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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오드뤼사이 왕국 초대 군주 Kερσoβλέπτης | 케르소블렙테스 |
||
제호 | 한국어 | 케르소블렙테스 |
그리스어 | Kερσoβλέπτης | |
영어 | Cersobleptes | |
생몰 년도 | 미상 ~ 미상 | |
재위 기간 | 기원전 360년 ~ 기원전 34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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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부 오드뤼사이 왕국 초대 군주. 아버지 코티스 1세 사망 후 분열된 왕국을 통합하고자 사력을 다했으나 아테네와 마케도니아 왕국 등 외세의 침략으로 번번이 좌절한 끝에 필리포스 2세에게 패망했다.2. 생애
오드뤼사이 왕국 7대 군주 코티스 1세의 아들이다. 기원전 360년 9월 아버지가 연회에 초대했던 파이톤과 헤라클레아데스에게 암살당한 뒤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베리사데스와 아마도코스 2세가 이에 불복하여 기원전 359년 반란을 일으켯다. 베리사데스는 서쪽으로는 스트라몬 강, 동쪽으로는 마로니아 강에 이르는 서부 트라키아를 지배했고, 아마도코스 2세는 마로네이아와 메리차 강 사이의 중부 트라키아를 다스렸다. 그에게 남은 영역은 헤브로스 강과 톤조스 강 하류 너머의 동부 트라키아에 국한되었다.기원전 358년, 다른 정적들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그는 왕국의 재통합을 이루기 위해 베리사데스와 아마도코스 2세 토벌에 나섰지만, 두 사람이 서로 연합하고 아테네까지 이들을 돕는 바람에 실패했다. 결국 기원전 357년, 그와 베리사데스, 아마도코스 2세는 화평을 맺기로 했다. 세 사람은 아테네와 공동으로 동맹을 맺기로 했으며, 에게 해와 헬레스폰트를 따라 개척된 식민도시의 공물을 공유하며, 그리스의 속국 식민도시가 반란을 일으킬 때 군사적 지원을 주기로 약속하는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는 왕국을 통합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그러던 기원전 357/356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가 베리사데스의 영역에 속했던 암피폴리스와 크레니데스를 정복했다. 베리사데스는 기원전 352년경 사망했고, 아들인 케트리포리스가 뒤를 이었다. 케트리포리스는 필리포스 2세의 침략에 맞서 파이오니아와 일리리아의 왕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필리포스 2세는 그들을 하나씩 격파했다. 이리하여 케트리포리스의 힘이 약화되자, 그는 이를 기회로 여기고 마케도니아 왕국과 동맹을 논의했다. 그가 케트리포리스를 공략하는 걸 마케도니아가 돕는다면, 자신은 마케도니아가 아테네 영역을 치는 걸 돕겠다고 했다. 아테네는 필리포스 2세와 그의 동맹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자, 세스토스를 기습 공략한 뒤 주민들을 학살해 위협을 가했다. 이에 그는 체르소네스 반도의 많은 영토를 포기하는 대가로 아테네와 동맹을 맺기로 했다.
필리포스 2세는 즉각 아마도코스 2세와 동맹을 맺고 그를 향해 진격했다. 마케도니아군을 상대로 연전연패한 끝에 기원전 351년 자기 아들을 마케도니아에 인질로 보냈다. 이후 필리포스 2세는 키트리포리스의 왕국을 멸망시키고 아마도코스 2세 마저 기원전 351년 폐위시키고 아마도코스 2세의 아들 테레스 2세를 새 왕으로 옹립했다. 이후 마케도니아의 봉신이 되었던 그는 기원전 347년 또는 346년 초 아테네군을 끌여들어 에게 해 연안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군은 곧바로 공세를 가해 아테네 수비대를 물리치고 에게 해 연안을 직할 통치했다. 몇년 후, 그는 테레스 2세와 동맹을 맺고 마케도니아의 보호를 받고 있던 케르소네시아를 침공했다. 그러자 필리포스 2세는 페르시아 샤한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와 협상해 케르소블렙테스에 대한 이오니아 도시국가들의 지원을 중단하게 한 뒤 기원전 342년 오드뤼시아 왕국을 향한 최종 공세를 개시했다.
이 전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상당히 격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필리포스 2세는 기원전 341년 봄 큰 피해를 입어서 지원군을 불러야 했다. 그러나 기원전 341년 후반기에 끝내 그와 테레스 2세를 폐위시키고 트라키아 전역을 굴복시켰다. 그 후 오드뤼사이 왕국은 마케도니아예 예속되어 필리포스 2세가 세운 스트라테고스의 간섭을 받아야 했으며, 마케도니아 궁정에 공물을 매년 제공하고 보조병을 제공해야 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기원전 355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델포이 비문에 따르면, 그에게는 아이울라오스, 포세이도니오스, 메디스타스, 테레스 등 4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324년 왕국의 독립을 이뤄낸 세우테스 3세가 그의 아들이거나 형제라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