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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21:47:39

토미 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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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모리슨
Tommy Morrison
<colbgcolor=#000000><colcolor=#aa9872,#8c7a55> 본명 토미 데이비드 모리슨
Tommy David Morrison
출생 1969년 1월 2일
미국 아칸소주 그래비트
사망 2013년 9월 1일 (향년 44세)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국적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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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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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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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권투
전적
52전 48승(42KO) 3패(3KO) 1무
종합격투기
전적
1전 1승(1KO)
신장/리치 188cm / 193cm
체급 크루저, 헤비급
스탠스 오서독스
링네임 The Duke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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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권투 선수.

2. 전적

3. 커리어

10세부터 복싱을 시작했으며 고등학교졸업후 엠포리아 주립대학교에서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13세 때 오클라호마, 캔자스, 미주리, 아칸소 주에서 열리는 지역 터프맨 콘테스트에 참가하기 위해 신분증을 위조하기 시작했다. 모리슨은 20번의 경기에서 승리했고 단 한 번만 졌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복서로서 모리슨은 캔자스 시티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1988년 올림픽 선발전에서 레이 머서와 겨루었지만 판정패했다. 아마추어 전적 222승 20패를 기록했다.

1988년 프로로 전향했고 28승 무패를 기록하다가 1991년 10월 레이 머서를 상대로 WBO 타이틀전을 치렀으나 5라운드 TKO패했다.

이후 8연속 KO승을 거두고 1993년 6월 조지 포먼을 상대로 12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WBO 타이틀을 획득했다.

1차 방어까지 성공적으로 치렀으나 1993년 10월 마이클 벤트를 상대로 1라운드 TKO패로 업셋을 당하며 타이틀을 상실했다.

1994년 7월, 떡밥 취급을 받던 로스 퓨리티에게 두 번이나 다운을 당한 후 10라운드 무승부를 기록했다.

1995년 6월 IBC 헤비급 타이틀을 놓고 도노반 러독과 맞붙었다. 모리슨은 1라운드에 다운을 당했지만 6라운드 만에 러독을 꺾었다.

1995년 10월, 레녹스 루이스에게 6라운드 만에 패배했다.

1996년 2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아서 웨더스와 겨룰 예정이었지만, 모리슨이 HIV 양성 반응을 보인 후 경기가 취소되었다. 이후 은퇴 선언을 했지만 1996년 11월에 복귀하면서 "HIV는 링에서 전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2라운드 만에 마커스 로드를 꺾었는데, 그곳에는 HIV 양성 권투 선수의 싸움을 금지하는 규칙이 없었다.

1996년 음주운전 혐의로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00년에 다시 감옥에 수감되어 마약 및 무기 소지 혐의로 14개월을 복역했다.

2007년에 복귀하면서 HIV에 감염된 적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양성 반응이 잘못되었거나 경쟁 프로모터의 음모라고 말했다. 또한 HIV가 정부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애리조나에서 일련의 의료 검사를 통과한 후 웨스트버지니아에서 복싱 라이선스를 받았고, 그 결과는 웨스트버지니아로 전달되었다.

2007년 2월, 모리슨은 웨스트버지니아 체스터에서 존 캐슬을 2라운드 KO시켰다.

모리슨이 텍사스에서 라이선스 발급을 신청했을 때, 그는 처음에 애리조나에서 실시한 혈액 검사를 제시했는데, 이는 웨스트버지니아가 그에게 복싱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데 사용한 것과 같은 서류였다. 하지만 모리슨의 HIV 병력 때문에 텍사스 ​​면허 및 규제부 대변인인 패트릭 쇼네시는 텍사스가 위원회에 익숙한 주 내 실험실에서 추가 검사를 하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모리슨의 예정된 경기 몇 시간 전에 서면 결과가 도착하지 않자 경기는 취소되었다. 며칠 후, 모리슨은 텍사스에서 라이선스 발급 신청을 철회했다.[1]

모리슨의 전 에이전트인 랜디 랭은 혈액 변조 및 사기 혐의를 제기했으며, 모리슨이 2007년 1월에 HIV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2007년 6월, MMA에 데뷔했다. 경기가 애리조나 주 복싱 위원회의 관할권 밖인 야바파이-아파치 네이션 보호구역에서 열렸기 때문에 모리슨은 혈액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모리슨은 코리 윌리엄스를 상대로 1라운드 KO승을 거뒀다.

모리슨의 마지막 경기는 멕시코에서 맷 바이샤를 상대로 한 3라운드 KO승이었는데, 이 경기에서는 혈액 검사가 필요하지 않았다.

2011년 2월 몬트리올에서 경기를 치르려고 했지만, 위원회 위원이 있는 승인된 몬트리올 기관에서 검사를 받자는 권투 위원회의 요청을 거부했다. 모리슨은 위원회에 1996년 HIV 양성 검사 결과의 증거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고, 위원회에 HIV 바이러스 존재를 감지하는 개봉되지 않은 검사지를 들고 기자 회견에 의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경기는 취소되었고 모리슨은 "우리는 개와 조랑말 쇼를 다른 곳으로 옮길 것입니다.(We’ll take the dog and pony show somewhere else.)"라고 말했다.

2013년 8월, 모리슨의 어머니는 ESPN.com의 선임 작가에게 아들이 본격적인 AIDS에 걸렸다고 전했다.

2013년 9월 1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망 증명서에 따르면 그는 HIV 감염 환자의 이환율과 사망률의 일반적인 원인인 녹농균 패혈증(Pseudomonas Aeruginosa Septicemia)이라는 혈액 감염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 파이팅 스타일

87.5%의 KO률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엄청난 하드펀처였으며, 특히 레프트훅이 강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다만 현역 시절 체력 이슈를 가지고 있었다. 프로 경력 첫 패배를 당했던 레이 머서와의 경기에서도 4라운드 동안 머서의 클린치와 더티복싱으로 체력이 평소보다 더 빠르게 떨어져 아예 입을 크게 벌린 채 숨을 몰아쉬는 등 지친 기색을 드러냈고, 결국 5라운드 28초 만에 머서에게 무자비한 콤비네이션을 맞으며 아무것도 못하고 KO를 당한 것이었다.

5. 여담

배우 ​​ 존 웨인의 조카라고 주장해 왔다(일부 소식통은 증조카라고 보도).[2] 하지만 인터뷰에서 웨인의 아들인 패트릭은 "그가 우리와 혈연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계속 이긴다면, 물론이죠. 그는 우리 아빠의 조카입니다."라고 말했다.

프로 경력 초기에 1990년 개봉 영화 록키 5에 캐스팅되어 토미 건이라는 배역을 맡았다.

아메리카 원주민, 스코틀랜드 혈통을 갖고 있다.

아들 트레이 리페 모리슨과 제임스 켄지 윗-모리슨도 복싱을 했고, 형인 팀 모리슨[3]도 헤비급에서 활동한 프로 복싱 선수였다.


[1] 모리슨이 1년 동안 유효한 라이선스 요청을 철회한 것이 이상하냐고 묻자 쇼네시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답했다. [2] 존 웨인의 본명은 메리언 로버트 모리슨이다. [3] 프로 데뷔전 상대가 올리버 맥콜이었다. 결과는 맥콜의 1라운드 KO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