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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파네스 Ξενοφάνης | Xenophan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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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기원전 570년경 |
이오니아 콜로폰 | |
사망 | 기원전 478년경 |
직업 | 방랑시인, 철학자, 종교 사상가 |
[clearfix]
1. 개요
고대 그리스의 방랑시인이자 철학자, 종교 사상가.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에 영향을 끼쳤다. 파르메니데스의 스승이라고도 한다. 플라톤은 자신의 대화편에 그렇게 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게 주장한다.2. 상세
소아시아 서쪽 해안의 이오니아 지방 콜로폰에서 출생하였다. 이후 방랑시인, 철학 사상가로 거리를 떠돌다 이탈리아 남부 엘레아에 정착하였다. 그가 이렇게 고향을 떠난 것은 혓바닥 놀림이 신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콜로폰이 페르시아에게 점령되자, 혹은 점령되려는 찰나에도 콜로폰 지배계급이 사치하고 으스대는 꼬락서니를 혓바닥으로 극딜하고 고향을 떠났다. 그 후 전해지는 그의 증언에 따르면 그리스 전역을 유랑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튀르키예 서부 해안인 이오니아 지역은 물론 그리스 본토, 이탈리아 곳곳을 유랑해 봤을 듯하다. 아프리카와 불가리아 지방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을 보면 이 지역도 여행했던 듯하다. 또, 시라쿠사, 몰타 섬, 키클라데스 제도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등 에게해와 시칠리아 인근에도 여행했던 듯하다. 아마 풍물에 밝았을 것이다.크세노파네스는 올림픽의 승자보다 사람들이 지키는 법을 만드는 지혜를 강하게 설파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올림픽에서 강펀치를 날리건 말을 잘 타건 다리가 빠른 걸 보여주건 국가의 법질서를 지키는 데 하등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법질서가 잘 지켜져야 국가의 창고가 부유해진다. 이를 통해 국가의 법질서와 재정에 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1] 부유한 상류층을 욕했던 것을 보면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 폴리스라는 공동체와 법을 통한 운영의 중요성, 혹은 집단적인 윤리의식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듯하다.
기존 서사의 신인동형론적 신학을 비판하기도 했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를 대표격으로 비판했다. 단, 오해해선 안 되는데 이건 '신화'에 대한 비판이지 '신'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크세노파네스가 호메로스의 제우스 묘사를 비판할 때, '제우스'가 아니라 '호메로스'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지역과 부족이 달라지면, 신의 개념도 달라지는 것을 근거로 인간형 신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만약 소나 말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그들이 가진 신의 모습은 소나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신은 인간과는 다른 어떤 것이며, 또한 움직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 것이며, 어디에서 있다가 이동해서 다시 어딘가로 나타나는 것도 말도 안 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물리력이 아니라 정신을 사용하는, 단 하나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즉 크세노파네스는 소크라테스 전의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과 유사한 맥락에서, 조금 더 명시적으로 단일신교Henotheism을 주장한 것이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인간들 사이에서 비난받을 만하고 흠잡을 만한 것들 모두를, 즉 간통, 그리고 속이기를 신들에게 부여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은 신들이 태어나고, 자신들처럼 옷을 입으며, 자신들의 것과 같은 목소리와 형체들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들, 말들, 그리고 사자들이 손을 갖는다면, 또한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사람이 만드는 것과 같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말들은 말들과, 소들은 소들과 유사한 신의 모습을 그릴 것이고, 각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형체를 만들 것이다.
아이티오피아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들이 코가 낮고 피부가 검다고 말하고, 트라키아인들은 자신들의 신들이 눈이 파랗고 머리카락이 붉다고 말한다.
신들과 인간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하나인 신은 형체도 생각도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그 하나인 신은 모든 것을 보며, 모든 것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듣는다.
오히려 그는 애쓰지 않고도 마음의 생각으로noou phreni 모든 것을 휘두른다.
그런데 하나인 신은 언제나 같은 곳에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머물러 있다. 또한 이때는 여기, 저때는 저기로 옮겨다니는 것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크세노파네스 단편 11, 14, 15, 16, 23, 24, 25, 26[2]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은 신들이 태어나고, 자신들처럼 옷을 입으며, 자신들의 것과 같은 목소리와 형체들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들, 말들, 그리고 사자들이 손을 갖는다면, 또한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사람이 만드는 것과 같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말들은 말들과, 소들은 소들과 유사한 신의 모습을 그릴 것이고, 각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형체를 만들 것이다.
아이티오피아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들이 코가 낮고 피부가 검다고 말하고, 트라키아인들은 자신들의 신들이 눈이 파랗고 머리카락이 붉다고 말한다.
신들과 인간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하나인 신은 형체도 생각도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그 하나인 신은 모든 것을 보며, 모든 것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듣는다.
오히려 그는 애쓰지 않고도 마음의 생각으로noou phreni 모든 것을 휘두른다.
