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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8 23:53:00

CC 사바시아/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CC 사바시아
1. 개요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1. 마이너 리그 시절2.2. 2001 시즌2.3. 2002 시즌2.4. 2003 시즌2.5. 2004 시즌2.6. 2005 시즌2.7. 2006 시즌2.8. 2007 시즌2.9. 2008 시즌
3. 밀워키 브루어스
3.1. 2008 시즌
4. 뉴욕 양키스
4.1. 2009 시즌4.2. 2010 시즌4.3. 2011 시즌4.4. 2012 시즌4.5. 2013 시즌4.6. 2014 시즌4.7. 2015 시즌4.8. 2016 시즌4.9. 2017 시즌4.10. 2018 시즌4.11. 2019 시즌
5. 연도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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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C 사바시아의 커리어를 서술한 문서.

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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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야구, 미식축구, 농구 등 만능 스포츠맨[1]이였지만 자신은 야구를 선택했고 1998년 드래프트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입단한다.

2.1. 마이너 리그 시절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7위였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2.2. 2001 시즌

2001 시즌, 첫 시즌부터 33경기 180.1이닝 17승 5패 4.39ERA 171K라는 신인으로는 매우 우수한 탈삼진 능력과 이닝 이팅을 선보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정작 신인왕 투표에선 스즈키 이치로에게 밀려 2위에 만족하게 된다.[2] 물론 이 시즌 이치로가 MVP와 신인왕을 석권하는 몬스터 시즌을 보냈기 때문이지 사바시아가 모자랐던 탓이라 보긴 어렵다. 이 시즌 포스트시즌에 우연찮게도 이치로의 시애틀 매리너스와 디비전 시리즈를 가지게 됐는데, 첫 포스트시즌 등판에 6이닝 2실점으로 QS를 기록했지만 패전투수가 되었다. 팀도 5차전 끝에 시애틀에 시리즈를 내주고 말았다.

2.3. 2002 시즌

2002년에도 33경기 210이닝 13승 11패 4.37ERA 149K에 BB/9도 3.8로 줄이며 준수한 활약을 하며 2001 시즌의 활약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였다.

2.4. 2003 시즌

그 다음해인 2003년에는 197.2이닝을 던지는 동안 처음으로 3점대 ERA(3.60)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며 활약했는데 승수는 또 13승이었다. 아무래도 팀 전력이 약한 상황이다보니 한계가 있던 상황.

2.5. 2004 시즌

2004년, 188이닝 11승 10패 4.12를 기록하며 또 올스타에 뽑혔다. 이 시즌에 보스턴과의 시리즈에서 상대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2연속으로 붙었는데 2연패를 하고 말았다.

2.6. 2005 시즌

2.7. 2006 시즌

2006년에는 192.2이닝을 먹으며 12승 11패 ERA 3.22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특히 6완투 2완봉으로 향후 리그를 대표할 완투형 이닝이터로 거듭났고 2007년에 포탠셜이 터졌다.

2.8. 2007 시즌

2007시즌은 포텐이 한껏 만개한 시즌이었는데, 무려 241이닝을 던지고 19승 7패 3.21ERA를 찍으면서 올스타에 선정됐다. 훌륭한 성적 덕에 보스턴 레드삭스 조시 베켓을 제치고 드디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사이 영 상을 수상하고 MVP 투표에서도 14위를 기록했다. 클리블랜드 역시 사바시아를 비롯해 빅터 마르티네스, 로베르토 에르난데스 등의 활약에 힘입어 96승 66패로 AL 중부 지구 1위를 차지하고 6년만에 다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뉴욕 양키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선발 출장한 사바시아는 홈런을 2개 허용하는 등 5이닝 3실점으로 부진한 피칭을 펼쳤지만, 무려 12점을 낸 타선의 도움을 받아 데뷔 후 첫 포스트 시즌 승리를 거뒀고, 팀도 시리즈 스코어 3-1로 승리하면서 무려 1998년 이후 9년만에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다.

하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와 만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만 2패를 당하면서 팀의 시리즈 스코어 3-4 패배의 주범으로 찍혔고, 연이은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으로 가을 야구에 약하다는 오명까지 받고 말았다.

2.9. 2008 시즌

2008 시즌 트레이드 이전까지 122.1이닝 6승 8패 ERA 3.83으로 활약하며 전력이 약한 클리블랜드의 트레이드 후보로 떠올랐다.

