1. 개요


If I had thought when I made that march that it would have inspired anyone to compose such a piece, I would have marched around the state.
만일 내가 조지아를 통해서 행진해서 이런 노래가 만들어질 것을 알았다면 기꺼이 그 주를 돌아서 행진했을 것이다.
- 윌리엄 테쿰세 셔먼 -
미국의 군가 혹은 행진곡. 남북 전쟁 윌리엄 테쿰세 셔먼 바다로의 행군을 기념하기 위해 1865년에 할아버지의 시계를 작곡한 헨리 클레이 워크가 작곡해서 1865년 1월 9일 출간한 곡이다.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어 러일전쟁 중 일본군이 여순 항을 함락시켰을 때도 불렸고, 영국군이 인도에서도 불렀고 2차대전 때의 영국군 병사 노래집에도 수록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중의 영국의 한 마을에서는 남부 출신 미군을 환영하기 위해 이 곡을 다양하게 연주했다고 한다.

이 곡은 20년에 걸처 50만부 이상이 팔려 나갔고, 참전용사 집회마다 이 곡이 연주되었다. 동시기의 작곡가 조지 F. 루트는 1891년에 쓴 자서전에서 이 곡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1]
Marching Through Georgia는 지금 현재, 전쟁 시기의 다른 어떤 곡보다 많이 연주되고 불린다. 그 이유는 이 곡의 가사와 음악의 내재적인 장점도 있지만 또한 이 곡이 회상적이기 때문이다. 전쟁때의 다른 곡, 예를 들어 Battle Cry of Freedom을 보면, 이 곡은 전쟁으로 나가면서 느끼는 애국적인 감정을 고취시킨다. 반면 Marching Through Georgia는 개선에 대한 영광스러운 추억이다. 그리하여 이 곡이 전쟁 후에 병사들과 다른 행사들에 더 적절하다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셔먼이 애틀랜타 캠프 파이어를 하고 조지아 주 개발살낸 것을 노래한 만큼 이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며, 특히 조지아 사람이라면 더욱 싫어한다.[2]

셔먼 본인도 이 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셔먼은 절대로 전투광, 전쟁광이 아니었고, 전쟁으로 인한 살상과 파괴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하기 싫은 일을 자신이 행하자 그걸 기념하는 곡이 나왔으니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인용한 문구처럼, 셔먼은 '이 노래가 나올 줄 알았으면 조지아를 피해서 갔겠지.'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등장하는 곳마다 사람들이 이 곡을 연주해대니 질려버린 것도 있다. 그 일례로 1890년의 참전용사 모임에 셔먼도 참가해 퍼레이드를 참관했는데, 7시간 동안 이어진 퍼레이드에서 250개의 밴드가 모두 Marching Through Georgia를 연주했다. 1891년의 셔먼 본인의 장례식에서 연주된 곡도 이 곡이다. 셔먼은 새뮤얼 베이어스가 작사한 When Sherman Marched Down to the Sea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해당 곡

남오세티야 전쟁 러시아가 조지아를 공격한 것을 이용한 드립도 존재한다. 가사에는 분명 애틀랜타가 나오는데 이 조지아에는 애틀랜타라는 도시가 없다는 사소한 건 무시해도 좋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바이든이 조지아에서 승리하자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 곡을 틀며 환호했다. # 조지아를 불태우는 노래를 틀면서 조지아를 찬양하는 아이러니 민주당과 공화당은 남북의 텃밭을 체인지했는데, 그런 시대에 등장한 트럼프와 트럼프 지지층들은 그중에서도 남부연합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 같은 공화당 소속인데 링컨은 북부를 위해 싸운 반면 트럼프는 여러 형태의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다만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의 성향이 뒤바뀐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2. 가사


이 동영상에서는 3절까지만 나온다. 참고로 저 장치는 SP 레코드 판이 개발되기 전에 사용되던 실린더식 축음기. 1913년 음원이다.



