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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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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타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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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 Me Your Love 겨울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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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6. 02.Vacation 영화 OST
2006. 07. 28.여행기 (旅行記) 디지털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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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7. 12.The 2nd ASIA TOUR CONCERT - O
2007. 06. 18.THE 3rd ASIA TOUR CONCERT - MIROTIC
2009. 07. 30.The 4th World Tour
'Catc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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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06. 29.백만장자의 첫사랑 드라마 OST
2006. 02. 27.'06 SUMMER SMTOWN SMTOWN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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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12.궁S 드라마 OST
2007. 01. 30.에어시티 드라마 OST
2007. 05. 21.2007 Summer SMTOWN SMTOWN 앨범
2007. 07. 05.태왕사신기 드라마 OST
2007. 10. 17.LAST ANGEL (feat. 東方神起) 코다 쿠미 싱글
2007. 11. 07.2007 Winter SMTOWN SMTOWN 앨범
2007. 12. 07.09 Summer SMTOWN SMTOWN 앨범
2009. 08. 14.아테나 : 전쟁의 여신 드라마 OST
2010. 12. 20.파라다이스 목장 드라마 OST
2011. 02. 09.I AM. OST 영화 OST
2012. 04. 24.Make Your Move 영화 OST
2014. 03. 31.2021 Winter SMTOWN : SMCU EXPRESS SMTOWN 앨범
2021. 12. 27.2022 Winter SMTOWN : SMCU PALACE SMTOWN 앨범
2022. 12. 26.
<colbgcolor=#E4002B><colcolor=#fff> [ruby(TOHOSHINKI,ruby=東方神起,color=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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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éro TOKYO 2023년 6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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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東方神起, とうほうしんき, TOHOSHINKI
Cheering 일본 데뷔 15주년 기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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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의 일본활동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문서.[1]
일본에서는 동방신기의 일본어 발음인 토호신키(とうほうしんき)로 부른다. 소속사는 에이벡스, 레이블은 에이벡스 트랙스다.
데뷔 초기부터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를 기반으로 일본 음악계 내에서도 그 영향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일류 그룹으로 성장했다. 닛산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연 최초의 비일본인 가수이다.[2]
2. 상세
일본에서 동방신기가 걸어왔던 길을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업계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시작,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을 일구어내 일본 최정상급의 가수로 등극했다고 말할 수 있다.단순히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에 제대로 할 줄 아는 일본말 하나도 없이 일본으로 건너가 초반에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대중의 무관심 속에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연예인들한테 외면당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어가 불가능하다는 연예계의 편견 속에 제대로 된 방송 출연조차 어려웠으며, 스태프들에게 장비보다 뒷전 취급을 당하는 등, 온갖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프로모션 또한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하므로 멤버들은 직접 길거리로 나서서 전단지를 돌리고, 앰프를 들고 다니다가 공간이 나는 장소면 그 곳이 어디든지 간에 무작정 앰프와 마이크를 설치하고 노상에서 라이브를 진행하는 등, 온갖 개고생을 했다. 그들을 위한 전용 극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라이브 하우스를 전전하면서 계속 음악 활동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멤버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지속적인 활동 끝에 결국 자신들의 음악으로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으며, 이후에는 이 기세를 타고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13년에는 해외 아티스트로서는 사상 최초로 일본 최대 규모의 공연장인 닛산 스타디움에 입성하여 만원 관중의 환호 속에 투어를 마쳤고, 이미 5대 돔 투어까지 성사시킴으로써 더 이상 동방신기가 더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없는 상황.
동방신기의 일본 투어 규모 변화 |
2인 체제로 동방신기가 컴백하고 나서는 라이브 투어에서의 관객 동원력이 엄청나게 막강해졌다. 음반 시장에서는 예전만큼 내는 싱글마다 1위를 찍는 등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못하지만, 어차피 최근에는 음반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고, 대신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음원 시장에서는 여전한 강세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 일본 최대의 음원 사이트인 레코쵸쿠에서는 발매되는 싱글과 앨범들마다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벨소리 랭킹에서는 아예 차트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상황.
5인 시절 2009년에는 The Secret Code 투어로 모은 관객 수가 30만 명이 채 안되는데, 2013년 TIME 투어에서는 90만 명 가까이 끌어모았다. 2017~18년에는 Begin Again 투어로 무려 100만 명을 동원했다. 이제 도쿄 돔은 물론이고 일본 최대 규모의 공연장인 닛산 스타디움도 예매만으로 꽉꽉 채운다. 그 밖에도 공연장마다 파는 굿즈는 삽시간에 초토화 수준.[3] 이는 과거 10대였던 팬들이 20대가 되면서 어느 정도 경제력에 여유가 생기며 화력이 더 강해진 결과이다.
아직 남은 것이 있다면 음반 세일즈 쪽인데, 이미 이 쪽에서도 오리콘 위클리 싱글 차트 1위만 12번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스탯을 가지고 있다. 물론 밀리언셀러 싱글 같은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애초에 동방신기는 싱글로는 크게 상술을 부리지 않는다. CD반과 CD+DVD반의 두 버전만 내놓고 있는데, 17종 자켓 상술을 부리는 어느 그룹과는 확연히 다르다. 정규 앨범 같은 경우에는 꾸준히 3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더블 플래티넘 인증도 받았으며 정규 6집 《 TIME》은 전작 《 TONE》이 가지고 있던 초동 판매량의 기록을 3일만에 깨뜨리는 등, 동방신기의 상승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룹의 일본 데뷔가 10년을 훌쩍 넘어선 현 시점에서, 탄탄하게 다져진 팬덤을 기반으로 한 장수 그룹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35번째 싱글 〈 ANDROID〉 이후로 싱글 판매량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더 이상 팬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그룹에 대한 열성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기 보다는, 어느 정도 노래가 자신의 기호에 맞아야 앨범을 구매하는, 아티스트의 팬덤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신규 팬층의 유입이 적은 것도 불안 요소이다. 이미 연차가 많이 쌓이기도 했고, 멤버들의 나이도 20대를 훌쩍 지난 상황인지라 더 이상 아이돌 그룹으로써 어필하기는 힘들기에 팬덤의 규모가 이 이상으로 확대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그룹이 일본에서 롱런하기 위해서는 신규 팬층의 유입이 꾸준히 늘리는 것이 과제이다.
2010년부터는 케이팝 열풍이 일본 열도에 상륙하면서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이 일본의 음악계를 점령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른 반한 감정이 일본 내에서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긴 하지만 한류 열풍을 타고 온 것이 아니라 오리지널 J-POP 노래를 부르며 업계의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계단을 밟으며 정상으로 치고 올라온 그룹이라는 동방신기의 타이틀은 오히려 더 많은 팬들을 유입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일본 현지에서도 동방신기를 한류 그룹보다는 '한국인으로 구성된 일본의 아티스트 그룹'으로 보는 이들이 더 많다.
3. 각종 기록
- {{{#!folding 2010년대 일본 내 K-POP 아티스트 매출 1위
2010년대 K-POP 아티스트의 일본 매출 TOP5 |
- {{{#!folding 2015년 제28회 일본 골든 디스크 대상 5관왕
베스트 아시안 아티스트\ |
- {{{#!folding 2015년 일본에서 가장 콘서트 티켓 구하기 힘든 아티스트 랭킹 9위
일본에서 가장 콘서트 티켓 구하기 힘든 아티스트 TOP 10 (출처: 2015년 여성세븐\) |
- {{{#!folding 2018년 일본 내 콘서트 관객 동원력 랭킹 1위
(출처: 닛케이엔터테인먼트 2018년 12월호\) |
4. 음반
개별 싱글 및 앨범의 구체적인 발매 정보에 대한 내용은 동방신기/음반 문서 참고하십시오.
4.1. 솔로 음반
자세한 내용은 유노윤호/음반 문서의
일본 음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최강창민/음반 문서
의
일본 음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U-KNOW'와 'MAX CHANGMIN'이 아닌, YUNHO from 東方神起와 CHANGMIN from 東方神起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4.2. 판매량
오리콘 누적 판매량 | ||
<rowcolor=#fff> 싱글 | 앨범 | DVD & Blu-ray |
4,589,982장 | 3,118,211장 | 2,299,156장 |
총 판매량 9,944,179장 |
<rowcolor=#fff> 오리콘 연도별 세일즈 | |||||||
{{{#!wiki style="margin:0 -11px -6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rowcolor=#fff> 연도 | 연간 순위 | 세일즈 | 작품 | 비고 | ||
<rowcolor=#fff> 당시 환율 기준 | 싱글 / 앨범 / DVD & Blu-ray | ||||||
2004 | 순위권 외 |
2개 1 / 1 / 0 |
메이저 데뷔 전[4] | ||||
2005 |
3개 3 / 0 / 0 |
||||||
2006 |
10개 5 / 2 / 3 |
||||||
2007 | 77위 |
만 엔 (103억 원) |
14개 7 / 4 / 3 |
첫 진입[5] | |||
2008 | 35위 |
만 엔 (227억 원) |
13개 9 / 2 / 2 |
||||
2009 | 3위 |
68억 9520만 엔 (900억 원) |
8개 4 / 1 / 3 |
[6] | |||
2010 | 2위 |
94억 3100만 엔 (1300억 원) |
16개 2 / 8 / 6 |
[7] | |||
2011 | 9위 |
26억 5800만 엔 (360억 원) |
5개 3 / 2 / 0 |
[8] | |||
2012 | 16위 |
24억 0110만 엔 (309억 원) |
4개 2 / 0 / 2 |
||||
2013 | 9위 |
34억 6990만 엔 (350억 원) |
7개 4 / 1 / 2 |
||||
2014 | 5위 |
36억 9100만 엔 (362억 원) |
6개 3 / 2 / 1 |
||||
2015 | 10위 |
28억 9000만 엔 (290억 원) |
2개 1 / 0 / 1 |
[9] | |||
2016 | 순위권 외 |
1개 0 / 1 / 0 |
[10] | ||||
2017 | 42위 |
만 엔 (91억 원) |
2개 1 / 1 / 0 |
[11] | |||
2018 | 16위 |
만 엔 (238억 원 |
5개 2 / 1 / 2 |
||||
2019 | 위 |
만 엔 (원) |
4개 1 / 1 / 2 |
||||
2020 | 위 |
만 엔 (원) |
1개 1 / 0 / 0 |
||||