3. 밀워키 브루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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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08 시즌

2008년 7월 8일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 되어 밀워키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도왔다. 시즌 기록도 사이영 상을 수상한 2007년보다 좋았지만 시즌 도중 이적으로 인해 아메리칸 리그 내셔널 리그에서 모두 뛰며 기록이 나뉘는 바람에 각각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클리프 리, 내셔널 리그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 린스컴에게 사이 영 상을 내주고 말았다.[3] 물론 리그를 옮겨 밀워키에서 17경기만을 뛰었음에도 사이영상 5위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 위엄을 알 수 있겠다. 만 2년 연속으로 리그 최고 좌완 투수에게 시상하는 워렌 스판 상을 받는데는 성공했다.
기적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끈 사바시아

밀워키 브루어스 이적 후 성적만 잘라서 봤을때는 반 시즌 동안 17경기에 출전해 11승 2패 방어율 1.65를 기록했는데 130.2이닝으로 경기당 평균 무려 7.7이닝을 던졌고 완투 7번에 완봉승만 3번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는 전설들을 소환할만한 활약을 펼쳤다. 삼진 128개, 볼넷 25개로 볼삼비 또한 약 5.1:1의 완벽한 수준. 여담이지만 사바시아가 이끈 미라클 런로 인해 뉴욕 메츠가 1년전에 이어 또 한번 최종전 역전을 허용하면서 다시 흑역사를 남기고 말았다.

사바시아의 활약으로 밀워키 역시 와일드카드 티켓을 거머쥐며 26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성공적인 이적 사례가 되는듯 했지만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 3.2이닝 5실점을 허용하면서 큰 오점을 남겼다. 상대 투수였던 브렛 마이어스에게 볼넷을 허용하고 셰인 빅토리노에게는 만루홈런을 맞는 등 사바시아 개인에게도 그야말로 악몽같은 경기였고, 팀 역시 이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1승 3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4. 뉴욕 양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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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2009 시즌

2009 시즌 하이라이트

그리고 2008년 12월, 7년간 $161M이라는 당시 기준 투수 역대 최고액 계약을 맺고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여 19승과 3점대 초반의 자책점을 기록하며 사이 영 상의 가시권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 해 메이저리그 전체 역사에 거론될 한 해를 보낸 캔자스시티 로열스 잭 그레인키에 밀려 수상에는 실패. 여러모로 2007 시즌 이후로는 분명 리그 최고 수준의 투수임에도 사이영 상에는 인연이 닿지 않고 있다. 팀 역시 정규 시즌 100승을 넘기면서 AL 동부 지구 1위를 차지, 무난하게 포스트시즌에 합류했다.

이번 포스트시즌은 사바시아에게 PS에서 약하다는 그간의 평가를 씻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됐는데, 미네소타 트윈스와 만난 디비전 시리즈에서 6.2이닝 2실점 1자책 8K 호투로 승리를 따냈고,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아예 2경기 선발 등판해 2승 평균 자책 1.13으로 호투하면서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재밌는 점은 사바시아와 마찬가지로 그간 PS만 오면 원래의 포스가 나오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은 알렉스 로드리게스 또한 이번 포스트시즌에는 맹활약했다는 점. 여러모로 양키스 선수들에게 그간의 한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된듯.

2009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상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선발 에이스인 클리프 리와 투수전을 펼쳤다.[4] 결과는 7회까지 2실점한 사바시아의 패배.[5] 하지만 4차전에서는 양키스의 3인 선발 로테이션(사바시아- A.J. 버넷- 앤디 페티트)으로 인한 체력 저하에도 불구하고 6.2이닝 2실점으로 제 몫을 해냈다. 포스트시즌 내내 1선발, 3인 로테이션으로 인한 3일 휴식 후 등판을 견뎌냈으며 마쓰이 히데키의 대활약으로 2009년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다.오자마자 월시 반지 냠냠

여담으로 사바시아 본인은 미디어에서 CC라고 표시되는것 보다 C.C.라고 표시되는것을 더 선호했었다. 카스텐 찰스(Carsten Charles)라는 자기 퍼스트네임의 약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된 후부터 C.C.대신 CC로 등록명을 바꾸었다. 미국 위키피디아에도 CC Sabathia로 나와있다. 약자대신 아예 CC라는 등록명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4.2. 2010 시즌

2010 시즌에도 빼어난 성적을 보이면서 21승을 기록했다. 다만 ALCS 1차전에서 털리는 바람에 팀이 1패를 앉고 시작해버리는 줄 알았으나 텍사스 불펜이 퐈이야 하면서 패전은 모면했다. ALCS 5차전에서는 6이닝 동안 안타는 10개 넘게 맞았으냐 훌륭한 병살유도로 2실점으로 선방하지만 결국 팀은 6차전에서 텍사스에게 져서 탈락.

