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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19 09:22:48

호세 안토니오 샤모트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선수
파일:Josè_Chamot_Lazio_1994-1995.jpg
이름 <colbgcolor=#fff,#191919> 호세 차모트
José Chamot
본명 호세 안토니오 차모트
José Antonio Chamot
출생 1969년 5월 17일([age(1969-05-17)]세)
아르헨티나 콘셉시온 델 우루과이[1]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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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6cm
직업 축구선수 ( 레프트백[2]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로사리오 센트랄 (1988~1991)
AC 피사 1909 (1991~1993)
칼초 포자 1920 S.S.D. (1993~1994)
SS 라치오 (1994~1998)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8~2000)
AC 밀란 (2000~2003)
CD 레가네스(2003-2004)
로사리오 센트랄 (2004~2006)
감독 로사리오 센트랄 (2009~2010 / 수석코치)
CA 리버 플레이트 (2011~2012 / 수석코치)
로사리오 센트랄 유스 (2015~2017)
로사리오 센트랄 (2018 / 수석코치)
클루브 리베르타드 (2019)
국가대표 43경기 2골 ( 아르헨티나 / 1993~2002)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SS 라치오2.1.2. AC 밀란2.1.3. 이후
2.2. 감독 경력
3. 국가대표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선수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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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선수. 주 포지션은 레프트백이며, 라치오에서 활약했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88년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데뷔해 2개 시즌간 활약한 다음, 1991년부터 1993년 2시즌간 피사에서 87경기, 1993-94시즌 포지아에서 30경기를 뛰며 활약했다.

2.1.1. SS 라치오

1994년 SS 라치오로 이적하면서 1998년까지 5시즌 동안 100경기를 출전[3]하였고, 당시 세리에 A 최고의 풀백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리즈 시절을 보낸다. 마지막 1997-98 시즌에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했다.

2.1.2. AC 밀란

파일:jose antonio chamot ac milan.jpg
1998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으로 이적한 이후 2000년 1월까지 선수 생활을 했고 나름 나쁘지 않게 활약했다. 2000년 1월 AC 밀란으로 이적했고, 2003년까지 뛰면서 2002-03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2-03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2001-02 시즌부터는 주전 자리를 잃었고[4] 2002-03 시즌을 끝으로 AC 밀란에서 떠났다.

2.1.3. 이후

2003년 스페인의 CD 레가네스로 이적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1경기를 출전하고 나서 시즌을 통으로 날렸고, 2004년 본인의 친정팀 로사리오 센트랄로 돌아갔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으며 2006년까지 4경기 밖에 뛰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

2.2. 감독 경력

2009년 7월부터 2010년 3월까지 로사리오 센트럴에서 수석 코치를 역임했고, 2011년 6월 마티아스 알메이다 감독 아래에서 2012년 12월까지 라이벌 팀 리버 플레이트의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2015년 12월 로사리오 센트랄 유스팀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2017년 12월까지 역임했고, 2018년 1월 부터 4월까지 다시 한 번 수석코치를 지낸다. 2019년 3월 클루브 리베르타드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2019년 12월에 팀을 떠났다.

3. 국가대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1993년에 데뷔하여 3 월드컵을 출전하였고, 총 43경기에 출전하였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 출전하여 나이지리아, 불가리아, 그리스가 속한 D조에서 2승 1패 공동 3위를 기록, 3위를 기록한 팀들 중에서는 1위를 하며 토너먼트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16강에서 하지가 이끄는 루마니아를 만나 탈락하였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와일드카드 선수로 출전하여 결승에 올랐지만, 오코차 은완코 카누가 이끌던 나이지리아에게 패배하여 준우승을 하게 된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 출전하여 H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하였고, 16강에서 잉글랜드를 만나 2:2로 비기는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4:3[5]으로 이겨서 8강에 진출한다. 하지만 8강에선 자랑하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를 만나 클루이베르트 베르캄프에게 일격을 맞으며 탈락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발탁은 되었으나, 스웨덴전 1번 출전으로 그친다.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내외적으로 엉망진창이었고,[6] 아르헨티나는 총 2 득점을 하는 부진 끝에 나이지리아와 손잡고 사이좋게 조별리그를 탈락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4. 플레이 스타일

레프트백에서 주로 뛰었으나, 수비 전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다. 186cm의 괜찮은 피지컬에도 불구하고 몸싸움보다는 태클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이 우수했던 선수였다. 또한 장거리 패스 능력이 좋았으나, 기동력이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AC 밀란 이적 직후 시즌에는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의 3백 중 오른쪽 센터백으로 나오면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5. 기록

5.1. 선수

6. 여담



[1] Concepción del Uruguay, 우루과이와의 국경 근처 [2] 센터백, 라이트백으로도 출전했었다 [3] 당시 세리에 A가 34라운드까지 였음을 감안해도 시즌당 경기 수가 적긴 하다. [4] 아무리 수비 전 포지션에서 뛸 수 있다고 하지만, 당시 밀란 수비진은 이미 말디니, 네스타, 칼라제, 코스타쿠르타, 세르지뉴[7], 시미치[8], 라우르센, 호케 주니오르[9], 헬베그, 콘트라로 포화상태였고, 본인의 기량 하락도 한 몫했다. [5] 아르헨티나는 크레스포, 잉글랜드는 인스, 데이비드 배티가 실축했다. [6] 조국이 디폴트를 선언했고, 사비를 털어서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으니 경기력이 제대로 나올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