2021 | 94위 |
5억 1070만 엔 (원) |
1개 0 / 0 / 1 |
||||
2022 | 순위권 외 |
3개 1 / 1 / 1 |
|||||
2023 | 위 |
만 엔 (원) |
3개 2 / 0 / 1 |
오리콘 CD 매출 랭킹 TOP5 | ||
<rowcolor=#fff> 싱글 | 앨범 | DVD & Blu-ray |
BREAK OUT! 최고 순위 1위 · 등장 횟수 12주 |
BEST SELECTION 2010 최고 순위 1위 · 등장 횟수 70주 |
LIVE TOUR 2013 〜TIME〜 |
Why? (Keep Your Head Down) 최고 순위 1위 · 등장 횟수 20주 |
TONE 최고 순위 1위 · 등장 횟수 45주 |
LIVE TOUR 2015 〜WITH〜 |
Stand by U 최고 순위 2위 · 등장 횟수 34주 |
The Secret Code 최고 순위 2위 · 등장 횟수 61주 |
LIVE TOUR 2014 〜TREE〜 |
時ヲ止メテ 최고 순위 1위 · 등장 횟수 20주 |
TIME 최고 순위 1위 · 등장 횟수 25주 |
LIVE TOUR 2013 〜TIME〜 FINAL in NISSAN STADIUM |
Superstar 최고 순위 2위 · 등장 횟수 15주 |
WITH 최고 순위 1위 · 등장 횟수 18주 |
LIVE TOUR 2017 〜Begin Again〜 |
5. 공연 및 행사
투어에 대한 내용은 동방신기/공연 및 행사 문서
의
일본 투어 목록 부분을
참고하십시오.팬미팅에 대한 내용은 동방신기/공연 및 행사 문서
의
일본 팬미팅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 역대 일본 투어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2d2f34><tablebordercolor=#E4002B><rowbgcolor=#E4002B><tablecolor=#000,#FFF> 2006
~Heart, Mind and Soul~ ||<width=25%> 2007
~Five in the Black~ ||<width=25%> 2008
~T~ ||<width=25%> 2009
~The Secret Code~ ||15,000명
전국 투어
첫 투어53,700명
전국 투어
무도관 입성224,000명
전국 투어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입성364,000명
전국 투어
도쿄돔 입성2012
~TONE~2013
~TIME~2014
~TREE~2015
~WITH~550,000명
전국 투어
활동 휴지 이후 첫 투어850,000명
전국 5대 돔 투어
닛산 스타디움 입성[A]600,000명
전국 투어
750,000명
전국 5대 돔 투어
2016
~TILL~2017
~TILL2~2017-2018
~Begin Again~2018-2019
130,000명
FILM CONCERT
[B]190,000명
FILM CONCERT
[B]1,005,000명
전국 5대 돔 투어
닛산 스타디움 3일 연속 공연[A]680,000명
전국 투어
2019-2020
~XV~2023
~CLASSYC~2024-2025
~ZONE~600,000명
전국 5대 돔 투어
15주년 기념 투어300,000명
전국 투어
코로나 이후 첫 투어진행 중
전국 투어
20주년 기념 투어
- [ 돔 공연 기록 ]
- ||<width=10000><tablebgcolor=#fff,#2d2f34><tablebordercolor=#E4002B><-6><tablecolor=#000,#FFF> 일본 전국 5대 돔 (日本全国5大ドーム)
공연 누적 89회 기록[예정] ||<rowcolor=#FFF><colbgcolor=#E4002B><colcolor=#FFF>
도쿄
후쿠오카
오사카
나고야
삿포로<rowcolor=#FFf> 누적 30회[예정] 9회 34회 12회 4회 2025 3[예정] 2023 2 2 코로나 유행으로 공연 불가[8]2020 3 3 2019 3 2 5 1 2018 4 5 3 2017 5 2 3 1 군 입대로 인한 공백기2015 4 3 5 3 1 2014 4 4 2013 3 2 4 3 1 2012 3 3 팀 재편으로 인한 휴지 기간2009 2
- [ 다큐멘터리 필름 ]
- ||<width=10000><tablebordercolor=#E4002B><tablebgcolor=#E4002B><tablecolor=#FFF> 2012 〜TONE〜 || ||
2013 〜TIME〜 FINAL in NISSAN STADIUM 2014 〜TREE〜 2015 〜WITH〜 2017 〜Begin Again〜 2018 〜TOMORROW〜 2019 〜XV〜 2023 〜CLASSYC〜
6. 활동 역사
6.1. 데뷔 초기
국내와 일본의 데뷔 초 활동을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2003년 12월 26일 한국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이후 실패 없이 꾸준히 성공가도를 타고 정상의 자리에 올라왔던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초반에는 말그대로 개고생을 해가며 일본의 여느 지하 아이돌들과 다를 것 없는 무명 시절을 보내야 했으며, 멤버들이 노력과 피땀을 흘려가며 겨우겨우 성공을 일구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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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의 일본 활동 초기 |
당시에 일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던 보아의 성공적인 진출에 자극을 받은 SM엔터테인먼트는 2004년 말에 동방신기를 에이벡스의 산하 레코드인 리듬존과 계약시킨다. 이후 일본 데뷔 싱글인 〈 HUG〉를 발매했으나, 오리콘 차트 77위에 오른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이는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내디딘 신인 그룹으로써는 대단한 성과로, 당시 "겨울연가" 등의 한국 드라마들을 통한 한류 열풍이 형성된 시기였기 때문에 일본 활동을 하기 전부터 일본 내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그룹의 인지도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뿐이었고 이후 2006년까지의 정규 1집 《 Heart, Mind and Soul》 활동은 고난의 연속이였다. 이는 데뷔 2년차까지 멤버들이 일본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 단지 일본에서 성공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일념 하에 오로지 믿을 것은 한국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본어 한 마디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상태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멤버들은 데뷔 초기에 개인 강사까지 초빙하면서 일본어 공부에 몰두한다. 일본 데뷔 전 3개월 동안은 방에 틀어박혀서 멤버들끼리 일본어 공부만 했다고 한다. 그밖에도 공부를 하면서 배운 일본어를 일본인 스태프들과의 대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회화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고. 물론 일본어가 한국인이 배우기에 어려운 언어는 아니지만, 오늘날처럼 능수능란하게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들인 멤버들의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이 모든 일들은 당시 한국에서 정규 1집 《 TRI-ANGLE》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겸한 일이다. 온갖 방송과 음악 활동을 하면서도 그 사이 짬이 나는 시간마다 틈틈히 일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것.
이후 2005년에는 싱글 〈 Stay with Me Tonight〉와 〈 Somebody to Love〉를 발매하지만, 역시 성과는 에이벡스의 기대 이하였다. 그래도 세 싱글만에 오리콘 차트 20위권 안으로 진입하는 등,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는 있었지만, 동방신기가 한류 그룹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에이벡스로써는 기대하고 있었던 그 이하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말이 좋아서 한류지, 동방신기가 지금처럼 케이팝 열풍을 타고 일본에 상륙한 여느 한류 아이돌 그룹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00년대 초중반의 한류는 언제까지나 음악이나 드라마 쪽으로 치중되어 있었다. 음악 산업의 경우에는 한류는커녕, 오히려 음반 시장의 위축과 1세대 아이돌들의 종말로 위기를 겪고 있던 상황이었다.
2005년 8월에는 에이벡스 소속 가수들이 모이는 음악 축제인 a-nation에 첫 출전을 하게 되는데, 물론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과거 한국에서 활동했을 때부터 동방신기를 알아왔던 소수의 팬들 빼고는 모두 처음 보는 아이돌 그룹의 등장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12] 이렇듯, 2005년은 그저 "일본에 상륙했다"는 것에 위안을 가져야만 했던, 성과로 보면 이루어낸 것이 아무도 없던 처참한 해였다. 게다가 같은 해에 한국에서 발매한 정규 2집 《 Rising Sun》은 각종 음악 차트를 석권하고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쓰는 등 대성공을 거두었기에, 일본과 한국 양국에서의 상황은 더욱 대조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3월에는 5번째 싱글 〈 明日は来るから〉를 발표한다. 이 곡이 원피스의 17번째 엔딩 테마곡으로 채택되면서 토호신키라는 그룹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트 성적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곧 대망의 일본 정규 1집인 《 Heart, Mind and Soul》을 발매하나, 역시 차트에서 강세를 보이진 못했다. 신인 그룹이라는 한계 상 음악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으므로, 프로모션 또한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알릴 계획으로 첫 일본 전국 투어를 개최하는데, 말이 좋아서 전국 투어지, 그냥 대도시들을 돌면서 도심 내에 있는 소규모 라이브하우스에서 공연을 한 것이 전부다. 투어 때 동원된 관객이 15,000명이 채 안 된다.[13]
그래도 투어의 효과가 있었던건지, 투어를 마친 후에 발표한 첫 싱글인 〈 Begin〉이 역대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오리콘 차트 15위에 랭크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2006년 8월에 발표한 싱글 〈 Sky〉는 오리콘 차트 6위에 랭크, 차트 탑10 안으로 진입한 첫 곡이 되었다. 판매량도 이번에는 25,000장을 돌파하며 본격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때 차트 15위에 랭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멤버들이 얼싸안고 기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는 동방신기라는 그룹이 당시 한국의 음악계에서 가지고 있었던 영향력을 본다면 형편없는 기록이었다. 〈 Sky〉를 발매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발매한 정규 3집 《 "O"-正.反.合.》은 당시 아이돌 그룹으로썬 드물게 3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이를 통해 동방신기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가수로 성장했다. 연말 시상식에서도 온갖 상을 독차지하는 등, 한국에서의 입지는 엄청나게 탄탄해졌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한국에서 거둔 성공의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연말 시상식이 있고 멤버들이 향한 곳은 교토에 있는 불교대학. 시상식이 있던 바로 다음날 이른 아침에 일본행 비행기를 타고 건너가서 라이브를 진행했다. 마이크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고 말 그대로 열악한 무대 환경 위에서 라이브를 치렀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국 최고의 그룹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던 이들은 다시 무명 그룹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멤버들에 따르면 이 2006년 말~2007년 초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2008년의 한 방송에서 준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최고의 그룹이다, 최고의 아티스트다라고 불리는데 일본에서는 아무도 그런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서 오는 괴리감이 너무나도 컸다고. 이 때 멤버들끼리 진지하게 일본 활동을 접는 것이 어떨까라는 얘기가 오고 갔었다고 한다.
6.2. 부도칸 입성과 오리콘 1위
고난은 2007년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그나마 2006년 11월에 발표했던 〈 miss you / “O”-正・反・合〉이 차트 3위에 랭크되는 등 좋은 기록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 것은 단순히 팬덤에 의한 반짝 화력이었을 뿐, 이후에는 엄청난 낙폭을 기록하며 순식간에 차트아웃 되어버렸다. 제대로 기반이 다져진 팬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들의 앨범 판매량이 많은 것이 절대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멤버들은 계속해서 길거리와 소규모 라이브하우스를 전전하며 그룹을 알리는 데에 주력한다. 당시 대부분의 지하 아이돌들도 전용 극장은 하나씩 있었던 상황에서, 그런 것 하나 없이 남의 극장을 빌려가면서까지 동방신기는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던 상황.2007년 3월에는 정규 2집 《 Five in the Black》을 발표하고 5월부터 다시 전국 투어에 나선다. 1년 동안 알게 모르게 라이브 공연 등을 통해 동방신기를 지지하게 된 팬들이 꽤 생겨서, 이번에는 공연장의 규모도 제법 커지고 관객 동원력도 꽤나 늘었다. 투어가 성황리 속에서 진행되자, 에이벡스는 " 부도칸 공연"이라는 초강수를 던진다. 무도관이 일본 음악계에서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에이벡스가 본격적으로 동방신기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밀어주기로 결심한 셈.