가사 해석
1 Bring the good old bugle, boys, we'll sing another song
Sing it with a spirit that will start the world along
Sing it as we used to sing it, 50,000 strong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좋은 옛 나팔을 꺼내게 친구들, 다른 노래를 부르세
온 세상을 놀래킬 기세로 부르세
5만 장병들과 부르던대로 부르세
우리가 조지아를 지나 행진하던 그 때에
2 How the darkeys shouted when they heard the joyful sound
How the turkeys gobbled which our commissary found
How the sweet potatoes even started from the ground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기쁜 소리를 들은 검둥이[3]들이 어찌 소리 지르던지
우리 행보관이 찾은 칠면조는 어찌 울어대던지
땅에서는 고구마까지 어찌나 절로 튀어나오던지
우리가 조지아를 지나 행진하던 그 때에[4]
3 Yes and there were Union men who wept with joyful tears,
When they saw the honored flag they had not seen for years;
Hardly could they be restrained from breaking forth in cheers,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몇 년간 보지 못했던 영광스런 깃발을 보고는
기뻐서 눈물흘린 (남부의) 연방주의자들이 있었지[5]
폭발하는 환호를 억누르기 힘들었지
우리가 조지아를 지나 행진하던 그 때에
4 "Sherman's dashing Yankee boys will never reach the coast!"
So the saucy rebels said and 'twas[6] a handsome boast
Had they not forgot, alas! to reckon with the Host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 셔먼의 잘난척하는 양키놈들은 절대로 해안까지 오지 못해!"
그렇게 건방진 반란군놈들은 뽐내댔지
놈들은 우리를 무시하지 못함을 기억하리라
우리가 조지아를 지나 행진하던 그 때에
5 So we made a thoroughfare for freedom and her train,
Sixty miles in latitude, three hundred to the main;
Treason fled before us, for resistance was in vain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그렇게 우린 자유를 위한 도로를 만들었지
위아래론 60마일, 바다까지 300마일 거리의
반역자들은 저항도 헛되게 우리를 앞에 두고 달아났지
우리가 조지아를 지나 행진하던 그 때에
후렴 Hurrah! Hurrah! We bring the jubilee!
Hurrah! Hurrah! The flag that makes you free!
So we sang the chorus from Atlanta to the sea.
While we were marching through Georgia.
만세! 만세! 우리가 축제를 부르지[7]
만세! 만세! 그대를 자유롭게 하는 저 깃발!
그래서 우린 애틀랜타에서 바다까지 노래를 부르며 갔지
우리가 조지아를 지나 행진하던 그 때에




테네시 어니 포드가 1961년에 부른 버전. 2절과 4절을 빼고 부르는데, 아무래도 가사 내용 때문에 뺀 것으로 추정된다.[8]

3. 영향

이 노래가 인기가 좋았는지, 전 세계적으로 이 곡의 영향을 받은 노래가 많다.

3.1. 한국



신흥무관학교 교가로도 불렸다.


또한 독립군가도 이 곡을 개사한 것이다.
(1절)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후렴)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2절) 원수들이 강하다고 겁을 낼 건가
우리들이 약하다고 낙심할 건가
정의의 날쌘 칼이 비끼는 곳에 이길 이 너와 나로다
(3절) 너 살거든 독립군의 용사가 되고
나 죽으면 독립군의 혼령이 됨이
동지야 너와 나의 소원 아니냐 빛낼 이 너와 나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YkcvQjHeT0
휘문고등학교 야구응원가도 이 곡을 개사한 것이다.

소년척후단 단가인 소년척후가도 이 곡의 개사. 그 밖에 경기도 안양시 신성중학교 신성고등학교의 교가도 이곡을 개사해 쓴 것이다. 또 제주제일고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에서도 이 곡을 개사하여 응원가로 만든 차돌가가 있다.

K리그1 소속의 대전 하나 시티즌이 사용하는 응원가 클럽송 역시 이 곡을 개사하여 제작되었다.


토토월드3 라는 게임의 월드6에서도 쓰였다.

3.1.1. 찬송가

이 곡을 바탕으로 한 찬송가가 있다. 구 찬송가 393장 / 새찬송가는 350장 <우리들이 싸울 것은>이 그것이다.[9]

3.2. 일본

일본 목사인 미다니 다네키지(三谷種吉, 1868~1945)가 皆進め라는 제목으로 이 곡을 개사한 찬송가를 썼다. 링크 이것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 위에서 언급한 <우리들이 싸울 것은>이다.

1919년에 사스키 소에다[10]는 이 곡의 개사작인 도쿄 부시(東京節)를 내놓아 인기를 끌었다. 듣기
참고로 이 곡은 다이쇼 야구 소녀 1화에도 나온다.

3.3. 영국

영국 자유당의 당가이자, 영국 자유민주당의 비공식 당가인 'The Land'는 이 곡의 가사를 토지가치세를 옹호하는 내용으로 바꾼 곡이다. 듣기
Sound the call for freedom boys, and sound it far and wide,
March along to victory, for God is on our side,
While the voice of nature thunders o'er the rising tide:
"God gave the land to the people."
Chorus

후렴
The land, the land,'Twas God who made the land,
The land, the land, The ground on which we stand,
Why should we be beggars With a ballot in our hand?
God gave the land to the people.

