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코트디부아르 쿠데타 1999 Ivorian coup d'ét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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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
1999년 12월 24일 | |
장소 | |
[[코트디부아르|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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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
군사반란(군사 쿠데타) | |
원인 | |
부정부패 정치적 억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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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코트디부아르 정부 | 코트디부아르군 |
지휘관 | |
앙리 코낭 베디에 | 투오 포지에 |
병력 | |
불명 | 코트디부아르군 |
피해규모 | |
불명 | 불명 |
결과 | |
앙리 코낭 베디에 대통령 축출 로베르 게이 군부 정부 수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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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9년 12월 24일 코트디부아르에서 발생한 쿠데타.2. 배경과 전개
1960년 코트디부아르의 독립 이후 펠릭스 우푸에부아니는 33년 동안 코트디부아르를 통치하며 경제 성장을 이끌어냈으나 집권 중후반 들어 경기가 침체되었다. 이런 가운데 1993년 우푸에부아니 사후 당시 국민의회 의장이었던 앙리 코낭 베디에가 우푸에부아니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베디에의 재임기에는 정치적 불안과 경기 침체가 계속되었고 코트디부아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 가운데 이민자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1995년 베디에는 재선에 성공했으나 능력이 부족했고 베디에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다.결국 1999년 12월 23일 투오 포지에의 주도로 쿠데타가 벌어졌고 베디에는 다음날 축출되었다.
3. 이후
운퇴를 준비하던 로베르 게이 참모총장이 평판이 좋아서 쿠데타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다음 선거 때까지 군부 정부의 수반이 되었는데 그는 곧바로 의회을 해산하고 헌법위원회와 최고법원의 기능도 정지시켰다.2000년 10월 22일에 대통령 선거를 진행했고 로랑 그바그보를 제외한 모든 주요 야당 후보가 선거에서 제외되었으나 게이는 그바그보에 패배했다. 게이는 대선 결과에 불복했으나 시위가 번지자 인정하고 라이베리아 국경 근처 구에세소로 피신했다. 이후 게이는 제1차 코트디부아르 내전의 개전 당일 그의 가족과 함께 암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