그리고 2007년 6월 18일에 드디어 성공한 가수들이 들어서는 첫 관문이라는 부도칸에 입성한다.공연 후반부에 멤버들이 열창한 "PROUD"의 라이브는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라이브다. 평소에는 잘 울지 않던 멤버들도 이 노래를 부르던 도중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데, 이 장면은 많은 팬들의 뇌리에 각인되기 충분한 장면이었다. 현장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팬들도 같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 [2007년 6월 19일 부도칸 PROUD]
LIVE TOUR 2007 〜Five in the Black〜
2007년 6월 19일 부도칸 PROUD
부도칸 공연을 마지막으로 라이브 투어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동방신기는 이후 11번째 싱글인 〈 Lovin' you〉를 발표한다. 투어를 통해서 한층 더 올라간 인지도 덕분에 이번에는 판매고 5만 장을 기록하며 차트 2위에 랭크, 이로써 차트 1위에 한층 가까워졌다. 이어서 8월에 발매된 〈 SUMMER〉는 오리콘 데일리 차트 1위로 데뷔하며 12만 장이 넘는 엄청난 세일즈를 기록하는 등, 토호신키라는 이름이 일본 전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 서서히 인기를 받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2008년 초에 한국 컴백을 계획하던 SM엔터테인먼트에서도 계획을 미루고 동방신기의 일본 계획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2008년 1월 16일에 발매된 〈 Purple Line〉을 통해 오리콘 위클리 첫 1위에 등극한다. 하지만 구성된 팬층이 한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얇게 만들어져서인지, 2주차에 31위로 추락하고 3주차 75위, 4주차부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14] 어찌 됐든, 2008년에 들어서면서 동방신기는 본격적인 유명 가수의 테크를 타기 시작한다. 〈 Purple Line〉의 발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정규 3집 《 T》는 15만 장의 세일즈를 기록하며 앨범 차트 4위에 랭크, 이후에는 에이벡스의 기획 하에 싱글 5연작 프로젝트인 TRICK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3집의 곡들과 연계되는 프로젝트라는 점, 인지도가 있는 가수가 매주 싱글을 발매한다는 점이 겹쳐서 대중적인 관심을 얻는 데에 성공한다.
6.3. 일본의 인기 가수가 되다
TRICK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발매된 22번째 싱글 〈 Beautiful you / 千年恋歌〉를 통해 동방신기는 오늘날 토호신키하면 떠올리게 되는 깔끔하고 세련된 신사적 이미지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참고로 이 싱글 역시 오리콘 위클리 차트에서 1위에 오르며, 해외 아티스트로써는 10년만에 2개의 오리콘 1위 싱글을 배출하는 그룹이 되었다.이후 23번째 싱글 〈 どうして君を好きになってしまったんだろう?〉은 그룹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하게 된 계기가 된다. 싱글이 릴리즈되기 전에 인터넷 상에서 녹음 유출본이 떠돌아다니는 등 위기를 맞았으나, 오히려 이 유출본이 인터넷 상에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히트하는 등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보통 일본의 음악계에서 "아이돌"이란 "실력보다는 외모를 판매하는 가수"라는 의견이 중론이었는데, 이를 멋지게 깨부수고 "노래를 잘하는 아이돌", "실력으로 승부하는 아이돌"이란 타이틀을 달고 넷 상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동방신기라는 아이돌 그룹의 등장은 대중의 관심을 한 번에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가장 많은 팬층이 유입되기 시작한 때가 이 때부터이다.
〈 どうして君を好きになってしまったんだろう?〉가 릴리즈된 후의 상황은 그야말로 대박. 이 싱글 역시 오리콘 위클리 1위에 등극하며 이로써 해외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3개의 오리콘 1위 싱글을 갖게 되는 위업을 달성한다. 이어서 발매된 24번째 싱글 〈 呪文 -MIROTIC-〉, 25번째 싱글 〈 Bolero / Kiss The Baby Sky / 忘れないで〉[15] 가 모두 연속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5연속 차트 1위에 성공. 같은 해에 일본 레코드 대상 노미네이트와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가수들만이 설 수 있다는 NHK 홍백가합전에 첫 출장하게 되면서 일본 최고의 인기 가수로 인정받게 된다.[16]
이 때 동방신기의 가창력을 방증하는 곡이 ' Bolero'이다. 다섯명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자랑하는데, 한국에서는 전형적인 SMP아이돌이였던 동방신기가 일본에서는 가수였음을 보여주는 노래이다.
- [Bolero LIVE 보기]
Bolero LIVE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2009년에는 4월 원피스의 주제곡인 ' Share The World'를 부를 가수로 지명되었다. 에이벡스의 대대적인 서포트와 똘똘뭉친 멤버간의 우정, 끝없는 노력으로 오리콘 차트 1위라는 승리를 거머쥐게 된 건 묘하게 주제가 불러준 만화가 연재되는 잡지의 슬로건과 일치한다. 인연이라면 인연인듯. 이후에는 4번째 일본 전국 투어를 진행 중. 총 21번의 공연으로 279,000명의 관객들을 끌어모았고 투어의 파이널 무대를 꿈의 스테이지인 도쿄 돔에서 치렀다.
일본어를 하나도 못하는 상태로 일본에서 데뷔, 고생 속에 왕좌를 손에 넣은 후 순조롭게 성공가도를 달려 데뷔 5년차에 비로소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지만, 2009년 7월에 일부 멤버들이 계약 관련 문제로 한국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와 법적 공방에 들어가면서 사실 상 활동은 2009년 12월 31일에 있었던 NHK 홍백가합전 무대를 끝으로 중단하였다.[17] 이후 2010년에도 1월에 29번째 싱글인 〈 BREAK OUT!〉, 3월에는 30번째 싱글인 〈 時ヲ止メテ〉를 발매했으나 그 어떤 프로모션도 진행되지 않았다.
6.4. 2인조 개편과 닛산 스타디움 입성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한 후, 2011년 2인 체제의 동방신기로 복귀해 한국 활동을 마친 후 싱글 〈 Superstar〉와 정규 5집 앨범 《 TONE》으로 일본 활동을 재개했다.초기에는 과거 5인 시절만큼의 위력을 내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나, 컴백 이후 참여하게 된 첫 a-nation에서 에이벡스의 아이콘이자 상징적인 존재인 하마사키 아유미를 밀어내고 마지막 아티스트로 등장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하마사키 아유미가 거의 고정되었다시피 마지막 무대를 장식해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일본 내에서 동방신기의 입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처음 콘서트 때는 동방신기 뒤에 하마사키 아유미를 배치했었으나, 이후 동방신기의 무대가 끝난 뒤에 팬들이 대거 퇴장하여 관객석이 텅텅 비는 사태가 발생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에이벡스가 세운 특단의 조치. 당시 촬영된 사진을 보면 동방신기가 무대 위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공연장이 에이벡스의 공식 색상인 파랑색 야광봉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동방신기가 출연하자마자 순식간에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에이벡스 내에서 동방신기가 어느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 이 때 이후로 동방신기는 계속해서 a-nation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지막 아티스트로 출전하고 있다.
2012년 한 해 동안은 전국 투어에 매진하며 음악 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투어가 진행된 기간 동안 총 55만 명의 관객들을 동원하며 성공리에 투어를 마쳤다. 음반 및 음원 판매에서는 과거 5인 시절만큼 폭발적인 세일즈를 기록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공백기를 가진 기간 동안 팬덤이 상당히 단단해지고 결속력이 생겼기 때문에 오히려 콘서트에서의 관객 동원력은 더욱 강해진 모습이다. 여담으로 이 때 컴백하면서 레이블을 리듬 존에서 에이벡스 트랙스로 옮겼다.
한류 아이돌보다는 일본 아티스트에 가까운 노선을 추구해 온 덕분에 한일 관계의 악화로 다른 한류 아이돌들의 입지가 위태로워진 와중에도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6번째 싱글 〈 Catch Me -If you wanna-〉가 오리콘 위클리 1위를 차지하면서 해외가수 최초로 오리콘 12회 1위에 성공하였고, 정규 6집 《 TIME》은 정규 5집의 초동을 3일만에 갱신하였다.
2013년 4월부터는 아시아 가수 중 처음이자 역대 16번째로[18] 5대 돔 투어를 실시했다. 4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를 시작으로 진행된 이번 투어에서 89만 명에 달하는 관객들을 모았고, 수익 면에서도 1000억 원에 달하는 수입을 거두면서 전에 있었던 TONE 투어의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웠다. 특히 전 공연 예매로 매진 + 메인 무대가 안 보이는 구역까지 추가 개방 (역시 매진)이 되면서, 이제는 일본에서 관객 동원력은 그 어느 그룹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2013년 8월 18일에는 단일 공연장으로는 일본 최대 규모인 닛산 스타디움에 입성, 72,000석을 매진시키며 성황리 속에 공연을 끝마쳤다. 닛산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한 것은 동방신기가 해외 아티스트 중 최초로, 여러모로 멤버들에게는 뜻깊은 공연. 단 두 명만으로 7만 관중들을 상대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동방신기라는 그룹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이틀 연속으로 공연을 치렀는데, 둘째 날에 촬영된 라이브 영상은 이후 DVD로 발매되었다. 팬들로부터 "역대 최고의 라이브"라는 찬사를 들은 역대급 라이브 무대가 여러 개 나왔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찾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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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TOUR 2013 〜TIME〜 FINAL in NISSAN STADIUM |
2014년 1월 10일에는 일본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 정규 7집 《 TREE》를 3월 5일에 발매한다고 난데없는 갑툭튀를 시전, 팬들을 충공깽으로 몰아넣고 있다. 보통 정규 앨범 사이에 짧게는 1년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남짓의 텀을 두는 이전까지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6집 《 TIME》의 발매 1년만에 바로 다음 정규 앨범을 발매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앨범 발매 전에 앞서 총 4개의 싱글을 릴리즈했는데 전부 오리콘 위클리 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19]
2014년 2월 27일에 있었던 제 28회 일본 골든 디스크 대상에서 5관왕을 달성하면서 건재함을 보여주었다.[20]
애초에 동방신기가 일본의 여러 시상식들에서 "일본 아티스트"가 아닌 "해외 아티스트", 또는 "아시안 아티스트"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런 수상 내용들로 동방신기가 일본 최고의 인기 그룹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21] 그래도 여전히 현재 일본 시장으로 진출한 K-POP 가수들 중에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2013년에는 그룹 자체가 별다른 방송 프로모션 없이 활동의 대부분을 라이브 투어에만 전념하며 미디어 노출을 가급적 자제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5관왕 달성은 더욱 값진 성과다. 일본의 각종 언론들에서도 동방신기의 5관왕 소식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슈가 되고 있고, 게다가 시상식이 진행된 시점이 정규 7집인 《 TREE》의 릴리즈 코앞이었기 때문에, 향후 앨범의 세일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3월 5일에 드디어 《 TREE》가 발매되었다. 이미 발매 이전부터 에이벡스답지 않은 과감한 투자 및 오프라인 프로모션, 그리고 수록곡들의 프리뷰를 통해서 팬덤 사이에 입소문으로 퍼진 뛰어난 앨범의 퀄리티가 겹쳐져 일본 음반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6집 TIME과 비슷한 155,000장 가량의 데뷔 세일즈를 기록했다. 이후 여섯째 날에 5위로 순위가 하락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첫 주 데일리 차트에서 1위를 유지하며 위클리 차트에도 22.5만장의 판매량으로 1위에 등극. 이로써 동방신기는 TONE 때부터 세 정규 앨범을 연속으로 위클리 차트 1위에 올려놓는 신기록을 세웠다. 베스트 앨범인 《 BEST SELECTION 2010》까지 포함하면 4작품 연속 위클리 1위. 당초 한국 정규 7집 및 리패키지 활동으로 인해 음악방송 출연 등의 미디어 프로모션이 진행되지 않았던 터라 판매량이 낮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를 멋지게 깨부쉈다. 4월부터 시작되는 7번째 일본 전국 투어를 앞두고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
2014년의 시작부터 두 달 동안 숨가쁘게 달려왔던 한국 정규 7집 활동을 마치고 3월 24일에 있었던 팬들과의 KTX 기차여행 이벤트를 마지막으로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앞으로 당분간은 TREE 투어 준비 및 《 TREE》의 프로모 활동에 들어갈 것으로 보였으나, 당초에 팬덤 내에서 예상되었던 대로 TREE에 대한 어떠한 미디어 프로모션도 진행되지 않았다. 아마도 곧 있을 투어 준비에 전념하기로 한 것으로 추측된다.
