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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40:33

황소

1.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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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이 누런() 가 아니고 다 자란 수소(Bull)를 의미하는 말이다.

어원을 설명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황소의 황은 누를 황()인데 이 한자에 "누렇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넓다"는 뜻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링크, 링크 2. 반면에, "크다"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 ''에서 유래된 '한소'가 변해서 된 말이란 주장도 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는 고려가요 정석가에 "무쇠로 한쇼를 디여다가"란 구절이 나온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황소를 순우리말로 간주 하였지만, 이와 관련된 동의어는 황우(黃牛)로 지칭한다.

어느 설을 따르든 황소는 다 큰 수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얼룩백이 황소"[1], 심지어 검은 황소도 가능하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수소를 의미하는 Bull 혹은 Ox가 될 것이다. 덩치가 크다는 의미이므로 왜 덩치가 큰 개구리를 누렇지 않아도 황소개구리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여담으로 '수소'라는 단어도 희한한데, 보통 발음을 [수쏘]로 하기 때문에 '숫소'라고 쓰는 경우가 많지만, 표준어는 '수소'이며 발음도 [수소]로 한다. 수컷을 뜻하는 접두어로 앞에 '숫-'을 사용하는 것은 숫양, 숫염소, 숫쥐 3가지 뿐이다. 수컷 사자도 수사자고 수컷 사슴도 수사슴이다.노홍철 때문에 숫thㅏth슴

한우를 보통 누런 소, 즉 황소로 연상하는 게 많지만 색깔과는 상관 없다.

초기 청동기 시대 때 쿠라-아락세스 문화가 캅카스에서 기원하여, 이란 고원과 동지중해 등지로 확산하며 중동인(하티인, 후르리인 포함), 에트루리아인, 미노아인, 그리스인, 가나안인들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들이 황소 숭배를 발달시켰다. 황소 숭배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신석기 시대 중부 아나톨리아, 특히 차탈회위크(Çatalhöyük) 및 알라자 회윅(Alaca Höyük) 유적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황소 묘사는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의 프레스코와 도자기에서도 나타난다. 황소 가면을 쓴 테라코타 인형과 황소 뿔이 달린 석재 제단이 키프로스에서 발견되었다. 쿠라-아락세스 문화는 Y 하플로그룹 J2a로 표상되는데, 오늘날 이 형질의 비중이 높은 안달루시아와 프로방스의 투우 문화 등으로 대표된다. 링크. 자세한 건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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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시절 여당 민주공화당의 상징은 "일하는 "를 의미하는 황소였다. 해당 동물은 허경영의 공화당과 경제공화당도 썼다.

항우 장사라는 말의 어원이 초 항우가 아닌 황우라는 주장도 있다.

금융 시장에서 황소는 상승세를 상징한다. 하락세는 .[2] 그래서 우리가 주식 불장 부동산 불장 이라 할 때의 불은 fire가 아니고 bull 이다.

파이터즈 히스토리에서는 히든 보스로 황소 1마리가 등장한다. 아주 옛날에 씨름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은 황소를 받았었다.

KIA 타이거즈 황대인 소크라테스 브리토를 함께 황소 커플이라고 엮고 있다.

씨름 대회에서 입상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부상은 황소였으므로, 입상자들을 황소를 탄 장사들이라 부르며 힘 센 사람의 대명사로 부른다.[3] 씨름 대회의 1등 상품도 황소였다. 그래서 이를 반영하여 현재 씨름 대회 우승 트로피도 황소 모양이다.

비록 느리기는 하나 착실하게 해 나가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황소걸음 이라고 한다.

미국 뉴저지에서는 황소가 선로에 갑자기 올라 승객들이 위협을 느낀 사고도 있었다. 국내 기사

1.1. 관련 문서

2. 인물

2.1. 당나라 말의 반란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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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후한 말의 황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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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캠퍼스 밴드 옥슨(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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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옥슨80.jpg
옥슨 79, 옥슨 80, 옥슨 81이라는 이름으로 1979년부터 활동한 가수 그룹이다.

옥슨 80 멤버로는 보컬 홍서범, 김정욱, 이태중, 윤중서, 안기정이다. 대표적인 히트곡으로는 '날개', '불놀이야', '서로서로' 등이 있다.

첫해 '불놀이야'로 <제3회 TBC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으며, 이후 '가난한 여인들의 기도', '날개', '서로서로'등 히트싱글을 발표하며 밴드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옥슨의 행보는 '날개'(옥슨 81), '윷놀이'(옥슨 82), '물레 타는 여인'(옥슨 84), '풍년 굿'(옥슨 85), '청개구리'(옥슨89), '비의 추억'(옥슨 91)등으로 한국 가요제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국내캠퍼스 밴드로 자리매김을 하게되었다.

4. 이중섭의 작품 황소

파일:이중섭 황소.jpg
이중섭이 1953년 38세 때 그린 작품으로 활력이 넘치는 붓 터치와 과감한 묘사, 그리고 황소의 기운을 순간적으로 잘 포착한 작품이다. 가족과 함께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그의 강인한 의지가 돋보인다. 현재 이건희 회장의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일화에 따르면 1955년 당시 대구 미국문화원장이었던 미국인 아서 조지프 맥타카트 박사[4]가 이 그림을 대단히 좋아하여 이중섭의 친구 최태응을 통해서 이중섭을 직접 만나기도 했는데, 맥타카트가 스페인의 투우를 보는 것 같다고 그림을 칭찬하자 이중섭은 오히려 그 말에 큰 상처를 받고 평안도 사투리로 "뭐라고, 투우라고? 내가 그린 소는 그런 소가 아니고 착하고 고생하는 소, 한국의 소란 말이우다."라고 외친 후에 자리를 뛰쳐나와서 여관방에서 몇날며칠을 울면서 자기 그림이 투우처럼 보이면 틀린 것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이후 맥타카트는 대구 매일신문에 이중섭의 그림을 호평하는 평론을 실었고 이중섭 개인전에서 그의 그림을 사려 했으나 이중섭이 거절하여 최태응이 몰래 사서 전달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맥타카트는 이중섭 그림 10점을 사서 미국으로 가져갔고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은지화도 이 경위로 미국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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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향수에 나오는 얼룩백이는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젖소 종류가 아니라 한국 재래종 얼룩소라고 한다. [2] 는 뿔을 위로 올려 치지만 곰은 발톱을 아래로 내려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때문에 증권 거래소 앞에 황소 동상을 두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소가 곰을 들이 받는 형상의 동상도 있다. [3] 드라마 야인시대 58회에서 김두한이 아편 문제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자 공산단원 심영이 간수(배우 신덕호)에게 손을 써서, 황소를 꽤나 탔다는 좌익패 씨름꾼들과 김두한을 같은 방에 수감시킨 일이 있었다. [4] 1915년 인디애나주에서 출생, 퍼듀 사범대학, 코넬대학을 다녔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 교관으로 복무했다. 전후 스탠퍼드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53년 주한 미국대사관 재무관으로 파견된 인연으로 한국에 왔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진 서울의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였으며 1964년부터 1975년까지 11년동안 남베트남에서 공보관을 지냈다. 1976년 미국 국무부 관리에서 퇴직한 후 영남대 교수로 부임하여 1997년까지 20년 넘게 교편을 잡았으며 독신으로 살며 교육사업에 전념한 것으로 유명했다. 명예 대구시민증, 자랑스러운 영남대인 상 등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미국으로 반출된 한국 문화재 482점을 한국으로 반환한 업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문화공로훈장을 받았다. 퇴임 후 미국으로 돌아가 워싱턴 근교의 양로원에서 살다가 2003년 7월 15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