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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22:49:13

카르멘 미란다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카르멘 미란다
Carmen Miranda
본명 마리아 두 카르무 미란다 다 쿠냐
Maria do Carmo Miranda da Cunha
출생 1909년 2월 9일
포르투현 마르쿠 드 카나베즈스
사망 1955년 8월 5일(향년 46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국적
[[포르투갈 왕국|]][[틀:국기|]][[틀:국기|]] | (1909~1910)
| (1910~1926)
| (1926~1930)
| (1930~1933)
| (1933~1937)
| (1937~1946)
| (1946~1955)
직업 배우, 가수, 댄서
가족 세실리아 미란다 드 카르발류 (여동생)
아우로라 미란다 다 쿠냐 히샤이드 (여동생)
활동 기간 1929년 ~ 1955년
1. 개요2. 생애3. 출연작4.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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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 출생 브라질 미국의 가수, 배우. 과일이 잔뜩 담긴 모자를 쓰고 노래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2. 생애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브라질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포르투갈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지만, 포르투갈 국적은 계속 유지했다.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어릴 때부터 춤과 노래를 좋아했던 카르멘 미란다는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심하게 반대하여 카르멘이 오디션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마구 구타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카르멘을 지원해주었고 작곡가 조수에 데 바로스의 도움을 받아 1929년에 첫 음반을 녹음하고 1930년대의 브라질 유명 가수가 되는 데 성공했다.

1939년 5월 18일 미국 뉴욕에서도 브로드웨이 공연에 첫 출연했는데, 비록 대사는 4단어밖에 안 되는 단역이었지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언론에서도 그녀를 띄워주었고 그녀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너무 오래 활동한 탓인지 사실상 모국이었던 브라질에서는 가수로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8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창작을 자유를 원하기 시작한 그녀는 1947년 본인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과도한 음주와 흡연, 약물 복용으로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지만, 1955년 4월 라스베이거스의 뉴프론티어 호텔에서 공연하고 그로부터 3개월 뒤 쿠바에서도 공연을 하면서 활발히 활동했다. 이후로는 기관지 질환을 회복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갔는데, 죽음을 앞두기 불과 하루 전에도 지미 듀란트 쇼 촬영에서 곡을 완성했다. 그렇게 마지막 촬영이 끝난 후에도 그 쇼의 출연진들을 위해 세트장에서 즉석 공연까지 펼치고 새벽 3시쯤 옷을 정리하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화장을 지우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돌아오는 길의 복도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3. 출연작

4.


[1] 막스 형제로 활동했던 유명 코미디언인 그루초 막스와 같이 주연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