2010 시즌, 사이 영 상 떡밥의 양대 주인공 중 하나였다. 상대는 펠릭스 에르난데스. 사이 영 상의 고전적 떡밥인 다승이냐 리그에서의 압도성이냐의 논쟁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로 성적이 난 두 선수였다. 사바시아는 다승은 리그 1위였지만 ERA는 아무래도 펠릭스보다 못했고, 펠릭스는 다승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사바시아에 앞서 있었다. 결과는 킹 펠릭스의 승. 다승왕인데 페이크 주인공

4.3. 2011 시즌

양키스에서의 커리어 하이 시즌

2011 올스타전에 탈락했다. 본인은 왜 자신이 탈락했는지 모르겠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결국 추가 선수로 뽑혔다.

당초 양키스와의 계약에 2011년 이후 옵트아웃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있었다. 2011시즌엔 그만큼 좋은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옵트아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6]
2011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ALDS 1차전에서 선발로 나서서 AL 투수 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저스틴 벌랜더와 대결했지만 뜻하지 않은 비로 인해 1차전이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선언되었고 다음 날 재개된 경기에서 실질적인 선발 이반 노바로 교체되었다. 그 뒤 시리즈 전적 1-1로 맞붙은 3차전에서 다시 벌랜더를 만났지만 5.1이닝에 7안타 4실점을 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ALDS 5차전 벼랑 끝 승부에서는 커리어 최초의 구원등판을 감행하기도 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시즌 종료 후 옵트아웃을 선언하긴 했는데, 역시 예전부터 가족들의 적응 같은 문제로 뉴욕 생활에 만족을 표시했던 CC의 태도 덕분인지 양키스와의 연장계약 협상은 의외로 빨리 끝나서 FA 시장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기사

양키스도 그간 고생한 에이스의 체면을 살려주는 의미로 기존 2012~15년 $92M의 잔여연봉에다 2016년 $25M으로 1년을 더 보장하고 2017년 $25M 베스팅 옵션(바이아웃 $5M. CC가 어깨부상을 당하지 않는 한 무조건 실행)의 조건을 추가하여 양측의 협상이 빨리 마무리 되었고 재계약을 발표한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과 함께 양키스 팬들에게 크게 칭송받았다. 어떤 먹튀와는 다르다 당초 3년 가까운 연장계약까지 예상되었던 험난한 협상이 의외로 쉽게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양키스의 오프시즌 행보에는 큰 탄력이 붙었다 할 수 있겠다.

4.4. 2012 시즌

2012년에도 전반기 막판에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기도 했지만 금방 복귀하여 꾸준한 활약으로 본인의 장기인 이닝이팅을 선보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지 구속이 살짝 하락했다는 점인데, 그래도 평균 시속 92마일 전후의 포심 구속을 유지한데다 애초에 포심 패스트볼로만 윽박지르는 타입도 아니라 당장 큰 상관은 없다 할 수 있다. 다만 슬라이더의 비중을 예년에 비해 높게 가져가면서 팔꿈치 부상 우려가 높아졌다는 점은 하락세를 암시한다 볼 수도 있다. 내구성 하나는 이었던 선수가 1년에 두번이나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된 것이 그 증거.

그런데 부상자 명단에 두번이나 갔다 오고도 기어이 200이닝을 채웠고 15승을 거뒀다. 이건 뭐(...)

이후 포스트시즌에서 선발로 활약했으나 팀은 디트로이트에 패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

4.5. 2013 시즌

2013년에는 7월 3일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200승을 달성했지만 2013년 사바시아의 행보는 부진했다. 우선 구속이 감소한 것이 크고, 그 외에도 노쇠화 증세가 있는 것인지 영 부진하기 짝이 없는 모습인데다가 9월말엔 햄스트링 부상이 겹쳐 조기에 시즌 아웃.

