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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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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역대 진왕
신규책봉 이극용 이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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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당 추존 황제
이극용 | 李克用
파일:이극용초상.jpg
출생 856년 10월 24일
무주 천신성
(現 산시성 숴저우시 산인현 응문 북부)
사망 908년 2월 23일 (향년 52세)
후량 노주
(現 산시성 창즈시)
능묘 건극릉(建極陵)
재위기간 제7대 추장
887년 ~ 895년 12월 31일
당의 진왕(晉王)
896년 1월 1일 ~ 907년 6월 1일
후량의 진왕(晉王)
907년 6월 1일 ~ 908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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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30066><colcolor=#ece5b6> 성씨 주사(朱耶) 이(李)
극용(克用)
부모 부황 헌조
모후 문경황후
형제자매 5남 3녀 중 장남
배우자 정간황후, 황태비 유씨
자녀 11남 5녀 (양자 15남)
익성(翼聖)
별명 독안룡(獨眼龍) / 아아(鴉兒) / 비호자(飛虎子)
작호 진왕(晉王)
묘호 태조(太祖)
시호 무황제(武皇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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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출신3. 생애4. 십삼태보(十三太保)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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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당나라 말기의 군웅. 자는 익성(翼聖). 후당(後唐)의 장종(莊宗) 이존욱(李存勗)의 아버지.

구오대사 본기에는 당 무황(唐 武皇)의 표제로 따로 다루어 졌으나 신오대사에서는 아들 장종의 본기에 편입되었다.

2. 출신

사타족(沙陀族) 출신이다. 사타족은 6세기 말 이래 돌궐으로 알려진 튀르크계 유목 민족의 일파이다. 이들은 천산 산맥, 즉 톈산 산맥의 동부에 있던 민족들로 대체로 이 부근은 토번과 당이 계속해서 힘을 겨루던 지역이었다. 사타족은 토번이 강성해지면 그쪽의 영향력을 받다가, 당나라가 강성해지면 당의 간접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러다가 당헌종때 당나라에 예속되었다. 당시 이들의 우두머리는 주사집의라는 인물이었는데[1], 당나라는 그에게 서북 언저리인 음산부의 병마사 직을 맡겨 국경을 지키게 했다.

당나라 말기에는 여러 변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당나라를 실질적으로 망조에 들게 한 안사의 난이고, 당나라에 사형 선고를 내린 황소의 난 또한 유명하다. 그 중간에 끼어 있는 반란이 방훈의 난인데, 지금은 듣보잡이지만 당시 반란의 규모는 결코 가볍게 여길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이때 주사집의의 아들 주사적심은 방훈의 난을 진압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워 당나라의 국성인 이씨 성을 받고, 국창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다. 바로 이 이국창의 아들이 이극용이다.

3. 생애

이극용은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작아서 그 때문에 주변에서 그를 ' 독안룡(獨眼龍)'이라 부르게 되었다. 작호(綽號)는 아아(鴉兒)이고, 군대에 있을 때 불리던 명칭은 비호자(飛虎子)였으며 비장(飛將)의 명성을 얻었다.

사타족 부병마사(副兵馬使)가 된 이극용은 대동(大同) 방어사 단문초(段文楚)와 분쟁이 생겨 그를 살해했고, 다시 하동 절도사 강전규(康傳圭)을 살해하고 태원을 점령했다. 사실상 반란이었기에 당나라 군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나섰고, 패배한 이극용은 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말 그대로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했던 당 조정은 이극용의 죄를 없애주고 대신에 황소군 토벌의 임무를 맡겼다. 이극용은 연전연승하며 황소를 몰아붙였고, 결국 장안을 수복해 황소를 자살로 몰아넣는데 성공하였다. 이 공로로 이극용은 진왕(晉王)에 봉해진다.

황소의 난 진압 과정에서 이극용과 주전충, 이무정[2] 등이 실력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들의 사이는 좋을 수가 없어서, 이극용은 술자리에서 주전충에게 모욕감을 주었고 분노한 주전충은 이극용을 공격하게 되어 둘은 끊임없이 대립하게 되었다.

황소의 난 이후 혼란기에 이극용의 세력은 주전충, 양행밀 등과 더불어 가장 막강했으나 한번 구슬이 잘못 꿰이자 줄줄이 알사탕처럼 떨어져나가게 된다. 원래 이극용 세력에서 가장 뛰어난 장수는 그의 양아들 중 하나인 이존효였는데, 이존효는 '만 명의 적이 두려워서 피한다'는 묘사와 함께 무패의 맹장으로 이름을 떨치며 여러 전장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이존효는 특히 소의를 점령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워서 자신이 소의유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이극용은 강군립을 그 자리에 임명한다. 이존효는 이때부터 이극용을 원망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이극용에게 가장 총애를 받았고 자신과는 사이가 매우 나빴던 이극용의 다른 양아들 이존신에게 계속해서 모함까지 당하자 위기를 느끼고 급기야는 정말로 이극용을 배반, 자신이 관할하던 세 주를 가지고 주전충에게 항복하게 된다. 이존효가 보통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이극용은 즉시 직접 대군을 이끌고는 1년이 넘게 이존효를 포위해 그의 세력을 말려죽였고, 버티다 못한 이존효는 결국 이극용에게 항복한다.