그런데 하나인 신은 언제나 같은 곳에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머물러 있다. 또한 이때는 여기, 저때는 저기로 옮겨다니는 것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크세노파네스 단편 11, 14, 15, 16, 23, 24, 25, 26[2]
여기서 단일신교는 유일신교Monotheism와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하나의 신을 제외한 나머지 신의 이론적 부존재는 명시하지 않으나 극도로 상대화시키며, 실천적으로 하나의 신을 숭배한다. 탈레스 후의 이오니아 학파, 피타고라스,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전통종교, 그리고 남왕국 멸망 전의 유다교가 단일신교에 해당한다.
단일신교와 유일신교의 구별 외에도 또 하나 주의점이 있다. 피타고라스의 신적인 일자The One 개념에서 영향 받은 크세노파네스의 신적인 일자 개념이 자연적 개념이기 때문에 근대적인 범신론처럼 파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시대착오적인 오류이다. 소크라테스 전 그리스 철학에선 자연(본성)과 초자연(초본성)을 구별하지 않고 신들도 자연으로 보았다. 동시에 최초의 자연적 실재가, 설령 아무리 무미건조하고 무념무상적 존재로 보이더라도, 우주만물을 발생시키는 살아있는 실재라는 건 이오니아 학파부터 피타고라스 학파 등 철학 전반의 공통 견해였다. 크세노파네스 및 동시대 철학의 신론은 가급적 그 시대의 맥락에서 독해하는 게 필요하다.
신들과 우주만물에 관하여 그 당시
로이 케네스 해크Roy Kenneth Hack, 『그리스 철학과 神: 소크라테스이전 찰학자들에게서 신 개념의 역사』God in Greek Philosophy to the Time of Socrates (1931), 이신철 번역, 도서출판 b, 2011, p.54
[
발췌자 주- 헤시오도스 시대]
통용되고 있던 관념들의 세 가지 특징은 특별히 강조될 만하다. 그 당시 그리고 그 후 피타고라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하나의 자연적 실재가 뒤이어 나타나는 신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물의 신적인 기원이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
탈레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신들을 포함하여 우주 내의 모든 것이 자연적이라고 생각했다. 탈레스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했다. 어떤 실체가 그 자신으로부터 우주만물을 발생시키는 살아있는 실체로서 간주될 수 있다고 가장 잘 주장할 수 있는가? - 같은 책 67쪽]
둘째, 이 신적인 기원의 이름과 본성에 관한 점증하는 관심이다. 이러한 관심은 헤시오도스가 호메로스의 선택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사실과, 이 시기 동안에 다른 많은 신발생론들이 지어지고 있었는데, 그것들 가운데 몇몇은 신적인 기원을 선택함에 있어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그 둘과 달랐다는 사실에 의해서 증명된다. 셋째, 신이나 인간의 본성과 힘이 그가 유래한 실체에 의해 설명될 수 있고 또 그 결과라는 관념이 이미 통용되고 있었다. ... 어떤 다른 행위자의 개입 없이 자기 자신과 닮은 어떤 것을 산출할 수 있는 능동적 실체라는 이 관념은 물론 그리스 사유에 대해 너무도 심원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로이 케네스 해크Roy Kenneth Hack, 『그리스 철학과 神: 소크라테스이전 찰학자들에게서 신 개념의 역사』God in Greek Philosophy to the Time of Socrates (1931), 이신철 번역, 도서출판 b, 2011, p.54
이 외에도 인식의 상대성이나, 진리와 의견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한 것이 전해지고 있다. 태양이 신이 아니라 불덩어리라는 등[3] 이런 저런 지역들을 돌아봤는데 해초 찌꺼기나 조개꼭대기가 있을 수가 없는 장소에서 발견되는 걸로 볼 때 육지나 바다는 서로 변화하는 것이라는 등 자연철학적인 얘기도 좀 했던 듯하다.
3. 기타
옛날에는 별 취급을 못 받았으나 현대에 들어와서 후배 철학자들이나 엘레아학파에 끼친 영향이 좀 더 널리 인정받고 있다. 허나 현대에도 그가 과연 철학자로 분류해야 하는지 음유시인으로 분류해야 하는지는 논쟁거리이다.생몰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고대인에 유랑시인 치고는 엄청나게 오래 살았다. 오래 살았던 데다가 25살부터 고향을 떠나 전 그리스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4] 인격신을 매미가 탈피하고 남은 껍데기 취급하거나 신의 개념이 각지에 따라 다르다는 증언 등은 후대 소피스트들이 본질과 관습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의 개념을 상대적으로 취급하는 일면과 더불어 폴리스의 재정과 법질서를 강조하는 크세노파네스의 일면은, 후대 소피스트들이 입법활동을 함에 있어서 법이 신으로부터 받은 신령하고 존엄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연결지어 생각해 보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1]
후대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성이나 지혜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유한 특성이자 가장 위대한 특성이기 때문에 가장 위대하다는 말을 하는 것에 비해 상당히 담백하고 현실정치에 기울어져 있다. 프로 입털기꾼인
제논을 제외하면 장군, 입법가들이 있었던 이탈리아
엘레아학파의 특성인 것 같다.
[2]
헤르만 딜스Hermann Diels,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Fragmente der Vorsokratiker3 11 B 11, 14, 15, 16, 23-6, Berlin, 1912
[3]
후대의 자연철학자는 이 소리 했다가 사형선고당했다.
[4]
젊은
엠페도클레스가 키배를 걸어오자 털어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