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 Fior

군대에서 전역하기 일주일전, 그리고 너무나도 지쳐 무언가에 홀린듯 한강 다리를 걸어다녔을때 그런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너무나도 거대한 막연함, 그래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맞서 싸우지도 못하는 막연함 앞에서, 심장은 뛰지만 몸은 얼어붙은 그런 기분말입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고 한 해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다가오는 지금쯤 계속 드는 기분입니다.
너무나도 자주, 희망이 우리를 배신했기 때문에 우리는 막연함 앞에서 기대를 하는 방법을 잊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가사중에 "희망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때까지 모든걸 삼키는 촛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아무것도 남지않은 곳에 있는것이 바로 "얼어붙는 두려움"인것 같습니다.

저는 그곳에 여러번 다녀와 봤습니다.
그곳은 사랑, 꿈, 야망, 모든 가치를 비웃는 곳입니다.
그곳은 모든 의지가 사라져 시간이 얼어붙는 곳입니다.
그곳은 끝나지 않는 피로함이 날개를 부러트리는 곳입니다.
지금으로서 저의 가장 큰 두려움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믿어보자는 생각을 합시다.
알수없는 짐승을 만난 원시인처럼,
완전히 틀린 방향이여도 좋으니 도망칩시다.
완전히 처참하게 져도 좋으니 맞서 싸웁시다.
하지만 절대, 절대 그 자리에서 얼어붙진 맙시다.
아드레날린이 우리를 다시한번 불태우게 합시다.

당신의 틀린 꿈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틀린 사랑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틀린 싸움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틀린 희망을 꿈꾸고 있더라도, 그것이 혼자가 꾸는 희망이 아님을,
그리고 모두가 그 틀린 희망을 함께 꾼다면, 그것은 맞는 희망이 될것임을 믿습니다.

어쩌면 이 앨범도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한 앨범만, 한 앨범만 내보자, 다시한번 간신히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꿔 만든 앨범이 바로 '겁이나' 인것 같습니다.

한강을 생각한다. 간절하고, 넓게 흐르는 강물을 생각한다.

한강은 물살이 거칠고, 인간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그 움직이려 하는 생물을 가두었다. 한강이 거칠게 나아간다는 것은 바다로 가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다는 것이다. 콘크리트 외벽과 좁은 수로에 갇힌 이 강물은 오늘도 서해로, 동해로 간절하게 가고자 한다.

한강은 세계 어느 도시를 흐르는 강에 견주어 봐도 그 넓음을 자랑한다. 이 넓은 강물은 12개의 공원과 ‘잠실철교 강가의 외딴섬’을 포함한 6개의 섬을 품으며 흘러간다. 오늘도 출퇴근을 위해 남북을 오르내리는 사람들과 강가를 배회하는 도시 여행자들을 품으며 흘러간다. 이 넓은 강에 그들은 사랑을 받을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흘려보낸다. 오늘도 강은 고독과 슬픔을 품고 흘러간다.

여기 한강을 배회하는 이의 노래가 있다.
한강의 요동치는 강물과 광활한 시야는 그의 음악을 닮았다. >그의 새로운 트랙들에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는 강물에 비친 도시의 불빛들처럼 반짝인다. 한강의 광활한 풍경을 닮은 슈게이징 사운드는 그가 방황했던 시간들을 품어준다. 그는 더 간절해졌고, 그의 음악은 더 많은 것들을 품어 넓어졌다. Fin Fior의 더 간절해지고 넓어진 음악에 함께해주길. 요동치는 마음들이 함께 모여 바다로 나아가길 바란다.

‘겁이나’를 들으며
Fin Fior의 여행길 동행
의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