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조르제비치 왕조의 문장 |
세르보크로아트어( 키릴 문자): Карађорђевић
세르보크로아트어( 라틴 문자): Karađorđević
1. 개요
19세기 초 '제1차 세르비아인 봉기'의 지도자인 카라조르제 페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를 시조로 하는 왕조다. 오브레노비치 왕조와 경쟁하다 패해서 1858년부터 망명 신세로 있었으나, 알렉산다르 1세의 삽질로 오브레노비치 왕조가 몰락하면서 카라조르제의 손자인 페타르 1세가 1903년 세르비아 국회의 추대로 왕위에 복귀했다.제1차 세계 대전을 버텨내면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이루었고 1929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 등 파르티잔이 유고슬라비아를 장악하면서 왕위를 잃게 된다.
왕조의 수장이자 세르비아의 왕위 요구자는 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1945~)[1]이며, 세 아들과 한 명의 손자를 두고 있다. 한편 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는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2]이라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에도 포함되어 있지만, 120위권이라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는 없다.
왕실 영묘는 세르비아 중부 토폴라에 있는 오플레나치로 1910년 창건됐다. 카라조르제 페트로비치의 어머니부터 시작하여 페타르 2세에 이르기까지 6대가 묻혀 있다.
2. 왕사
2.1. 세르비아 혁명정부
- 카라조르제 페트로비치 (재위 1804 ~ 1813)[3]
2.2. 세르비아 공국
- 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 (재위 1842 ~ 1858)
2.3. 세르비아 왕국
- 페타르 1세 (재위 1903 ~ 1921)
2.4. 유고슬라비아 왕국[4]
2.5. (왕위 요구자)
- 페타르 2세 (명목상 재위 1945 ~ 1970)
- 알렉산다르 왕세자 (명목상 재위 1970 ~ 현재): 오를레앙스-브라간사 가문 페트로폴리스 계통 출신인 마리아 다 글로리아[7]와 결혼해 세 아들을 두었다가 이혼하고 그리스인 이혼녀 카테리나와 재혼했다. 현 부인과의 사이에 자녀는 없다. 한편 전처 마리아 다 글로리아는 에스파냐 귀족과 재혼해 두 딸을 두고 있다.
3. 계보
카라조르제 (1768 ~ 1817) |
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 (1806 ~ 1885) |
페타르 1세 (1844 ~ 1921) |
알렉산다르 1세 (1888 ~ 1934) |
페타르 2세 (1923 ~ 1970) |
알렉산다르 왕세자 (1945 ~ ) |
[1]
페타르 2세의 외동아들.
[2]
아버지인 페타르 2세, 어머니인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로스(그리스)의
유복녀)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다.
[3]
세습군주가 아니라 대지도자(Veliki Vožd)로 취임했다.
[4]
1929년까지는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왕국
[5]
둘째 아들이었으나 형 조르제가 정신적 문제로 난폭하여 폐태자당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6]
페타르 2세의 당숙으로 친
추축국 정책을 펴다가 실각한다.
그리스 왕국의 공주 올가(1903~1997:
요르요스 1세의 3남(넷째) 니콜라오스 왕자와
로마노프 왕조 엘레나 여대공(
알렉산드르 2세의 아들 블라디미르 대공의 외동딸) 사이의 세 딸 중 장녀이자
마리나 왕자비의 큰 언니)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7]
페드루 2세의 장녀
이자베우의 장남 페드루 드 아우칸타라의 손녀,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이종사촌이자, 포르투갈 왕가 수장 브라간사 공작 두아르트 피우의 외사촌이다
[8]
미혼이나 2017년생 혼외자 딸이 한 명 있다. 다만 혼외자의 존재가 계승권을 포기한 이유와 관련이 있는지는 미상.
[9]
세르비아인 그래픽 디자이너 다니차 마린코비치(Danica Marinković, 결혼 후 성을 Karađorđević로 변경)와 결혼했다.
[10]
2차 세계대전 이후 카라조르제비치 왕조 구성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세르비아에서 태어났다.
[11]
페타르 1세의 딸 이후 4대만에 태어난 직계 딸이다. 그리고 1993년생인
재당고모(페타르 2세의 동생 토미슬라프의 손녀)와 이름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