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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8 14:42:34

BFC 디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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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리너 FC 디나모
Berliner FC Dynamo
<colbgcolor=#621533><colcolor=#fff> 정식 명칭 Berliner Fussball Club Dynamo e. V.
별칭 Weinrot-Weiß
창단 1966년 1월 15일 ([age(1966-01-15)]주년)[1]
소속 리그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 (Regionalliga Nordost)
연고지 베를린 리히텐베르크 알트-호엔쇤하우젠
(Alt-Hohenschönhausen, Lichtenberg, Berlin)
홈구장 슈포르트포룸 호엔쇤하우젠
(Sportforum Hohenschönhausen)
(12,000명 수용)[2]
라이벌 1. FC 우니온 베를린 - 베를린 더비
SG 디나모 드레스덴
회장 파일:독일 국기.svg 노르베르트 울리히 (Norbert Uhlig)
단장 파일:독일 국기.svg 안젤로 피어 (Angelo Vier)
감독 파일:독일 국기.svg 디르크 쿠네르트 (Dirk Kunert)
주장 파일:독일 국기.svg 크리스 레어 (Chris Reher)
공식 웹사이트 파일:BFC 디나모 베를린 로고.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X Corp 아이콘(화이트).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우승 기록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
(4부)

(1회)
2021-22
오버리가
노르트오스트
노르트

(5부)

(3회)
1991-92, 2000-01, 2013-14
베를리너 란데스포칼
(6회)
1998-99, 2010-11, 2012-13, 2014-15, 2016-17, 2017-18

DDR 오버리가
(1부)

(10회 / 최다 우승)
1978-79, 1979-80, 1980-81, 1981-82, 1982-83,
1983-84, 1984-85, 1985-86, 1986-87, 1987-88
DDR 리가
(2부)

(2회)
1957, 1967-68
FDGB-포칼
(2회)
1987-88, 1988-89
DFV-슈퍼컵
(1회)
1989
클럽기록
최다 출장 파일:독일 국기.svg 보도 루트발라이트 (Bodo Rudwaleit) - 360경기 (1976-1989)
최다 득점 파일:독일 국기.svg 라이너 에른스트 (Rainer Ernst) - 101골 (1979-1990)
1. 개요2. 역사
2.1. 동독 시절2.2. 통일 이후
3. 최근 시즌
3.1. 2020-21 시즌3.2. 2021-22 시즌3.3. 2022-23 시즌3.4. 2023-24 시즌
4. 여담
4.1. 울트라스
5. 유명 선수6. 같이보기

[clearfix]

1. 개요

BFC 디나모는 독일의 축구클럽이며 현재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에 소속되어 있다. DDR 오버리가 10회 연속 우승기록과 최다 기록을 가지고 있어 동독에서 가장 성공적인 축구팀중 하나이지만 후술할 조작으로 인해 독일내에서 그렇게 좋은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 클럽이다.

2. 역사

2.1. 동독 시절

파일:SC 디나모 베를린 로고.svg
SC 디나모 베를린 시절 로고

1954년 슈타지 회장 에리히 밀케에 의해 SG 디나모 드레스덴 1군팀의 연고지를 베를린으로 옮겨 창단시킨 종합스포츠 클럽인 SC 디나모 베를린이 원조인데, 이 디나모 베를린에서 1966년 축구클럽을 따로 창단한것이 BFC 디나모이다.

1955년 BFC 디나모가 창단되기전부터 SC 디나모 베를린이라는 이름으로 리그에 참가했는데, 당시 베를린에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헤르타 BSC, SpVgg 블라우바이스 1890 베를린등 강력한 팀들이 많았기에 성적이 좋지 않자 강제로 디나모 드레스덴선수들을 통째로 이적시켰다.[3]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리그 7위에 그쳤고 2부리그 강등도 경험하게 된다. 이후 61-62시즌부터 리그가 개정되었는데 이때부터 SV 디나모를 위해 인재를 양성하는 11개의 클럽이 창단되었고,[4] 이후 1966년 SC 디나모 베를린에서 축구부서를 독립시켜 BFC 디나모가 창단된다.

BFC 디나모는 동독내 최고의 엘리트 클럽이었으며 선수들은 사회주의의 영웅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당시 동독내 최고의 코치진, 훈련시설및 장비등과 함께 훈련했다. 여기에 다른팀 선수들까지 강제로 이적시키며 동독 최고의 클럽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항상 강제이적이 성공적이지는 않았는데 대표적인 예가 1965년 SC 디나모 슈베린. 이팀에서 3명의 선수를 이적시키려다 당시 동독 집권당이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의원들까지 끌어들이는 격한 싸움끝에 이적에 실패한 일이 있었는데 이 일로인해 두팀간의 사이는 엄청나게 나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1966-67시즌엔 2부리그로 강등당하며 끝났다. 이 2부리그엔 앞에 설명했던 SC 디나모 슈베린이 있었는데 이 둘간의 경기의 심판을 매수하며 엄청난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찌어찌해서 우승해 1968-69시즌에 다시 1부리그로 복귀한다. 하지만 이전에 선수들을 전원 이적시켜서 4부리그까지 강등되었던 디나모 드레스덴이 다시 돌아오며 다시 강팀에 군림했고 거기다 1. FC 마그데부르크, 그리고 가장 강적이었던 동독 군대에게 후원받는 포어베르츠 베를린이 버티고있었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슈타지와 동독 군대간의 싸움이 있었는데 슈타지가 승리하며 포어베르츠 베를린을 강제로 프랑크푸르트안데어오데르로 연고이전시켜버렸다. 하지만 디나모 드레스덴과 마그데부르크에겐 별로 손을 써보지 못했고, 이 두 클럽에게 우승 문턱에서 번번히 막히고 만다.

