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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123호 124호 125호
아미타괘불도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 조계사 석가불도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4호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
鶴到庵 磨崖觀音菩薩坐像
소재지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로14다길 89
(중계동 3, 학도암)
분류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보살상
수량 / 면적 마애불 암반 1基, 토지 269.3㎡
지정연도 2000년 7월 15일
제작시기 1878년( 고종 15년)
관리자
(관리단체)
학도암
파일:학도암마애관음보살좌상.jpg
<colbgcolor=#ff8c00>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1]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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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학도암의 마애관음보살좌상이다. '관음보살좌상'은 ' 관세음보살이 앉아있는 상'이란 뜻이다. 관음보살과 관세음보살은 같은 보살로, '관음보살'은 당나라 시절에 태종 이세민의 '세' 자를 피휘하면서 빼어 부른 것이 관용화된 명칭이다.

2000년 7월 15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받았다.

2. 상세

명성황후가 시주해서 만든 보살상이다. 1870년(고종 5년)에 제작했으며 1878년( 고종 15년)에 보수했다.

조성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1866년(고종 3년)에 명성황후 고종과 혼인하고 왕비가 되었으나, 고종은 그 이전부터 사랑했던 영보당 이씨만 찾았고, 그 사이에서 첫 자식[2]( 완화군)까지 낳자 한동안 명성황후는 독수공방했다. 그러던 중에 한 궁녀가 불상을 만들면 명성황후가 고종의 총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아뢰었고, 마침 그날 밤에 명성황후는 절에 바위가 있는 꿈을 꿨다. 너무나 생생했던 나머지 명성황후는 꿈 속에서 나온 것들이 있는 절을 찾다가 학도암을 알아냈고, 그곳 바위에 관세음보살을 새겼으니 이것이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이란 것이다. 조성하면서 명성황후는 당대 최고의 화승과 석공들을 부르는 등 정성을 쏟았고, 이게 통했는지 실제로 이후 명성황후는 고종의 사랑을 받으며 자녀들을 많이 낳았다.

높이는 13.4m이다. 마애보살상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 가운데에는 부처님이 새겨져있다. 손은 오른손은 배에 대고 왼손은 들어 가슴 쪽에 대었으며, 통견가사를 입은 채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머리와 몸을 둘러싼 광배가 2개 씩 있다.

가슴에 네모난 홈이 파여있는 것이 특이한데, 이것을 불상 안에 사리 불경 등을 집어넣는 복장의 흔적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일반적인 불상 말고 바위에 새겨 만든 보살상에 복장은 거의 없는데, 이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3] 보살상 왼쪽 바위에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2] 아들딸 통틀어서 첫 자식이다. [3]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선운사 마애상에도 감실이 달려있는데, 이 감실에는 비결(秘訣)이 들어있었고 동학농민운동때 이걸 꺼내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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