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하랄 4세 또는 하랄 길레, 하랄드 길리크리스트는 노르웨이 길리 왕조의 초대 국왕이다. 그는 망누스 3세의 사생아였으며 그가 형 시구르 1세의 아들인 망누스 4세의 손발을 자르고 찬탈함에 따라 100년이 넘는 노르웨이 왕위계승전쟁이 일어나게 된다.2. 생애
2.1. 이복형 시구르 1세에게 공인받다
1127년, 하랄은 노르웨이로 가 자신이 1103년 죽기 직전 아일랜드에 다녀온 망누스 3세의 사생아라고 주장했다. 망누스 3세의 다른 후손들이 아일랜드 문헌에 기록되어 있었으며, 망누스 3세는 적어도 한 명의 아일랜드 여성을 정부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말은 되지만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의심에 하랄은 뜨거운 쟁기 위를 걷는 불에 의한 시죄법에 성공적으로 통과하여 망누스 3세의 아들로 인정받았다. 시구르 1세는 하랄이 그의 조카인 망누스가 살아있는 한 왕국의 통치권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조건으로 이복동생을 적자화하였다. 하랄은 1130년 시구르가 죽을 때까지 이 협정을 지켰다.2.2. 노르웨이 왕위계승전쟁
시구르 1세가 죽었을 때 하랄은 퇸스베르그에 있었다. 그는 하우가팅그 회합을 소집하고, 이 팅그에서 하랄이 나라의 절반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시구르의 아들 망누스 4세는 마지못해 하랄과 왕국을 나누었다.그리고 처음 4년 간은 불안한 평화가 이어졌지만 결국 AD 1134년에 하랄 4세와 망누스 4세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1134년 8월 9일 망누스 4세는 보후슬렌의 Fällev에서 하랄을 격파했고 하랄은 덴마크로 도망쳤다. 이후 망누스는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해 방심하여 군대를 해산하고 베르겐으로 가서 겨울을 보냈다. 허나 하랄은 덴마크에서 새로운 군대를 마련해 노르웨이로 돌아왔고, 곧 망누스 4세의 군대를 만나 크리스마스 전에 베르겐에 도착해 망누스의 군대와 겨루었다. 망누스는 병력이 적었기 때문에 1135년 1월 7일 하랄의 군대에 쉽게 패배해 포로로 붙잡혀 찬탈당했다.
이 전투로 노르웨이의 왕으로 즉위하게 된 하랄 4세는 망누스 4세의 손발을 자르고 두 눈을 멀게 하며 불구로 만든 뒤 수도원에 감금하였고 이후 하랄 4세가 노르웨이의 단독 왕으로 즉위하였다. 하지만 이듬해인 1136년 하랄 4세 역시 세상을 떴고, 왕위는 그의 아들들 시구르 2세와 잉에 1세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