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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5 02:30:25

알렉산드르 흘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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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흘렙의 역임 직책
{{{#!folding ▼
벨라루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세르게이 쉬타누크
(2005~2007)
알렉산드르 흘렙
(2007~2009)
유리 제브노프
(2009~2012)
}}} ||
알렉산드르 흘렙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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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의 前 축구선수
파일:흘렙.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알렉산드르 흘렙
Aliaksandr Hleb
본명 알략산드르 파울라비치 흘레프
Аляксандр Паўлавіч Глеб[1]
Aliaksandr Paulavich Hleb
출생 1981년 5월 1일 ([age(1981-05-01)]세)
소련 벨로루시 SSR 민스크
국적
[[벨라루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 체중 69kg
직업 축구 선수 (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유스 FC 디나모-주니 민스크 (1997~1998)
FC 바테 보리소프 (1998~1999)
프로 FC 디나모-주니 민스크 (1998)
FC 바테 보리소프 (1999~2000)
VfB 슈투트가르트 II (2000~2001)
VfB 슈투트가르트 (2000~2005)
아스날 FC (2005~2008)
FC 바르셀로나 (2008~2012)
VfB 슈투트가르트 (2009~2010 / 임대)
버밍엄 시티 FC (2010~2011 / 임대)
VfL 볼프스부르크 (2011 / 임대)
PFC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 (2012)
FC 바테 보리소프 (2012~2013)
콘야스포르 (2014)
겐츨레르비를리이 SK (2015)
FC 바테 보리소프 (2015)
겐츨레르비를리이 SK (2016)
FC 바테 보리소프 (2016)
PFC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 (2017)
FC 바테 보리소프 (2018~2019)
FC 이슬로치 민스크 라이온 (2019)
국가대표 80경기 6골 ( 벨라루스 / 2001~2019)

1. 개요2. 클럽 경력3. 플레이스타일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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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벨라루스 국적의 전 축구선수이다.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현역 시절 별명은 "하얀 늑대"였다.

2. 클럽 경력

1999년 바테에서 데뷔한 흘렙은 2000년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한다.

2001년부터 흘렙은 기량을 만개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치기 시작하였고 다음시즌에는 맹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리그 2위를 이끌었다.

2003-04 시즌 흘렙은 챔스에서 맨유, 파나티나이코스, 레인저스가 묶인 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을 16강에 진출시켰다.

2004-05 시즌 흘렙은 뛰어난 활약을 통해 팀을 이끌었고 로이 마카이, 마르틴 페트로프와 함께 14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공동 어시왕을 차지했다.

이러한 활약을 눈여겨본 아르센 벵거의 제안에 따라 흘렙은 2005년 아스날에 이적한다.

아스날로 이적한 흘렙은 첫 시즌 프레드리크 융베리와 경쟁을 펼치며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2006년을 기점으로 흘렙은 융베리를 밀어내고 팀의 주전을 차지했으며 세스크 파브레가스, 토마스 로시츠키, 마티유 플라미니와 함께 환상의 4중주라고 불릴만큼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2008년 흘렙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으나 차비 에르난데스를 중심으로 한 바르사의 중원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2] 친정팀 슈투트가르트, 버밍엄 시티, 볼프스부르크 등으로 임대생활을 하였고 결국 자유계약으로 풀려난 뒤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친정팀 바테로 돌아와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2019년 2월 22일 유로파리그 32강에서 친정팀 아스날을 상대로 출전하여 분전하였지만 1차전 기적승리후 2차전 3:0 대패로 유로파리그를 마쳤다.

2020년 3월 은퇴를 선언했다.

2021년 7월 바레인 구단인 알-칼리디야와 계약하며 그라운드로 복귀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해당 클럽과 입단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었고 그라운드 복귀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었다. 알-칼리디야가 단순히 구단 홍보 일환으로 흘렙 영입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3. 플레이스타일

'하얀 늑대'라는 별명처럼 굉장히 날렵하고 맹렬한 플레이메이커였다. 드리블에 도가 텄으며, 헛다리짚기나 트릭같은 잔재주 없이 상대방의 타이밍을 빼앗는 양발 드리블과 놀라운 균형 감각만으로 상대와의 1:1을 직진으로 모두 뚫어내는 비범함을 보였다. 이 분야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드리블 방식을 생각하면 된다.

플레이메이커치곤 비교적 장신이지만 호리호리한 체격 때문에 몸싸움이나 파워풀한 플레이를 보이지는 못했다. 그 대신 그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날카로운 플레이들을 선보였다. 분데스리가 시절엔 주로 톱 아래에서 뛰면서 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하나로 군림했으며 도움왕까지 차지했는데, 당시 ' 분데스리가 지단'으로 불리다가 이후 아스날 FC에 입단하였으나, 아스날에선 주로 측면에서 뛰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았다. 나중에는 영향력이 커져서, 아르센 벵거 로빈 반 페르시를 측면으로 돌리면서까지 그를 스트라이커 밑에서 뛰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시켰다.