2014년 4월 22일 요코하마 아레나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2달 간에 걸친 7번째 일본 전국 투어인 TREE 투어를 성황리에 끝마쳤다. 도쿄 돔과 교세라 돔에서 3년 연속으로 공연을 하게 된 최초의 해외 아티스트[22]가 되면서 일본 내에서의 인기를 입증했다. 무엇보다도 2인 체제로 컴백하게 되면서 어느 덧 일본에서도 정규 앨범을 3개나 내게 된지라 공연의 구성 자체가 굉장히 풍성해졌다는 것이 고무적. 투어 중간에 릴리즈된 싱글인 〈 Sweat / Answer〉의 홍보 차 방송 활동을 이례적으로 굉상히 왕성하게 했는데, 이에 일부 팬들은 가뜩이나 빡빡한 투어 일정에 방송 활동까지 소화하다가 멤버들의 건강을 걱정할 정도다. 그래도 별 탈 없이 투어가 끝나면서 당분간 창민은 휴식을, 윤호는 자신이 출연했던 드라마 야왕의 일본 홍보 활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14 a-nation에서 피날레 아티스트로 출연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2011년에 처음으로 피날레로 등장한 이래 4년 연속. 이제는 명실상부한 에이벡스의 대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그리고 8월 30일 a-nation 공연에서 2번째 5대 돔 투어 개최가 발표되었다!! 동방신기가 일본 데뷔 10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에 2월부터 3월까지 전국 5대 돔에서 12회의 공연을 가질 예정. 이 소식에 팬덤의 분위기는 "풍악을 울려라!"인 상태. 하지만 아마도 새로운 정규 앨범의 릴리즈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혹여 이 것이 윤호의 군입대 전 마지막 투어가 아니겠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9월 20일에는 42번째 싱글인 〈 Time Works Wonders〉의 릴리즈가 공홈을 통해 발표되었다. 〈 STILL〉 이후 거의 3년만에 싱글 타이틀로 발표되는 소울 발라드 곡이기에 많은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중이다. 특히 에이벡스 유튜브 계정을 통해 공개된 쇼트 버전 PV를 보면 노래 퀄리티도 상당히 괜찮아서 팬덤 사이에서는 큰 호평을 받는 중이었다. 그렇게 2014년 활동을 연말 싱글 활동으로 마무리 하나 싶더니, 뜬금포로 10월 23일에 8번째 정규 앨범인 《 WITH》의 릴리즈가 결정되었다. 2014년 12월 17일 발매 예정으로 전작인 《 TREE》와의 텀은 불과 9개월 밖에 되지를 않는다! 게다가 아무리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어도 엄연히 대한민국의 가수인 동방신기가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정규 8집을 발매한다는 소식에 팬덤은 일대의 대혼란을 겪는 중이다.
곧이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15년에 있을 5대 돔 투어의 제목이 " WITH"로 발표됨에 따라서 확인사살. 이로써 매 정규 앨범의 릴리즈마다 투어를 진행하는 전통은 어찌저찌 이어지게 되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앨범을 낸다는 것이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안 좋게 작용하는 모양이다. 일본 팬들 사이에서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 아무리 전국 투어 전마다 정규 앨범을 릴리즈하는게 관행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설마 억지로 투어 스케줄에 맞추어 9개월만에 정규 앨범을 내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 했었기에 꽤나 놀란 듯하다. 게다가 〈 Time Works Wonders〉는 졸지에 선행 싱글이 되어버려 "2년 8개월만의 발라드 싱글 타이틀"이라는 밸류와 과감히 투자한 프로모션이 무색하게 판매량이 폭망해버렸다.
《 WITH》의 발매 이후에는 이제 정말 투어를 끝으로 당분간 활동을 휴지할 것이라는 팬들의 예측을 뒤엎고 12월 23일에 새 싱글의 릴리즈 소식이 결정되었다. 제목은 〈 サクラミチ〉이며 2인 체제의 동방신기에서는 처음으로 타이틀곡 제목이 일본어인 싱글이다. 아마도 투어 돌입과 동시에 새 싱글을 발표하여 활동을 하고 투어를 마치는 것으로 당분간의 일본 활동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 サクラミチ〉이 〈 Catch Me -If you wanna-〉 이후로 가장 좋은 초동판매량 성적을 기록했고, 2015년 제 29회 일본 골든 디스크에서 또다시 5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꾸준히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2015년 여성세븐에서 조사한 '일본에서 가장 콘서트 티켓 구하기 힘든 아티스트 랭킹'에 9위에 올랐다. 상위권에 있는 가수들이 아라시, 미스터 칠드런, SMAP, B'z, 후쿠야마 마사하루, 사잔 올 스타즈 등등 대부분 일본의 국민 그룹이거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들이기 때문에 대단한 순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후쿠야마 마사하루, 미스터 칠드런, B'z는 데뷔 25년을 넘은 레전드 국민가수들이고 사잔 올 스타즈는 2015년 기준으로 데뷔 37년째 활동하는 전설의 현재진행형 국민밴드임을 생각해보면 동방신기가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해냈음을 알 수 있다.
6.5. 병역으로 인한 공백기
2015년 7월 20일 자로 동방신기 일본 공식 홈페이지에 윤호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당분간의 활동을 휴지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윤호는 8월, 창민 역시 윤호의 뒤를 따라 11월 경에 입대할 예정. 비기스트들을 위한 팬서비스의 차원으로 7월 8일에는 윤호의 솔로 앨범인 《 U KNOW Y》, 11월 18일에는 창민의 솔로 앨범인 《 Close To You》가 비기스트 회원 한정으로 발매되었다. 창민의 군 제대가 2017년 8월 경으로 예정되어 있기에 일본에서 동방신기가 활동을 재개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2018년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2016년에는 그간 동방신기가 했었던 라이브 영상들과 미공개 특전 영상들까지 포함해서 상영하는 필름 콘서트인 "TOHOSHINKI FILM CONCERT 2016 〜TILL〜"가 개최되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조만간 베스트 앨범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하는 중이다. 그리고 2016년 8월 19일, 리믹스 앨범인 《 Two of Us》의 릴리즈 소식이 발표되었다. 앨범 발매일은 10월 5일. 휴식기 동안 팬들의 기다림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7년 "TOHOSHINKI FILM CONCERT 2017 〜TILL2〜"가 개최되었다. 윤호와 창민이 제대를 하면 왕성한 활동을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6.6. 2017년 이후
10월 18일 오랜 시간 기다려 준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존 일본 히트곡들을 모은 베스트 앨범 형식의 《 FINE COLLECTION 〜Begin Again〜》을 발매한다. 11월 11일 삿포로 돔 공연을 시작으로 오사카, 도쿄, 후쿠오카, 나고야 등 일본 5개 도시에서 총 17회 걸쳐 78만 관객 규모의 일본 5대 돔 투어도 펼치며 이 기록은 해외 아티스트 최초 日 5대 돔투어 3회 개최 신기록이다. 10월 13일에는 2년 반 만에 뮤직 스테이션 2시간 SP에도 출연하였다.11월 11일부터는 삿포로 돔 공연을 시작으로 Begin Again 투어를 진행하였다. 더불어 12월 20일에는 활동재개 이후 첫 싱글인 〈 Reboot〉이 발매되었다.
2018년 1월 21일 교세라 돔에서 치러진 Begin Again 투어의 피날레 공연 도중 닛산 스타디움에서의 공연소식이 발표되었다. 동방신기로서는 2013년 TIME 투어에 이어 2번째 닛산 스타디움 공연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일본 공연 역사상 최초 닛산 스타디움 3일 연속 공연이 결정되었다.[23] 아직 동방신기를 제외하면 닛산 스타디움에서 한 번이라도 공연을 한 해외 아티스트조차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기록인 셈.
LIVE TOUR 2017 〜Begin Again〜 Special Edition in NISSAN STADIUM |
닛산 스타디움 공연을 앞둔 6월 4일에는 45번째 싱글인 〈 Road〉, Begin Again 투어가 마무리된 6월 10일에는 정규 9집인 《 TOMORROW》 릴리즈 및 TOMORROW 투어 개최 소식이 발표되었다. 2017년 말부터 이어왔던 왕성한 일본 활동을 지속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0월 16일 정규 9집을 《 XV》를 발표했으며 선행 싱글이였던 46번째 싱글 〈 Jealous〉로 무려 5년 10개월여만에 오리콘 위클리 차트 1위에 올랐다. 이후 XV 투어 개최 소식과 더불어 5대 돔 투어를 함으로써 동방신기 팬덤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다만, 2020년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일본 활동이 중단되었고 한동안 공백기를 가져야만 했다. 11월 27일 디지털 싱글 〈 Small Talk〉으로 팬들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2021년 12월 창민의 미니 2집인 《 Human》이, 이후 2달 뒤 2022년 2월 윤호의 미니 2집 《 君は先へ行く》이 발표 되었다. 한달 뒤에는 동방신기의 첫 미니 앨범인 《 Epitaph》이 발매 되었는데, 이는 정규 9집 발매 이후 2년 5개월만이다.
이후 위드 코로나 국면에 접어들자 일본에서 다시 팬미팅을 가졌고, 코로나 방역이 완전히 풀린 2023년에 CLASSYC 투어를 통해 일본 활동을 재개하면서 다시 왕성하게 일본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7. 팬덤
일본 내의 공식 팬클럽으로는 Bigeast가 존재한다.Big + East의 합성어로 연간 유료 회원제로 운영되며 현재 집계 회원 수는 2018년 4월 기준 35만명을 넘었다. 이는 5인이 활동했던 당시의 14만명을 훌쩍 뛰어넘은 수로 2012년 18만번대, 13년 24만번대, 14년 35만 이상으로 한 번 투어를 돌 때마다 많은 신규팬이 유입됨을 보여준다. 유료 회원제인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수로, 무료로 풀리게 되는 순간 회원의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동방신기가 2인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서 새로 모집을 받기 시작했고, 현재는 대부분이 2인 체제의 동방신기를 지지하는 이들. 5인을 지지하거나 JYJ 3인을 지지하는 이들은 대부분 탈퇴를 권유받았다.[24]
7.1. 역사
처음 대다수의 팬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무렵은 《 T》 때로, 〈 Purple Line〉이 오리콘 위클리 1위에 랭크되면서 일본 전역에 동방신기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서 동방신기의 팬이 된 사람들의 숫자도 급격히 증가. 이후 《 The Secret Code》를 거치면서 동방신기가 한창 리즈시절을 뽐내고 있을 때는 일본의 어느 그룹과 맞붙어도 쉽게 지지 않을 정도의 막강한 화력을 뽐냈다.동방신기가 막 데뷔했을 무렵에는 데뷔하기 전부터 한국 활동을 통해 동방신기를 알아온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초기에는 팬덤의 기반이 상당히 약했었기 때문에 차트에서 잠깐 동안 좋은 성적을 내다가 이후에 급격히 순위가 떨어지는 모습을 많이 보였었다. ' Purple Line'도 첫 주에는 오리콘 위클리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으나 그 다음 주에는 31위로 폭락했다. 하지만 《 The Secret Code》 이후로는 워낙에 팬덤의 규모가 커져서 차트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 どうして君を好きになってしまったんだろう?'는 차트에 무려 25주 간 롱런했다.
