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Tank, M4A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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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4 셔먼 시리즈 중 하나인 M4A4의 실전 일람 문서이다.미국이 개발한 셔먼 시리즈 중, M4A4는 세계 각지로 팔려나갔으며, 전후에는 이탈리아, 영국 등의 주력으로 운용하고 있던 국가들이 각국에 다시 수출을 행하였기에 셔먼 시리즈 중 실전을 본 경험은 M4A1 못지 않게 매우 많은 편에 속한다.
2. 대전기
2.1. 제2차 세계 대전
2.1.1. 시칠리아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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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침공 당시의 캐나다 왕립 육군 제11캐나다전차연대 소속 셔먼 V 네임드 차량 "콘도르"[1] |
당시 시칠리아의 파치노 만에 있는 캐나다 제1보병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제11전차연대, 제12전차연대, 제14전차연대로 이루어진 제1캐나다전차여단 소속으로 상륙했을 때 M4A4는 최초로 실전을 치렀으며, 실전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M4A4는 랜드리스가 결정되어 수많은 수량이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으로 수출되어 유럽전선을 누비게 되었다.
2.1.2. 이탈리아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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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선 당시의 캐나다 육군 소속 셔먼 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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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선 당시의 남아프리카 연방 육군 소속 철망 부착 셔먼 V |
2.1.2.1. 안치오 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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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오 상륙작전 당시의 영국 육군 제23기갑여단 소속 셔먼 V |
2.1.3. 서부전선
2.1.3.1. 노르망디 상륙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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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의 자유 폴란드 육군 제1기갑사단 소속 셔먼 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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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브라 작전 당시의 영국 육군 소속 셔먼 V |
2.1.3.2. 오버로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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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 전투 직후의 영국 육군 소속 셔먼 VC |
셔먼 VC가 활약한 사례 중 하나는 바로 1944년 6월 9일 노르-엥-베시 공방전 도중에 벌어졌던 캐나다 육군 제1후사르연대 소속의 헨리 중위와 그가 지휘했던 셔먼 VC의 활약상이다.
영국군과 캐나다군을 몰아내기 위한 공세에 대비하여 마을을 점령하기로 결정한 제12 SS 기갑사단 소속 제12 SS기갑연대 산하 쿠르트 마이어가 지휘하는 3중대는 먼저 보병대대에게 노르-엥-베시를 공격하고 캐나다군을 몰아내도록 명령했다.
공격은 당일 오후 1시에 시작되었고 3중대의 5호 전차 판터들은 보병보다 먼저 작전지로 이동하여 포격을 하기 위해 정차했다.
판터들은 연합군의 포격으로 보병들이 발이 묶여있는지도 모르고 작전지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판터 중대가 대기하고 있던 마을에서 약 1km 떨어진 거리에서, 캐나다 육군 제1후사르연대 소속의 셔먼 VC들이 판터들을 발견하고 사격하기 시작했다.
이때 헨리 중위가 지휘하는 셔먼 VC의 포수인 A. 차프먼은 판터들이 도망치는 중, 오리처럼 줄지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단 6발만을 사용하여 판터 5량을 완전 격파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판터 소대 12량 중 7량이 완전 손실되었을 정도로 대활약하였다.
이 밖에도, 캉 전투 직후에 이루어졌던 생-애그난-데-크라메스니 전투 당시, 미하엘 비트만의 티거를 격파시킨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영국 육군 소속 전차 에이스인 조 에킨스가 탑승했던 셔먼 VC "벨리키예루키[2]" 이다.
1944년 8월 8일 미하엘 비트만이 지휘하던 티거 "007호차"를 포함한 티거 7대는 4호 전차, 4호 돌격포와 함께 전투를 치르고 있었는데, 매복해 있던 노샘프턴셔 요만리 산하 A중대가 1200야드 거리에 움직이는 티거 3대의 우측면을 발견했고, 800야드 거리가 되길 기다렸다가, 조 에킨스가 탑승하고 있던 셔먼 VC의 전차장이 맨 뒤의 티거를 격파하라고 명령했다. 12시 47분에 탑승하고 있던 포수 조 에킨스는 패달을 밟아 탄을 격발하였는데, 007호차에 직격하여 순식간에 불길이 올라오고 대폭발하여 격파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다수의 셔먼 V, M4A4, 셔먼 VC들은 오버로드 작전 내내 독일군을 프랑스에서 몰아내는 데에 성공했으며, 오버로드 작전이 성공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2.1.3.3. 마켓 가든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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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가든 작전 당시의 영국 제30군 소속 셔먼 VC와 셔먼 V 전차소대[3] |
그러나 공수부대를 지원한다는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결국 제1공수사단이 전멸하는 참담한 피해를 낳게 되었다.
2.1.3.4. 독일 본토 진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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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본토 진격전 당시 존스베크의 캐나다군 총독기병근위대 소속 셔먼 V[4] |
2.1.4. 태평양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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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당시의 국민혁명군 육군 제1임시전차대 소속 M4A4 "45번차" |
2.1.4.1. 동남아시아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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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전역 당시의 국민혁명군 육군 제1임시전차대 소속 M4A4 네임드 차량 "돌격" 813번차 |
셔먼을 주로 사용한 국부군 소속 제1임시전차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결성된 미국과 중화민국 간의 합동 부대였는데, 1943년 10월 1일, 인도의 람가르에서 창설되었고 미 육군 대령인 로스웰 H. 브라운이 지휘했다.
