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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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키어런 리차드슨 Kieran Richard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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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키어런 에드워드 리차드슨 Kieran Edward Richard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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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4년 10월 21일 ([age(1984-10-21)]세) | |
잉글랜드 런던 그리니치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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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75cm / 69kg | |
주발 | 왼발 | |
직업 | 축구선수( 미드필더[1], 레프트백 / 은퇴) | |
소속 | 선수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 유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1~2002 / 유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2~2007) →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2005 / 임대) 선덜랜드 AFC (2007~2012) 풀럼 FC (2012~2014) 아스톤 빌라 FC (2014~2016) 카디프 시티 FC (2016) 그라나다 CF (2017) |
국가대표 | 8경기 2골 ( 잉글랜드 / 2005~2006) |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미드필더, 레프트백이였다.2. 클럽 경력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에서 축구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2001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스 팀으로 이적했다.그는 맨유에서의 첫 시즌에 2군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1군팀의 등번호 42번을 받았으나, 데뷔 하지는 못했다.
2002-03 시즌을 앞두고 프리시즌 훈련 기간부터 1군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이더니 결국 2002년 10월 23일에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 경기인 올림피아코스와의 경기에 출전하면서 1군 경기에 데뷔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2년 11월 5일에는 레스터 시티 FC와의 풋볼 리그 컵 경기에서 첫 골을 넣었다. 2002-03 시즌 동안 리그 경기 2회를 포함하여 9번의 출장에 1골을 기록하였다.
2003-04 시즌이 시작되면서 그는 등번호 23번을 받고, 지난 시즌보다 더 나은 활약을 보여주길 기대했지만, 단 3회 출장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모두 리그컵과 FA컵 경기였다.
2004-05 시즌의 전반기 동안 그는 9회 출장에 1골을 기록하며 1군팀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은 더 많은 1군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임대를 결정하였다.
리처드슨은 노리치 시티로 임대되길 원했으나 퍼거슨은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으로 임대를 추진했다. 리처드슨은 WBA가 강등권을 탈출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는 중앙 미드필더로 팀의 주전이 되었으며, 12경기 출장에 3골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즌 마지막 날에 강등을 피하게 되었다.
2005-06 시즌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돌아온 뒤 2005년 9월 가브리엘 에인세의 장기 부상으로 인해 레프트백으로 맨체스터 경기에 복귀하였다. 그는 곧 미드필더 보직을 받았고,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리처드슨은 21세 생일에 소속팀과 4년 계약을 맺으며 생일을 자축하였다. 그는 시즌 동안에 총 36경기 출장에 6골을 기록하였다.
2006-07 시즌에 그는 리그컵과 FA컵에서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퍼거슨은 젊은 선수들이 크루 알렉산드라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보여준 수준 낮은 경기에 격노하였다. 퍼거슨은 리처드슨과 다른 선수들이 2군팀에서 뛰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비난하기도 하였다. 리처드슨은 왓포드와의 FA컵 준결승전에서 한 골을 넣으며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맨유의 팬들은 리처드슨에게 게으르고 거만한 태도를 보인다면서 "로드 스누티" (거만의 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2007년 7월 16일, 그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대략 550만 파운드 정도의 금액이라고 알려진 이적료에 4년 계약을 맺고 이전의 맨유의 주장이었던 로이 킨이 감독으로 있는 선덜랜드 AFC로 이적했다. 그는 시즌이 시작한 후에 척추의 피로 골절 진단을 받았다. 이는 이후 약 네 달 동안 지속되었다.
2007년 12월 29일에 선덜랜드에서의 첫 골을 볼턴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서 기록하였다. 또한 2008년 1월 13일에는 포츠머스 FC와의 홈 경기에서 두 골을 넣기도 하였다.
2008-09 시즌부터는 확고한 주전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는 물론이고 레프트백 자리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면서 다재다능함을 선보였고, 2010 FIFA 월드컵을 앞두고는 대표팀에 승선을 점칠 정도로[2] 축구 선수로서 크게 성장했다.
2010-11 시즌을 앞두고 소속팀과 3년 재계약을 채결했다. 해당 시즌에는 주로 레프트백으로 활약했다. 리차드슨은 월드컵에서 보여준 마이콩의 활약을 참고하며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2012년 8월 31일, 이적시장 마감을 앞두고 풀럼 FC으로 이적하였다.
2014년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강등당한 풀럼 유니폼을 벗고 애스턴 빌라로 이적하였다. 당시 빌라에는 선덜랜드 시절에 함께 사제지간으로 호흡을 맞췄던 로이 킨이 수석코치로 있었다.
2015-16 시즌에 빌라가 강등당하자 계약을 해지했다.
2016년 10월, 카디프 시티와 단기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두 달만에 계약을 해지했다.
2017년 4월 12일, 그는 트라이얼을 통해 라 리가의 그라나다 CF와 시즌 종료까지 계약을 맺었다.
이후에는 계약이 만료된 뒤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조용히 현역 은퇴를 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웨스트브롬에서 뛰던 시절에 U-21 대표팀에 소집되어 활약했다. 그리고 당시 A대표팀 감독이었던 스벤예란 에릭손의 눈에 띄어 A대표팀에 소집되었다.그는 2005년 5월 28일, 미국과의 원정 친선전을 통해 데뷔했으며, 프리킥 1골을 포함 2골을 득점하며 데뷔전에서 맹활약했다. 경기 후 에릭손 감독은 그의 활약에 환상적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극찬했다.
이후 U-21 대표팀 소속으로 프랑스와의 UEFA U-21 챔피언십 예선 플레이오프에 출전했다. 그러나 그는 2차전에서 후반 종료를 앞두고 페널티 박스 안에서 라사나 디아라에게 반칙을 가하며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고, 결국 실점으로 연결되며 2:3으로 패하여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2차례 월드컵 지역예선전에 출전했던 리차드슨은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승선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선택을 받지 못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스티브 맥클라렌이 선임된 이후에도 꾸준히 대표팀에 소집되며 기회를 받았다. 다음 해에는 2007 UEFA U-21 챔피언십 본선 무대에 참가하여 3경기를 출전했다.
2006년 이후에는 더 이상 A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면서 대표팀 기록은 8경기 2골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