이렇듯 팬덤이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방신기가 정립하고자 했던 신사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마케팅이 제대로 먹혀들어갔기 때문이다. EXILE, SMAP와 같은 중견 그룹들을 서포트하기에는 이미 그룹 자체가 아이돌적인 느낌을 탈피한 상태이고, 그렇다고 Kis-My-Ft2처럼 귀여움을 강조하는 비주얼계 아이돌 그룹의 팬을 하는 것은 꺼리는, "젊으면서도 남성적이고 세련된" 아이돌을 원하던 이들을 상대로 제대로 겨냥한 것. 아직 아이돌의 젊고 활력 넘치는 느낌이 살아 있으면서도 남성적이고 신사적인 매력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동방신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룹이 일본 데뷔 10년차를 넘어가면서 팬덤이 굉장히 성숙해졌다. 2인 체제로 활동하면서 유입된 신규 팬들이 많으나, 여전히 5인 시절 때부터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켜온 올드팬들[25]도 상당수이기 때문에 때문에 회원들의 나이대가 10대부터 3~40대까지 다양하다.
7.2. 팬덤 특징
상징색은 한국의 팬클럽인 카시오페아와 동일한 빨간색. (아래 사진처럼) 'Bigeast'라고 적힌 붉은색 타올이 이들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아이템. 실제로 a-nation에 가보면 저 타올을 몸에 두른 팬들을 많이 볼 수 있다.Bigeast 타올 |
동방신기가 일본의 음악계에서 지니고 있는 위치가 워낙에 특이하다 보니, 이들의 팬덤도 다른 아이돌 그룹의 팬덤들과는 어느 정도 차이를 띈다. 아이돌의 팬덤과 아티스트의 팬덤, 두 가지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첫번째로, 비정상적으로 엄청난 관객 동원력이다. 정규 앨범과 같은 경우에는 앞서 말했듯이 꾸준히 30만 장을 넘기며 플래티넘을 찍기는 하지만, 싱글과 같은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20만 장을 넘긴게 〈 Why? (Keep Your Head Down)〉이고, 이후로는 계속해서 판매량이 감소 추세에 있다. 사실, 동방신기의 싱글 판매량은 20만 장 고지를 넘긴 적이 딱 네 번 뿐이다.[26] 다른 인기 아이돌 그룹들이 기본적으로 팬덤의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2~30만 장은 기본이고, 50만 장에서 심지어는 밀리언셀러까지 찍는 것을 보면 유독 동방신기는 그 네임 밸류에 비해 음반 세일즈에서 힘을 못 쓴다.[27] 그렇다고 해서 팬덤의 화력이 약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게, 음반 판매량 대비 콘서트 관객 동원력이 사기적이다. 당장 싱글 판매량도 현재 10만 장대 초반 밖에 못 찍는 그룹이 투어에서는 1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것이다. 동방신기의 이런 모습은 이미 1집 《 Heart, Mind and Soul》 때부터 나타났던 현상이다. 오리콘 차트에서 고작해야 3~40위권을 왔다갔다 하는 그룹이 첫 투어에서 15,000명 수준의 관객들을 끌어모으는 것을 보면 이런 비정상적인 관객 동원력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현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2인 체제로 그룹이 재편되고 나서 유독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는데, The Secret Code 투어 때까지만 하더라도 30만 명이 채 안 됐던 관객 숫자가 TONE 투어 때는 55만 명을 찍더니, TIME 투어 때는 89만 명을 기록했다. 게다가 해외 아티스트로서는 사상 최초로 일본 최대 규모의 공연장인 닛산 스타디움에서의 2일 연속 공연도 전석 매진의 성황리 속에 치르는 등, 콘서트나 투어에서만큼은 무시무시한 흥행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3년까지 동방신기의 투어 총 관객 숫자는 194만 명으로, 2013년에 있었던 TIME 투어만으로 거의 그 절반에 가까운 숫자의 사람들을 끌어모은 것이다. 2014년에 있었던 TREE 투어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3년만에 2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두번째로는 음반 판매량의 추세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동방신기는 투어의 관객 동원력이나 그 명성에 비해 유독 음반 세일즈에서 힘을 쓰지를 못하는데, 이 것을 팬덤의 화력이 약하다고 보기에는 힘든 것이 음반 사는 것보다 10배 가까이 비싼 콘서트 가는 것은 그 어떤 팬덤들보다도 잘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애초에 동방신기가 음반을 판매할 때 여타 아이돌 그룹들에 비해 상술을 적게 부리는 것에도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팬들의 아이돌스럽지 않은 앨범 구매 방식에도 이유가 있다. 동방신기가 일본의 음악 산업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가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중간쯤이다 보니, 그 팬들도 다른 아이돌의 팬들이 일단 자신들이 좋아하는 그룹의 신보가 나오면 일단 닥치고 구매하고 보는 것과는 달리 음악이 자신의 기호에 맞아야 음반을 산다.[28]이는 이미 《 The Secret Code》 때부터 일어나던 현상으로 그룹의 리즈시절이라고 불리는 이 때도 평균 싱글 판매량은 10만 장대 초중반이었다.
다만 요즘 들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는 추세로, 2014년 1월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발표된 싱글인 〈 Very Merry Xmas〉와 같은 경우에는 초동 판매량이 11만 장에 불과했다. 도무지 이게 90만 관객을 동원하는 가수의 음반 판매량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수준이다.[29]
다만 그렇다고 팬덤이 전혀 아이돌스럽지 않은 건 아니어서, 필요한 경우에는 그 어떤 팬덤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가공할만한 화력을 뽐낸다. 그 예시가 2009년 그룹이 해체설에 시달릴 때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음반의 판매량. 해체설이 처음 제기된 2009년 중반 때부터 싱글 및 앨범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특히 베스트 앨범인 《 BEST SELECTION 2010》과 같은 경우에는 초동 판매량으로만 50만 장에 달하는 세일즈를 기록했다. 이제 겨우 인기 가수의 궤도에 올라선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그룹의 판매량으로는 엄청난 양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팬덤이 절대 화력이 약해서 음반 차트에서 힘을 못 쓰는게 아니다. 다만 그 화력을 안 쓰는 것일 뿐이다.
세번째는 높은 충성심과 그룹에 대한 지지다. 애초에 멤버가 큰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2010년에 있었던 활동 중단의 경우를 보면 팬덤의 충성심 자체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룹이 해체될 수도 있는 위기 속에서, 단순히 그룹이 계속 존속될 것이라는 희망만을 가지고 활동 중단 이후에도 제자리를 지킨 팬들이 대다수다. 이런 모습은 일본 아이돌 산업에서는 그 전례가 없었다. 이후에 결국 그룹이 반토막이 나서 2인 체제로 컴백하긴 했지만, 여전히 동방신기의 이름을 이어나가고 있는 2인을 열렬히 지지해주는 것을 보면 팬덤 자체가 상당히 성숙함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코어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져, 농담으로 인생을 걸었다고 할 정도의 팬덤 성향을 보인다.
8. 특징
8.1. 음악 스타일
다분히 팝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다른 일본 아이돌 그룹들과는 달리, 화음과 멜로디를 기반으로 한 발라드 곡들이 많다. 이는 기본적으로 멤버들의 가창력이 탄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음역대가 겹치는 멤버도 없고, 거기에다가 각 멤버들의 목소리가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프로듀서들의 입장에서도 이리저리 써먹기 좋은 멤버 구성이다. 멤버들도 이를 인지해서인지 대외에 자신들의 하모니를 특이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그렇다고 물론 발라드 곡들만 부르는 것은 아니고, ' Summer Dream'과 같은 발랄한 느낌의 곡부터 ' Purple Line'과 같은 격렬한 SMP 계열의 곡들까지 곧잘 소화해낸다. 앨범마다 3~4곡 정도는 반드시 발라드 곡이 들어가며, 아이돌 그룹으로써는 드물게 오케스트라, 어쿠스틱 기타 등등의 악기가 반주에 많이 쓰인다.어느 한 프로듀서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대다수의 일본 아이돌들은 소수, 심한 경우에는 한 명의 프로듀서한테서만 곡을 받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동방신기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SM의 작곡가 풀을 통해 그룹의 음악 스타일에 부합하는 곡들만 프로듀싱 받는다. 이는 특정 작곡가한테만 의존하는 경향을 완화하고 동시에 곡의 퀄리티도 높일 수 있는 일석이조인 셈. 일본 데뷔 초기에만 하더라도 오로지 일본 프로듀서들의 곡만 골라서 썼으나, 정규 3집부터는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과 서양의 프로듀서들로부터도 곡을 받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동방신기가 선호하는 프로듀서가 없는 건 아니다. 신지로 이노우에, 스즈키 다이스케, 야마모토 카츠히코, 유영진[30]이 동방신기에 곡을 자주 주는 대표적인 프로듀서들.
멤버들의 음악적인 욕심도 대단해서 정규 3집인 《 T》 때부터는 멤버들의 자작곡이 적어도 하나씩 수록되고 있다. 실제로 앨범을 계획할 때도 멤버들이 직접 프로듀서와 만나 앨범이 제시하고자 하는 음악적 방향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31] 이런 멤버들의 적극적인 모습은 일본의 아이돌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케이스. 윤호와 창민은 5인 시절 상대적으로 다른 세 멤버들에 비해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2014년 1월에 있었던 한 인터뷰를 통해 곡의 프로듀싱에도 관심이 생겼다라고 말하는 등, 이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노래의 작사와 작곡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 듯 하다.
자신의 곡들에 실험적인 사운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 The Secret Code》의 ' 呪文 -MIROTIC-'에서 클럽 사운드가 사용된 것을 시작으로 시간이 갈수록 일렉트로 팝적인 색깔이 강한 곡들을 많이 발표하는 중. 특히, 그룹이 2인 체제로 전환된 이후로는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사운드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는 그룹의 메인 보컬들이 팀을 떠나게 되면서 생기게 된 하모니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대책이었으나, 오히려 이를 통해 신규 팬층이 유입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오고 있다. 여러모로 그룹 자체가 상당히 팝스러워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멤버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아카펠라 그룹"의 속성을 버린 것은 아닌지라, 이후의 앨범들에도 발라드 넘버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다. 다만 과거 5인 시절 때부터 덕질을 해왔던 팬들 중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동방신기의 곡 스타일에 이질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전반적으로 가사가 상당히 진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랑과 이별은 물론이고, SM 계열 종특인 사회비판, 자아성찰 등등 상당히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이런저런 메시지들이 담긴 가사가 많다. 특히 이런 다크한 분위기의 가사는 《 The Secret Code》와 《 TIME》의 수록곡들에서 많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9095. 이 곡은 멤버들이 자신들이 가사를 작사해놓고 자신들이 이해를 못하겠다고 할 정도다.[32] 물론 가끔씩 ' B.U.T (BE-AU-TY)'처럼 가벼운 가사가 담긴 곡들도 나오긴 하지만, 어찌 됐든 대부분의 곡들이 가사에서 아이돌 그룹치고는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8.2. 활발한 방송 활동
해외 아티스트 그룹치고는 여러 방송 및 언론 매체에 자주 노출되는 편이며, 실제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2008~2009년 사이에는 TV를 틀었다 하면 이들이 나올 정도로 대부분의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다. 데뷔 초기 때는 아직 업계 내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멤버들이 일본어를 구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음악 방송 빼고는 출연을 자제했지만, 2007년부터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기 시작하고, 멤버들의 일본어 실력도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할 정도로 늘면서 일부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특히, 2집 《 Five in the Black》와 3집 《 T》 활동 초기 때는 기획사인 에이벡스의 방송 채널인 "A채널"의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면서 방송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이들이 이 A채널에서 한 것들은 주로 평범한 일본 예능에서 볼 수 있는 것들. MC들을 상대로 스포츠 시합을 한다든지, 10만엔을 주고 쇼핑몰을 가서 원하는 아이템을 산다든지 하는 등의 다양한 소재들로 많이 출연했다. 특히, 동방신기가 한국에서 온 그룹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매운 음식 먹기,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 등을 말하는 토크쇼 등의 프로그램들을 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재밌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 번 찾아서 보자.