Hark! The sound is spreading from the east and from the west!
Why should we work hard and let the landlords take the best?
Make them pay their taxes on the land just like the rest!
The land was meant for the people.
Chorus

Clear the way for liberty, the land must all be free,
None of us shall falter from the fight tho' stern shall be.
'Til the flag we love so well shall fly from sea to sea,
O'er the land that is free for the people.
Chorus

The army now is marching on, the battle to begin,
The standard now is raised on high to face the battle din,
We'll never cease from fighting 'til the victory we win,
And the land is free for the people.
Chorus
Billy Boys라는 개사곡이 글래스고에서 1920~30년대부터 있었고. 지금은 레인저스 FC와 관련있다. 위키백과 참조

아스날 FC 맨체스터 시티 응원가 중에도 있다. 둘 다 사실상 똑같다. 아스날 FC 맨체스터 시티

제2차 보어 전쟁의 끝과 영국의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를 1903년 Marching on Pretoria라는 제목과 가사로 녹음된 음반이 존재한다. 듣기
When the call to arms went forth our hearts were blithe and glad
[Castles ...?] gave forth the bravest blood they had
Every English meadow yielded up its human lad
To March! March! March! on Pretoria

조국의 부름을 받았을 때 우리는 기뻐했지!
모든 영주들은 가장 용감한 용사들을 보냈지
영국의 모든 땅들은 건장한 남성을 보냈지
우린 프레토리아[11]로 행군! 행군! 행군한다네!

Hooraah! Hooraah! Come hither sail they come.
Hooraah! Hooraah! They've made the [business…] calm.
Round the world you heard the beat of Britain's ceaseless drum
When we went marching on Pretoria.

만세! 만세! 저기에서 돌아온다네.
만세! 만세! 이기고 돌아왔다네![12]
온 세계 곳곳에서 영국의 북을 들을 수 있다네
우리가 프레토리아로 행군했을 때

Far from overseas our brothers flocked to join the flag
Joining us at British part was neither bluff nor brag
Foot to foot they stood with us beneath that dear old flag
When we went marching on Pretoria.

먼 해외에서도 우리 형제들도 깃발 아래에 모였다네[13]
영국을 위한 일은 자랑이나 떠들 것도 아니었다네
우리와 함께 그 정든 깃발 아래에 굳게 섰다네
우리가 프레토리아로 행군했을 때

Hooraah! Hooraah! oh play thee a bonnie song
Hooraah! Hooraah! The smart Canadian call
They have known that in their veins, the blood of Britain runs
When we went marching on Pretoria

만세! 만세! 기쁜 노래를 부르세.
만세! 만세! 캐나다인들답네.[14]
그들도 영국의 핏줄인걸 알고 있었다네
우리가 프레토리아로 행군했을 때

Cheer up boys and sing good luck to all our gallant men
Who fought for the empire out in Africa and when
They have brought the seas once more we welcome home again
Conquerors of proud Pretoria.

기뻐하고 우리 용감한 용사들을 위해서 행운을 비세
우리 제국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싸우고
다시 평화를 지키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들을 맞이하세
프레토리아를 평정한 영웅들이여

Hooraah! Hooraah! Foot-soldiers of the King
Hooraah! Hooraah! Their praises let us sing.
Victory they have brought us back wherever they have been.
And now they are coming home from Pretoria."

만세! 만세! 왕의 보병들!
만세! 만세! 칭송하며 부르세!
어딜가든 승전보를 울리고 돌아오네
그리고 이제 프레토리아에서 돌아오네

음반이 오래되었고 가사가 기록되어있지 않아 알아듣기 힘든 가사는 귀로 판단해서 쓴 가사다.

3.4. 호주

1916년 호주군 갈리폴리 전투 이후 제 3 경기병 여단을 재편하면서 이 노래를 가사로 바꾸어 행진곡으로 사용했다. 듣기 제 3 경기병 여단이 전후 해체된 후에도 휘하 부대들은 이 곡을 퍼레이드 때 사용했다.[15] 1936년 4월 26일 애덜레이드에서의 퍼레이드
We’re horsemen from Australia of the good old British breed,
We rallied to the colours when we heard the Empire’s need,
You bet we’re out to play the game, and if we don’t succeed,
We’ll join our mates who took the count before us.

1절
우리는 영국피를 이어받은 호주의 기마병이지,
제국의 부름을 받고 부대 깃발 아래에 모였지,
우리는 싸우러 왔고 만일 이기지 못한다면
기꺼이 먼저간 전우들과 합류하지.

CHORUS:
We are, we are, the Third Light Horse Brigade.
We face the odds with ne’er a man afraid,
We lost our gallant comrades and there’s many a score unpaid,
Undaunted still we’re out for what’s before us.