총 6개의 전차 대대로 구성되어 있었고, 국민혁명군 장교들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매우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제1임시전차대는 37mm M6 전차포로 무장한 M3A3 스튜어트 경전차를 사용하다 1944년 4월에 M4A4 5대 혹은 6대로 구성된 소대를 편제했다.
특히 일부 셔먼에는 다채로운 그래피티를 해두었는데, 대표적으로 포방패에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형태의 차량이 있다.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 없는 차량들이 매우 많은데, 아무래도 탄약 호환 문제도 있었고, 일본군을 상대하는 데 이 이상의 고화력 기관총은 필요 없겠다 여겨서일 수도 있다.
전시 내내 대활약을 하며 일본군을 압박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미군이 대다수 개체를 회수하여 영국군에게 반환하였다.
2.1.5. 제1차 그리스 내전
2.1.5.1. 12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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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사건 당시 민족해방전선(EAM) 사옥을 포위한 영국 육군 소속 셔먼 V 전차소대[5] |
이 시기 영국군 소속의 셔먼 V들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던 그리스 민족해방전선과의 전투에서 대활약하였는데, 12월 6일에는 민족해방전선의 사옥을 포위하였으며, 이후에 벌어진 시가전에서도 그리스 왕국군을 지원하여 민족해방전선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에 공을 세웠다.
3. 냉전
3.1. 중동전쟁
3.1.1. 제2차 중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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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중동전쟁 당시 시나이 반도에서 격파된 이집트 육군 소속 셔먼 V |
제2차 중동전쟁 시기 셔먼 V를 제일 많이 소유하고 있던 이집트군의 상황은 좋지 않았는데, M4A4 대다수가 75mm를 장착하고 있어서 장거리에서 저격하는 M-50들에게 속수무책으로 격파당했으며, 개조형인 M4A4 (FL-10) 마저도 손실, 노획당하는 등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3.1.2. 제3차 중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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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지구 전투 당시의 이집트 육군 제20팔레스타인사단 소속 M4A4 (FL-10) |
라파 전투 당시 이집트군은 2,000명 이상의 병사와 20량의 M4A4 (FL-10), 기타 20량의 셔먼들을 손실했지만 이스라엘 제7기갑여단에 상당한 손실을 입히는 등 활약하였다.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일선에서 활약하기 부적합하다 판단하여 후방물자로 돌려졌다.
3.2. 인도-파키스탄 전쟁
3.2.1.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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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의 인도 육군 소속 셔먼 V 네임드 차량 "비슈마" T289045번차 |
이후 여러 전투에서 분전하며 인도군이 승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3.2.2.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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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의 파키스탄 육군 소속 셔먼 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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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의 인도 육군 소속 M4A4 (SA50) |
이 중 인도군의 경우,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셔먼 V를 개조하여 만들어낸 M4A4 (SA50)을 실전 투입했으며, AMX-13과 같이 편제하여 운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파키스탄군은 M4A1E6를 주력으로 사용하여 소수 운용에 그쳤으며, 마찬가지로 인도군 또한 신형 MBT들을 도입하여 일부 지역에서 보병합동작전을 펼치거나 후방 물자 정도로 사용되는 데 그쳤다.
3.2.3.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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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유기된 파키스탄 육군 소속 M4A4 (76) |
이 중 한 량이 랑게왈라 전투 당시 인도군에게 노획되어 현재 전쟁기념관에 전시중에 있다.
3.3. 중인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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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전쟁 당시의 인도 육군 소속 셔먼 V |
3.4. 이집트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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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 당시의 이집트 육군 소속 셔먼 V |
3.5. 해방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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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혁명 당시의 아르헨티나 반란군 소속 셔먼 V와 후안 페론 지지자들 |
후안 페론이 사퇴하면서, 해방 혁명은 성공으로 종결되었으며, 그 후계는 페드로 아람부루가 차지하게 되었다.
3.6. 1958년 레바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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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위기 당시 레바논 트리폴리의 정부군 소속 셔먼 VC |
3.7. 1962년 아르헨티나 해군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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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해군 반란 당시의 아르헨티나 육군 소속 셔먼 VC[6] |
3.8. 비글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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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글 분쟁 당시 국경을 순찰하는 아르헨티나 육군 소속 셔먼 레포텐시아도 전차 소대 |
3.9. 레바논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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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내전 당시 MNF 소속의 미 해병대와 격파된 레바논 정부군 소속 셔먼 VC[8] |
마지막 M4A4 계열 차량의 실전이었으며, 이 후에 M4A4 계열의 전차가 전쟁에 등장한 적은 없다.
4. 현대전
4.1. 네덜란드 농민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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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재 유통 창고를 봉쇄하기 위해 이동중인 개인 소장 셔먼 VC |
[1]
1943년 8월 4일 촬영된 사진이다.
[2]
소련의 도시 이름이다.
[3]
1944년 9월 20일에 촬영된 사진이다.
[4]
1945년 5월 9일 촬영된 사진이다.
[5]
1944년 12월 6일 촬영된 사진이다.
[6]
1962년 9월 22일에 촬영된 사진이다.
[7]
다만 비글 분쟁 자체는 무려 80여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런데 1978년에 들어서면서 칠레와 아르헨티나 모두 직접적인 무력 충돌까지 불사하는 분위기라 양국간의 전쟁의 위협이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셔먼 레포텐시아도가 투입된 것이다.
[8]
1983년 촬영된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