그룹이 본격적으로 주가를 올리기 시작한 2008년부터는 케이블에 국한되지 않고 지상파에도 진출하여 왕성한 방송 및 예능 활동을 벌였는데, 이 때는 멤버들의 일본어 실력이 원어민 수준으로 능숙해졌다. 게다가 이제는 일본의 문화에도 많이 익숙해진 멤버들이 다양한 토크 소재를 꺼낼 수 있었기 때문에, 방송국들에서 러브콜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멤버 전원이 전부 "천연 + 자신만의 개성을 띠는 컨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점들은 동방신기라는 그룹이 좀 더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가는데 한 몫 했다. 멤버들도 한 번 일본어에 도가 트이고 난 뒤부터는 말이 부쩍 많아져서, 이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하나같이 상당히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운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좀 더 친근감 있고 재미있다는 사람들이 많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와는 동떨어지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대중에게 더욱 큰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2009년 때는 예능 감각에 물이 오른 상태. 자신들을 능욕시키려고 했던 개그맨들과 MC들을 오히려 역관광시키고, 자신들이 프로그램을 주도해나가는 등 방송에 출연하는 것에 자신감이 올랐다. 게다가 이제는 일상 생활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들을 모아 토크쇼나 콘서트 MC를 볼 때 자주 써먹기도 하며, 이 때부터는 멤버들의 컨셉도 이제는 서로의 차이가 확연해져서 더욱 재밌어졌다. 일본의 인기 토크쇼 오샤레이즘의 메인 사회자인 우에다 신야는 동방신기와의 프로그램 촬영 이후 "이렇게 재미있는 남자들은 처음 봤다.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참 잘 한다."라고 말할 정도.
활동 중단을 겪고 나서 2인 체제로 컴백한 이후로는 가급적이면 방송 출연을 자제하고 라이브 투어 등의 음악 활동에 전념하는 모습이다. 물론 언제까지나 과거에 비해서 방송 출연의 비중이 줄었다는 것이지, 여전히 꽤 다양한 프로그램들에서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으며, 두 멤버들의 입담도 전보다 더욱 재치 있어졌다. 최근에는 윤호가 "약간 모자란 형" 컨셉을, 창민은 "모자란 형을 디스하지만 그래도 챙겨주는 츤데레" 컨셉을 하고 있다. 실제 방송에서 보면 창민의 주옥같은 말들에 감탄사를 내지를 정도. 촌철살인이다.
최근에 케이팝 붐이 일면서 다른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도 일본 방송에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아직은 이들의 일본어 실력이 모자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통역이 필요한 것과는 달리 동방신기는 그런 것도 필요 없기 때문에 방송국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편하다. 그렇기에 주가는 여전히 높다. 다만 외국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아직 레귤러 TV 프로그램을 맡아본 적은 없다. 라디오의 경우에는 2007년 4월 1일부터 2009년 12월 26일까지 "비기스테이션"이라는 프로그램의 MC로 활동하면서 좋은 입담을 선보였었기 때문에, 팬들 중에는 동방신기가 레귤러 TV 프로그램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팬들도 많다.
8.3. 탈아이돌급 실력
동방신기하면 많은 일본인들이 떠올리는 것이, "아이돌이라기 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깝다"라고 할 정도의 뛰어난 실력이다.일단 기본적으로 멤버들 자체가 한국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철저한 관리와 계획 아래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 양성된 S급 연습생들이었다. 특히, "가수라는 작자들이 노래가 아니라 얼굴로 승부하려고 한다"는 대중들의 혹독한 비판 아래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SM의 입장에서는 이번 그룹만큼은 어떻게든 실력을 키워서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수 년 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 데뷔한 것이 동방신기다. 나름 H.O.T., 신화 등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들을 배출해 온 기획사에서 회사의 사활을 걸고 내놓은 사실 상의 에이스인 셈. 이미 데뷔 무대를 치렀을 때부터 이들의 실력은 다른 여타 아이돌들과는 차이가 났다. 데뷔 후에도 대중이 아이돌에게 갖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 일부 멤버들은 창법을 바꿔가면서까지 피나는 연습을 하면서, 서서히 실력파 그룹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이 정도였는데 일본에서는 말 다 했다. 아직 실력보다는 외모 등의 표면적 이미지로 승부하는 일본의 아이돌 시장에서 동방신기는 그 어떤 아이돌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넘사벽급의 실력을 가지고 데뷔한 것이다. 팬덤과 함께 성장한다는 성장형 아이돌 컨셉으로 이제 막 일반인을 벗어난 멤버를 데뷔시키던[33] 일본의 기존 아이돌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 게다가 동방신기와 같은 경우에는 연습생 때부터 SMP 장르를 이어받을 후계자의 포지션으로 계획된 그룹이기 때문에 댄스 실력 또한 뛰어나다.
동방신기는 순수하게 멤버들의 실력에 의존해서 커온 그룹이기 대문에 오늘날 일본인들 중에는 토호신키를 아이돌보다는 아티스트로 분류하는 이들이 더 많다. 다른 아이돌 그룹들이 실력파 컨셉을 강조하며 자신들을 아이돌 그룹이라 부르지 말고 아티스트라고 불러줄 것을 요구하는 것과는 달리, 이 그룹은 "우리들도 아이돌이에요...라고 말하고 있는 셈.
동방신기는 대부분의 무대를 MR에 의존하지 않고 100% 라이브로 치러낸다. 이 정도로 격렬한 안무를 추면서 원곡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의 라이브를 보여주는 것은 대단한 실력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실제로 이들은 온갖 댄스곡들을 다 소화해오면서도 일본의 아이돌 그룹들은 다 한 번씩은 있었던 그 흔한 가창력 논란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아이돌팬들이 실력파 그룹에 대해서 논의를 할 때 동방신기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제외한다.
2013년 12월 26일을 기점으로 데뷔 10년차를 맞이하게 되며 어느덧 멤버들이 30대의 나이를 바라보게 된 장수 그룹이다. 긴 세월동안 쌓인 실전 경험으로 인해 더욱 넘사벽이 되었다. 그동안 쌓은 무대 위에서의 내공 실력은 일본의 그 어느 아이돌 그룹들과 비교해도 넘사벽. 여기에 오랜 일본 생활로 능숙해진 일본어 실력은 덤. 이제는 라이브 투어를 할 때도 능숙하게 MC를 보는 편이며, 진정으로 팬들과 함께 소통을 할 줄 아는 그룹이 되었다. 물론 SMAP, 아라시, Perfume과 같이 일본 내에서도 10년 동안의 무대 경험을 쌓아온 아이돌 그룹들은 많다. 하지만 그런 장수 아이돌 그룹들 중에서도 동방신기의 퍼포먼스와 실력을 따라올 수 있는 그룹은 많지 않다.
8.4. 신사적인 이미지
일본의 보이그룹이 데뷔 초기에 대부분 시도하는 이미지는 "귀여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애교와 깜찍함을 내세우며 여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한국에서는 그룹의 이미지, 새로운 앨범 타이틀곡의 컨셉, 그룹에 소속된 멤버의 이미지 등 이미지 전략이 먹혀들어가는 것이 현재의 일본 아이돌 시장이다. 현재는 국민 스타 반열로 오른 SMAP도 데뷔 초기에는 귀여운 이미지 마케팅을 통해 인기가수가 되었다. 이런 기획사들의 여심을 겨냥한 전략에 넘어가 팬이 되는 사람들도 많았고 보이그룹의 가식적인 모습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많았다. "데뷔 초기의 남성 아이돌 그룹들은 전부 귀여움을 강조한다"는 고정관념이 일본 아이돌계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있었는데, 이를 깬 것이 바로 동방신기다.정규 2집 《 Five in the Black》을 기점으로 다른 보이그룹과는 차별화되는, 신사적이고 깔끔한 이미지를 내세우기 시작했는데, 이는 3집 《 T》를 거쳐 4집인 《 The Secret Code》 때 정점을 찍었다. 다른 보이그룹에게는 보기 힘들었던 남자다운 모습, 카리스마, 뛰어난 무대 장악력은 "귀여운 보이그룹"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단숨에 자신들의 팬이 되게 만들었다. 동방신기는 얼굴은 귀엽지만 무대에서는 프로페셔널하고 카리스마있게 라이브를 소화해 많은 사람들이 동방신기의 팬이 된 것.
게다가 멤버들의 개성이 워낙에 강하기에 개인 팬질을 하기에도 충분할 뿐더러, 그렇기에 동방신기라는 그룹에 한 번 빠져들면 그 다음부터는 멤버 한 명 한 명을 차례대로 돌아가며 덕질하는 무한 루프에 빠지게 된다. 2008년을 기점으로는 멤버들의 일본어 실력에 불이 붙으면서 개그나 예능 프로에도 곧잘 출연하는 등 그룹 자체가 엔터테이너로서의 끼가 있다. 실제로 동방신기가 출연한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상당히 시끌벅적하지만 그래서 더욱 재미있고 유쾌하다. 하지만 다시 무대에 서면 5명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무, 탄탄한 보컬 실력을 기반으로 한 화음과 빼어난 가창력, 관객들을 휘어잡는 무대 장악력, 뛰어난 MC 진행까지[34], 가수로써 부족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예능에도 곧잘 녹아드는 엔터테이너지만 본업인 가수의 역할에도 충실한 동방신기의 모습에 팬이 된 이들도 많다.
귀여움을 컨셉으로 잡는 전략이 여성들의 대상이 되는 반면에 남성미를 강조하는 동방신기는 남성미를 내세워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어필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열리는 동방신기의 단독 콘서트에서는 다른 보이그룹보다 남성 팬들이 굉장히 많다. 동방신기가 콘서트를 진행하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윤-호! 창-민!" 이라고 외치는 남성 팬들의 외침이 압권. 실제로 일본의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다른 보이그룹을 좋아하면 욕을 먹는 반면에 동방신기를 좋아하면 인정해준다고 한다.
이런 동방신기의 신사적인 모습은 일본의 연예계 내에서도 유명한지라, 실제로 일본의 유명 여자 연예인들이 이상형으로 동방신기의 멤버들을 자주 꼽는다. 그 중에서도 윤호와 같은 경우에는 여자 연예인들 사이에서 이상형으로 많이 꼽히는데, 그 중에는 AKB48의 여왕으로 불리던 마에다 아츠코도 있다. 그 밖에도 타케이 에미, ViVi 모델 와타나베 치카코 등도 호감을 표하는 등, 인기가 상당한 편. 다른 멤버들도 연예계 내에서의 인기가 상당한 편이다. 그 밖에도 대외적으로 알려진 동방신기의 예절바른 모습은 젊은 연예인들은 물론 중견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해, 한 스태프의 말에 따르면 "그토록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초심으로 돌아간 듯이 예절 바르고 싹싹하기 때문에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다."고 한다. 평소에 한류 아이돌들에 반감을 표하는 연예인들도 동방신기에 대해서만큼은 예외라고.
