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ABABA><colcolor=#000000> 사보이아 공작부인 스페인의 카탈리나 미카엘라 Catalina Micaela de Españ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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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스페인어 |
카탈리나 미카엘라 데 아우스트리아 이 발로이스 (Catalina Micaela de Austria y Valois) |
이탈리아어 |
카테리나 미켈라 다스부르고 (Caterina Michela d'Asbur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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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67년 10월 10일 | |
스페인 왕국 마드리드 | ||
사망 | 1597년 11월 6일 (향년 30세) | |
사보이아 공국 토리노 | ||
배우자 |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 (1585년 결혼) | |
자녀 | 필리포 에마누엘레,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마르게리타, 이사벨라, 마우리치오, 마리아 아폴로니아, 프란체스카 카테리나, 토마소 프란체스코, 조반나 | |
아버지 | 펠리페 2세 | |
어머니 |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 | |
형제 |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 |
종교 | 가톨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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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펠리페 2세와 그의 세번째 부인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의 차녀. 프랑스 왕국 앙리 2세의 외손녀이자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 앙리 3세의 조카다.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와 결혼했다.합스부르크 제국의 명장 사부아 공자 외젠의 증조할머니이다.
2. 생애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는 장녀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를 낳고 다음해에 다시 딸을 낳았다. 아이의 이름은 엘리자베트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대천사 미카엘에서 따와 카탈리나 미카엘라라고 지어졌다. 펠리페 2세는 연이어 딸이 태어나자 조금 실망했지만 딸들을 매우 사랑했다.1585년 3월 11일에 사라고사에서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와 결혼식을 올렸다.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의 아버지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프랑스에게 점령당했던 사보이아 공국을 탈환할 때 생캉탱 전투에서 본인이 직접 스페인령 네덜란드 주둔군을 이끌고 프랑스군을 무찔렀기 때문에 스페인과 우호적인 관계였다.[1] 펠리페 2세는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우호관계를 이어나갈 필요성을 느끼고 둘째딸을 사보이아 공작에게 시집보냈다.
사보이아 공국 토리노 궁정에서 카탈리나 미카엘라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녀는 지적인 미인이었지만 오만했고, 스페인에서 입던 옷들을 고수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수완을 보여 사보이아 공국에 이익을 가져다주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카탈리나 미카엘라는 전쟁으로 자주 궁을 비우는 남편의 자리를 대신했다.[2] 남편과는 금슬이 매우 좋았다. 부부는 떨어져 지낼 때면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10명의 아이를 낳았다. 30살이 되는 1597년에 카탈리나 미카엘라는 막내 조반나를 조산하고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펠리페 2세는 딸의 이른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일부 학자들은 그녀의 죽음이 펠리페 2세의 죽음을 앞당겼다고 주장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스페인의 카탈리나 미카엘라 (Catalina Micaela of Sp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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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2세 (Felipe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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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5세 (Karl 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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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1세 (Felipe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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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나 1세 (Juana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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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이자벨 (Isabella of Portug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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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1세 (Manuel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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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마리아[3] (Maria of Arag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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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트 드 발루아 (Elisabeth of Valo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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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2세 (Henri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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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1세 (Francis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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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클로드[4] (Claude of Fra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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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드 메디시스 (Catherine de' Medic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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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비노 공작 로렌초 데 메디치 (Lorenzo de' Medici, Duke of Urbi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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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드 라 투르 도베르뉴 (Madeleine de la Tour d'Auvergne) |
3.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 / 자녀 |
1남 |
피에몬테 공 필리포 에마누엘레 (Philip Emmanuel, Prince of Piedmont) |
1586년 4월 2일 | 1605년 2월 9일 | |
2남 |
사보이아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 (Vittorio Amedeo I) |
1587년 5월 8일 | 1637년 10월 7일 |
프랑스의 크리스틴 마리 슬하 3남 4녀[5] |
3남 |
사보이아의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Emanuel Filibert of Savoy) |
1588년 4월 16일 | 1624년 8월 4일 | |
1녀 |
포르투갈의 총독 마르게리타 (Margaret of Savoy, Vicereine of Portugal) |
1589년 4월 28일 | 1655년 6월 26일 |
만토바 공작 프란체스코 4세 슬하 1남 2녀 |
2녀 |
모데나의 공세자비 이사벨라 (Isabella, Hereditary Princess of Modena) |
1591년 3월 2일 | 1626년 8월 22일 |
모데나 레조 공작 알폰소 3세 슬하 9남 5녀 |
4남 |
사보이아의 마우리치오 (Maurice of Savoy) |
1593년 1월 10일 | 1657년 10월 4일 | 사보이아의 루이사 크리스티나 |
3녀 |
사보이아의 마리아 아폴로니아 (Maria Apollonia of Savoy) |
1594년 2월 9일 | 1656년 7월 13일 | |
4녀 |
사보이아의 프란체스카 카테리나 (Francesca Caterina of Savoy) |
1595년 10월 6일 | 1640년 10월 20일 | |
5남 |
사보이아-카리냐노 공작 토마소 프란체스코[6] (Thomas Francis, Prince of Carignano) |
1596년 12월 21일 | 1656년 1월 22일 |
마리 드 부르봉 슬하 5남 2녀 |
5녀 |
사보이아의 조반나 (Giovanna of Savoy) |
1597년 11월 7일 | 1597년 11월 8일 |
[1]
펠리페 2세와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외사촌지간이기도 했다. 펠리페 2세의 어머니
포르투갈의 이자벨과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의 어머니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즈는
마누엘 1세의 딸로 친자매였다.
[2]
위그노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을 무렵,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는
프랑수아 1세의 외손자임을 내세워
프랑스 왕위를 주장했고
프로방스 일대로 원정을 나가는 일이 잦았다.
[3]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의 3녀이다.
[4]
루이 12세의 장녀이다.
[5]
프란체스코 자친토,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등
[6]
훗날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카를로 알베르토부터 시작되는 사보이아-카리냐노 분가의 시조로,
사부아 공자 외젠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