시즌 최종 성적은 32경기 211이닝 14승 13패 평균자책점 4.78 175탈삼진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조정 ERA가 100 이하로 떨어지는 커리어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저 성적을 레어 준 마구마구는 야구를 안 본 건가

4.6. 2014 시즌

2014년 시즌을 맞아 에이전트를 JAY-Z로 바꾸고, 체중감량을 하였다. 누구?

사바시아는 체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늘렸다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급격히 감량을 한 걸로 보여 최근 급격한 다이어트를 시도한 정준하를 떠올리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시즌에 접어들자 그 강력한 구위가 확실히 예전만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중.

전반기 끝난 시점에서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하다가 오른쪽 무릎에 내시경 좌멸 괴사 조직 제거 수술을 받기로 하여 시즌아웃이 됐다.

4.7. 2015 시즌

2015년 다시 몸무게를 늘렸지만 여전히 전성기 때에 비교하면 부족하나 확실한 에이스 선발진이 없는 양키스 마운드고, 그래도 규정이닝은 어떻게든 채우며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아줬으나 10월 5일 알콜 중독을 고백하면서 재활을 위해 포스트시즌을 포기한다.

4.8. 2016 시즌

2016년 시즌을 무사히 시작하나 이닝만 먹어줘도 감지덕지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시즌 중반에 다다른 현재 전성기를 뛰어넘는 페이스로 부활하였다. 최근 7경기에서 4승 2패 ERA 0.82로 광분하는 중이며 규정이닝에 살짝 모자라긴 하지만 아메리칸 리그 선발 평균자책점 1위인 대니 살라자르에 0.01보다 뒤쳐진 2위에 자리하고 있다. 그야말로 올해의 재기상의 유력한 후보. 귀신같은 페팃의 예언

그러나 시즌 중반부터 조금씩 페이스가 떨어지며 7월 27일 현재 18경기 6승8패 ERA 3.95의 시즌 성적을 기록중이다.

결국 승운이 따르지 않아 9승 12패 ERA 3.91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페이스가 떨어지며 10승에는 실패하였지만 2012년 이후 처음으로 3점대 방어율로 시즌을 마감하여 나름대로 부활에 성공한 시즌이라고 볼수있다. 과연 FA로이드일지 아닐지는 내년이 중요하겠지만....

4.9. 2017 시즌

부활

2017년에는 나름대로 부활해서 27경기 14승 5패 3.69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2013년 이후 무려 4년만의 두자릿수 승수. 포스트시즌에서도 4경기 2.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나름 잘해주었으나 4경기동안 19이닝을 기록한 점은 아쉽고 양키스 역시 ALCS서 7차전끝에 휴스턴에게 패배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통산 237승을 기록, 250승까지는 무난히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시즌 후 FA로 풀렸고, LA 에인절스의 오퍼를 받았으나 양키스에 대한 애착이 강해 1년 10M의 단년 계약을 맺었다.

4.10. 2018 시즌

개막 이후 현재 24경기 7승 5패 ERA 3.36의 그나마 유일한 약점이라고 꼽히는 양키스 선발진을 이끌고 있다. ERA+도 130으로 매우 훌륭하다. 현재까지 244승 2966K를 기록 중. 그리고 자신은 올 시즌 우승한다면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하니 어쩌면 마지막 시즌이 될지도 모른다.

중간에 부상으로 DL에도 오르는 등 몇번 로테이션을 거르긴 했지만 그래도 29경기를 등판하여 153이닝 9승 7패 3.65 140탈삼진의 수준급 성적을 기록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닝 소화력도 부족하고 마지막에 10승을 놓치는 등 마무리가 좀 아쉽긴 했지만 38살의 나이라고는 믿기 힘든 성적. 통산 250승까지는 4승, 통산 3000탈삼진까지는 14개밖에 남지 않았다. 올시즌 은퇴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지가 주목되는 부분. 은퇴하지 않고 내년 시즌도 선수로 뛰게 된다면 두 기록을 모두 달성하게 될 텐데, 그러면 명예의 전당행에 정말 파란 불이 켜질 것이다.

2018 ALDS 4차전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라는 큰 임무를 받았으나, 3이닝 동안 3실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패배와 포스트시즌 탈락을 막지 못했다. 가을 야구에 약하다는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팀 선발진이 전반적으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딱히 사바시아만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

한국 시간으로 11월 7일 양키스와 1년 8M에 재계약에 합의했다는 기사가 떴다. 시즌 종료 후 3개의 팀에서 접근이 있었다고 했는데 선수 본인은 양키스만을 생각했다고. 덕분에 고령이지만 로테이션을 꾸준히 돌아주는 선발투수치고는 생각보다 싼 가격으로 계약했다. 이로써 양키스 유니폼을 한시즌 더 입게 되었으며, 부상으로 한시즌을 통으로 날린다던가 하는 일만 없다면 250승-3500이닝-3000탈삼진이라는 대기록 달성은 기정사실[7]이고,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도 한 층 높아지게 된다.