그 밖에도 연예인들의 인기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로 꼽히는 CDTV "남자친구로 삼고 싶은 아티스트" 투표, "베스트 지니스트" 투표 등에서 멤버 전원이 항상 탑 10 안에 들어간다.[35] 심지어는 활동이 오랫동안 끊긴 지금도 탑 10에 들어가는 위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신사적인 컨셉을 유지하는 이미지 메이킹에도 한계가 있어서, 자칫 팬들이 동경하기에는 너무 거리감이 멀게도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점을 타개하기 위해서 2인 체제로 컴백한 이후로는 이런저런 컨셉들을 시도해가며 다양한 이미지를 시도했는데, 과거 5인 시절의 동방신기가 "팬으로서 좋아하긴 하지만 사람으로서 다가가기에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는 이상향적인 존재"였다면, 현재의 동방신기는 "깔끔하고 멋진 젠틀맨의 이미지가 풍기면서도 사람의 향기가 나는 친근한 존재
9. 여담
9.1. 콘셉트
동방신기도 아이돌 특유의 콘셉트가 있었는데 특이하다면 특이한 가족이다. 방송에서 데뷔 때부터 줄곧 같은 숙소에서 생활하며 살아온 걸 필두로 서로 가족이란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밀어서 서로 결속력이 강한 가족 같은 그룹이란 걸 보여줬다.팬들도 이를 잘 알기에 일본 넷쪽에서는 오히려 가족 애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을 정도. 자세히 말하자면 윤호는 아빠, 재중은 엄마, 유천은 장남, 준수는 차남, 창민은 막내. 본인들도 이를 인식해 서로 "아빠, 엄마"라 부르기도 하며 특히 재중은 만들어준 밥을 깨작거리면 엄마의 마음으로 슬퍼진다고.
현재 2명 체제가 된 후의 콘셉트는 윤호는 약간 모자란 형, 창민은 그런 형을 잘 뒷받침하고 츳코미 거는 동생.
9.2. 한국에서의 토호신키
한국에서 동방신기가 활동하는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기 때문에, 한국 팬들 중에는 한국에서의 동방신기보다 일본에서의 토호신키를 더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2년 가량의 긴 공백기간을 가지면서 발표하는 것이라고는 꼴랑 정규 앨범 한 장이 전부인 것에 반하여, 일본에서는 몇 달 간격으로 꾸준히 싱글을 릴리즈하며 프로모션 활동을 하고 있고, 게다가 정규 앨범을 릴리즈하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5집 《 TONE》 이후 6집 《 TIME》이 발매되기까지 1년 반이 걸렸던 것을 제외하면 모든 정규 앨범들 사이의 간격은 불과 1년 남짓. 특히 《 T》와 같은 경우에는 전작 《 Five in the Black》이 발매된지 불과 10개월만에 릴리즈되었다.
다만 그룹이 인기를 얻고 나서는 공격적인 프로모션이 필요가 없어졌는지, 정규 앨범 사이의 공백기간이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그래봤자 1년 안팎으로, 한국에서는 짧게는 1년 반에서 길게는 2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여전히 엄청난 속도다. 특히, 동방신기가 한국에서 정규 1집을 낸 때가 2004년, 일본 정규 1집을 낸 때가 2006년인데 정규 7집의 경우에는 두 달 차이 밖에 안 난다. 팬들은 이러다가 일본 8집이 한국 8집보다 먼저 나오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중이었는데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37]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팬들이 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의 곡을 타국인 일본에서나마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한국의 팬들에겐 큰 매력이다. 게다가 곡들의 퀄리티도 조악한 것이 아니라, ' Bolero'나 ' どうして君を好きになってしまったんだろう?'와 같은 초고퀄리티의 곡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이를 한국어로 들을 수 없는 한국 팬들의 입장에서는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교차하는 노릇. 팬들 사이에서 "이 곡이 한국어로 불렸으면"하는 노래가 한두 개가 아니다. 한국에서 부르는 곡들은 꾸준히 일본어로 번역해서 일본 앨범에 수록곡으로 담는데 비해, 아직 오리지널 일본 노래가 한국어 버전으로 불린 적은 몇 번 없기에 한국의 팬들은 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최근 들어서는 SM에서도 이런 팬들의 소망을 눈치챘는지, 오리지널 일본어 노래들 중 인지도가 있는 곡들을 한국어 버전으로 라이브 투어나 콘서트 때 멤버들이 부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12년에 있었던 "Catch Me" 월드 투어 때는 ' 時ヲ止メテ'와 ' B.U.T (BE-AU-TY)'의 한국어 버전을 라이브로 불렀으며, 한국 정규 6집에는 ' I Don't Know'가 수록곡으로 실리는 등, 미약하게나마 SM에서 주는 떡밥들로 팬들은 소원 성취를 하는 중이다. 게다가 2013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윤호가 정규 7집 외에도 데뷔 1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의 팬들을 위해 따로 스페셜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팬들은 이게 혹시 그 동안의 일본어 노래들을 한국어 버전으로 재녹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설렘과 기대를 했다.
굳이 음악만이 아니더라도, 동방신기 멤버들을 예능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 한국에서는 음악 방송에 초점을 맞추면서 예능에 자주 출연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거의 "TV만 틀었다 하면 나온다"할 수준으로 이런저런 방송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한다. 게다가 꽤나 조용하고 과묵한 이미지를 선보이는 한국 방송에서와는 달리, 일본 방송에서는 "저게 아이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멤버들이 아주 철저히 망가진다. 성대모사는 기본이고 각종 콩트, 오야지 개그, 슬랩스틱까지 그야말로 엔터테이너의 정석을 보여준다.
일본의 방송 프로그램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한국보다는 많이 자유롭기 때문에 멤버들도 일본에서만큼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신경쓰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방송에 임하는 듯하다. 실제로 한국에서 출연한 프로그램에서는 멤버들이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일본에서 나온 프로그램들을 보면 엄청나게 시끄럽다. 멤버들 모두가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아무리 떡밥을 찾으려고 해도 찾기가 힘든데 비해서 일본에서는 그냥 아무 프로그램이나 골라서 봐도 멤버들이 알아서 떡밥을 탈탈 털어내므로 한국 팬들의 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 때문에 동방신기가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하면 그 당일날 자막이 담긴 동영상이 업로드되기만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하지만 일본에서 토호신키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팬들이 긍정적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는 있다지만, 엄연히 이들은 한국의 가수인데, 이렇게 일본에서만 떡밥을 주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다는 불만 아닌 불만을 팬들이 토로하는 상황.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다. 멤버들이 한국에서 활발히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것에는 일본에 비해 다소 무거운 한국의 방송 분위기의 탓도 있고, 다른 것보다도 한국 기획사인 SM에서 어느 정도 제약을 걸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팬들로써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을 타지에서나마 자주 그 소식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9.3. 한류 그룹인가, J-POP 그룹인가?
동방신기에 대해서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는 논쟁 중의 하나가 바로 동방신기를 한류 그룹으로 보는지 안 보는지다.동방신기를 한류 그룹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 이미 동방신기가 일본에 진출했을 당시 겨울연가 등을 비롯해 한국의 드라마들과 영화들을 통해 일본 열도에 한류가 상류한 상태였고, 그렇기 때문에 동방신기가 순전히 자신들의 노력만으로 일본에서 성공을 이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일본에서 데뷔를 치르는 신인 그룹이, 게다가 수량 한정으로 내놓은 첫 싱글 "HUG"가 오리콘 차트 100위 안에 진입한 것만 봐도 이미 그룹 자체가 한국 활동을 할 때부터 한류 열풍을 통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당장 Perfume과 같은 지하 아이돌이 메이저로 진출하여 성공을 거두기까지 겪었던 온갖 고생들을 생각해본다면, 동방신기는 한류 바람을 타고 비교적 안전하게 가요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물론 지금이야 K-POP이 세계적인 음악의 트렌드로 자리잡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의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아시아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과거에는 달랐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한류는 오로지 드라마와 영화 산업으로만 한정되어 있었으며, 음악계와 같은 경우에는 한류라고 해봤자 과거 8, 90년대의 조용필과 이박사가 전부였다. 동방신기가 일본에 데뷔했던 시점에서 당시 유일하게 일본에서 인지도가 있었던 한국 가수는 보아 뿐. 그렇기 때문에 동방신기가 한류의 덕을 봤다고 보기는 힘들다.
게다가, 동방신기도 위에 언급된 그룹들 못지않게 일본에서 무명 생활을 하며 오랜 기간 동안 시련을 겪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열악환 환경 속에서도 그것을 꿋꿋이 견뎌내면서 연습생으로 살아온 기간이 3~4년. 그리고 동방신기가 일본 데뷔 후 성공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또 3년이다. 그 3년 동안 이들은 길거리 라이브, 게릴라 콘서트, 전단지 홍보 등 온갖 고생을 해가면서 인지도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어에 능하지 못해서 그룹을 홍보하려고 해도 말이 막혀서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대중들은 그런 그들을 외면하기만 하는 현실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멤버들은 다른 아이돌들의 배로 노력해야 했을 것이다. 성공한 지하 아이돌의 대명사로 불리는 퍼퓸도 "폴리리듬"으로 성공하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순전히 메이저 데뷔 이후부터로만 따지면 2년이다. 두 그룹 다 과거 연습생 시절부터로 돌아가면 무명으로 지낸 세월은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방신기라는 그룹의 노력을 이렇게 경력만으로 따지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도 동방신기를 한류 그룹으로 보는 사람은 극우 진영뿐이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동방신기를 한류 그룹이 아니라 그저 한국인으로 구성된, 순수한 J-POP 그룹으로 인식한다. 한국에서 불렀던 노래들을 그대로 들여와서 일본어로 가사를 번역해서 부르기보다는, 일본인 작곡가로부터 받은 오리지널 J-POP 노래로 승부를 하며 인지도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동방신기도 한국에서 활동한 곡들 중에 일본어 버전으로 불린 곡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곡들은 대부분 한국 활동을 할 때 썼던 타이틀곡들 뿐이고, 절대다수의 곡들은 전부 일본 오리지널 노래들이다. 게다가,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이 일본에서 활동할 때 노래를 부르면서 가사에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쓰는 것과는 다르게 가사가 전부 일본어다. 애초에 일본에서 가수 활동을 하고자 하는 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다. 월드 투어 형식으로 일본에 잠깐 공연 차 방문하러 오는 게 아닌 이상은, 일본 음악 시장을 겨냥해서 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곡의 가사를 일본어로 작사함은 당연한 것. '일본 음악 시장의 주된 리스너들은 엄연히 일본인이지 한국인이 아니다. 때문에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한국어를 쓰기보다는, 가사에는 오직 일본어를 써야 맞는 것이다. 실제로 다른 한류 아이돌 그룹들이 가사에 한국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여기가 한국이냐"며 이를 극도로 혐오하는 일본인들이 많아졌는데, 동방신기는 그런 것이 없기에 이런 논란을 피해갈 수 있었다.[38]
그 덕분에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이미지가 꽤 좋아, 실제로 2011년부터 거세진 일본의 반(反)한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 다른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이 방송에서 출연을 제지당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경로가 대부분 차단당한 상태에서, 동방신기만큼은 그나마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도 꾸준히 출연하며 정상적으로 프로모션 등의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예 피해를 안 본 건 아니라서 2012년부터는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을 못하고 있지만...[39] 어찌 됐든, 세간의 인식은 한류 그룹보다는 J-POP 그룹으로 보는 쪽이 좀 더 많다.
이렇듯 데뷔 초부터 한류 열풍을 타기 보다는 오리지널 J-POP 그룹의 노선을 걸어왔었던지라, 일본 내에서 한류가 시들어진 이후로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이 일본 시장에서 유달리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퇴보 없이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비록 음반이나 음원 세일즈에서 폭발적인 화력을 뽐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룹이 인기 궤도에 오른 2008년 이후로는 매 싱글마다 꾸준히 적어도 골드 인증을 받고 있고, 가수의 실질적인 대중 인지도를 측정하는 지표인 정규 앨범 차트에서는 초동 판매량으로만 플래티넘 인증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어느덧 일본 데뷔도 10년이 넘어간 현 시점에서, 탄탄한 팬덤을 바탕으로 어느덧 장수 아이돌 그룹으로써의 테크를 다져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9.4. 아이돌인가, 아티스트인가?