그러다 1978-79시즌부터 1987-88시즌까지 위르겐 보그스 감독의 지휘 하에 거짓말처럼 10시즌 연속 리그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 기간동안 무려 36경기 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5] 당연히 이 대기록은 각종 조작과 협박, 라이벌 구단에서의 선수빼오기, 심판 매수 등의 편법으로 달성했기에 별로 독일내에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6] 그리고 실제로 대다수의 축구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7] 게다가 80년대에 클럽이 계속해서 유럽 대항전에 진출해 서독 팀들을 만나게 되자[8] 팬들에게는 판매를 금지하고 동독의 정치가들에게만 티켓을 판매해버려 더욱 팬들이 등을 돌렸다.

2.2. 통일 이후

파일:fcberlin.png 파일:BFC 디나모 베를린 로고.svg 파일:BFC 디나모 베를린 로고(2009~2023).svg
FC 베를린 시절 로고 BFC 디나모 로고[9] BFC 디나모(구) 로고[10]

통일되기 직전 몇시즌동안 급격하게 성적이 나빠지더니 통일이후 3부리그였던 NOFV-오버리가로 편입되었다. 당연히 강제로 이적시켰던 국대급 선수들은 죄다 서독으로 빠져나갔고, 성적은 더욱 곤두박질쳤다.
통일 직후 동독경찰 후원 사실을 숨기기 위해 팀명을 FC 베를린으로 바꾸었으나 팬들을 끌어들이는 데 별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1999년 남아 있는 팬들의 요구로 팀명에 '디나모'가 돌아왔다. 하지만 동독시절 로고에 들어있던 SV 디나모의 상징인 D 모양 로고의 상표권이 잠시 FC 베를린으로 바꾼 사이에 당시 헤르타 BSC 극우 서포터 단체에 넘어가버리며 로고에서 D를 뺄 수밖에 없었다.

동독 경찰의 이미지가 좋을 리가 없으니 팀 자체의 인기도 떨어져서 동베를린 대표 입지도 우니온 베를린[11]에게 빼앗기고 5부리그까지 강등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13-14시즌 NOFV-오버리가 노르트에서 우승하며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로 승격했다.

3. 최근 시즌

3.1. 2020-21 시즌

2020-21시즌 7라운드가 끝난 현재 4승 1무 2패로 3위에 올라있다.

3.2. 2021-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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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 로고.svg
Meister Regionalliga Nordost
2021-22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 우승팀

여름 이적시장에서 1. FC 마그데부르크의 레전드 크리스티안 베크를 영입했다.

베크가 리가 탑급 공격수 활약을 해주며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잠시 주춤한 사이 베를리너 AK에게 1위를 뺏겼다. 이후 다시 1위로 올라서긴 했으나 그사이 FC 에네르기 코트부스 역시 우승권으로 치고 올라오며 우승경쟁이 치열해졌다.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나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레기오날리가 노르트 우승팀인 VfB 올덴부르크한테 2-3로 패하며 3.리가 승격에 실패했다.

3.3. 2022-23 시즌

3.4. 2023-24 시즌

2023년부터 과거 동독시절 사용한 로고를 다시 사용한다. 여기는 긴 이야기가 있는데, 과거 독일이 통일되면서 FC 베를린으로 팀명을 바꿀때 이 로고에 대한 권리를 잃어버렸고,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가 2023년이 되어서야 다시 되찾은 것이다.

