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생의 브라질 축구선수: 클로도아우두(1978)
클로도아우두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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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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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클로두아우두 Clodoaldo |
본명 |
클로도아우두 타바레스 산타나 Clodoaldo Tavares Santana[1] |
출생 |
1949년
9월 25일 ([age(1949-09-25)]세) 브라질 합중국 아라카주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키 174cm |
직업 | 축구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
소속팀 |
산투스 FC (1966~1979) 뉴욕 유나이티드 (1980) 탬파베이 로디스 (1980) 나시오날 FC (1981) |
감독 | 동티모르 (2010) |
국가대표 | 38경기 1골( 브라질 / 1969~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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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클로도아우두는 1966년 산투스 FC에 데뷔했다. 클로도알두는 산투스의 상파울루 주립 리그 3연패와 전국리그 우승에 공헌했으며, 그로 인해 브라질 대표팀페도 뽑히는 등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후 상파울루 주립 리그에서 2번 더 우승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1979년까지 산투스에서 뛰면서 무려 510경기에 출장하는 기록을 남겼다.이후 뉴욕 유나이티드와 템파베이 로디스에서 잠시 뛰다가 나시오날 FC로 이적해 1981년에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클로도알두는 1969년에 국가대표팀에 데뷔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다.당시 브라질 대표팀에는 펠레, 호베르투 히벨리누, 토스탕, 자이르지뉴 등 위대한 10번들이 즐비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10번이었던 펠레가 이들을 통솔했고 중앙에선 플레이메이커 제르송, 수비형 미드필더 클로도알두가 균형을 맞추었다. 그 결과 공수 밸런스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브라질은 막강한 화력을 발휘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잉글랜드, 루마니아를 연파하고 조별리그를 통과한 브라질은 8강에서 테오필로 쿠비야스가 이끌던 페루를 4:2로 꺾었다.
우루과이와의 4강전에서는 루이스 쿠비야에게 선제골을 실점하며 끌려갔다. 하지만 클로도알두는 엄청난 쇄도에 이은 강력한 슈팅으로 우루과이의 골문을 갈랐다. 이후 브라질은 자이르지뉴와 호베르투 히벨리누의 추가골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클로도알두의 활약은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계속 되었는데, 월드컵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이자 1970년 대회를 장식하는 마지막 골이었던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토히스의 4번째 골은 클로도알두가 이탈리아 선수들 4명을 제쳐내며 시작되었다. 이에 힘입어 브라질은 이탈리아를 4:1로 대파, 3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줄리메 컵을 영구소장하게 된다.
3. 플레이 스타일
클로도알두는 기본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였기에 수비력이 아주 뛰어났다. 그래서 1970년 당시 제르송, 펠레, 호베르투 히벨리누 등 공격력이 뛰어났던 선수들을 커버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리언다운 테크닉까지 갖추어 단독으로도 수비를 여럿을 벗겨내는 드리블 실력을 지녔다.[2]4. 우승
- 산투스 FC
-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5회
-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