양키스 구단은 이닝 옵션 미달에도 불구, 사바시아에게 이닝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2018시즌 155이닝을 던져야 이닝 보너스 50만 달러(약 5억 6600만 원)를 받을 수 있었다. 사바시아가 지난 9월 28일 탬파베이와 시즌 마지막 경기서 7이닝을 던지면 보너스를 받는 상황. 하지만 사바시아는 2이닝 남겨두고 위협구로 퇴장 당해 보너스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탬파베이전 6회초, 양키스 포수 오스틴 로마인이 타석에 들어오자 탬파베이 투수 앤드루 키트릿지가 로마인 등 뒤로 가는 위협구를 던졌다. 이에 사바시아는 6회말 보복성 위협구를 던져 퇴장을 당했다. 위와 같은 구단의 결정은 사바시아의 행동이 팀을 위한 것으로 판단한 것. 사바시아의 에이전트 카일 사우전드는 “양키스의 아주 나이스한 행동”이라며 구단을 칭찬했다. #

4.11. 2019 시즌

한국시간으로 2018년 11월 10일 ESPN의 보도를 통해 2019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서 양키스 구단도 그의 은퇴를 예고한 바 있어 진짜로 마음을 굳힌 듯 하다. 250승까지 단 4승, 3000탈삼진까지는 고작 14탈삼진만 남아 있다. 3000탈삼진은 시즌 시작부터 한해 내내 드러눕지만 않으면 사실상 확정이라고 봐야 하고, 250승도 달성 가능성이 높은 상황.

2018년 12월 심장 부근 혈관 확장 수술을 받은 사바시아는 스프링캠프 도중 무릎에도 문제가 생겨 결국 부상자 명단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다행히 재활은 순조로웠다. 4월 8일엔 마이너 재활 등판을 무사히 마쳤고, 이날 시즌 첫 등판 날짜가 4월 14일로 잡혔다.

현지 시각 4월 30일 시즌 세 번째 등판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원정경기에서 3000탈삼진을 달성했다. 역대 17번째, 좌완으로는 3번째인 대기록으로, 올시즌을 풀타임으로 잘 치르기만 한다면 3084개의 존 스몰츠, 3116개의 커트 실링, 3117개의 밥 깁슨을 넘어 역대 14위까지 넘볼 수 있을 전망. 그러나 5.2이닝 5K 2실점을 기록했음에도 7.2이닝 7K 1실점을 기록한 잭 그레인키에 막혀 패전투수가 되었다.
[kakaotv(398429753)]

5월 12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는 5회에 오스틴 메도우스에게 위협구를 던져 논란을 일으켰다. 덕아웃에 들어갈 때에 “엉덩이 맞히려 했다”고 말한 모습이 화면에 잡혀 더욱 논란이 되는 중.

현지 시간 기준 2019년 5월 2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원정경기에서 5이닝 동안 6피안타 2피홈런 5실점 4자책점으로 좋지 못했으나 소속팀 양키스 타선의 도움을 받으며, 이번 시즌 3승을 기록하였고, 통산 250승에 1승만 남겨두게 되었다. 그러나 경기 후 무릎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행히 부상이 크지 않아 6월 초 복귀가 예상된다고.

6월 19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3피안타 3볼넷 7K 1실점의 호투를 펼치며 승리투수가 됐다. 이 승리로 개인 통산 250승[8]을 거뒀고, MLB 역대 통산 14번째 250승-3000K 달성자가 되었다.