로고를 되찾은 영향인지 지난시즌과는 다르게 리가에서 타이틀경쟁에 참가하고 있다. 구단은 현재 홈구장인 슈포르트포룸 호엔쇤하우젠을 3부리그 규정에 맞는 구장으로 증축하고 싶어하지만 베를린 시에서는 UEFA 유로 2024 대비의 일환으로 베를린의 다른 축구장인 몸젠슈타디온을 증축하려하며 팬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17승 10무 7패, 4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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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울트라스

파일:bfc dynamo ultras.jpg


동독 시절 최초로 팬클럽이 생긴 구단중 하나였으며, 당시 슈타지 회장이었던 에리히 밀케가 지원한다는 사실에 젊은 팬들이 많이 지지했다. 따라서 동독 울트라스 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울트라스중 하나였다. 동독에서 가장 팬층이 두터웠던 1. FC 우니온 베를린[13], BSG 헤미 라이프치히 울트라즈들과 엄청나게 싸웠으며, 특히 같은 동베를린을 연고로하던 우니온과 강한 라이벌리가 형성되어있었다. 다만 슈타지가 후원했다고는 해도 팬과 구단과의 성향의 차이는 있어서 스킨헤드와 히피들, 펑크 등 불량해보이는 사람들이나 반정부적인 성향의 팬들도 많았다고 하며, 1980년대에 훌리건 간의 싸움이 동독에서 사회문제로 지목받게 되자, 당국에서 재제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후 선수들이 서독 클럽들로 팔려나갔고, 동시에 동독 사람들의 경제도 파탄이 나면서 서포터층이 붕괴되었다. 결국 젊은 스킨헤드 등 극우파나 구 동독 지지 성향의 극좌파만 남았으며 온건한 팬들은 모두 우니온 팬덤에 흡수되었다. 이후 서방 세계에 만연했던 훌리건이 동독 축구계를 강타했고, 디나모 베를린 울트라스들 역시 훌리건행위를 시작했다. 가장 심했던 시기가 마지막 DDR 오버리가시즌이었던 1990-91시즌. FC 카를 차이스 예나 원정에서는 훌리건들이 도시에서 난동을 부리며 가게의 유리를 깨며 다녔고, 1. FC 우니온 베를린 원정에서는 막대기를 들고 서포터즈석에 들어가 우니온 팬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FC 작센 라이프치히 원정에서 최고조에 달했는데, 당시 두 팀의 서포터즈들이 충돌할것을 우려해 작센 라이프치히 홈구장에 디나모 베를린 팬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고, 이들이 라이프치히 S반 역으로 몰려가 폭동을 일으켰다. 이때 진압경찰의 총을 맞고 마이크 폴리(Mike Polley)라는 팬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 사건 때문에 동서독 통일 기념 동독 국가대표팀 VS 서독 국가대표팀 사이 친선경기가 무산되기도 했다.

현재 팬들은 과거보다는 덜 폭력적이며, 연령대도 다양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클럽자체에서 인종차별 관련된 구호를 외치는 팬들을 내쫓는다거나 여러 캠페인을 열며 자중하는 분위기. 2001년 클럽이 파산 위기에 닥쳤을때 모금활동으로 클럽을 구해내기도 했다.

5. 유명 선수

사실상 동독 국대 베스트 11이 거의 소속되어 있었다.

6. 같이보기

파일:동독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1990-91 시즌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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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 FC 로코모티프 라이프치히 로고.svg
파일:FC 로트바이스 에어푸르트 로고.svg
파일:1. FC 마그데부르크 로고.svg
파일:fcberlin.png
파일:FC Stahl Brandenburg.png
파일:Frankfurter_Viktoria.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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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C 에네르기 코트부스 로고.svg
파일:Sachsen Leipzig.png
파일:켐니츠 FC 로고.svg
파일:FC 카를 차이스 예나 로고.svg
파일:FC 한자 로스토크 로고.svg
파일:Chemie Halle.png
}}}}}}}}} ||

[1] # [2] 1975–1986, 1987–1992, 2014–2020동안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얀 슈포르트파르크를 사용했으나 2021년부터 계약이 만료되어 현재의 경기장을 사용한다. [3] 이때 이적한 선수들중 일부는 이미 SG 폴크스폴리차이 포츠담에서 드레스덴으로 한번씩 강제이적한 경험이 있었다. [4] 이중에는 디나모 드레스덴도 포함된다. [5] 이 기록은 약 1년 반만에 카를 마르크스 슈타트 FC에 의해 깨졌다. [6] 연속 우승 초기에는 라이벌 구단에서 빼온 선수들로 구성되어있었으나 80년대부터는 구단의 유소년 클럽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주축을 담당했기에 이런 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당연히 위에서 설명했듯이 동독 최고의 엘리트 클럽이었으니 많은 수준급 유소년 선수들이 뛰었을 것이다. [7] 대다수의 팬들은 노동자들의 클럽인 1. FC 우니온 베를린의 팬이었다. [8] 함부르크 SV, SV 베르더 브레멘 [9] 2023년부터 다시 사용중이다. [10] 2023년까지 사용했다.. [11] 애초에 BFC 디나모의 전성기 시절에도 팬층은 우니온이 더 두꺼웠다. 노동자들의 팀이라 경찰 및 정부의 후원을 받는 팀보다야 지지자가 많았을 수밖에 없고 성적은 관제구단들의 선수 빼가기 때문에 나쁜 것이었으니... [12] 리그 10회 우승 [13] 노동자들의 팀이라는 성향이 강했다. [14] BFC 디나모에서 탈출해 카이저슬라우테른~브라운슈바이크에서 뛰다 의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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