동방신기가 한류 그룹인지 J-POP 그룹인지 못지 않게 거센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 그룹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문제다. 이미 한국 내에서는 동방신기가 아이돌 그룹이라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고착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의 음악계 입장에서 봤을 때는 단순히 이들을 아이돌 그룹으로 치부하기에는 다른 아이돌들과는 구별되는 여러 차이점들이 있다.우선적으로, 외모로 승부하기 보다는 철저히 실력에 기대어 승부를 본다는 것. 몇 년 간의 고달팠던 연습생 생활과 한국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철두철미한 계획 아래 양성된 그룹이 바로 동방신기이기에, 일본의 여타 아이돌 그룹들과 비교를 당하기에는 실력 면에서 너무 뛰어난 것이 현실. 가끔씩 일본의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해서 다른 가수들의 곡을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원곡보다도 퀄리티가 더 좋아서, 한 일화로 어느 아이돌 그룹이 레귤러를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동방신기가 그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는데 MC들이 노래를 끊는 상황도 있었다. 여러모로 실력 면에서는 동방신기를 능가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가수는, 굳이 아이돌로 한정짓지 않더라도, 일본 가요계 안에서는 많지 않다.
활동 영역에서도 차이를 두고 있어, 여타 일본의 아이돌들이 제대로 트레이닝도 받지 않고 데뷔하여 음악 활동보다는 방송, 연예 활동 전반에 걸쳐 엔터테이너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동방신기라는 그룹은 방송 분야에서도 활동을 하되, 자신들의 기반은 순수히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 두고 있다.
당연히 노래를 부르는 것에만 만족하지는 않고, 작사, 작곡, 프로듀싱 등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대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모두 "음악"과 관련된 분야들이다. 최근 들어서 멤버들이 연기에도 도전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그렇다고 연기에 큰 뜻을 두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도 멤버들은 언제까지나 자신들의 알파이자 오메가를 "노래하는 가수"로 보고 있다. 남아있는 두 멤버들도 "팬들과 함께 무대 위에 설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늘상 말하는 등, 당분간 이들이 가수 활동에서 손을 떼는 일은 없을 듯. 실제로 2인 체제로 컴백한 이후로는 라이브 투어와 음반 발표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행보에서 여러모로 아티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위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동방신기는 아티스트"라는 주장이 더 우세하다. 허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동방신기가 아이돌적인 요소를 완전히 안 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중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로 치면 과거 전성기 시절의 god 정도의 포지션이다. 가요계에서 최정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아이돌 그룹인 점을 강조하지만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동시에 띄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9.5. 각종 문화매체에서의 패러디
9.5.1. 일본 만화 벨제바브에 등장하는 그룹명
東邦神姫로 동방신기와는 한자가 다르다. 일단 토호신키의 패러디로 보인다. 한국정발판에서는 동방신희 그대로 번역되었다.9.5.2. 이시야마 고의 토호신키
4명의 성에서 1글자씩 한자를 딴 이름. 자세한 것은 각각의 항목 참고.9.5.3. 미니미 친피라고의 토호신키
- 東山 - 히가시야마
- 邦彦 - 쿠니히코
- 神谷 - 카미야
- 姫路 - 히메지
[1]
이 문서는 일본 내에서 진행된 활동만을 다루므로, 멤버들의 이름을 공식적인 4글자 닉네임으로 표기하지 않고 "
윤호"나 "
창민" 으로 표기한다.
[2]
2024년에
세븐틴과
TWICE가 콘서트를 할 예정이다.
[3]
에이벡스가 만들어내는 굿즈의 열악한 퀄리티 및 최악의 가성비를 생각한다면... 이런 굿즈들을 사는 팬들이 성인이다.
[4]
한국 정규 1집 일본 라이센스반 포함
[5]
한국 정규 2, 3집 일본 라이센스반 포함
[6]
한국 정규 4집 일본 라이센스반 포함
[7]
#
[8]
한국 정규 5집 일본 라이센스반 포함
[9]
싱글 〈
サクラミチ〉 릴리즈를 끝으로 하반기부터 두 멤버들의 군 복무로 인해 활동 휴지에 들어갔다.
[10]
군 복무 중이라 리믹스 앨범 <Two of Us>만 발매 되었다.
[11]
10월 25일부터 활동 재개를 한 터라 그 이후의 기록만 통계에 집계되어 있다.
[12]
당시 실황 동영상을 보면 나오지만, '
Somebody to Love'를 부를 때는 멤버 모두가 "점프! 점프!"하면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지만, 관객 아무도 점프를 하지 않는다.
[13]
여담으로, 이 때 진행된 전국 투어는 이후 동방신기가 하게 된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다. 매 정규 앨범의 릴리즈마다 꾸준히 전국 투어를 개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 중간의 공백기를 제외하면 거의 매년 하고 있다.
[14]
참고로 이 첫 주 1위→둘째 주 31위라는 낙폭은 2011년
PASSPO☆가 기록한 첫 주 1위→둘째 주 101위 기록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일본
오리콘 사상 최악의 낙폭 기록이었다.
[15]
2009년 1월에 발매된 싱글이다. 2008년에 발매되었다고 혼동할 수 있으니 주의 바람.
[16]
이 때 홍백가합전에서 부른 노래는 'Purple Line'과 'どうして君を好きになってしまったんだろう?'.
[17]
홍백가합전 무대에서는 28번째 싱글곡인 '
Stand by U'를 불렀다.
[18]
먼저 실시한 순서대로
SMAP,
GLAY,
KinKi Kids,
쿠와타 케이스케,
B'z,
본 조비(해외),
MISIA,
이글스(해외),
사잔 올 스타즈,
미스터 칠드런,
빌리 조엘(해외),
아라시,
EXILE,
오다 카즈마사,
칸쟈니∞, 동방신기(해외).
아무로 나미에나
하마사키 아유미도 돔 투어를 실시했지만, 이들은 인구가 적어 집객이 어려운 삿포로 돔을 제외한 4대 돔 투어를 실시했다.
[19]
이로써 《
TREE》는 《
Five in the Black》 이후 처음으로 오리콘 위클리 싱글 1위곡을 단 한 곡도 배출하지 못 한 앨범이 되었다.
[20]
"베스트 아시안 아티스트", "앨범 오브 더 이어", "베스트 3 앨범", "송 오브 더 이어 by 다운로드", "베스트 뮤직 비디오"의 5개 부문에서 수상을 했으며, 이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달성되기 어려운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21]
대부분의 일본 음악 시상식들은 자국 아티스트들과 해외 아티스트들을 따로 구분지어 시상을 한다. 골든 디스크 대상도 마찬가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방신기의 절대적 인지도가 낮다는 것은 아니다. 싱글 초동 판매량이 못해도 10만 장을 넘기고, 단 한 번의 투어로 100만 명에 가까운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일본 가수들을 포함한 매출 랭킹에서도 10위 안에 들 정도다.
[22]
한 투어에서 도쿄 돔과 교세라 돔에서 각각 4회 연속 공연을 한 최초의 해외 아티스트라는 기록도 세웠다.
[23]
일본 닛산 스타디움은 그 거대한 규모로 인해 이곳에서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통상적으로 하루 내지는 이틀 동안 공연을 진행한다. 3일 연속으로 이 곳에서 공연을 할 정도면 일본 내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의 관객 동원력을 지녀야 한다.
[24]
가혹하긴 하지만 어찌 보면 맞는 소리다.
탈퇴 멤버 3명이 더 이상 동방신기로 돌아올 여지가 남게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의 5인 시절을 언급하며 올킵페(Always Keep the Faith)를 외치는 이들이나, 더 이상 동방신기의 소속이 아니게 된 멤버들을 지지하는 이들은 팬클럽 입장에서 보자면 진정한 팬들이 아니다. 현재
동방신기에 남아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두 멤버들에 대해서 서포트를 하는 것이 맞는 선택이다.
[25]
이들의 충성심은 대단히 높아서 2010년에 활동이 중단되었을 때도 탈퇴하지 않고 남은 팬들이 대다수. "더 이상 5인으로써의 동방신기는 볼 수 없겠지만, 그 이름을 이어나가는 두 멤버들을 지지하자."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다.
[26]
〈
Stand by U〉가 21만장, 〈
BREAK OUT!〉이 29만 장, 〈
時ヲ止メテ〉가 23만 장, 〈
Why? (Keep Your Head Down)〉이 29만 장을 팔았다.
[27]
다만 이는 동방신기가 딱히 상술을 안부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엑자일 같은 경우는 무려 17종 자켓이라는 경악스런 상술을 부리고 akb의 악수회,선거권 끼워팔기는 악명이 높은데 비해 동방신기는 딱 CD랑 CD+DVD 이렇게만 판다
[28]
일본 내에서도 이런 그룹이 꽤 있다. 대표적으로
Perfume. 이들도
동방신기의 이미지와 같이 아이돌보다는 아티스트 쪽에 기울어져 있다.
[29]
그러나 사실 동방신기의 싱글 및 앨범 판매량이 인지도에 비해서 낮을 수 밖에 없는게, 동방신기는 정규 사양 외에도 비기스트 회원들을 위한 비기스트반을 따로 만들어 판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팬들은 이 비기스트반을 구입하는데, 이 비기스트반이 차트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앨범 판매량이 낮게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0]
SM 전속 작곡가로 웬만한 SM 아이돌 그룹들의 한국어 곡은 다 이 사람이 작곡한다.
[31]
유천 같은 경우에는 아예 프로듀서가 완성해서 준 곡을 자기 입맛대로 편곡해서 멤버들에게 부르게 했다고 한다. 실제로 멤버들의 자작곡은 유천이 만든 것이 대부분이며, 스스로도 프로듀싱에 관심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32]
실제로 작사를 한 것은 아니고, 멤버인
재중이 한국어로 먼저 가사를 쓴 다음에, 번역가에게 부탁해 가사를 일어로 번역한 것이다.
[33]
이는 한국과 일본의 아이돌에 대한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아이돌도 가수라고 생각하는 반면, 일본은 아이돌과 가수를 분리해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한국만큼 아이돌한테 뛰어난 실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34]
다만 이는 멤버들이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시작한 2008년부터로 한정된다.
[35]
특히,
재중의 경우에는 위의 CDTV 투표에서는 1위를 했고, 베스트 지니스트에서는 2연속 2위에 랭크되는 등, 그 인기가 상당하다.
[36]
물론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윤호와 창민의 말에 따르면 2인으로 복귀한 초기에는 MC 진행이 많이 어려웠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5명이서 MC를 보기 때문에 이야깃거리도 많고 한 명 당 멘트를 하는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멤버 2명이서 나머지 3명의 공백까지 메우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TONE 투어 때는 MC 타임이 너무 짧다고 팬들의 원성이 높았을 정도니... 지금은 두 명이서도 훌륭하게 MC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37]
2014년 12월 17일 정규 8집 《
WITH》 발매.
[38]
동방신기도 한국어를 쓴 적이 있긴 하다. 바로 '
Why? (Keep Your Head Down)' 때로, 가사의 (Why?) 부분을 한국어 버전 그대로 (왜)라고 불렀다. 물론 두 단어의 발음 차이가 확연할 정도는 아니라서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39]
반한류의 사회적 분위기가 조장되면서 2017년
TWICE가 출현하기 전까지 2012년부터
NHK는 홍백가합전에 한국 가수들을 초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