7월 9일에 열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에 초청되어 경기 전에 시구를 했다.[9] 이후 1점 차 팽팽한 접전 속에 9회에 투수코치 대행 자격으로 아롤디스 채프먼을 격려하기 위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깜짝쇼에 관중석은 다시 한 번 흥분으로 들썩였고, 사바시아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자신의 마지막 올스타전을 마무리했다.[10] 이러한 MLB의 레전드 대우에 한국에서는 KBO에 "MLB를 보고 배워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7월 16일 탬파베이 레이스 전에서는 6이닝 5피안타 6K 3실점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등판 결과보다 아비사일 가르시아와의 감정싸움이 이슈가 되었다. 때는 6회초 2사 2루에서 가르시아를 루킹 삼진 처리하자 삼진을 당한 가르시아가 아쉬움에 사바시아를 쳐다봤고, 마운드를 내려가던 사바시아도 소리를 치면서 시비가 붙은 것. 이에 가르시아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양 팔을 들었고, 사바시아도 가던 길을 멈추고 가르시아에 다가갔다.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몰려나와 벤치클리어링이 이루어지는 일촉즉발 상황이었지만 디디 그레고리우스가 온몸으로 사바시아를 저지해 물리적인 충돌로 이어지진 않았다. 경기 후 사바시아는 자신의 오해였음을 인정했고, 가르시아도 "사바시아의 분노에 황당했으며 평소에 사바시아를 존중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탬파베이의 윌리 아다메스는 사바시아와의 갈등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며 사바시아를 향해 지적하기도 했다.

7월 27일 보스턴 레드삭스 전에서는 4⅓이닝 동안 9피안타(2피홈런) 5실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른 무릎 염증 부상으로 10일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은퇴 후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게 될 경우 양키스를 택할 것임을 밝혔다.

8월 24일 LA 다저스 원정에서 선발등판하여 4이닝 5피안타(1피홈런) 7탈삼진 1볼넷 2실점을 기록하며 5회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나쁘지는 않은 피칭을 선보였다. 하지만 팀이 2-1로 패배하면서 시즌 8패째를 안고 말았다. 여담으로 이 날 상대 선발 투수였던 토니 곤솔린이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때,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행사에 사바시아가 참석해 곤솔린의 팀을 위해 배트에 사인을 해줬고, 곤솔린은 사바시아를 상대하는 것이 정말 꿈같은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9월 1일 오른쪽 무릎 염증을 사유로 1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들어 3번째 부상자 명단 행. 9월 11일에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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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LA 에인절스와의 홈 경기에서 마지막 홈경기 고별전을 가졌다.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마지막 등판 결과는 2.2이닝 5피안타 4K 62구 2실점. 마운드에서 물러나며 사바시아는 양키 스타디움의 홈 팬들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양키스 홈팬들도 사바시아를 향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7 1/3이닝 107탈삼진 ERA 4.95 WHIP 1.41.

어깨 통증이 도져 최근 코르티손 주사를 맞았고 결국 디비전시리즈 로스터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로스터에는 포함됐다. 애런 분 감독에 의하면 일단 불펜 역할을 맡을 것인데, 선발로 돌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신임이 두터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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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7일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 경기에서 팀이 3-7로 뒤진 8회 무사 1, 3루 상황에서 등판을 가졌는데, 조지 스프링어를 상대하던 도중 왼쪽 어깨 부상을 입으면서 연습투구를 가져봤지만 결국 교체되었다. 사바시아는 자신의 마지막 등판임을 직감한 듯 글러브에 얼굴을 파묻은 채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양키스 팬들과 휴스턴 선수[11]들은 그런 사바시아를 향해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사바시아는 부상으로 인해 사실상 현역 마지막 등판을 마쳤다.

사바시아는 인터뷰를 통해 "전날 아내에게 불펜 등판이 나에게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불펜에서부터 마운드로 뛰어나올 때까지 느낌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이다. 내년 7월에도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던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됐다. 더 이상 던질 수 없을 때까지 던졌다. 은퇴에 딱 맞는 상황인 것 같다."며 아쉬움을 보였고, 팬들의 기립 박수에 대해서는 "나를 더 감정적으로 만든 거 같다. 팬들이 내 이름을 외치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기분이 좋아졌다. 11년전 옳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팀을 사랑하고, 팬들을 사랑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조 지라디 전 양키스 감독은 "사바시아가 이런 식으로 현역을 끝내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명예의 전당 입회를 예약한 사바시아는 내가 겪은 누구보다 강인했고, 마운드에 설 수 있도록 매일 노력해 온 선수다."라고 평했다. 그리고 "사바시아는 위대한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내가 겪은 선수 중 가장 위대한 팀 동료다. 사바시아는 클럽하우스에서 25명, 때로는 50명을 하나로 이끄는 능력을 발휘했다. 승리가 필요할 때 항상 마운드에 올리고 싶은 투수였다. 9년간 그와 함께 할 수 있던 건 영광이었다. 사랑한다"며 눈물과 함께 헌사를 건넸다.

