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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식스 왕국 제13대 국왕 캐드왈라 Cædwal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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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잉글랜드 화가 램버트 바나드(Lambert Barnard)가 그린 상상화. | |
이름 |
웨식스의 캐드왈라 (Cædwalla of Wessex) |
출생 | 659년 |
사망 | 689년 (향년 29~30세) |
재위기간 | 685년 ~ 688년 |
고대 영어: Cædwalla (캐드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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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식스 왕국의 제13대 국왕이다.2. 이름
'캐드왈라'라는 이름은 영어가 아니라 웨일스어 인명인 '커드월론'(Cadwallon)이 원형으로, 고전 브리튼어인 'Katuwellaunos'에서 유래했다. 더 과거로 가면 고전 켈트어 'Katu-welnā-mnos'라는 형태였는데, '전투에서(katu-) 이끄는 (welnā-) 1인(-mnos)'이라는 의미였다.실제로 웨일스 공국(Principality of Wales)의 전신인 귀네드 왕국(Kingdom of Gwynedd)의 왕 중에 커드왈론(Cadwallon ap Cadfan, 재위기간 625 ~ 634)이라는 자가 있었다. 후에 브리튼왈다의 칭호를 얻는 머시아의 펜다(Penda)와 손을 잡고, 당시 브리튼왈다였던 노섬브리아의 에아드위네을 패퇴시킨 인물이었다. 어쩌면 캐드왈라의 이름은 귀네드의 커드왈론에게서 따온 것일 수도 있다.
웨식스의 시조인 체르디치를 필두로 해서 칠왕국 중 유독 웨식스 왕국만 왕들 중에 브리튼식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 때문에 ' 웨식스 왕가는 사실 앵글로색슨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브리튼인들이었다'는 설도 있다.
3. 생애
그의 출신이나 어렸을 때의 일은 기록된 것이 없다. 그의 생애는 대부분이 《앵글로색슨 연대기》와 《성 윌프리스의 삶》[1]에 의존하는데, 재위기간이 3년뿐이었던 탓에 많은 기록이 남아있진 않다.그는 웨식스의 제3대 국왕이었던 체울린의 현손으로, 그가 속한 체울린계는 체울린 사후 왕위를 탈취한 체올계 왕조와 경쟁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쿠드위네(cuthwine)와 할아버지 케다(cedda)[2]도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귀족으로서 상당히 강력한 권력을 누렸고,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캐드왈라의 아버지는 첸베르흐트(Cenberht)였는데, 그도 웨식스의 왕이었지만 유일한 왕은 아니었다. 웨식스의 제9대 국왕이었던 첸왈흐 사후 그의 아내였던 색스부르흐(Seaxburh)가 여왕으로 등극하자 이에 반발한 수많은 하위왕(underking)들과 귀족들이 일어났고, 웨식스는 분열되었다. 첸베르흐트 역시 그런 하위왕들 중 한 명이었다.
캐드왈라는 어렸을 적 어느새인가 웨식스에서 추방당했으나 오히려 그 기간 동안 추종자들과 함께 군대를 모아 서식스를 공격해 서식스 왕 에델웨알흐(Aethelwealh)를 죽였다. 그러나 서식스의 영주(Ealdormann) 베르둔(Berthun)과 안둔(Andun)의 반격을 맞고 내쫓겨 서식스를 정복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685년 그는 웨식스로 돌아와 왕이 되었다.
686년 서식스의 공동 국왕이 된 베르둔과 안둔이 켄트를 침략해 자신들의 사촌이었던 에아드리치(Eadric)를 왕위에 앉혔다. 그러자 캐드왈라가 다시 켄트를 침략해 에아드리치를 축출하고, 자신의 동생인 물(Mul)을 왕위에 앉힌 후, 이어서 서식스를 침략해 베르둔과 안둔을 죽여 서식스를 완전히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3]
이어서 그는 게르만 이교를 믿던 왕국 와이트 섬을 침략해 주민들을 모두 죽이고, 웨식스인들의 식민지를 세웠다. 와이트 섬의 마지막 군주였던 아르왈드는 살해되었고, 그의 두 형제는 도주했으나 이내 발견되어 캐드왈라는 그들 역시 살해했다. 하지만 성직자들의 설득으로 그들은 죽기 전 세례를 받았다. 이 전쟁에서 웨식스가 승리했지만 국왕 캐드왈라 역시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승승장구를 달리던 캐드왈라는 688년 돌연 퇴위하고, 로마로 순례를 떠났다. 왕위는 이네(Ine)가 이었다.
캐드왈라는 개인적인 신앙으로 가톨릭을 믿었지만, 웨식스가 완전히 기독교를 믿기 이전의 시기였다. 유행에 따라 대충 믿었을 수도 있고, 딱히 독실하지도 않았을 수 있다.
그는 689년 로마에 도착해서 교황 세르지오 1세에게 베드로(Petrus)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하지만 며칠 뒤 와이트 섬 정복에서 생긴 상처가 악화되어 죽었다.
이교도 왕이었으나 죽기 직전 개종한 것이 귀감이 되어 그는 가톨릭의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그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되었으며, 당시 밀라노 대주교인 베네딕투스 크리스푸스가 비문을 작성해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