이극용은 내심 이존효의 재주를 아까워해 그를 살려주고 싶었으나 멋대로 살려줄 명분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이존효는 정말 뛰어난 인물이니 그를 처형하려 한다면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므로 그것을 핑계로 그를 살려주자.'는 생각으로 이존효를 처형했다. 하지만 이극용의 장수들은 모두가 이존효의 뛰어난 재주를 질투하고 있었고, 누구도 이존효를 살려줘야 한다고 나서지 않았다. 이존효는 결국 거열형을 당해 사지가 찢어져나가면서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이극용은 이 같은 결과에 충격을 받고 열흘 간 아무런 정무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 후 이극용은 연회 도중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군립을 보더니 대뜸 칼로 내리쳐서 큰 상처를 입히고 옥에 가둬버린다. 강군립은 곧바로 풀려났지만 상처가 깊어 결국 사망. 또한 설아단이라는 장수도 용맹함이 이존효와 비등하여 제장들의 질투를 받았는데, 이 때문에 이존효와 내통했다가 그가 망하게 되자 자결한다. 사서에서는 이 이후로 주전충만이 홀로 강대해졌다고 표현했는데, 과연 이극용의 고생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주선과 주근이 주전충에게 공격받자 이극용은 사엄과 이승사를 보내 위박번진에 길을 빌려 연, 운 지역을 구원하게 했다. 뒤이어서 이존신이 군사 1만을 끌고 위주를 지나는데 군사들을 단속하지 않아 위주를 마구 약탈했다. 위박절도사 나홍신은 이에 분노해 3만 병사를 끌고 이존신을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고, 사엄과 이승사는 퇴로가 끊기고 고립되어 회남의 양행밀에게 귀부하여 회남의 장수로서 생을 마치게 된다. 주전충은 위박과 이극용의 갈등을 뒤에서 조종하여 더 심화시켰는데, 위박과 동맹관계를 맺고 전투에서 사로잡은 이극용의 아들 이락락을 나홍신에게 보내니 이극용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하던 나홍신은 이락락을 바로 죽여버리며 양측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한건이 반강제로 소종을 화주로 끌고가자 이극용은 자신이 유주절도사로 삼은 유인공과 성덕, 의무번진의 병력을 합해 장안으로 진격하려 했지만 유인공은 거란이 쳐들어왔다는 핑계로 계속해서 출병을 거부했다. 이극용이 사신을 보내서 유인공을 질책하자 유인공은 사자를 잡아가두고는 유주에 있던 이극용의 심복 장수들을 모두 죽이려고 한다. 이에 이극용은 직접 대군을 끌고 유인공을 공격하는데 이극용은 술에 취한 채로 마구 공격명령을 내렸다가 선가급, 양사간의 매복공격에 대패하여 태반의 병력을 잃는다.[3]

또한 전에 택주자사였던 이한지는 이극용이 왕행유를 토벌한 뒤에 계속해서 빈녕절도사의 자리를 요구했는데 이극용은 이한지가 세력을 얻으면 반드시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고 여겨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소의절도사였던 설지근이 죽자 이한지는 택주의 병사를 끌고 노주를 점거한 뒤 주전충에게 항복해버린다.

이극용은 거란 야율아보기와 손잡으려고 하기도 했으나, 야율아보기도 이극용을 배신하였다. 결국 908년, 머리에 종기가 나 사망하였다.

북송사람 왕우칭(王禹偁)이 쓴 오대사궐문(五代史闕文)에는 이극용의 유언이 나와있다.
이극용은 화살 세 대를 가져오더니 아들 이존욱을 불러 그 손에 화살을 하나 쥐어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유인공 부자의 몫이다. 이들은 나를 배신했다."
그리고 다시 다른 화살을 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거란의 야율아보기의 몫이다. 그는 나와의 맹약을 무시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화살을 넘겨주면서 이극용은 말하였다.
"주량(주전충)은 나에게는 원수와도 같은 존재이다. 내가 너에게 주는 3개의 화살 중 첫 번째는 유인공에게, 두 번째는 거란에게, 세 번째는 주전충을 멸망시킬 때 각각 사용하거라. 이것이 내가 희망하는 소원이다."
이후 이존욱 후당을 건국하고, 아버지 이극용을 태조로 추존했다.

4. 십삼태보(十三太保)

당말-5대10국 시대에는 능력이 있는 자를 자신의 양자로 삼아 세력을 키우는 풍조가 널리 퍼져있었는데 당연히 유력 군벌이었던 이극용에게도 친자 1명을 포함하여 13명의 아들이 있었고, 이들 모두 태보(太保)라는 명예직을 받아서 13태보로 불리었다.

이 형제들이 당대에 꽤나 활약을 보여 명성이 자자했으므로 후대에도 그 이름이 알려지고 연의소설 등으로 인기를 끌어 13태보라고 하면 주군을 호위하는 충성스런 13명의 무사의 집단을 뜻하는 단어로 정착이 되었다. 다만, 형제라고는 하나 친형제 간이 아닌 실제로는 이극용 휘하의 경쟁자들이었으므로 서로 간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건 이존효인데 마침 그 순서가 13번째라서 '13태보'라고 하면 이존효 한 사람만을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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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권 ~ 150권은 志에 해당. 구오대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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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타족의 이칭이 사타족의 족장의 성씨인 주사(朱邪)였다. 중국어 위키피디아 페이지 참고. [2] 후에 기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3] 유인공은 이 일로 우쭐해져서 자신이 하북을 다 먹겠다며 주전충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완전히 개박살나고 선가급과 수만 명의 병사를 잃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