2019년 10월 21일 본인의 SNS를 통해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사바시아는 은퇴 선언문에서 "클리블랜드와 밀워키, 뉴욕 등 과거와 현재의 모든 팀원과 나눈 경험에 감사한다. 내가 항상 원했던 것은 뛰어난 팀 동료가 되는 것과 이기는 것"이라며 "그래서 올해 끝까지 싸운 우리 팀이 자랑스럽다"라고 하며 은퇴를 선언했다.

5. 연도별 기록

파일:MLB 로고.svg CC 사바시아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1 CLE 33 17 5 0 0 180⅓ 4.39 149 19 95 7 171 1.353 102 2.7 2.9
2002 33 13 11 0 0 210 4.37 198 17 88 1 149 1.362 100 3.6 3.3
2003 30 13 9 0 0 197⅔ 3.60 190 19 66 6 141 1.295 122 3.5 3.7
2004 30 11 10 0 0 188 4.12 176 20 72 7 139 1.319 106 2.8 3.1
2005 31 15 10 0 0 196⅔ 4.03 185 19 62 7 161 1.256 104 3.6 1.8
2006 28 12 11 0 0 192⅔ 3.22 182 17 44 7 172 1.173 139 5.0 4.6
2007 34 19 7 0 0 241 3.21 238 20 37 8 209 1.141 141 6.4 6.3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8 CLE/ MIL 35 17 10 0 0 253 2.70 223 19 59 7 251 1.115 156 7.3 6.7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9 NYY 34 19 8 0 0 230 3.37 197 18 67 9 197 1.148 137 5.8 6.2
2010 34 21 7 0 0 237⅔ 3.18 209 18 67 9 197 1.191 136 5.5 4.8
2011 33 19 8 0 0 237⅓ 3.00 230 17 61 7 230 1.226 143 5.8 6.4
2012 28 15 6 0 0 200 3.38 184 22 44 8 197 1.140 125 4.1 3.4
2013 32 14 13 0 0 211 4.78 224 28 65 4 175 1.370 84 2.1 0.0
2014 8 3 4 0 0 46 5.28 58 10 10 4 48 1.478 73 0.0 -0.6
2015 29 6 10 0 0 167⅓ 4.73 188 28 50 6 137 1.422 86 1.2 1.1
2016 30 9 12 0 0 179⅔ 3.91 172 22 65 9 152 1.319 110 2.6 3.1
2017 27 14 5 0 0 148⅔ 3.69 139 21 50 5 120 1.271 122 1.8 2.8
2018 29 9 7 0 0 153 3.65 150 19 51 11 140 1.314 115 2.3 1.8
2019 23 5 8 0 1 107⅓ 4.95 112 27 39 3 107 1.407 90 0.4 0.4
MLB 통산
(19시즌)
561 251 161 0 1 3577⅓ 3.74 3404 382 1099 123 3093 1.259 116 66.5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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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보면 매치가 안될 정도로 홀쭉하다. [2] 흠이라면 볼넷이 95개나 됐다. BB/9이 무려 4.7. [3] 사바시아가 인디언스에 남기고 간 유산들은 대부분 실패했지만, 다행히 사이드에 가까웠던 마이클 브랜틀리가 올스타급으로 성장하였다. [4] 리 또한 2009년까지 클리블랜드에서 뛰었으며 2008년도에 사이영 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다. [5] 상대 클리프 리가 완투승을 기록했다. [6] 사바시아 본인은 처음 예상과 달리 가족과 자신의 뉴욕 생활이 익숙해지자 옵트 아웃을 행사할 마음이 없다고 밝히긴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옵트 아웃을 한다고 반드시 양키스를 떠난다는 말은 아니고 사실상 알렉스 로드리게스 옵트아웃 때와 마찬가지로 CC의 몸값을 감당할 수 있는 팀은 양키스 밖에 없으니까. [7] 2018시즌까지 246승 3470이닝 2986탈삼진을 기록해, 250승-3500이닝-3000K까지 4승 30이닝 14K만 남았다. [8] 역대 46번째 [9] 시구를 받아준 이는 클리블랜드의 레전드인 샌디 알로마 주니어였다. [10] 알렉스 코라 감독이 계획한 것이라고 한다. [11] 여기엔 2020시즌부터 양키스 1선발로 활약하고 있는 게릿 콜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