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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6:24:35

10.26 사건/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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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진3. 기타

1. 개요

10.26 사건 여담을 정리한 문서.

2. 사진

파일:external/dimg.donga.com/41340816.1.jpg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한 가수 심수봉(왼쪽 모자 눌러쓴 여성)과 신재순(오른쪽).
파일:attachment/10.26 사건/10.26.jpg
10.26과 관련된 인물들.[1]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372445_STD.jpg
사건의 전모를 브리핑하는 당시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육군 소장.

3. 기타


[1] 박정희를 중심으로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재규, 오른쪽 끝이 차지철이다. 사진 로고에 가려서 눈치채기 어려운데 사진 맨 왼쪽은 비서실장 김계원이다. 박정희 머리 위에 얼굴을 돌리고 서있는 인물은 박상범 경호관으로 추정된다. 10.26 사건 4년 전 사방공사 시찰 때의 모습이다. 사진에 나와 있는 김재규, 차지철의 위치가 박정희의 왼팔과 오른팔의 위치와 같다는 점이 흥미롭다. [2] 여기서 공개된 장소는 다동으로 불렸던 한옥으로 거기서 정승화가 김정섭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김재규를 기다렸다. [3] 참고로 당시 최고인기가수상은 혜은이가 수상했다. [4] 1979년 10월 28일자 동아일보. [5] 이때 준공비에서 가림막이 내려가지 않고 걸려있는건 당시 대한뉴스 등 기록 영상에서도 확인된다. [6] 준공비 제막식 및 사슴 즉사 에피소드 출처: 조갑제 저 '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제1권. 이건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도 묘사된다. [7] 백운학은 쿠데타 전 자신을 찾아온 김종필에게 대뜸 “당신, 혁명하려고? 그거 성공하니 밀어 붙이시오”라고 말하여 김종필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8] 김호남과 이혼하기 전~ 육영수와 재혼하기 전 사이에 동거했다. [9] 다만 6. 25 당시에는 국군의 역량이 크지 못했고, 북한이 소련, 중국의 원조와 치밀한 준비를 했기에 몰아붙일 수 있었던 것이지, 이 시점에서는 국군의 역량도 커져있었고 북한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어택땅을 하게 되니 북한이 박정희가 죽었으니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오히려 미군과 한국의 명분만 주어서 역으로 박살났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10]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간혹 도쿠가와 이에야스 노태우 김영삼에 비견되기도 한다. 도요토미의 라이벌 혹은 경쟁자였다가 도요토미에게 협력하여 2인자 자리를 얻어내고 이후 1인자의 자리에 올라서자 도요토미 가를 박살냈다는 점에서 착안한 듯. [11] 의외로 중국 본토 연예인들 중 한국의 사회파 영화를 칭찬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데(장쯔이도 영화 변호인을 극찬하기도 했다), 이런 거 보면 중공독재에 입도 못여는 중국 연예계라고 욕도 먹지만, 중국 연예계도 내심 자국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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