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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20 09:30:01

칠절산 구렁이

서유기에 등장하는 요괴. 칠절산 희시동 근처에 살고 있었다.

저 칠절산 희시동부터가 상당히 괴상한 동넨데, 칠절산은 나무가 엄청나게 많은 곳으로 이름부터가 감나무의 일곱 가지 좋은 점, 칠절(七絶)에서 따왔다.[1] 그런데 문제는 이 산 근처에 사는 짐승이나 사람이 적다보니 엄청나게 많이 열린 감이 대부분 그대로 땅에 떨어져 썩고, 또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천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서 마침내 켜켜이 쌓이면서 썩어가는 감 때문에 엄청나게 고약한 냄새가 나서 결국 '원래는 감 시(枾)'자를 썼는데 '똥 시(屎)'자로 바꿔서 희시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근처의 마을에도 바람만 불면 지독한 냄새가 풍겨와 도저히 살기 힘들다고.

삼장법사 일행이 도착한 마을의 노인은 저 설명을 해주면서 거기다 얼마 전부터는 웬 요괴마저 나타나기 시작해서 밤중에 가축을 잡아가거나 한다며 푸념한다.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영험하다는 스님이랑 도사를 한 분 씩 모셔온 적이 있는데, 두 사람 다 요괴에 맞서 싸웠지만 지고 죽어버려서 돈만 헛쓴데다가 제자라는 자들에게 배상으로 돈을 조금 주었는데 이 망나니들이 돈을 더 뜯어내려고 고소를 하니 어쩌니 해서 골칫거리만 더 커진 상태라고 한다. 이에 손오공은 자기네 일행을 잘 먹이고 잘 재워주기만 하면 요괴를 퇴치해 주겠다고 장담한다.

이후 밤중에 시커먼 음기를 뿜어대고 등불 두 개를 앞세우면서 요괴가 나타나는데, 손오공이 한번 말을 걸어 봤으나 문답무용으로 공격하기에 맞서싸운다. 그런데 창 한 자루로 손오공의 여의봉을 척척 잘 막아내는데다가, 저팔계가 합세했음에도 어느샌가 창 한 자루가 더 나타나 둘의 협공도 막아내고, 거기다 창 끝은 보이는데 창 자루는 도저히 보이지를 않아 손오공이 의아해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정체는 엄청나게 거대한 구렁이. 등불은 요괴의 눈이었고[2] 창은 바로 구렁이의 혓바닥. 두 갈래로 갈라져있으니 창 두 자루를 쓰는 것처럼 보였고 혓바닥이기 때문에 창 자루의 반대쪽 끝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짐승이 오랜 세월 도를 닦으면 도술을 부릴 수 있게되고 마침내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하는 것도 가능해지는데, 이 요괴는 아직 수행이 부족해 인간의 모습은 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름도 없고 말도 할 수 없었던 것. 다만 그렇다보니 음기가 지나치게 강해서, 날이 밝아오자 그냥 도망쳐버린다.

이후 손오공과 저팔계의 추적 끝에 마침내 굴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오는데, 손오공은 냅다 입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서유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손오공을 삼키는 건 거의 자살행위...

저팔계가 '아이고 저 손오공놈이 드디어 까불다가 요괴한테 먹혔구나'라고 하자 구렁이의 뱃속에서 손오공이 안 죽었다고 대답한 뒤 자기가 다리를 하나 놓아보겠다고 하곤 있는 힘껏 중간의 등 부분을 찔러버리자 구렁이는 엄청난 고통에 등을 위로 번쩍 들어올린다. 저팔계가 그 놈의 다리 무서워서 어떻게 건너냐고 낄낄대자 손오공은 그러면 배를 띄워보겠다고 하며 이번엔 배 부분을 있는 힘껏 찍어버리고, 그러자 이번엔 배를 땅에 붙이고 머리랑 꼬리가 위로 올라가버린다. 저팔계가 이번엔 배는 있는데 돛이 없으니 어떻게 움직이냐고 하자, 손오공은 뱃 속에서 여의봉을 늘려 몸가죽이 위 아래로 쫙 늘어나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구렁이는 고통에 겨워 질주하다가 그 자리에서 요단강 익스프레스 행. 이후 손오공이 나오고나서 시체마저 저팔계가 껄껄 웃으면서 '우리 돼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이런 뱀 시체를 가지고 노는 것'이라며 쇠스랑으로 실컷 난도질한다. 그야말로 뱀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끔살...

이렇게 요괴 자체는 그나마 다른 곳보다 쉽게 잡았는데 문제는 서쪽으로 가려면 넘어야 하는 희시동 그 자체이다. 어찌나 독한 냄새인지 손오공까지 기겁할 정도. 결국 저팔계가 거대한 돼지의 모습으로 변해 주둥이로 파헤쳐 길을 내며 지나가기로 하고,[3] 마을 사람들은 요괴를 퇴치해준 보답으로 저팔계가 희시동을 지나가는 동안에 뒤따라 쫓아오면서 매 끼니 푸짐하게 챙겨주었다.


[1] 1. 오래 산다. 2. 그늘이 많다. 3. 새(혹은 까마귀) 둥지가 없다. 4. 벌레가 없다. 5. 서리맞은 잎이 볼만하다. 6. 열매가 맛있다. 7. 잎이 두텁고 크다. 이렇게 일곱이라고 한다. [2] 처음에 등불같은 두 눈을 본 저팔계가 예의가 바른 요괴라며 희희덕대다가 손오공이 저건 눈이라고 한 마디 하자 팔계는 저 커다란게 눈이면 몸집이 얼마나 큰 거냐며 겁을 집어먹었다. [3] 당연히 저팔계도 저런 오물에 주둥이를 쳐박는 건 싫어서 기겁하며 반대했지만 삼장법사가 그렇게만 해주면 이번에 가장 큰 공로를 세운 것은 저팔계로 해주겠다며 꼬드기자 단박에 웃고 좋아라한다. 다만 거대해지면 뱃통이 커지는 만큼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변신한 모습은 위엄 넘치는 흑돼지인데 큰 몸집에 윤기가 흐르는 털, 파초잎처럼 큰 귀 등 무지막지한 듯 하다.