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토르스텐 구스타브 아돌프 린드베리 (Torsten Gustav Adolf Lindberg) |
생년월일 | 1917년 4월 14일 |
사망년월일 | 2009년 8월 31일 (향년 92세) |
국적 | 스웨덴 |
출신지 | 내셰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191cm | 94kg |
소속팀 |
외리튀레 IS (1939-1940) IFK 노르셰핑 (1940-1953) |
국가대표 | 19경기 (1947-1951) |
감독 |
IFK 노르셰핑 (1953-1954) 유르고덴스 IF (1964-1966) AIK 포트볼 (1969-1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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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린드베리는 1939년부터 외리튀레 IS에서 본격적인 선수 경력을 시작했고 1940년에 IFK 노르셰핑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노르셰핑은 1942-43 시즌에 더블을 달성했는데 당시 노르셰핑은 이전에 우승 기록이 아예 없었다. 린드베리는 1944-45 시즌의 알스벤스칸 22경기에서 23골을 허용했고 그해의 스벤스카 쿠펜도 다시 우승에 성공, 더블을 또 달성했다. 이후 노르셰핑은 3연속 리그 우승을 더 추가했다.
린드베리는 노르셰핑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1953년에 은퇴할때까지 총 6회의 알스벤스칸 우승을 경험했다.
2.1.2. 국가대표
IFK 노르셰핑에서의 성공으로 1947년, 당시 30세의 린드베리는 블로굴트의 부름을 처음 받았다. 그해 6월 15일에 치러진 덴마크전에서 린드베리는 인상적인 방어로 스웨덴의 선제골을 잘 지켜냈고 결국 경기는 스웨덴의 4:1 승리로 끝났다.그 결과로 린드베리는 1948년 올림픽에서 스웨덴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고 스웨덴 대표팀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1949년부터 칼레 스벤손의 기량이 급성장해서 대표팀 주전 골키퍼 자리를 놓고 린드베리와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린드베리는 결국 1950년 월드컵 때 주전 골키퍼 자리를 스벤손에게 내줬고 스벤손의 활약으로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는 것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린드베리는 1951년 10월 21일, 덴마크전을 끝으로 국가대표팀 경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2.2. 감독
1953년, 린드베리는 소속팀이던 IFK 노르셰핑의 선수 겸 감독으로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린드베리는 1954년까지 노르셰핑의 감독직을 맡았고 스웨덴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린드베리는 1958년 월드컵에서 스웨덴 대표팀 코치, 유르고덴스 IF에서 감독으로 알스벤스칸 2회 우승을 이끈 경력이 있다.
3. 뒷이야기
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 알스벤스칸 우승 6회: 1942-43, 1944-45, 1945-46, 1946-47, 1947-48, 1951-52( IFK 노르셰핑)
- 스벤스카 쿠펜 우승 2회: 1943, 1945(IFK 노르셰핑)
- 알스벤스칸 준우승 2회: 1952-53(IFK 노르셰핑)
- 스웨덴 디비전 2 우승 1회: 1944, 1953(IFK 노르셰핑)
4.1.2. 국가대표
4.2. 감독
4.2.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