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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디아이 - 라베타이 왕국 7대 군주 Πλευρᾶτος | 플루라토스 3세 |
||
제호 | 한국어 | 플루라토스 3세 |
그리스어 | Πλευρᾶτος | |
라틴어 | Pleuratus III | |
존호 | 왕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181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206년 ~ 기원전 18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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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디아이 - 라베타이 왕국 7대 군주.2. 행적
라베타이 왕국의 건국자 스케르딜라이다스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5세와 전쟁을 벌일 때 함께 했으며, 기원전 206년 아버지의 뒤를 왕위에 오른 뒤 기원전 205년 포이니케 협약을 통해 전쟁을 종결했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지배하에 있던 일리리아 도시인 리크니스와 파르토스를 확보하고 스코드라 호수 주변의 영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기원전 200년, 그는 일리리아 해안지대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군에 마케도니아 원정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로마 총독 술피키우스 갈바는 처음엔 제안을 거절했지만, 나중에 로마군이 마케도니아로 진군할 때 그를 부르겠다고 약속했다. 기원전 199년, 그는 다르다니아의 바토와 연합하여 마케도니아를 공격했다. 그러나 바토가 마케도니아 북쪽 국경지대를 황폐화시켜서 필리포스 5세를 괴롭힌 것에 비해, 그는 별다른 군사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후 로마는 바르딜리스 1세가 필리포스 2세에게 패배한 후 2세기 동안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독 있던 린케스디다 일대를 그에게 넘겼다. 반면, 적극적으로 싸웠던 다르다니아의 바토는 수년간 자국의 영토로 주장했던 파이오니아도 얻지 못했다.
기원전 189년, 그는 "로마인의 친구"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에 대해 페르가몬 왕국의 에우메네스 2세는 그가 로마를 위해 한 유일한 선행은 해를 끼치지 않은 것뿐인데 호의가 너무 과분하다며 불만을 표했다. 이후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가 이끄는 로마군이 아이톨리아 동맹과 전쟁을 벌일 때, 그는 로마를 돕기 위해 60척의 함대를 파견하여 아이톨리아 해안가를 약탈했다. 다만 이번에는 영토를 받지 못했다. 기원전 181년에 사망했고, 아들 겐티오스가 뒤이어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