아스날 FC에선 같은 동구권 선수였던 팀 동료 토마시 로시츠키와 호흡이 매우 좋았으며, 그간 티에리 앙리를 위시한 언비튼 멤버들의 속공 축구에서 탈피하듯이 아스날 FC의 경기 문화를 자신들의 색깔로 물들이는데 일조하였다. 당시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중앙 미드필더이면서도 주로 직접적인 마무리 패스와 슛을 위해 중원을 비워둔 채로 공격의 방점을 찍는 방식으로 플레이스타일을 바꿔 가고 있었는데, 따라서 실제 중원에서 볼줄기의 중심원이 되는 선수는 바로 흘렙이었다. 또한 그는 그의 놀라운 드리블 실력과 드리블시 표정(...)으로 인해 당시 한국 팬들로부터 '흘사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흘렙의 가장 큰 장점은 양발을 사용하는 '직진 드리블'과 한쪽으로 차놓고 달리는 '순간 가속력' 그리고 볼 키핑 이후 나오는 허를 찌르는 타이밍의 '2:1 패스'였다. 티에리 앙리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의 이적 이후 아스날 FC에서 가장 가는 테크니션이었으며, 상대의 압박으로부터 볼을 지켜내고 뚫어낸다는 측면에서 만큼은 아스날에서 유일무이한 대접을 받았다. 또한 수비 가담이 매우 성실하며 활동 반경이 넓었다. 이로 인해 파브레가스가 자신의 장기인 기회 창출에 온전히 신경을 집중하며 공격 스탯이 비약적으로 올라갔다. 이 시기 아스날의 실질적인 플레이메이커는 흘렙이었으며, 파브레가스는 찬스메이커에 가까웠다.

다만 바르셀로나에선 자신의 장기인 드리블이 자신 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 대단하던 선수가 있었으며, 자신의 장기인 볼 키핑에서도 자신 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 대단한 선수가 있었고, 자신의 장기인 패스에서도 자신 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 대단한 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포지션도 제대로 부여받지 못하며 정착할 수가 없었다.

흘렙의 단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슈투트가르트시절 분데스리가를 집어 삼키던 시절도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더 상위 리그의 빅클럽들에선 자신의 장점들만을 뽑아내는 다소 기능적인 역할로만 쓰이는 선수였는데, 그 이유는 경기 지배력의 일관성 부족과 파괴력이었다. 그가 스탯 생산 능력이 떨어졌던 주된 이유는 너무 심미적인 접근을 고집했기 때문인데, 요컨대 축구를 매 순간 미학적인 방식으로만 플레이하는 것에 집착했던 것이다. 이는 흘렙 뿐만 아니라 아르센 벵거 아스날 FC가 가진 고질병이었다.

예시로, 슛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도 기어코 두리번거리며 다른 선수를 찾아서 패스를 하려는 성향 때문에 매우 임팩트 있는 상황들이 많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성공했을 시엔 아름답고 창조적인 축구로서 포장되었지만, 그게 실패할 경우엔 참사로 변질되던 이중적인 상황이 자주 있었다. 선수 시절 내내 특히 아스널에서 수비수인 콜로 투레보다도 슛을 못하는 선수라는 오명도 있었으며, 외곽슛이 거의 없다는 측면에서 상대 선수들은 다지선다 중 하나를 과감히 배제할 수 있었다.

또한 팀에서 제일 가는 테크니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패스를 제외하면 킥 스킬이 좋지 못하여 세트피스를 담당하는 경우가 없었으며, 데드볼 상황에서 킥으로 처리하는 상황을 보기 드물었다.

종합해보면, 자신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명확한 선수였으나 자신이 잘하는 것들을 극도로 갈고 닦아 그것을 중심으로 활용하는 장인에 가까운 선수였다. 같은 팀의 토마시 로시츠키가 모든 것을 평균 이상으로 잘 해내는 예술가 성향의 선수였던 것과 서로 대비를 이루었으나 동시에 둘의 궁합이 굉장히 잘 맞는 이유이기도 했다. 주로 외곽 지역에서 창조성과 스킬을 발휘하여 박스 안에 진입하지 않으면 선발 가치가 떨어지는 선수였으나, 신체 능력이 전성기이던 당시엔 강제로 돌파를 감행하여 기어코 상대 수비줄을 찢어내는 괴력을 발휘하던 선수였다.[3] 색깔로 비유하면 극단적인 단색이었던 셈.

한국에서 붙여진 '무중력 드리블'이라는 것이 바로 그의 마찰없이 스케이팅하듯 미끌어지며, 부드럽게 상대를 찢어내던 흡사 늑대와 같은 그의 드리블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이후 그를 상징하는 단어로 남게 되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1] 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Па́влович Глеб. [2] 차비와 이니에스타에게 밀린 건 물론이고 심지어 당시 노쇠화가 오기 시작해 방출대상으로 간주되었으나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기도 하며 로테이션 멤버 혹은 백업으로라도 중용받던 아이두르 구드욘센과의 경쟁에서마저도 완전히 밀렸다. [3] 대표적으로 07-08시즌 맨유와의 리그 홈경기나, 07-08시즌 리버풀과의 리그 어웨이 경기에서 잘 드러난다. 07-08시즌 동안 흘렙이 들었던 최상의 평가중 하나는 MOTD에서의 "마침내 흘렙이 리그 최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라는 언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