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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29:56

풍구(후한)

酆玖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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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도사. 청나라 시절 서적인 《역대신선통감》에 나오는 인물로 제갈량의 스승이라고 주장되는 사람이다.[1]

2. 생애

예주 여남군에 있는 영산에서 살았고 육도삼략을 암송하는 것에 익숙하여 사마휘에게 가르침을 준 적이 있으며, 사마휘는 이때의 가르침을 '마치 표주박으로 바다를 헤아리듯 하였으니, 어찌 가서 가르침을 구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라고 칭송하며 군재로써 응당 이름난 스승을 찾아 학문을 더욱 갈고 닦아야 하리라는 사마휘의 소개로 제갈량에게 병법을 가르쳤다.

사마휘가 제갈량을 데리고 영산에 이르러 풍구에게 절을 하고 스승으로 모시게 하였다. 제갈량이 오고 1년 동안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다가 자신을 공손하게 모시자 삼재비록, 병법진도, 고허상왕 등의 책을 주면서 연구하게 했으며, 100일이 지나고 제갈량이 간략히 공부한 바에 대해 살펴보니 제갈량은 모두 오묘한 경지에 이르렀다.

제갈량과 문답을 나누면서 풍구는 천운의 오룡의 신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이 시대에 허약해진 제후들을 바로하고 기울어지는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으리라고 했다. 제갈량이 오룡지설에 대해 묻자 풍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진한(秦漢) 때는 오룡이 변화하여 나타나 영진(贏秦, 진시황 전 진나라)이 백색이 되었듯이 여진(呂秦, 진시황의 통일 진나라)은 흑색이 되며, 항우는 푸른색이 되고, 한고조는 적색이 되었으며, 한문제는 황룡의 상서로움을 꿈에서 겪었고, 광무제는 적복부를 받은 까닭에 전한과 후한이 황색과 적색을 함께 숭상한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한실(漢室)이 끝나려 함은 화기와 토기가 거의 말라버린 것이라 비록 남은 불꽃이 아직 꺼지진 않았더라도 다시 응당 서쪽으로 흘러 금정을 품부 받아 왕이 될 것이다. 손견은 한실의 종묘를 정비하여 토덕을 상승시키는 덕을 쌓았기에 사자 같은 아이 손책이 강좌에서 처음으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화와 더불어 토가 상극하는 것이 바로 수기다. 지금 조조가 이미 북방을 평정하였는데, 목기는 수기를 이어받아서 나니 그 자식은 청룡의 상서로움이 있을 것이고, 화기는 목기를 세습하여 왕이 될 것이니, 그 후에 이대의 화기가 더 있다 끊어질 것이다."

제갈량이 조조는 국가의 적이 되고 손권은 천명을 훔쳤으니, 난세를 맞이해 물러나 숨어살면서 몸소 밭을 갈며 뜻을 기르고 도를 즐길 것이라 하자 풍구는 그렇지 않다면서 이와 같이 쓸모 있는 사람을 품어 이 나라 백성들을 구하지 아니한다면 어진자의 마음이 아니니, 이곳을 떠나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 한실의 종친인 유비를 보좌하게 될 것이라 했다.

제갈량이 관우, 장비 같은 이들에 대해 묻자 풍구는 유비의 여러 부하들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 관우는 해량의 노룡[2], 장비는 탁주의 검은 표범, 미축은 동해의 큰 사슴이며, 조운은 장산의 거대한 이무기라 했다. 또 양양의 봉추, 장사의 호모, 서량 망아지, 천수의 작은 용을 얻을 것이라 했다.

풍구는 이어 남군의 무당산에는 27봉, 32암, 24간이 있으며, 봉우리 중 최고는 천주, 자소인데 이 두 봉우리 간에서 사는 이인을 북극교주라고 하고, 낭서(도교 서적), 오행치수법, 옥책, 영부 모두 육갑비문이요, 오행도법이라 했으며, 풍구 자신이 제갈량에게 겨우 병진은 익히도록 하였으나 신통은 깨우치게 하지 못하였으니 결국은 좌도방문으로 곤란함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풍구는 제갈량을 이끌어 무당산에 이르러서 북극교주를 만나게 하였다. 오직 땔감을 지고 오는 일과 물을 긷고, 황정을 채취해 오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는데 그곳에서 지낸 지 오래될 무렵, 도술을 전수하여 주니 제갈량이 하산했다. 영산에 이르자 풍구는 이미 죽은 뒤여서 다시 교주를 찾으니, 교주 또한 없었다. 봉우리 꼭대기에는 바람과 우레 소리가 굉굉하여 마치 천만인이 말하는 것 같았는데, 비로소 제갈량이 신인(神人)의 지점을 깨닫고 비범함을 자부하였다. 사마휘가 돌아온 그를 보고 얼굴을 고치고선 진실로 제일류라고 하였다.


[1] 즉 아래 내용은 청 시절에 창작되거나 구전설화일 수는 있어도 역사적 기록이 뒷받침된 것은 아니다. [2] 역대신선통감의 관우설화에 따르면 관우는 해량노룡의 전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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