후렴:
우린, 우린, 3 경기병 여단이라네
무리수에 맞서도 겁을 먹지 않다네
용감한 전우들을 잃었으니 원수를 갚아야지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적을 찾을거야.

Eighth, Ninth, Tenth, and Signallers, Field Ambulance and Train
We did our bit at Anzac, where we’d like to go again,
For though we got it in the NEK, we’ll fight with might and main,
To square our mates who took the count before us.

2절

8연대, 9연대, 10연대 그리고 통신대, 의무대와 수송대까지
ANZAC[16]에서도 싸웠지만 다시 싸우고 싶다네
NEK전투[17]에서는 패배했지만 만회할거라네
먼저간 전우들을 복수하기 위해서.

3절

Send the news to Kitchener, tell Birdwood with a snap,
Say that we Australian boys are busting for a scrap.
We want to tackle Germany and wipe her off the Map,
Then toast our mates who took the count before us.

빨리 키치너[18] 버드우드[19]에게 연락하여라
우리 호주의 남아들은 싸우고 싶다고
독일을 타격해서 지도에서 밀어 버리고 싶다고
그리고 먼저간 전우들을 위해 건배를 할거라고.

4. 관련 문서



[1] 전쟁 당시 연방군에게 사랑받았던 군가 Battle Cry of Freedom을 작곡했다. [2] 인종평등을 지지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조지아 출신이다. [3] "Darkey"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흑인이라는 뜻 외에도 약간 인종차별적/비하적인 뉘앙스가 내포돼있다. 당시 시대가 시대였음을 고려하자. 이 때문인지 Darkey를 People로 바꾼 버전도 존재한다. 위에 올려진 버전이 그런 경우. [4] Start는 시작이라는 뜻 외에도 갑자기 움직이다, 놀라다라는 뜻도 있으며, 여기에 쓰인 how는 단순히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지난일을 회상하거나 그에 대해 감탄하는 성격이 강하므로 "-ㄴ가"보다 "어찌... -ㄴ지"로 번역하는 게 더 적합하다. [5] 노래에서 '연방주의자'는 남부에서 탄압받았던 남부 연방주의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6] it was [7] 이 부분을 따서 만든 와드 무어의 1953년 대체 역사 소설 희년을 선포하라(Bring the Jubilee)가 있다. 스티븐 마이크 스털링의 1988년 소설 Marching Through Georgia와 해리 터틀 도브의 2001년작 Marching Through Peachtree도 이 노래 제목의 패러디. [8] 밑의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N-word만큼 자주 쓰이지는 않아도 비칭으로 해석될 수 있는 darkey와 북부 사람들의 비칭인 양키가 포함되어 있다. [9] 가사는 일본 목사인 미다니 다네키지(三谷種吉, 1868~1945)가 본 곡을 일본어로 개사한 것을 번안한 것이다. 위 찬송가의 후렴구 "한마음으로 힘써 나가세, 한마음으로 힘써 싸우세 악한 마귀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 까지!" 와 독립군가의 후렴구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때 까지 싸우러 나가세!" 의 가사가 매우 비슷하다. 싸우러 나가자고 독려하는 부분이나, 승전고를 울린다(독립문의 자유종이 승전고에 해당)는 부분이 그것이다. 독립군가를 만들때 찬송가의 가사를 응용 한 것인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독립군 안에 당시 개신교인들이 많았고, 실제로 여러 독립군과 관련된 노래중에는 찬송가의 내용을 차용하거나, 찬송가의 멜로디를 차용한 노래도 다수 있기 때문이다. [10] 토모니치 소에다의 예명 [11] 당시 남아프리카의 수도. [12] 문제를 잠재우고 왔다고 적혀있지만 문제가 보어들의 문제고 잠재웠다고 쓴건 이겼다는 뜻. [13] 영연방 국가들을 뜻한다. 2차 보어 전쟁 당시 캐나다,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의 국가들도 대영제국 깃발 아래에 참전했다. [14] 영연방 중 캐나다는 인구도 얼마 없었는데 상당한 많은 병사들을 보냈고 많은 피해를 입었다. [15] 영연방 군대는 각 연대에서 대대들을 차출해 여단을 구성해 전투에 참여하는 제도를 채택하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면 대대들은 본대로 돌아간다. [16] ANZAC은 호주-뉴질랜드 군단이지만 여기서는 갈리폴리 전장을 뜻한다. [17] 오스만 군과 싸웠지만 여단의 600명중 300명의 사상자를 낸 대패한 전투였다. [18] 대영제국 총사령관. [19] ANZAC군 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